〈 4화 〉[한] 의 시민, 향이.
“그러니까....두 분들은 다른 세계에서 오셨다...인가요?”
“그래....나도 어찌된 영문인지 전혀 모르겠다.”
향이와 혁수는갑작스레쓰러진 나를 데리고 향이의 집에 데려왔다.
혁수의 말로는 향이는 한참 정신을잃은 나를 걱정스레 보았다나.
아무튼, 다시 한 번 이 상황을 정리하며겸사겸사 향이에게도 우리의 정체를 밝혔다.
뭐, 대충 살펴보니, 향이는 우리의 말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긴 나 같아도 갑자기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왔다! 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미친놈으로 보던가 하지, 진지하게 믿을 리가...
“그럼 그 세계는 어떤 곳 이예요?”
“잉? 진짜 우리말을 믿어?”
어라? 이런 반응은 생각 못했는데?
“어...전부 가짜인가요?”
지금까지 들려주던 이야기가 가짜였다는 줄 알고, 실망한 안색에 더욱 더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아..아냐 아냐! 진짜야! 그리고, 애초에 난 원래 남자였다고!”
“예?이렇게 귀여..아니 여자아이 같은 데...?”
“여자답다고 하지 마. 진짜 죽고 싶으니까.”
제발, 그러지 좀 말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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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이는 강준과 혁수가 살던 현대적 세계가 아닌, 신령과 악귀들이 존재하고, 도사들이 도술을 부리는 판타지 세계의 주민.
자신이 모르는 것을 완고하게 거부하기 보단, 받아드리고, 이해하려는 꿈 많은 여자아이였다.
그래서 향이는 처음 본 그들의 복장과, 말투, 하나하나가 신비하고, 알고 싶었다.
마치 신령님들의 세계에서 오신 듯, 한 기묘한 그들의 행세.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점점 더 듣고 싶은 찰나.
“일단 멱을 좀 감는 건 어떠신가요?”
그렇다.
강준과 혁수는 이 세계에서 떨어진 지 이틀 동안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여 꼴이 말이 아니었다.
피부는 먼지 구덩이에서 굴렀는지 까무잡잡해졌고, 옷들은 때가 타 시꺼매졌고, 특히 강준은 맨발로 뛰어다니질 않나, 길바닥에 쓰러지질 않나, 꼴이 말도 아니었다.
...냄새도 조금 나기도 했다.
“멱...? 어..어디서 씻는데?”
그래. 씻는 것 자체는 좋다. 흙내 나고, 땀 때문에 찝찝한 몸을 깨끗하게 씻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니깐.
“집을 나서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계곡이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안 돼.”
“네?”
“안 돼.”
강준은 아주 단호하고, 근엄한 목소리로 거부의 뜻을 밝혔다.
“지..지금...내 모습을 직시할 마음가짐이....”
34년간 남성으로 살았다. 아무리 여자가 되었어도, 내 안의 남성심은 아직까지 이 몸을 받아 드릴 준비가 덜 되었다.
“안 돼요.”
“응?”
“아무리 강준 도령님이 원래 남자였다 하더라도, 지금은 여자아이의 모습 아닙니까?
여자아이가 이렇게 꼬질꼬질한행세로 다니는 것은 제가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젠 형세가 역전되어 단호한 뜻을 내보인 향이.
강준은침을 꿀꺽 삼켰다.
도망치자.
이 상황에서의 파훼법이 머릿속에서 나오기 까지 걸리는 시간은 크게 걸리지 않았다.
“앗! 어딜 가십니까!”
“싫어! 싫다고 시발!”
강준은 아까 전처럼 집을 뛰쳐나올 때처럼, 발을 박찼다.
애새끼 같은 투정이긴 하지만, 별 수 없다. 남자였던 내가 여자의 몸으로 옷을 벗고 알몸으로, 그것도 주변이 다 뚫려있는 바깥에서 씻는다고? 아주 수치심으로 죽겠다.
숲에서야 정말 아무도 없고, 향이도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형. 거기까지.”
“야! 이 씨박! 니가 그러면 안되지!”
하지만 문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덩어리, 혁수에 인해서 내 도주찬스는 물거품이 되었다.
폼은 왜 잡고 지랄이야.
“니가 내 애마를 부숴먹었는데! 어떻게 니가 이런 배신을 할 수가 있어!”
브루투스 너마저...!
“아니이....고작 씻는거 가지고 왜 그래? 솔직히 그런 꼬라지로 계속 있을거야?”
“난! 씨발! 남자였다고! 너같이 예전 남자 모습이였으면 몰라도! 나보고 수치사로 죽으라고?!”
“....언젠간 익숙해져야 하잖아..”
나의 분노에 찬 웅변에 혁수는 잠깐 멈칫하긴 했지만, 끝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뚫린 입이라고 말하면그게 다 말이냐?”
“감사합니다. 혁수 도령. 자. 이제 멱을 감으러 가죠?”
그런 강준의 모습을 보고 싱긋 웃으며 다가오는 향이.
아까전의 상냥하고 귀여운 미소가 이제는 대 악마 디아볼로의 모습으로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게 보이거든.
“안..안돼! 제발! 그러지마아아아!!!”
그렇게 하림 마을 외각, 어느 한 초가집에서는 어떤 여성의 단말마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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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강준은 손을 얼굴에 포개며 끝도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아니 그녀가 서 있는 곳은 깊은 숲의 한 계곡.
저 큰 바위에선 폭포가 내려오며, 티 없이 맑은 물은 자연이 선사해준 최고의 선물과도 같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줬다.
지금 강준이 처한 상황만이 아니었다면, 그도. 아니 그녀도 단순하게 이 멋진 경치를 즐기며, 계곡 속으로 다이빙을 했을지도 모른다.
초가집에서의 탈주는 결국 큰 반항 한번 못하고 억지로 혁수의 손에 끌려오게 되었다.
여자가 돼서 약해진 근력을 체감하는 순간 이였다.
혁수놈은 나를 여기다 던져놓고는 자기도 씻으러 가겠다며, 조금 멀리 떨어진 강으로 떠났다.
아무리 그래도 허리춤에 대롱대롱 매달고 가는 건 아니지 시발....
죽여버릴테다. 반드시. 내 애마와 내 긍지를 걸고.
“자. 이제 그 옷들을 벗으시지요.”
“진짜 잠시만 기다...우왁!! 너 그 꼴이 뭐야!!”
그렇게 한숨만 푹푹 쉬던 강준을 보다 못한 향이가 그에게 다가왔지만 강준은 기겁하며 뒷걸음 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미 한 오라기 걸치지 않은 알몸 상태였기때문이다.
군살 없는 탄탄한 몸에, 굿은 일을 하며 생긴 잔 근육들, 또래 나이치고는 꽤나 튼실하게 성장한 가슴. 영락없는 여성의 몸을 들이대니, 아무리 자신보다 어린 나이인 향이라고 해도, 강준은 차마 볼 순 없었다.
“이미 도령도 여자아이지 않으십니까? 이제 슬슬 여자의 몸에익숙해 질 필요가 있으십니다.”
“아니..하지만....아! 잠깐! 잠깐만!!”
그런 복잡한 강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큼성큼 다가와강준의 누더기 같은 옷들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내가! 내가 직접 벗을게!! 알겠으니까!”
결국 그런 향이의 행동력 덕분에 강준은 마음을 다잡고, 자신을 감싸고 있던 옷들을 하나 둘 씩 벗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 옷들은 거의 붙들려 있는 상태와 비슷해서, 약간만 몸을비틀어도 쉽게 벗을 수 있었다.
“...하...”
다시금 자신의 모습을 살피는 강준.
맨들맨들한 팔다리,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 머리카락, 약간 봉긋하게 튀어나온 가슴.
그리고 이미 사라져 형체도 없어진 주니어가 있었던 공간.
미안하다 주니어야. 나쁜 아빠를 만나서...미안하다...
“잠..잠깐! 머리를 한번 씻고 들어가셔야지요!”
“몰라! 일단 들어갈래!”
자신의 달라진 몸과, 이렇게 탁 트인 공간에서의 목욕은 강준에겐 일종의 고문과도 같았다.
강준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한시라도 빨리 이 시간을 끝내는 것.
“히익! 차가워!”
그렇게 추운 날씨도 아닌, 햇빛이 쨍쨍한 낮인데도, 이 민감한 몸은 발을 계곡물에 살짝 담구기만 했는데 비명이 터져나왔다.
“...흡!”
하지만 이렇게 알몸으로 바깥에 있는 것 보다는 물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꾹 참고, 머리까지 푸욱 담궜다.
“푸하!...웁,,퉤퉤! 머리카락 이거 거슬려 죽겠네!”
방금까지 살랑살랑 거리던 긴 머리카락이 물을 머금으니 꽤나 무겁고, 자꾸 눈이나 입에 들어가서 거슬린다. 단발로 잘라버릴까 보다.
“어휴 참. 이리 오셔봐요. 꼼꼼히 씻으셔야지요.
어느새 자신도 계곡물에 들어온 향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물장난 하는 것처럼 보이는 강준의 모습에 불편해 하는 긴 머리를 간단하게 정리해줬다.
“아. 이러니깐 편하네.”
“그쵸. 항상 들어가기 전에 한번 밖에서 머리를 간단하게 적셔줘야..”
“아 알았어. 언능 씻기나 하자.”
강준은 이젠 이 상황을 간단하게 포기하고, 향이의 말은 한 귀로 흘려보낸 뒤, 후딱 씻어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렇긴 한데.
‘와. 얼굴도 진짜여자애네.’
핸드폰도 차에 두고 있었던 지라, 딱히 자신의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신기하긴 신기했다.
눈매는 남자였을 때와 비슷하게 약간 서있는 상에, 긴 속눈썹,오똑한 콧날, 부드러운 피부와볼살. 이게 진짜 나인가 싶어 잠시 멍하게 보고 있을 정도였다.
“자~ 이제 꼼꼼히 멱을 감도록 해요.”
“자..잠깐 내가 스스로 씻을게!”
그렇게 잠시 의식이 흐려진 동안, 향이는 어느새 강준의 옆으로 와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잡았다.
“와. 정말 부드럽네요. 완전 여자애인데, 솔직히 남자였다는 말이 거짓말 같아요.”
“남자 맞다니깐...히익!”
향이가 갑작스럽게 강준의 몸을 더듬자, 여자애같은 비명소리가 튀어나왔다.
“자. 씻을 때는 옆구리와, 겨드랑이, 전신을 꼼꼼하게 닦아줘요.”
“흐윽...알았...힉! 그..그마안..하잇!”
향이가 강준의 몸을 더듬을 때 마다 강준의 입에서는 외마디 소리가 새어나왔다.
‘어떡하죠...? 너무 귀여워요!’
향이는 사실 여동생이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을 낳고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항상 마을에 사는 자매들을 부러워 하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이 강준이라는 사람은, 그녀의 취향에 딱 맞는 귀여운 여동생 같았다.
괜히 툴툴거리고, 성격도 드센 말괄량이 여동생. 정말 귀여웠다.
“후후...정말 이렇게 귀여우면 어째요...”
“야! 잠만! 끌어안지 마!..읍...으읍..!”
집에서 있을 때는 혁수의 눈치가 보여 이러지는 못했지만, 둘 밖에 없는 지금이라면 실컷그녀를 만질 수 있었다.
이렇게 살짝 몸을 만질 때마다, 흠칫 놀라는 반응도 정말 귀여웠다.
그렇게 마음껏 강준을 끌어안아그녀의 귀여움을 탐닉하는 향이였지만.
‘가..가슴에 얼굴이....’
발육이 상당한 가슴에 맨 얼굴을 비빈다는 그 상황이 강준에게는 번뇌를 시험하는 듯 했다.
‘진정해라, 34세 함강준! 나는 지금 여자고, 그렇다고 해서, 향이와 내가 나이 차가 얼마나 나는데. 이렇게 당황할 필요는 없어...없다고!’
그렇게 계곡에서는 두 여자의 꽤나 강력한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