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청라 어르신 댁의 벼루. (9/289)



〈 9화 〉청라 어르신 댁의 벼루.

“어머! 향아. 이렇게 귀여운 여동생이 있는데,  말을 해주지 않았니~”

“아..하하..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런 나의 행동에 향이도 빠르게 맞받아쳐 주었다.

내가 여기서 향이에게 했던 것처럼 행동하면, 나는 물론이고 향이의 입장이 아주 곤란해질 것이다.

그래. 이것은어른의 대처다.

전혀 쪽팔린 것이 아니야.

시발.

“이 아이의 이름은 뭐니?”

“강ㅈ...강하 이어요.”

얼떨결에 실제 내 이름이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지만, 아무리 봐도강준 이라는 이름은 남자아이의 이름 같아 특이하게 생각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뒷글자 하나만바꾼, 강하 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그래 강하야. 혹여 너도 일을 배워보지 않겠니?”

“하소 아주머니?”

그렇게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계속 향이의 뒤에 붙어있던 나를 하소는  집어내어 불렀다.

“일손이 정말 모자라서 말이지, 그리고 향이의 동생이라면 믿을 수도 있고, 간단한 창고 정리니까 그렇게 어렵지도 않을 거란다.”

“저...그러니까...”

“네! 가겠습니다!”

“네?..아니. 뭐?”

마침 일자리를 구하고 있던 상황 아니던가.

부잣집의 창고라면, 좀 더 다양한 물건들을  수 있을 것이고, 운이 좋으면 진귀한 식재료를 발견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본격적인 주방의 모습도  번쯤 보고 싶기도 했고.

그야말로 강준에게는 좋은 기회나 다름없었다.

“참 씩씩하기도 하네~ 좋아! 향아. 내일 강하를데리고 청라 어르신 댁으로 오도록 하렴.”

그런 강준의 모습을 좋게 봐주는 것 같이 하소는 강하의 머리를 쓰다듬곤, 붙이려다 만 벽보를 들고 자리를 떠났다.

“휴, 마침 잘됐다. 일자리도 찾고 있었는데, 향아. 너 정말 인기인이구나? 그런데 청라 라는 어르신의 댁은 얼마나 크..”

“한 번만 더 해주세요!”

응?

그렇게 하소가 떠나고 나서 자연스레 다시 말을 놓곤, 향이에게청라 어르신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주저리 떠들려고 했으나, 향이의 단호한 말이  말을 끊어버렸다.

“무..뭐 말이야?”

“향이 언니라고 불러주세요!”

이게 뭔 소리야.

그녀는 강준이 자신을 언니라고 말한 후부터, 하소의 말은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그녀의 모든 신경은 강준이 말한 그 단어에 집중되어 있었다.

언니. 라니.

어젯밤 자신이 투정을 부려 부르게 말한 것이 아닌.
강준이 자신의 의지로 자기를 언니라고 부르지 않았나.

말이 너무나도 향이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들었다.

“아니..향아. 방금은 그 하소 라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 거지. 아니..하...그렇게 언니라는 말이 좋아?”

“네.”

“우와 즉답.”

그런 향이의 모습에 강준은 조금씩 질려버렸다.

 성실하고 마음씨 고운 아이이기는 한데, 왜 나한테는 약간 꼭지가 돌아가는 걸까?

그래도 이런 향이가 있었기에, 우리가 어떻게든  세상에서 살아볼 기회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정말 막말로, 우리가 쓰러져 있던, 산에서 들짐승을 만났거나, 산에서 내려왔다고 쳐도, 이상한 사람이나, 범죄자들을 만났다면 어떻게됬는지는,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우리를 도와주진 않았겠지.

“음...앞으로도 착하고, 나를 잘 도와주면 불러줄게, 언.니.”

그러니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것이다.

“아아아!!너무 귀여워!!한번만 더!  번만 더요!”

“야야야!! 아이 진짜!자꾸이러지 마! 들러붙지 마!”

그래. 이런 점이 솔직히 좀 위험해 보이긴 해.

향이는 내가 언니라고 불러주자, 급작스럽게 나를 꽉 끌어안고는, 자꾸 들러붙었다.

“정말로 내 여동생 해주시면 안 돼요? 네?”

“아이씨! 너 자꾸 그러면 앞으로 다시는 안 불러준다?!”

“죄송해요.”

“와 씨. 빠르네.”

앞으로 언니라고 불러주지 않을 거라고 하니, 순식간에 나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우리 주방에서 일하던 애들도 이렇게 빠르진 않았을 텐데.

뭐 채찍과 당근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잘 조절해서 향이에게 잘 대해줘야겠다.

진짜 이러다가 내 정조가 위험한 거 아니야?

강준은 순간 들었던 오싹한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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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아...”

다음  아침. 향이와 나는 청라 어르신의 댁에 찾아왔다.

혁수는 어젯밤, 겁나 힘들다며 빠르게 잠들고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 녀석이 벌어온 돈은 1금 정도라고 한다.

 나라의 화폐는 동, 은, 금으로 이루어진 엽전 같은데.

동은 천  정도, 은은 만 원 정도.

1금의 가치를 대충 현대로 치자면 한...10만원?

딱 빡센 노가다장에서 하루정도 뛰면 나오는 돈보단 약간 많은 수준이었다.

거기서 혁수가 일을 잘해서 내일도 나오라며 돈을 더 얹어줬다나 뭐라나.

아무튼, 혁수놈은 알아서 잘할 테니, 지금은 내 일에 집중해야  시간이다.

청라 어르신의 집은, 아주 화려했다.

집을 감싸고 있는 돌벽은 성의 외각처럼 거대했고, 아주 넓었다.

그곳의 입구는 기와로 이루어진 지붕과, 아름다운 용이 승천하듯, 새겨져 있는 조각상.

그리고 칼을 찬, 검정 무도복을 입고 있는 남성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갑부는 역시 스케일이 달라.

“안녕하세요?”

“음? 향이 아니니? 여긴 어쩐 일로?”

와. 이제는 입구를 지키는 검사들마저 향이를 알아본다.

진짜 얼마나 인싸인거니...향아.

“오늘 주방에 사람이 모자라서 도우러 왔어요.”

“아아~그러고 보니 어제 하소 아주머니가 사람이 없어서 힘들다고 하는 걸 듣긴 들었지.
그래서 도우러 왔나 보구나? 어? 그런데 옆의  아이는 누구니?“

“아아~ 이 아이는 제 동.생인 강하라고 해요~ 강하야. 이분은 청라 어르신댁의 입구를 지키시는 무사 아저씨야.”

나를 발견하곤 누군지 물어보는 검사에게 굳이, 구우우지이 동생이라고 강조하는 향이.

지금 향이를 보니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아..안녕하세요...”

“우리 꼬마 아씨도 일을 도우러 왔니? 기특하기도 하지.”

검을 차고, 사람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검사이지만, 마음씨만은 따뜻한 그는 향이를 보곤 기특한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귀여워한다.

하..하하...나이도 나보다 어려 보이는 자식한테 이런 꼴을 당해야 하다니. 거지 같다.

“그래. 어서 들어가 봐라. 오늘 하소 아주머니 신경이 엄청나게 곤두서 있더구나.”

“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야~”

그렇게 입구를 지키던 검사와 헤어지고, 곧바로 향이와 나는 청라 어르신의 집으로 들어섰다.

“와...쩐다.”

아주 넓은 마당에 여러 가지 장식품은 물론이고, 음식을 부치는 기름 냄새, 그리고 쉴새 없이 움직이는 고용인들.

이거다.

나는 알게 모르게 이 공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전쟁터 같던 주방에서의 생활이 지겹긴 했어도, 거의 내 인생의 반을 쏟아부은 시간.

이미 정신이 나가버린 걸까? 이런 걸 그리워하다니.

난 역시 뼛속까지 요리인인가보다.

“아! 향아. 이제 오는구나? 강하도 안녕?”

“하소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아..안녕하세요...”

그렇게 잠시 그 광경을 감상하던 중, 저 멀리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하소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지금 좀 매우 바쁘구나, 향이는 어서 나를 따라오고, 강하   아이를 따라 창고를 좀 정리하도록 하여라.”

“아 아앗! 잠시만...강ㅈ...하야!”

잠시 쉴 틈도 없이 향이를 이끌고 가버린 하소 아주머니 덕에 나는 멀뚱히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얘, 누구야?”

“응? 어..너는?”

그렇게 멍을 때리던 와중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았다.

강준보다는 조금 큰 키에, 길게 땋은 양갈래 머리, 강해 보이는 인상인 여자아이였다.

여자아이의 손에는 감자가 가득 찬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난 벼루라고 해.  향이 언니의 동생?”

“그..그렇지. 강하라고 해.”

“흐응. 아무튼, 일이 참 바빠. 빨리 나를 따라와!”

“어? 어어?”

가벼운 통명성을 마친 벼루는, 향이가 끌려가는 것과 거의 비슷하게 강준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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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가 재료들을 보관하는창고야. 오늘 우리가 할 일은 여기를 정리하는 거지.”

마당의 제일 구석에 있는 작은 건물로 들어선 강준과 벼루의 눈앞에는 그야말로 창고 그 자체였다.

자주 청소하는지 먼지가 날리지는 않았지만, 새로 들여온 식료품들이 아직 정리되어있지 않아서, 창고의 문 앞에 가득 쌓여있었다.

오늘은 이 물건들을 다 옮기고 정리하는 일인가 보다.

“넌  일이  익숙 해 보이네?”

“그럼!  여기서 4년간 일했지. 너보다한창 언니라고!”

나의 말에 여기서 오래 일은 한 것에 자부심이 있는지 가슴을 두드리며 당차게 말하는 벼루였다.

“자, 창고정리는 간단해. 일단,  창고 문 앞에 있는 물건들과 같은 물건을 창고에서 찾고, 거기에  정리해서 채워 놓으면 돼. 알았지?”

“그래. 간단하네 뭐.”

“간단? 흥! 이 일을  해봐서 잘 모르나 본데? 창고는 아주! 아아아주주우! 많은 물건들이 있단 말이야! 그런데 오늘 처음 온 네가 쉽게 볼만한 일이 아니거든!”

나의 말에 벼루의 자존심이 스크래치가 났는지,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강력하게 설파하기 시작했다.

“그래그래. 그럼 시작하면 되지?”

“흥! 두고 봐라! 도와달라고 해도 안 도와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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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너 오늘 처음 이  하는 거 맞아?”

약 한 시간도 안 돼서 창고의 물류보충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물론 내가 거의 다 순식간에 끝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다양하고 복잡한 식재료들을 몇 년간 정리했는지 아는가?

이런 몸이 되기는 했지만, 이런 일 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뭐 간단하네.”

“진짜 뭐냐구 너! 내가 일을 얼마나 했는데 나보다 잘하면 어떡해!”

벼루는 정말 억울해 죽겠다는 듯이 얼굴이 새빨개지고,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벼루는 이 잘난 척 하는 강하라는 여자아이가 곧 이 일을 어떡해 해야 할지 몰라 곤란해 하고 있을 때, 자신이 멋있게 등장해서 멋진 언니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있었는데.

자신보다 일을 더 잘해버린 강하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것 같아 부끄러웠다.

이크. 어린애한테 너무 진심으로 상대했나.

어른답지 못했다.

“응? 벼루! 거기서 뭐 하니? 너에게 시킨 창고정리는  끝내고 놀고 있는 거니?”

“앗! 하소 아주머니! 그..그게 아니라...”

그러던 중, 갑자기 나타난 하소 아주머니가 창고 앞에 있던 우리를 발견하고는 재빠르게 다가왔다.

“어머! 벌써 깔끔하게 정리를 다 했네? 이렇게 빨리 일을 끝낼 줄은 몰랐구나.”

하지만 우리가 이미 창고정리를 끝내놓은 뒤였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벼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저...”

그런데도 벼루는  말이 있어 보이는 것처럼 손을 배배 꼬며 말꼬리를 흐렸다.

“음? 왜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거니?”

“사실은...저는 별로 한 게 없어요...다 저 강하라는 애가 했어요. 저보다 강하한테 칭찬해 주세요..”

보통 아이 같지 않게, 자신이 칭찬받는 상황에서 사실대로 말하고, 자신보다이 일을 얼마하지 않은 강준에게 칭찬을 하라는 말을 하는 벼루.

초면의 그 까탈스러운 아이가 아닌, 정말 착한 아이였다.

“흐..흐흠...그..그렇구나? 강하야. 오늘 처음인데 일을 정말 잘하는구나?”

“아니에요. 다 벼루가 일하는 방법을 잘 알려줘서 빨리 끝낼 수 있었어요.”

하소는 그런두 아이의 모습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벼루는 이 집에서 오랜 시간 일을 했지만, 오늘 처음 본 아이한테 질투는커녕 인정하고, 자기 대신 칭찬해 달라고 하는, 정말 착한 아이다.

그리고 그런 벼루를 위해, 항변하는 강하도 참으로 눈치가 빠르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아이였다.

어쩜 이렇게 키우기좋은 아이들일까.

역시 향이의 동생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내심 부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두 사람 모두 열심히 했으니, 잠시 쉬도록 하렴. 또 할 일이 있으면 내가 알려주도록 하마.”

““네!””

그렇게 일을 먼저 끝마친 두 여자아이들에게는 달콤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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