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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화 〉기회가 찾아왔다. (11/289)



〈 11화 〉기회가 찾아왔다.


푸딩.

최초의 푸딩은 유럽에서만들어진 블랙 푸딩이다.

말이 블랙 푸딩이지, 창자에 고기와 피를 넣어 열기에 쪄낸, 순대였다.

이런 순대에서 시작하여, 현대인들의 디저트가 되었던 푸딩.

그 맛은 아주 놀라웠으며, 유X브에 푸딩만 입력해도, 만드는 영상만 수십 개의 영상이 올라와 있다.



“푸딩...? 그게 무엇이냐?”



청라는 이젠 당혹감 반, 의구심 반인 심정으로 물었다.

“한 번 드셔보시지요. 절대 실망하시지 않으실 겁니다.”

그러자 하소의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전혀 주눅 들지 않은 태도로 앞으로 나서서, 대답했다.

‘흠. 저리 당당한 태도라면, 아마 자신이 있을 것이겠지. 이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먹어보고 나서 판정을 내려도 괜찮을 터.’



그렇게 생각한 청라는 일단, 이 푸딩이라는 것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원통 모양으로 생긴 이 푸딩은 겉 부분이 매우 탱글탱글 한 것이 마치 도토리묵을 연상시켰다.

색감은 진한 노란색이었으며, 어찌 보면 달걀찜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위에는 거무스름한 액체가 푸딩의 위에 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설탕이 녹았다가 굳혀진 나비모형의 조각도 있었다.

하지만 청라가 진심으로놀랍게  것은 바로 향이었다.



‘이..이건? 향초의 냄새?’


그랬다. 이 달콤한 향기는 분명 에슐란에서 들여온 향초의 냄새였다.

향초의 쓰임새라곤, 그저 옷감이나 이불속에 넣어, 좋은 향기를 내는 향초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청라는 경악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이 푸딩을 만든 사람은, 향초라는 것이 음식의 재료로도 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었다.

자신이 아까 전까지만 해도 골치를 썩이던 게 무엇이었나.

바로 여러 가지 수입품들의 사용법 아니었는가.

‘하지만, 일단 내놓은 요리의 맛을 보는 것이 문제다. 냄새는 좋지만, 맛은 어떨지.’


청라는 젓가락을 꺼내 들려다가, 푸딩이랑 같이 딸려온 작은 숟가락을 보고는, 내려놓았다.

아마 이 숟가락으로 떠먹으라는 것이겠지.

청라가 조심스럽게 푸딩에 숟가락을 갖다 대자, 푸딩은 부드럽게 갈라져, 떠졌다.

숟가락 위에서도 탱글함을 유지하는 푸딩을 본 청라는 잠깐 주저하는 듯싶었지만, 곧바로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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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무슨 일이니? 나를 따로 부르기까지 하고.”

향이는 강준의 부탁으로 하소만을 몰래 식품 창고의 뒤로 불러내었다.


“지금 문제가 생긴 것이 잔칫상에 후식으로 나갈 한과가 문제가 생긴 것이 맞습니까?”


그런 하소에게 강준은 덤덤하게 문제의 상황을 들이밀었다.

“....그렇긴 하구나. 어찌  일을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야. 난 다른 주방의 인원들과 이야기를 해봐야  터이니, 향이는 나를 따라오고, 벼루와 강하는 여기 있어서...”

“제가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게 무슨 소리지?”



그렇게 빨리 이 일의 대처를 궁리하기 위해 부엌으로 돌아가려던 하소의 발을 강준의 말이 묶어버렸다.


“제가 그 한과보다  맛있는 후식을 만들어 드린다면....해결이되는 문제 아닙니까?”

“....이런 일에너희 같은 애들이 끼어들 만한 문제가 아니란다. 일단 여기서 대기하고 있으렴.”


매우 당돌한 태도로 자신이 더 맛있는 후식을 만들 수 있다는 강준을 본 하소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영특하고, 착한 아이들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이 아닌가.

그런 아이가 꽤나 유명한 한과의 장인들보다 더 맛있는 후식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면, 누구나 하소처럼 행동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일단 한번 확인이라도 해보는 것은 어떠십니까? 크게 오래 걸리지도 않습니다. 이 요리를 한번확인만 하고 나서, 저에게 혼꾸멍을 내시든, 칭찬해주시든 하시지요.”

그런 하소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강준은 당당하게 그녀를 도발하기시작했다.

그까짓 거 한번 보고 나서 뭐라고 하던가. 쫄리냐?

그런 뉘양스의 강준의 도발에는 하소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좋다. 그 대신 청라 어르신이 만족할 만한 후식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뒷일은 감당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렇게강준은 청라의 부엌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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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향초를 사용한다는 말이냐?”

“강하야. 정말...이거면 돼?”


소란스러운 부엌의 구석, 향이와 강준과 하소, 그리고 마침 껴있던 벼루까지.

그들은 이번 잔치에 나갈 만찬의 후식을 만들기 위해 부엌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강준과 향이를 제외한 두 사람은 의구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향이는 강준의 요리실력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그를 믿었지만,  사람은 달랐다.

그들이 보기에는 웬 본적도 없는 식재료들을 이용하여 후식을 만든다고 하는 강준을 보고 의심의 눈초리를 겨눌 수 없었다.


“일단 나를 믿고, 한번 보기나 해.”



강준이 준비한 재료는 달걀과 우유, 설탕, 그리고 향초라고 불리우는 바닐라  이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후식으로 만들기에, 아니 바닐라  자체가 정말 생소하였기에, 그런 반응도 확실히 예상이 가기는 했다.

그런 상황에도 강준은 개의치않았다.


“그럼..시작한다?”

먼저 푸딩의 위에 올라가는 거뭇한 캐러멜 소스를 만들기 위해 냄비에 설탕을 끓여준다.

설탕이 열을 받아, 연기가 피어오르고, 곧 액체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대충 가수분해가 어쩌고,  분자들이 어쩌고 하는데, 그냥 설탕에서 수분이 사그라지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만 이해하자.

우리는 이과가 아니거든.

이렇게 액체가 된 설탕의 색이 진해질 때까지, 졸여주면 끝이다.

어때요? 정말 쉽죠? 같기는 하지만 캐러멜 특성상, 색깔이 진해지는 것이 빨라서  조절에 실패한다면 너무 타버린 캐러멜 소스의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걸 안쪽에 간단하게 기름칠해 준 작은 도기 잔에 담아준다. 일단 시험 삼아서 만드는 것이기에 우리가 먹을 4개만 준비했다.

이제  캐러멜 소스를 식혀줘야 하는데...



“벼루야. 이것 좀 냉장....아니 차갑게 되어있는 창고에 가져다 넣어 줄래?”

“어? 아..알았어. 금방 갔다 올게!”



캐러멜의달콤한 향기에 정신이 나간 벼루는 고개를 세게 흔들고서는, 도기잔을 받아들어 냉장창고로 향했다.


‘뭔가 알고는 있긴 모양이구나. 과연...조금씩 기대가 되는걸?’

그런 강준의 요리모습을 바라보던 하소는 의심의 눈초리에서 점차 흥미의 눈으로 바꾸어 져 갔다.

강준의 요리는 그녀가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요리법에 점차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그런 하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준은 요리를 계속했다.

우유와 설탕을 냄비에 담아, 따뜻하게 데워준다.

이때 중요한 점은, 우유가 절대로 끓으면 안 된다.

우유는 결국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어, 열을 많이 받으면 지방과 분리되며 굳어지기 때문에, 연기가 조금 날 정도로만 데워준다.

그렇게 우유를 다 데웠다면, 달걀을 그릇에 잘 풀어준 뒤, 데운 우유를 조금씩 달걀에 넣어가며 섞어준다.

달걀은 적은 열에도 익기 쉽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넣어줘야 한다.

달걀 물을 저어줄 때 거품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히 저어준다.

그리고 바닐라 빈을 꺼내, 중앙을 세로로 갈라, 안에 있는 바닐라  들을 칼로 긁어내어, 달걀 물에 넣어준다.

이쯤에서  식은 캐러멜 소스가 담긴 도기 잔들을 들고 와서, 체에 밭친 후, 천천히 달걀 물을 적당히 부어준다.

이제  냄비에다가 물을 붓고 끓인 뒤, 도기 잔에 뚜껑을 닫고, 잘 쪄주면 끝!

완성된 푸딩은 다시 냉장 창고에 넣어 식혀주면....

“자! 한과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 후식, 푸딩입니다!”

“푸..푸딩?”

“그게 뭐야? 처음 들어봐!”



완성된 푸딩을 인원수에 맞추어, 접시를 꺼내 도기 잔을 엎어, 푸딩을 꺼내준다.

매끈하고 탱글한 푸딩과 그 위를 감싸는 쌉싸름한 캐러멜 소스, 그리고 풍미를 더 높여주는 바닐라의 향기. 이거지! 이게 푸딩이지!

“흐..흠. 외간은 참 신기하기 그지없구나. 맛을 한번 봐야겠다.”

“저..저기..이거 나도 먹어도 돼?”

“그러려고 4개나 만든 거야. 한번 먹어봐.”

“그..그럼 잘 먹겠습니다!”

“도령ㄴ..아니 강하야. 잘 먹을게!”



그렇게 강준을 제외한  사람은 푸딩을 한입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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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한 입 푸딩을 입에 넣자, 처음으로 느껴지는 것은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검은 액체의 맛이었다.

달콤하면서 쓰다니, 이게 무슨 모순인가 싶은 맛이지만, 이상하게도 너무나 맛있었다.

달콤함과 쓴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맛을 더 돋구었다.

그리고 노란 묵 같은 푸딩은 은은하면서도 묵직한 향이 코를 벌름거리게 만들었다.

달걀과 우유의 고소함, 설탕의 달콤함, 그리고  맛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향초의 향.

그야말로 청라의 인생 최고의 맛이었다.

“허..허허! 이거 정말 별미로구나! 아주 맛있어!”

그렇게 한바탕 크게 웃은 청라의 모습 덕에 이 최악의 상황을 모면한 하소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소녀, 강준의 모습에도 감탄을 안  수가 없었다.

이런 음식을 만든 것도 매우 놀라운 일이지만, 자칫 맛이 없었거나, 실수가 있다면 크게 호통을 받을지도 모르는 이 자리에서, 그녀는 아주 당연하게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비록 정면으로 그런 표정을 지으면 건방져 보인다고 한 소리 들을 것이 뻔했기에, 얼굴을 숙여, 감췄다고는 해도, 바로 옆에 있는 하소에게는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총명한 아이라고만 생각했거늘...정말 속을 모르는 아이구나.“



하소에게 대책을 제안하는 자신감. 그 자신감을 뒷받침하는 실력. 그런 강준에게 하소는 강한 감탄과 미미한 공포를 느꼈다.

나이에 맞지 않는 그런 아이. 라고 하소는 생각했다.

“그럼 저희는 들어가 보겠습니다. 푸딩이 더 필요하시다면 아직 남아있으니 불러 주시면 들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그래. 알겠다. 들어가 보거라.”

허겁지겁 푸딩을 먹어 치우던 청라는 손을 휘휘 저으며 하인들을 방 밖으로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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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정말  돼서 다행이구나. 잘 했구나강하야.”

“저도 내심 떨렸지만,  되어서 다행이어요.”

‘흠...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건만.’


하소는 강준이 내숭을 피우는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표정에서 그것이 드러나지 않게 관리하였다.

그야말로 푸딩은 매우 맛이 있었다.

달걀과 우유, 그리고 향초로 이렇게 맛있는 후식을 만들어 낼 줄은 하소는 꿈에도 몰랐다.

자신과 벼루만 이 푸딩을 먹은 것이 다른 부엌의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만  뿐.

어떻게든 강준의 푸딩의 제조법을 찾으려고 눈독을 부릴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나있어서 재료만 알지, 자세한 제조법은 알지 못하였다.

물론 하소의 눈썰미와 그의 경험이라면, 몇 번의 오차실험으로 어떻게든 만들어  수는 있지만, 향초의 가격이 싼 것도 아니고, 그렇게 실패작으로 만들기에는 재료의 값이 아까웠다.

강준에게 제조법을 물어보기는 했지만, 실실 웃으며 대답을 흐릴 뿐.

그렇게 하소는 손가락만 빠는 신세가 되었다.

“아무튼. 밤이 늦었구나. 이제 남은 일들은 우리가  터이니,향이와 함께 들어가 보거라. 일당은 내일 챙겨 주도록 하...음? 무엇이?....일단 알겠다고 전해 드리거라.”



그렇게 일을 끝마치고, 하소가 향이와 함께 강준을 집으로 보내려던 찰나, 갑자기 나타난 한 하녀가 하소의 귀에 귓속말을 하였다.



“음...강하야. 미안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조금 늦을  같구나.”

“예? 어쩐 일이신지요?”

어쩐  이기는 무슨. 강준은 이미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아채고 있었다.


“청라 어르신이. 이 푸딩을 만든 사람을 찾고자 하여, 잔치가 끝날 때까지기다려야 할 듯하구나.”

‘그렇지!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간단했다.

돈. 어떤 세계에서든 통하는 가치.

그런 돈을, 그것도 많은 돈을 벌어볼 기회.

그것이 강준에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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