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내 가치는 내가 정한다!
청라는 만찬을 끝내고, 안방으로 돌아와, 곰방대를 뻐끔거리며 발을 굴렀다.
푸딩. 그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후식의 이름.
그 달콤한 푸딩의 맛은 둘째 치고, 그 향초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에슐란에서 들여온 물품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의 무역에 큰 도움이 될 것임에는 뻔했다.
“청라 어르신, 하소 이옵니다. 그 푸딩을 만든 아이를 데려왔사옵니다.”
“으..으음...! 들어 오거라.”
때마침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청라는 풀어진 몸가짐을 다듬고, 문 뒤에 서 있는 하소를 불러내었다.
“이 아이가 그 푸딩을 만들어 낸, 강하라고 하옵니다.”
“평안하십니까? 청라 어르신.”
그렇게 들어온 두 사람을 보고, 청라는 겉은 무덤덤해 보였지만, 그의 속 마음은 경악으로 가득했다.
‘무..뭣이? 이렇게 어린 여자아이가 향초의 사용법을? 기가 막힐 노릇이구나!“
그도 그럴 것이 하소가 소개한 강하라는 아이는 너무 어린아이였다.
열셋은 안돼 보이는 왜소한 몸에, 앳된 얼굴, 아직 미성숙한 몸매.
그야말로 평범한 여자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푸딩을 들고 오던 하소의 옆에 서서 이것이 무엇인지 당차게 말한 소녀.
그 아이가 강하였다.
“크흠....일단 하소는 나가보거라, 내 이 아이와 긴히 할 말이 있으니.”
“.....예 알겠습니다.”
하소는 잠시 멈칫하는 듯 했으나, 그대로 몸을 돌려 방 밖으로 나왔다.
‘아무리 청라 어르신이 푸딩이 좋다고 하셨지만, 혹여나 강하에게 곤란한 짓을 하시지는 않으시겠지...’
그가 아무리 탐욕스러운 상인이라 하여도, 최소한의 도덕성은 지닌 그 였다.
한때노비법이 폐지되지 않았을 때도, 그는 노비만큼은 사고팔지 아니하였다.
그렇게 하소는 떨떠름하게 방을 나와, 자리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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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역시 돈 좀 있는 사람은 다르군....’
강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휘황찬란한 금붙이며, 목이 잘린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사슴의 박제, 그리고 그가 입은 옷에서 엄청나게 돈을 바른 듯한 티가 났다.
하긴, 이 마을에서 가장 부자 아니던가, 검소한 방이면 나름대로 이상할 것 같긴 하다.
“크흠!그래. 네가 그 푸딩 이라는 것을 만든 게 확실한 게냐?”
“예. 그렇사옵니다.”
“그런 맛있는 후식을만들 줄 안다니....내 아끼던 한과보다 훨씬 더 맛이 있었다. 훌륭하군.”
“그런 칭찬을 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헌데....그 내 살아생전 한 번도 보지 못한 요리인 데다가, 그 향초라고 불리는 재료도 사용 했더군...맞나?”
“예. 미천한 몸이긴 하오나, 그 향초의 사용법을 어렴풋이 알고 있기에, 사용해 보았사옵니다.”
“그사용법은 어디서 알았지?”
올커니! 드디어 물어보시는군.
“그저 그 향초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아니. 내 말은 그 사용법을 어디서 알아내었는가 말이야!”
청라는 점점 답답해져 오는 속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눈앞에 있는 조그마한 소녀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알고 있는 정보가, 그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는가를.
그런 정보를 쉬이 알려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지. 너는 애슐란 이라는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느냐?”
‘애슐란? 그 바닐라 빈과 와이번을 수입해온 나라인가? 아마 현대로 따지자면, 유럽과 비슷한 나라려나? 이럴 때는...’
“요리와 식재료들에 관련해서는...좀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이 최선이겠지.
아무리 현대의 지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기는 엄연히다른 세계다.
그만큼 식재료는 비슷할지는 몰라도, 내가 그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 까지는, 그런 확답을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흠...그렇군. 알았다. 일단 오늘은 고생이 많았구나, 내 하소에게 일러두어, 일당은 두둑히 챙겨주도록 하마.”
“감사하옵니다.”
“.......그리고 말인데, 그 푸딩이라는 후식의 제조법을 나에게 넘길 생각은 있느냐?”
“푸딩의 제조법....말입니까?”
“그렇다. 그 한입을 먹으면 입안이 행복해지는 맛을 내는 그 푸딩, 그 제조법을 알려 준다면, 내 50금을 약속하지.”
50금. 대충 환산하면 현대 시대의 500만 원에 달하는, 하루 치의 일당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큰돈이다.
그 정도면, 당분간의 살림 걱정은 없을 것이고, 여윳돈까지 생각해 볼 만도 하다.
딱히 손해는 없는 이득인 구조.
하지만.
“....청라 어르신께서는 그것으로 만족하시옵니까?”
“...뭣이?”
강준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청라는 잠시 동안 굳어 대답을 늦게 할 수밖에 없었다.
“청라 어르신께서는 아주 큰 상단을 유지하고 있으신 게 맞으신지요?”
“그..그렇다. 그것이 무슨 일이라ㄱ...”
“그렇다면 최근 애슐란과 길을 터, 수입품을 사들였을 테지요?”
“...네년..아니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것이지?”
“최근부터 시행하는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밝힌 왕제 전하, 그리고 한에서 상당히 큰 상단을 굴리시는 청라 어르신. 만약 제가 청라 어르신 이였다면,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 테지요.”
“그..그렇다...”
‘무..뭐지? 이 꼬맹이는? 분명 이 촌 마을의 별것 없는 평민의 여자아이 모습을 하고, 지금이 한이 굴러가는 것을 속속히 알고 있구나...!’
사실 강준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창고에 있는, 한이라면 구할 수 없는 식재료와 와이번, 왕제의 다른 나라와의 문화교류 선언, 그리고 금방 청라의 입에서 나온 애슐란 이라는 이름. 그 세 가지를 대입하면 대강 답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헌데, 수입을 해오기는 했으나, 들여온 식재료들을 과연 한 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니, 판매가 잘 안 되는 것을 염두에 두시는 게 아닙니까?”
“...네 말이 맞다.”
청라는 그렇게 하나하나 정론을 하는 강준을 보고, 식은땀이 흘렀다.
분명 한의 정보가 모이는 수도, 강림과 상당히떨어진 하림 마을, 그중에서도 양반의규수도 아닌, 평범한 평민 여자아이 아닌가. 그런 강준이 어찌 이런 정보를 알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전, 애슐란의 식재료들을 어찌 요리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그말인 즉슨?”
“저는 상인이신 청라 어르신의 아주 강력한 한 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뭐, 한의 사람이 갑자기 토마토든, 치즈든, 올리브같은 재료를 어찌 사용해야 하는지 어찌 알 수 있을까? 아마...는 거의 확실하게, 나만이 이 한에서 그런 재료들을 자유자재로 사용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런 강준의 말을들은 청라는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애초에 이 강하라는 아이에게 바란 것은, 이 향초가 어디에 쓰이는지, 그리고 그 푸딩이라는 것을 어찌 만드는지, 이 정도만 알아낸다면 중박은 치겠다 싶어서 남긴 것이었다.
하지만 보아라.
그녀는 자신은 그 정도의 가치밖에 안 되는 사람이냐고. 자신에게 묻고 있다.
강준은 자신이 지금 이 상황에서 청라에게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자신과 거래를 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너는 필요하지 않으냐. 자신의 지식과 재능이.
맞다. 지금 이 앞에 있는 강하라는 아이의 도움이 있다면, 자신은 더더욱 높은 곳으로 나아 갈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이 상황 자체가 너무나 수상하긴 하다.
지금 이렇게 곤란한 상황에 이렇게 알맞은 사람이 나온다는 것은, 너무나도 우연의 일치 아닌가?
아니면 무언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라의 안에 숨 쉬는 상인의 감이 외쳤다.
이것은 둘도 없는 기회라고, 안 잡으면 병신이라고 말이다.
“....너는 무엇을 바라는가?”
“..이제야 말이 좀 통하시는군요.”
무릎을 꿇어 고개를 숙이던 그녀가 얼굴을 들어 보이며,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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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도대체 강준 도령님은 청라 어르신과 무슨 대화를...”
향이는 청라 어르신의 방밖에서 멀리 떨어져, 그곳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렸다.
이미 한 시진(時辰)*이나 넘도록, 강준은 청라 어르신의 방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진*:2시간을 뜻합니다. 예: 한 시진이면 2시간, 두시진이면 4시간.)
“설마.....강준 도령님의 매력에 눈을 뜨신 청라 어르신께서....막.....헉! 안돼! 적어도 강준 도령님의 정조는 내가 가져야....!”
“음? 향아? 여기서 뭐 하니?”
그렇게 그녀가 혈기왕성한 망상을 하는 사이에 드디어 청라 어르신의 방문이 열리고, 강준이 나왔다.
“아..그게...한참을 기다려도 안 나오셔서....청라 어르신과 무슨 대화를 나누신 것인지요?”
“뭐...아주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했지. 즐거웠어.”
‘돈이 될만한 이야기는 얼마나 즐겁지.’
‘즐겁다니.....혹시 정말로 강준 도령님과 청라 어르신이?......#$%#@$’
그렇게 두 소녀의 머리에는극과 극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 볼 일을 다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가자. 아 맞다. 향아.”
“ㄴ...네? 무슨 일이라도?”
“아아~ 별건 아니고, 내일 아침에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는 말라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 얼른 집으로 드가자~”
그렇게 의문만이 남은 향이를 이끌고, 강준은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혁수놈을 깜빡 잊고 있었다.
그 녀석 배를 쫄쫄 굶으며 쓰러져 있는 거 아냐?
좀 미안하긴 했지만 뭐...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