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앉아봐라. 지금부터 개 쩌는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14/289)



〈 14화 〉앉아봐라. 지금부터 개 쩌는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이....이 문장은 어떻게 읽는 거지?”

“어……. 제 1장. 수염의 매력이란 무엇인가....라고 적혀있네요.”

“오오! 그렇군. 이 문장은 그렇게 읽는 것이었어.”


강준은 지금 문호의 방에서 그가 읽고 있던 책의 번역을 해주고 있었다.

혹시나 했던 그 영어는 역시 애슐란의 언어라고 한다.

최근에서야 문화교류를 시작한애슐란과 한은 아직 서로의 언어가 친숙하지 않아,  두 가지의 언어를 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고 한다.

하지만 문호. 이 사람은 책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자신이 몰랐던 나라의 책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읽어서, 내용을 파악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애슐란의 언어는 한에서 한평생 살아가던 문호에게는 너무나도 벅찼고, 마치 고대의 언어를 연구하듯, 한 글자,  글자씩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한 소녀가 애슐란의 언어를 자유롭게 읽어낼  있다면?

문호가 취할 행동은 이것밖에 없었다.


‘뭐....혹시나 했는데 영어라서 정말 다행이다.’


강준은 서양의 요리를 배우던 사람.

당연히 서양 쪽 나라들의 언어 정도는 배워야 했다.

그리고 주방에서 구르다 보니 단순한 언어가 아닌, 그 언어로 상대방을 ㅈ나 갈구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리처드 씹새끼. 너는 진짜 밤길에 뒤통수 조심해야 할 거다.

그리고 돈이 생기면 바로 해외여행 식도락 여행을 밥 먹듯이 했으니, 이 정도는 강준에게 누워서 떡 먹기였다.

‘근데 참....하필 골라도 왜 이딴 책을 고른걸까....’


강준은 질린 표정을 지으며, 딱딱한 목소리로 책에 적힌 글을 읽었다.

이 책. 정말 수염에대해서밖에 없잖아?

무슨 수염을 기르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자르는 법, 이성에게 어필하는 법. 뭔데 이건.

그리고 애초에 한에서는 이런 식으로 수염을 관리하지도 않잖아!

그렇게 강준은 책의 내용에 질려버렸다.

그런 내용임에도 문호는 새로운 정보를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니, 이걸 어찌 해야 할지...


“강하? 여기서  하시는지?”

그렇게 얼굴이 점차 죽어가던 와중, 드르륵하고 문이 열리며 향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아! 향이 언니가 부르셔서, 이제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나이스 타이밍!’

“허어.....아직 책의 앞부분만 조금 봤거늘, 아쉽구나. 다음에 또 책의 번역을 부탁해도 되겠느냐?”

그렇게 내가 떠날 채비를 하자. 문호는 보내주기 싫지만, 거의 억지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애인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어우 소름 돋아.

“아..네...뭐....그럼 안녕히계세요!”

그렇게 향이를 방패 삼아 강준과 일행들은 책방을 나섰다.

문호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나도 살긴 살아야지.

“휴....엄청 지겨웠네. 아무튼 종이와 붓을 샀으니 볼일은 이제 다봤으우악! 너, 왜 그래?”

그렇게 오늘 산 물건들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얼굴이 아주 초췌해진 혁수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왜 그래? 형은 형이  짓도 모르는 거야? 이 배신자.”

“아니...이건 어쩔 수 없잖아. 아니! 향이가 얼마나 그런다고 엄살이야? 나이도 많이 먹은 게.”

“아....생각하기 싫으니까, 먼저 갈게.”

“어? 야! 야!! 천천히 가!”


혁수는 강준의 말에 잠시 멈칫거리더니, 괜히 생각했다. 라는 얼굴로 후다닥 집으로 뛰어갔다.


“아니 내가 떠넘기기는 했지만, 뭐가 그리 힘들었다고 엄살은...”

“강준 도령님?”

“히익!”


그렇게 뛰어가는 혁수를 보며 구시렁거리던 강준은,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향이 때문에 새된 소리를 내었다.

“강준 도령님도, 그런 책을 보시는 지요?”

“아..아이~ 무슨 소리야~그냥 혁수가 책을 들이대길래 한  본 거야. 나 그런 거 안 좋아해.”

“흐음...”

“아~ 배고프다. 집가서 빨리 밥 먹자 밥!”

다시금 가늘어지는 향이의 눈빛에 강준도 바삐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강준 도령님은 가슴이 큰 여자가 좋은 걸까?”

강준도 원래는 남자였고, 남자들은 죄다 가슴이 큰 여자를 좋아했다.


“....나 정도면 그래도 큰 편 일 텐데...“


향이는 내심 자신의 가슴을 들어 보이며 중얼거렸다.


그런  보지 말고, 자기를 봐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 향이는 두 사람을 따라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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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형. 오늘 사   종이 가지고 뭘 할 건데?”


간단하게 식사를 끝내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혁수가 말했다.

“음...일단 종이하고 붓, 그리고 벼루 좀 들고 와봐.”

“응? 갑자기그림이라도 그리려고?”

“엉. 그러려고 산 거야.”

“왠 그림을 그린다냐...”

분명히 이 형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즐기거나 그런 스타일은 아닌데..

그렇게 아리송해보이는 혁수가 들고 온 종이와 붓. 근데...


“먹 이거 어떻게 가는 거냐? 그냥 벼루에 갈면 되는 건가?”

“몰러. 그러는 게 아니야?”

현대의 잉크에 익숙해진 강준과 혁수는 도통 먹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긴가민가했다.


자신이 국민...아니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그냥 먹물을 따로 팔아서 부어주기만 하면 됐는데....


“자. 제가 알려 드릴게요. 먼저 벼루에다가 물을 붓고.....이렇게...!”

그렇게 우왕좌왕하던 우리의 모습을 보던 향이가 손 뻗고 나서며 직접 먹을 갈아주었다.


“오오! 진짜 먹물이 나온다! 신기하네.”

“아버지가 글을 자주 쓰셨기에, 이 정도는 저도 등 뒤에서 보며 배웠죠.”

아직도 기억이 난다.

집안일을 끝내고 방으로 들어설 때. 가끔 아버지께서 글을 쓰고는 하셨다.

평민이었던 아버지는 과거를 치고 싶어 하셨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가로막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향이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가끔 향이 몰래 자신이 예전에 공부하던 책들을 아련한 눈으로 보던 것을.

‘아버지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계실까?‘

그렇게 향이는 아버지 생각을 하며, 먹물을  갈았다.

“자. 먹도 다 갈았으니, 보자....붓을 이렇게 적셔서...”


그렇게 강준은 붓으로 종이위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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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뭐야? 뭘 그린거임?”

“엄....그...지구 라는 강준 도령님 세계의 물건 인가요? 저는 잘....”

“아니이! 아무리 봐도 물레방아잖아!”

그렇게 다 그린 그림을 들자, 혁수는 미적 감각이 개 박살 났냐고 물었고, 향이는 말끝을 흐리며 제대로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 물레방아라고 쳐! 그래서, 이건 왜 그린 건데?”

“자, 혁수야. 이걸 보고 내가 설명해준 대로 그려봐라.”

“응? 아니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건데?”

“아! 거참! 일단 하기나 해!”

자신이 뭘 하는지 의문이 든 혁수는 강준에게 물었지만, 강준은 일단 그려보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자....겉부분을 그렇게 막고, 안이 돌아가게, 손잡이도 달아. 아래 물이 빠져나갈 구멍도 하나 만들고....그렇지! 이거야 이거!”

강준이 뒤에서 시키는 대로 혁수는 선을 쭉쭉 이어나갔다.

자신의 일이 도면을 그리는 건데, 처음 사용하는 붓이 좀 적응하기 힘들기는 했지만, 어느새 적응이 되었다.

그렇게 혁수가 그려낸 그림이 완성되었다.

삐뚤빼뚤하지 않는 선들과, 간결한 디자인. 역시 도면 그리던 녀석이라 이런 건 잘하는군.


“이게...형이 그린 그림이라고? 완전 다르잖아!”

혁수는 자신이 그린 그림과 강준이 그린 그림을 들어 보이며 비교를 시작했다.

혁수가 그린 그림은 이 물건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어찌됬든 물래방아와 비슷하게 생긴 것. 정도는 유추할 수는 있었지만, 내가 그린 그림은 완전 물래방아도 아닌 타이어 같이 생겨서 엉망진창이었다.

“야이씨...붓은 처음 그려봐서 그러는 거야!”

“붓은 나도 처음 잡아봤거든?”

“.....시끄러.”


혁수가 내 그림을 지적해도, 뭐 어쩌겠냐. 난 요리가 전공인걸.

“그래서. 이게 뭔데?”

“저도 궁금합니다.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요?”

그렇게  물건의 정체가 당최 모르겠는 두 사람은 의문이 가득 담긴 눈으로 강준을 바라보았다.

“아. 이게 교유기(攪乳器)* 라고, 버터 만들 때 쓰는 도구야.”
(교유기*:버터를 만들기 위한 기계. 교동기 라고도 부른다.)

“이게? 버터를 만든다고?”

혁수는 정 믿기 힘든지, 종이와 강준을 번갈아보며 대답했다.


“저..저기. 버터. 라는 게 무엇인지?”


 와중 향이는 자신만이 그 버터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소외감이 들었는지, 두 사람에게 버터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아...그래. 향이 너는 모르겠구나?”

“네. 혹시 요리에 들어가는 건가요? 강준 도령님은 요리 쪽에 관심이 많으시니..”

“허허...향아 일단 여기 앉아봐.”

그래. 지금부터 개 쩌는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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