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류월-2
-청란.-
-응? 왜 그래? 류월-
-너는 정말 각오가 되어 있는가?-
류월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사내,청란에게 물었다.
-뭐..뭐야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다니, 평소 같으면 그냥 [다 죽여 버려라. 손끝 하나 남기지 마라.] 이렇게 말하던데....너 류월 아니지?-
-시답잖은 농담은 치우고, 대답해라. 넌 각오가 되어 있는가?-
-....글세. 각오라...-
그런 류월의 물음에 청란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힘들지. 나도 사람이고, 정많은...사람이거든.
가끔 잠을 자다 보면, 내가 너를 통해 사람들을 휩쓸던 장면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떠올라.-
그랬다. 류월의 친우인 청란은, 자신과 같은 생명을 초월한 용이 아닌. 그저 평범한 인간. 그 자체였다.
사람들을 죽이고, 사람들의 위에 서며, 그런 비난과 자신의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청란은 피범벅이 된 이 길을 나아가는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너는 왜 이러는 건가? 네가 해야 할 일이 그만큼 중요한 건가?-
-그렇다고 할 수도있...-
-나보다도 말인가?-
-,,,,,,,,-
-청란. 너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 건가.-
-너야.-
-무..뭣이?-
-소중하고, 하나뿐인 내 친구. 류월. 너를 위해서야.-
그때의 청란의 말을, 류월은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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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얇은 랩을 몸으로 뚫고 지나가는 감각을 거쳐, 강준은 봉인막의 너머로 들어섰다.
“후....이 새끼 어디있...아악!”
두리번거리며 먼저 봉인막으로 들어온 강준은 미처 발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발이 걸려 넘어졌다.
“아..쓰읍....아파라...뭐....너냐?”
“으으....밟지마..아파...”
발이 걸린 게 무엇인지 확인하려던 강준은 자신의 발밑에 쓰러져 있는 혁수를 발견했다.
“이...이..!! 너! 이새꺄! 너! 죽어! 죽어!!”
“아! 아악!! 왜 그러는뎈..! 아앜!!”
“넌 사고를 안 치면 뒤지기라도 하냐? 엉?”
이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강준은 혁수의 몸을 수 차례 밟았다.
드라이브할 때도 사고치고, 여기에서도 사고치고. 이 새끼는 진짜……. 아오.
“후...속이 다 시원하다.”
“아..아앍...아파라...”
그렇게혁수의 꼴이 만신창이가 되자, 강준은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송골송골하게 맺은 땀을 닦아냈다.
“흠....외간은 봉인막 밖과 다를 게 없는데...”
봉인막에 들어왔지만,그 안은 여전히 나무와 풀들이 가득한 숲 한가운데였다.
“자. 일단 어서 나가자. 빨리.”
“아..잠만...지금 가...”
강준은 밟히느라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혁수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자신들이 들어왔던 봉인막의 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어...? 어어?? 시..시발..! 망했다.”
“무..무슨일인데?”
들어올 때는 한없이 부드럽고 쑤욱 들어올 수 있었던 봉인막의 막이 지금은 마치 콘크리트 벽 마냥 아주 단단해져,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하....시발. 어쩌지?”
“형...우리 어떡해...?”
“야. 저기로 몸통박치기 해봐.”
“에..에이! 그러다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이 새끼는 진짜...닥치고 뛰어! 몸으로라도 떼우라고오!!”
결국 강준은 혁수의 멱살을 잡으며 달달볶기 시작했다.
“애초에 형이 뗄감 구하러 가자고 산에 안 올랐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이게 자신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듯 어이없는 변명을 시작하는 혁수덕에 강준은 눈이 돌아가 버렸다.
“애초에? 애초에에??? 너 마침 참 잘 말했다. 이 새끼야. 애초에 우리가 이런 곳에 떨어진 계기가 뭘까아아아요? 어? 이 썅놈의 새끼가 진짜! 전부 니 책임이야!!!”
“그러니까...내가 사소한 실수를 하긴했...”
“사소? 사소한? 한 번 더 사소한 실수하면 죽겠다!!!”
그렇게 그 둘은 서로 옥신각신 싸우며,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흐음....내 둥지에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아주 명량하군.]
"".....!""
그것은 단순한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이고, 강압적이었다.
‘모...몸이 안 움직....여...’
자신들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강준과 혁수는 온몸이 얼어버린 듯 꼼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움직이면 죽는다. 라는 감각이 피부에 끈덕지게 느껴졌다.
[오호? 이것 참 신기한 일이군. 거기둘. 여기 세계 사람이 아니구나?]
“그..! 그걸 어떻게...!”
그 목소리는 순식간에 우리가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을 알아챘다.
그런 모습에 강준은 겨우 열리는 입을 열어, 그 목소리에게 되물었다.
[이 세계의 영혼과는 다른, 뿌리부터가 다른 영혼이라면, 그렇겠지.]
“그것...을..어...떻게..알아보..시...는지..요”
[그거야. 내가....흠. 그 상태로는 이 나를 볼 수가 없구나. 움직여도 좋다.]
“...!히익!...하...하아...하아...”
“혀...혀엉....몸이...전혀 안움직였어...”
“...그러게..”
낮선 목소리의 움직여 라는 말 한마디에, 굳어서 꼼짝도 안 하던 몸뚱이가 봄에 눈 녹듯이 풀려났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강준과 혁수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자. 이쪽이다.]
그리고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홀린 듯 강준과 혁수는 뒤를 바라보았다.
““.......!!!!””
그리고. 드디어 그 낯선 목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하늘로 높게 솟은 나무 따위는 따라잡지도 못할 거대한 몸에,
거울처럼 비쳐 보일 듯한 비늘, 새카만 먹물처럼 칠흑 같은 어두운 색에, 날카로운 송곳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거대한 뿔.
생물계의 압도적인 피라미드 꼭대기에 군림하는 존재.
“........류...월...”
용. 이었다.
[음? 오호...이 몸을 알고 있느냐?]
그 용은 강준이 어제 보았던 조각상과 매우 닮아있어, 강준도 모르게 입 밖으로 그 용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혀..혀..형...우..우리 어떡해?”
[글세...이 몸은 너희들을 어떻게 해야할까?]
“히..히익!”
혁수가 조용히 강준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류월이라 불리는 용은 여유가 넘치는 어투로 말했다.
[이 몸의 봉인막을 뚫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너희들이 이 세계의 법칙에서 벗어난 존재들 이기 때문일 테지.]
“그...초면에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하지만....혹시 저희가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알고 계십니까?”
강준은 온몸이 떨리는 상태였지만, 마음을 다잡고, 류월에게 질문했다.
이 용이 아마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갈 실마리인 것은 분명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흐음....이 몸이 그 방법에 대해 알고 있다면....어쩔텐가?]
“!!!....그...방법을 저희에게...알려 주시면...안되겠습니까?”
“혀..형! 왜 그래! 그러다가 저 괴...아니 용이 우릴 죽이면 어쩌려고!”
강준은 떨리는 몸을 천천히 진정시키며, 차분한 목소리로 류월에게 그 방법을 물었다.
하지만.
[흠...이 몸의 기분은 너희들에게 그런 방법을 알려줄 정도로 개운하지가 않구나.]
“...예?”
[첫 번째. 너희들은 한참 단잠을 자던 이 몸을 깨웠다.]
[두 번째. 막 일어난 이 몸은 허기가 지는구나.]
[그리고 세 번째 단순히 기분이 좋지가 않아.]
이게 뭔 개소리야. 미친 파충류 새끼가.
“그....그렇다면...?”
강준은 내심 대답을 예상했지만, 그 답에 대한 질문을 했다.
[너희들은 그런 것을 물어볼 처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숨을 건질 생각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류월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 풍채에서 나오는 압력이 둘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끄...흐윽...”
“히..히이익....”
그런 압력에 강준과 혁수는 이제는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자. 다시 한번 생각해 볼까 싶구나. 너희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그런 둘의 모습에도 여유로운 모습을 유지하는 류월이 다시금 중얼거렸다.
‘시...시발....이러다가 진짜...’
이러다가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강준의 머리를 감쌌다.
안돼. 이렇게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생각해. 생각해라. 머릿속을 짜내...’
강준은 생각했다. 이 용이 우리를 죽이지 않을 이유. 그런 명분이 있어야 했다.
‘다시금 생각하자. 아까 류월이 뭐라고 말했지?’
[두 번째. 막 일어난 이 몸은 허기가 지는구나.]
허기.
배고픔.
....!
강준은 이 상황을 어떻게든 무마해볼 마지막 발버둥을 준비했다.
“류...월이시여...”
[이번엔 뭐지?]
강준은 바닥에 처박힌 얼굴을간신히 들어, 류월을 바라보았다.
“제...제가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두 번...째의 문..제는 해...결해 드릴 수 있을..것...같습니다...”
강준은 더듬더듬. 하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뜻을 류월에게 전달했다.
[네가 이 몸에게 음식이라도 만들 수 있단 말이냐?]
“그..그렇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이 그냥 너를 잡아먹는 것이 더 빠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느냐?]
“우..위대한 요...용이신 류월님은 고작 조리도 되..어있지..않은 인간의 생육에 만족..하시는 모양입..니다..”
[!...호오...지금 이 몸을 도발하는 것이냐? 감히 미천한 네놈이?]
강준이 대놓고 니 입맛은 고귀하다는 용 이라는 존재에 걸맞지 않는다고 공격적으로 말하자, 끄떡도 없던 류월의 얼굴이 아주 조금이지만 뒤틀리는 것을 강준은 보았다.
“저..는....그런 고귀하...고 위대한 류..월님에게 걸맞은 으..음식을 대접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
“..하?”
[아하하하하하!!!!!]
그러자 류월은 거대한 입으로 큰 소리를 내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귀..귀가아....”
거대한 용의 웃음은 마치 태풍을 연상케 할 만큼 거대한 폭풍이 불었고, 이 대지를 뒤흔들만한 위력이 있었다.
그냥 크게 웃은 것뿐인데도 이 정도의 힘이라면....
강준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당돌한 인간은 참 오랜만이군!그래. 네 이름은 무엇이지?]
“가..강준 이라고 합니다.”
[좋다. 강준. 내 너의 간절한 청을 받아들여, 네 녀석이 말한 이 몸에게 걸맞은 음식을 만들어 줄 것을 허락하지. 영광으로 알거라.]
그렇게 말한 류월이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거대한 손가락을 튕기자, 강준과 혁수는 자신을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푸..하..!!!”
“진짜...진짜 죽는 줄 알았어...”
그렇게 간신히 살아난 두 사람은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며 살아있다는 감촉에 안도감을 느꼈다.
[흠. 하지만 이 몸으로는 네 녀석이 요리를 아무리 만든다 한들, 간에 기별도 안 가겠구나.]
류월은 자신의 거대한 입을 벌리며 말했다.
하긴. 저 정도면 예전의 자신이 일하던 레스토랑이 100개는 있어도 저 거대한 도마뱀의 배를 채우기엔 한참 모자랄 것 같았다.
[그럼. 이렇게 하지.]
그렇게 중얼거린 류월이 다시금 손가락을 튕기자, 류월의 몸이 안개로 둘러싸이더니, 점차 안개의 크기가 거대한 몸과 함께 작아지기 시작헀다.
“뭐더냐..저건...”
“몰라. 뭐야 저거. 무서워.”
그렇게 강준과 혁수가입을 쩍 벌리며 구경하는 사이, 안개는 어느샌가 자신들의 몸 크기와 비슷하게 작아졌다.
그리고 그 자욱한 안개가 걷히더니.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
조그만한 여자아이가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