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류월-3
기다란 검은 생머리, 아담한 손과 발, 본 모습이 반영된 듯해 보이는 파충류같이 길게 찢어진 동공, 칠흑같이 검은 치마와 하얀 저고리. 그건 정말로 조금 특이한 여자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그모습은 대체?”
강준은 내가 지금 뭘 본 건가 싶어, 눈앞의 어린 여자아이. 아니, 본 모습은 거대한 용인 류월에게 현 모습의 정체를 물었다.
“뭐, 이 몸도 오래 전에는인간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유희를 즐겼지, 그때 그 상황을 즐겼던 모습이다. 아...아....이 목소리를 듣는 것도 참 오랜만이군....한 700년 만인가?”
여자아이로 변한 류월은 자신의 몸을 둘러보며 빙그르 돌았다.
하긴, 판타지 만화 같은 거 보면 용은 항상 인간으로 변하더라. 그렇게 생각하면 최소 700년은 살아있는 용이 인간의 모습 하나 없을까 싶다.
“자. 그럼 이제 네 녀석이 말한 그 특별한 음식을 먹어 볼 차례군. 안내해라.”
“저...근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투명한 벽에 막혀있는데.....요..?”
“아? 아아~ 봉인막이 길을 막은 모양이군.....자. 이제 됐나?”
강준이 돌아갈 길이 막혔다고 하자, 류월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말하더니, 아까의 용의 손과는 전혀 다른, 조그만한 인간의 손으로 딱! 소리를 내었다.
“오....오오!! 형! 이제그 단단한 게 없어졌어! 개 쩐다!!!”
“후후...당연하지. 이 몸이 만든 것인데, 그런 것쯤이야...”
그러자 들어올 때 만해도 투명했던 봉인막이 흐릿해지더니, 스르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것이 신기한지 혁수는 봉인막이 있던 곳을 손으로 휘휘저으며 감탄하자, 류월은 뭘 그런 것 가지고 라며 콧김을 흥! 하고 내쉬었다.
아무리 봐도 방금의 위엄이 넘치는 용의 모습이 아닌, 귀여운 꼬맹이가 자신이 대단하다고 자랑하는 모습처럼 보이던 강준이지만, 그냥 입을 닫는 것을 선택했다.
“그럼 가도록 하지.”
그렇게 땔감으로 시작되었던 스노우볼이 거대한 눈덩이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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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오셨어요? 좀 늦으셨....누구...신지?”
집으로 돌아오니, 향이가 빗자루로 마당을 쓸면서 우리를 반기더니, 같이 따라온 어린 여자아이를 보곤, 물었다.
“어...그게...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야...”
“용이래.산에 갔다가 만났어. 이름이 류..월? 이라고 하던데?”
“네에??”
그렇게 같이 오게 된 류월을 향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싶어 말을 더듬던 강준을 대신에 무대포로 그냥 류월의 정체를 폭로하는 혁수.
그런 혁수의 말에 향이는 평소보다 한 몇 배는 커진 눈동자와 함께, 들고 있던 빗자루를 놓여버렸다.
“아...아아.....류...월? 그.....신화 속의 용...?”
“오호? 신화라....이 몸의 위대함에 인간들이 그런 것도 만들었다니. 몹시 궁금하군.”
“아..아아.....흐아아아........”
“아..아앗! 햐..향아!”
향이는 자신의 눈앞에 신화로만 들려오던 위대한 용. 류월을 마주한 것이 크나큰 충격이었는지, 결국 다리가 무너지며 쓰러져버렸다.
“가..강준 도령님...이거 꿈이죠..? 맞죠?”
“어....그게.....하...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하하! 걱정하지 말거라, 딱히 너를 잡아먹으려고 친히 이곳에 나선 것이 아니다.”
그런 향이에게 달려가 부축하던 강준을 붙잡은 향이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오락가락하던 와중에, 류월은 그저 호탕하게 웃으며 향이에게 말했다.
호탕하게라고 해봤자 어린아이의 모습이어서 그저 귀엽기만 할 뿐이긴 했지만.
“이 몸은 저. 강준 이라는 당돌한 녀석이 음식을 대접한다기에 온 것이다.”
“네..?강준 도령님의 요리를요?”
“그렇다! 이 녀석들이 내가 잠자던 둥지로 들어오더니, 자신의 요리가 위대한 용인, 이 몸에게 걸맞다며 아우성을 치기에, 이 몸이 친히, 그것을 허락하여 그 요리를 먹어보기 위해 행차한 것이다!”
“하하...그..렇지?”
지랄하네, 내가 그런 말을 안 했으면 한 끼식사..아니, 간단한 간식으로 날 집어삼켰을 거면서.
“자. 이 몸은 너의 음식이 매우 궁금하니. 당장 대령하도록 하라!”
“예..옙!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저 흑룡에게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비장한 얼굴을 지은 체,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렇게 각오를 한 적은 군대에 있었을 때, 쓰리스타가 강준의 군 부내식사를 한다며 왔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을 것이다.
물론 도움이 필요했기에 혁수놈도 덩달아 데리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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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근데 정말로 저 용이 만족하는 음식을 만들 수 있어?”
그렇게 강준을 따라 얼떨결에 들어온 혁수는 강준에게 물었다.
저 흉포한 용이 혹시나 강준의 요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자신들을 집어 삼켜버릴 것만 같아 불안한 탓이었다.
“후...그거야...[그] 음식을 만들면 되지 않겠냐?”
그러자 강준은 얼굴을 찌푸리며, 눈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그] 음식이라니. 혁수는 강준의 생각을 도통 읽지 못해 답답해하며, 확실한 대답을 재촉했다.
“[그] 음식이라니? 그게 뭔데?”
“한국인들의 제일 좋아하는 요리. 치킨이다.”
강준은 감은 눈을 뜨고, 다시금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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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치킨.
이 요리의 별명이 흑인들의 소울 푸드인 이유를 아는가?
서기 19세기. 미국에는 목화를 이용한 섬유 사업이 크게 발전했는데, 그곳에는 흑인들의 노동력이 있었다.
그때의 흑인들은 노예로 취급되며, 그들은 자산 하나 모으지못하며, 노동력으로 착취되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 노예들에게는 유일하게 인정되는 자산이 있었는데.
그것이 닭이었다.
그렇게 자신들의 닭을 소중히 여기면서, 특별한 날일 때 그 닭을 잡아 요리를 하였는데.
그때 목화농장을 하느라 많이 생기는 면실유*를 사용하여 닭을 튀겨낸 요리가 바로.
(면실유*:목화씨에서 짜낸 기름. 깔끔한 맛이 나며, 별다른 향이나지 않아 식용유, 샐러드유로 사용된다.)
프라이드 치킨. 이었다.
그런 프라이드 치킨은 1930년. 전설의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일명 KFC가 개업을 시작하며,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겨 먹는 치킨. 그것만이 저 흉포한 용을 잠잠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치킨...솔직히 치킨이면 인정이지. 나는 아직 치킨 싫어하는 사람은 못봤어.”
“그래. 이렇게 된이상, 어떻게든 저 도마뱀 녀석에게 강력하게 한 방 먹여주겠어!”
강준은 어깨를 돌리며, 요리준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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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저기...”
“뭐냐? 계집.”
“히익...그...죄송합니다..!!”
그 시각. 향이는 매우 곤란한 상황이었다.
류월은 마당에서 기다리기 싫다며, 막무가내로 향이의 집에들어와, 집안의 물건들을 여기저기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 류월을 보며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는 향이.
강준이 데려온 여자아이의 모습을 한 이 아이는. 한 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신. 류월 이였기 때문이다.
이 땅의 세 나라, 가후, 요론, 시낭이 지배하던 마의 삼국시대를 끝내고, 한 이라는 나라를 건국한 충하 저하를 도왔다던 위대한용. 그것이 류월 이었다.
그 거대한 흑룡이 입김을 불자, 수많은 군사가 불에 타 죽었으며, 대지에 발돋움을 하자, 땅이 갈라지며 칠흑 같은 죽음의 절벽을 만들었다던 그 용 말이다.
강준과 혁수를 만날 때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이번에는 용이라니.
“.....내가 너를 잡아먹을까 두려우냐?”
“...! 아..아니! 전혀 그렇지 않사옵니다!!”
“일단 그 떨리는 손을 멈추고 나서 입에 침을 바르기라도 하거라.”
“...죄..! 죄송하옵니다!!”
향이는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자신의 행동으로 류월의 기분이 나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향이도 강준이류월을 데려와서 망정이지, 보통 사람 같았으면이미 졸도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저 귀여운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에 그런 용이 들어있다니, 용의 능력은 역시나 비범하기 짝에 없었다.
“안심하거라. 이 몸은 너를 잡아먹지는 않겠다고 내 약조하지.”
“가..감사하옵니다.”
류월은 방을 둘러보던 것을 멈추고, 향이를 바라보며 상냥하게 말했다.
그재서야 조금 숨은 쉴 수 있게 된 향이었다.
“헌데...너는 저 강준 이라는 아이와 같이 사는 모양이구나.”
“네..? 아 예! 그렇사옵니다.”
“강준....저 아이의 음식이 그렇게 훌륭하느냐?”
류월은 아까부터 궁금하던 생각을 향이에게 물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호언장담을 할 정도면, 요리 실력만큼은 뛰어날 터, 그러니 같이 살면서그의 요리를 먹어본 향이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미...미천한 이 계집이 뭐라 말할 수는 없으나....그 맛은 가히 굉장한...한 번도 맛보지 못한 진귀한 맛이었나이다...”
“호오...그런 말을 들으니 더욱더 기대되는구나.”
그런 향이의 말을 들은 류월은 혀를 낼름거리며 한층 기대된 얼굴을 지었다.
“하..하하...네..”
“강준은 어떤 요리를 만들었지?”
“그...제가 강준 도령님을 처음 뵈었을 때 만드신 요리인...볶음밥 이라는 요리가 있었습니다.”
“볶음밥? 그건 무엇이지?”
밥을 볶는 개념을 몰랐던 것은 류월도 마찬가지였기에, 향이가 말한 볶음밥에 흥미를 느낀 류월 이었다.
“그...잘 달군 솥뚜껑에 돼지 기름에 달걀과 밥을 볶아내는 요리입니다.”
“호오...특이한 요리로군. 맛은, 맛은 어떠하느냐?”
“그 맛이 밥알에 돼지의 기름이 잘 발려, 고소하고, 풍미가 깊은 맛이 나왔사옵니다.”
“오오! 그래. 다른 요리도 있느냐?”
“다른..요리라면 저번에 만드신....”
그렇게 한 마리의 용과 인간인 여자아이는어느새 강준의 요리로 이야기꽃을 피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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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허억...형...! 이거 언제까지 돌려야 하는 거야?”
혁수는 차오르는 숨을 되시며, 강준에게 물었다.
혁수가 지금 열심히 돌리고 있는 것은, 저번에 목공장에서 만든 교유기 였다.
마치 맥주 통처럼 둥근 몸체에 겉 부분에는 돌릴 수 있는 손잡이가 달린 이 물건에는, 강준이 청라와 거래하여 얻은 식재료 중, 우유가 잔뜩 들어있었다.
우유가 버터가 되는 과정은 간단했다.
우유에 들어 있는 지방을 외부의 힘으로 분리해낸 것이 바로 버터다.
재료는 단순히 우유면 충분했고, 만드는 방법도 간단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혁수가 죽는 소리를 내는 이유는
지금 한 시간도 넘게 이 교유기를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혁수는 처음한 10분 정도는 이게 과연 버터가 될까? 하는 마음으로 돌렸지만, 그것이 20분, 30분, 1시간이 넘어가자, 이제는 궁금증 따위는 필요 없고,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만이 들었다.
“음....아직 한참 멀었다. 더. 더 돌려.”
강준이 얼핏 살펴보자, 우유에 있던 지방들이 점차 고체로 변해가는 것을 확인했다.
다행히 순조롭게 버터가 되어가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기에 강준은 혁수를 재촉했다.
“아 제발...아...”
“좀만힘내. 조금만 더 하면 되겠네.”
그렇게 죽어가는혁수에게 강준이 격려를 했지만,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버터를 만들면서 점차고체가 되어가는 버터 덕에, 중후반쯤 되어가면, 교유기를 한 바퀴 돌리는 것조차 힘들어지겠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