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용은 치킨을 꿈꾸는가?
“으드드드드드.....으하..! 파..팔에 감각이 없어....”
혁수는 이미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자신의 오른팔을 매만지며, 울먹였다.
그럴 만도 한 게, 버터를 만들기 위해서 무려 두 시간 동안 교유기를 돌렸으니, 그럴 만하기도 하다.
“야. 고생했어. 이젠 내가 할 테니 쉬어라.”
“어우.....넘 힘들었어...”
그런 모습을 본 강준은 물을 한 바가지 떠서 혁수에게 전해주었다.
“흠...좋아. 잘 됬어.”
솔직히 버터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현대의 기계를 이용해 만들었지, 이렇게 중세 스타일로 만들게 될 줄은 몰라서 정확한 확신이 없었던 강준 이었지만, 다행히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이제 버터에서 분리된 지방이 빠진 우유, 버터밀크라 불리는 이 우유는 아래에 달린 마개를 통해 따로 보관하고, 버터를 꺼냈다.
화한 노란색이 감도는 버터를 주걱으로 퍼내자, 다행히 잘 떨어져 나왔다.
꺼낸 버터를 하얀 면 보자기로 감싸고, 찬 물로 깨끗이 씻어낸 뒤, 꼭 짜서 물기를 최대한 제거를 해야 한다.
버터에 물기가 남아있으면, 썩기가 쉽고,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십상이었다.
물기를 꼭 짜낸 버터는 큰 그릇에 담아, 햇볕이 잘 드는 마당에 놔둔 뒤, 남아있는 물기까지 말려주면...끝!
“후....이제 버터는 마르는 것만 기다리면 되고....이젠 치킨 차례인가..”
강준은 허리를 쭉 펴며, 다음 요리를 준비했다.
이미 버터를 만드느라 시간을 많이 소비했기에,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먼저 생닭을 손질해, 다리, 날개, 몸통으로 나누어 조각을 내어준다.
그리고 군데군데 칼집을 내어 간이 잘 배도록 해준다.
칼집은 막 겉 부분을 칼로 베어내거나 할 필요 없이, 그냥 칼을 세운 뒤,살집을 콕콕 쑤셔주면 충분하다.
손질이 끝낸 닭고기에 소금과 후추 간을 해준다.
원래라면 여기에다가 훈제 파프리카 파우더나, 하다못해 마늘, 양파 파우더를 뿌려 더욱더 맛있는 치킨을 만들고 싶지만, 어쩌겠어? 재료가 없는걸.
그리고.
“마침 버터를 만들게 돼서 정말 다행이다.”
버터를 만들고 남은 버터밀크에 닭고기를 담가준다.
버터밀크는 우유보다 연육 작용*이 더 잘되고, 닭 특유의 잡내도 훨씬 잘 잡아준다.
(연육 작용*:고기의 살이 부드러워지는 현상이다.)
그렇게 닭고기를 재우는 동안, 기름을 준비한다.
“이것도 미리 만들어 놓기를 정말 잘했다니까.”
강준이 주방의 구석에 있는 작은 항아리를 열자, 그 안에는 하얀 라드가 들어있었다.
라드를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냥 냄비 하나에, 돼지비계를 넣고, 비계가 잠길 정도로만 물을 부어준 뒤, 그냥 끓여주면 끝이다.
그렇게 두면 냄비의 수분은 증발하고, 돼지비계에서 나온 기름만 남게 되는데, 그걸 따로 걸러서, 보관하면 끝!
상온, 아니면 냉장 보관을 하면, 분명 액체였던 라드가 허옇게 굳어버리는데, 가끔 삼겹살을 다 먹고, 불판을 그대로 나두면 생기는 허연 기름이 라드와 비슷하다고 보면 편하다.
강준은항아리에서 라드를 꺼내, 쟁가비라 불리는 냄비에 담았다.
쟁가비 전용으로 만들어 둔, 아궁이에 냄비를 올리고, 아래의 화로에 지푸라기를 잔뜩 깔았다.
“하...라이터는 이제 기름을 다 써서 못 쓰는 게 아깝네...”
향이의 집에 막 왔을 때는, 불을 붙힐 때, 현대에서 가져온 라이터를 사용했지만, 이제 기름이 다 떨어져서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강준은 라이터 대신, 부싯돌을 잡고, 한참을 내리쳐야 했다.
향이는 순식간에 척척 해내던데, 강준은 아직 요령이 모자라서, 꽤나 힘이 들었다.
하지만 띠동갑보다 어린 향이에게 지는 것이 은근 신경이 쓰이는 강준은 한껏힘을내며 불을 붙였다.
그렇게 불이 붙으면, 불이 꺼지지 않게 불쏘시개 용인 지푸라기를 잔뜩 넣고, 그 뒤에 땔감을 넣어준다.
참고로 땔감을 넣을 때는, 겉의 껍질 부분에 칼집을 내준 뒤 사용하면 더 잘 붙는다.
껍질이 먼저 타면서, 불이 잘 붙기 때문이라고, 캠핑 자주 다니시던 형님이 알려주셨지.
그때 캠프파이어 하면서 먹던 술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
그렇게 기름을 예열시킬 동안, 입맛을 다시던 강준은버터밀크에 담긴 닭을 꺼내고, 밀가루를 잘 입혀주었다.
밀가루를 개어 낸 튀김반죽을 만들어 넣어줘도 되지만, 그러면 튀김옷이 너무 두꺼워 지기 때문에 강준이 개인적으로는 딱히 하지는 않았다.
물론 충분히 맛있는 조리법이기도 하니, 특별히 이게 더 맛있다! 같은 선입견은 아니라는 것.
어쨌든, 기름에 치킨을 튀기기 좋은 온도는 작은 튀김옷을 넣었을 때, 3초 이내로 거품이 보글보글 하며 위로 떠 오를 때 튀기기 좋다고 하지만,
정 잘 모르겠으면 처음부터 넣고, 튀김옷이 올라올 때 튀기면 된다.
어느새 엑체로 변한 라드의 기름온도가 끓어오르면, 치킨을 하나씩, 기름이 튀지 않게 천천히 넣어주었다.
이젠 소스를 만들 차례.
프라이드 치킨은 딱히 소스가 없어도, 닭고기 간을 한 향신료가 있어서 충분하지만, 여기에 있는 향신료라고는 소금과 후추가 끝이기 때문에, 소스로 맛을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간장을 베이스로 한 간장소스는 꽤나 간단하다.
파와 마늘을 다지고, 거기에다가 간장, 설탕, 후추와 꿀, 그리고 느끼함을 잡아줄 청양고추를 쫑쫑 썰어넣고, 한번 끓여준다.
설탕이나 꿀 같은 것들이 끓이지 않으면 잘 섞이지 않기 때문에 꼭 한번 끓여줘야 한다.
그렇게 끓인 소스를 그릇에 담아준다.
이쯤 되면 치킨이 다 익었으리라 생각한 강준이 기름을 살펴보자, 예상대로 치킨은 아주 바삭하게 잘 익었다.
치킨을 꺼내주고, 잠시 있다가 한 번 더 튀겨준다.
이렇게 튀겨주는 이유는 간단한데, 더 바삭해지기 위함이다.
튀김을 처음으로 튀기면, 안에 있는 수분이 겉 부분으로 이동하는 데, 그걸 꺼냈다가 다시 한번 튀겨, 수분을 완전히날려주는 것.
그냥 단순하게 거의 다 익었다 싶으면 꺼내고, 잠시 있다가 한 번 더잠깐만 튀겨주면 끝이다.
그렇게 완성된 치킨을 안이 패인 그릇에 넣고, 소스를 부어 버무려준다.
어디 덜 묻거나 하지 않고 골고루 묻혔다면...끝!
“향아! 밥상 펴라! 다 됐다!”
그렇게 강준의 요리는 끝이 났다.
이제는 이 치킨이 류월의 마음에 들기를 기도할 뿐.
강준은 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접시에 옮긴 치킨을 방으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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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이건 뭐라 부르는 거지?”
“치킨, 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작은 밥상에 강준과 혁수, 향이, 그리고 류월이 둘러앉아 밥상의 중앙을 장식하는 치킨을 바라보았다.
“흠흠...냄새만큼은 좋구나, 제법이야.”
“냄새만 좋은 것이 아닐 겁니다.”
“아 일단 먹고 보자! 치킨을 눈앞에 두고 이게 뭔 짓들이여!”
“야...! 야 임마!”
그렇게 강준과 류월의 은근한 신경전이 거슬리는 혁수는 자신이 먼저 치킨 한 조각을 낼름 들었다.
“허...허윽...!후아......진짜 개 맛있네....내가 웬만하면 안 우는데...눈물이 난다....이게 얼마만의 치킨이야아...”
그렇게 누구보다 먼저 한 입 베어 문혁수가 눈물을 좍좍 뽑으며 걸신들린 것처럼 나머지 살점도 뜯어먹기 시작했다.
“....꿀꺽...”
“에휴....아..아무튼 잡수어 보시죠.”
“크..크흠! 그..그래. 일단 맛을 봐야지.”
그런 혁수의 모습을 뚫어지게 지켜보던 류월에게 강준이 말을 걸자, 그제야 자신도 치킨 한 조각을 들었다.
“하암.........!!!!!!”
그렇게 닭 다리를 한 입 덥석 물은 류월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며 양 뺨을 크게 부풀리기 시작했다.
‘뭐...뭐지? 이 달콤하면서 매운 맛이 톡 쏘는 이 양념, 한 입 베어 물자 바스락 거리는 이 고소한 식감과 터져 나오는 육즙. 이 맛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요리는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맛이다...!!’
류월은 용에 걸맞게 살아가면서 정말 수 많은 경험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험들을헛웃음이라도 짓게 만드는 이 요리에, 마치 자신이 살아온 세월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분하다.
인간 주제에이 위대한 이 몸이 생전 처음 느끼는 맛을 일깨우다니.
하지만 그러면서도 입은 전혀 멈추지 않았다.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혀는 이 맛을 기억하고, 음미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결국 류월의 손과 입은 전혀 쉬지도 않은 체, 바삐 움직였다.
“저...류월님....음식은 입에 맞으십니까?”
“으...으음......! 뭐...썩 나쁘지 않구나...”
그렇게 정신없이 치킨을 해치우던 류월을 멈추게 만든 것은 강준의 물음이었다.
사실 물음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강준은 의문형으로 질문을 했지만, 이미 강준의 얼굴에는. 야. 내가 맛있는 거 먹여준다고 했냐? 안 했냐? 맛있지? 맛있어서 미치겠지? 라는 게 그 특유의 거만한 표정으로 다 드러나 있었다.
‘크..크윽....감히 인간주제에...’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한 것에 대해 류월은 아주 분해했다.
생태계의 정점에 도달한 용 이라는 개체는, 자신과 다른 생물은 자신보다 덜떨어졌다.
라는 인식이 강했다.
류월은 청란이라는 인간이자 자신의 친우를 만나 그 인식이 좀 약해지기는 했지만, 태생이 용인 이상, 그런 인식을 완전히 무너뜨리기에는 부족했다.
그런데, 청란이 아닌 다른 인간이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굴욕감을 선사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더욱더 분한 것은.
이 치킨 이라는 음식에 손을 뻗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제는 모르겠구나.’
그렇게 치욕과감탄의 감정이 오락가락하던류월은 결국,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그저 이눈앞에 있는 치킨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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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역시 용은 용이라는 건가...이걸 지 혼자 다 처먹네...’
강준은 류월이 본래, 거대한 용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닭을 여섯 마리나 튀겼었다.
강준의 몸은 여자아이가 된 이후로, 위장이 줄어들어서 그런지, 그다지 많이 먹지는 못했고, 향이도 비슷했다.
강준과 향이, 둘이서 한 마리 정도 먹는 정도.
건장한 성인 남성인 혁수가 있었지만, 많이 먹어도 두 마리가 한계였다.
그리고 남은 세 마리의 치킨.....
은 이미자그마한 살점 하나 없이 매끈한 뼈로 대체되었다.
역시 크기는 작아져도 용은 용이라 이건가....먹는량이 상당했다.
혁수는 배부르게 먹었다며 잠시 소화 좀 시킨다며 밖으로 나갔고, 향이는 우리가 먹은 것을 치우기 위해 밥상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다 먹은 치킨 그릇의 소스를 손가락으로 찍어먹으며 아쉬운 티를 팍팍내는 류월을 보자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상당히 마음에 드시는 모양 이십니다.”
“크흠...그..그래. 네 말대로 이 몸에게 아주 걸맞는 요리였다. 칭찬하지.”
류월은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이 꽤나 부끄러웠는지, 다시 엄근진 모드에 들어섰지만,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막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그..그래...그런데 이 치킨 이라는 요리....더 없느냐?”
‘허어...’
그만큼 처 먹어놓고 또 달란다.
이게 용이야 돼지야?
“예...아직 남아 있기는 합니다만...”
“오오! 좋구나! 어서 나에게 그 치킨을 만들어다오.”
“허나.”
“허나?”
“그 전에 제가 드렸던 질문에 대답을 해 주시겠습니까?”
“질문...? 아...네가 나를 처음 봤을 때, 그 질문 말이냐?”
그렇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하여 요리를 대접한다고 했으나, 이렇게 기분이 풀린 용이라면,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단서를 이야기 해 줄지도 몰랐다.
강준은 확고한 눈빛으로 류월을 바라보았다.
그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는다면, 더 이상 치킨을 주지 않겠다는 확고한 눈빛.
“흐으음......좋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 주겠네.”
그런 강준의 눈빛을 본 류월은 눈을 찌푸리며 고민 하는 듯 했으나, 결국 답을 내놓기로 정한 듯했다.
“가..감사합니다!”
“너의 세계에서 이 세계로 흘러들어오게 된 이유는...”
류월은 진중한 눈빛으로 강준을 바라보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이.....
강준은 침을 꼴깍 삼키며 류월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나도 모른다!”
“아~~......예?”
그런 강준의 정신에 원 투 스트레이트를 날린 것 같은 류월의 말에 강준은 잠시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본디 공간이라는 것은 이 위대한 나조차도 다 알지 못하는 것, 말 그대로 미지이니라.
그러니 너희들이 이 세계에 오게 된 이유는 이 몸도 모르겠구나.“
류월은 팔짱을 끼며, 아무렇지도 않게, 거만하게 그 이유를 말했다.
“아니..그게 무슨....”
진짜 이 도마뱀이 미쳤나?
분명 처음 만날 때만 해도 다 알고 있는 듯한 태도였으면서, 이렇게 배짱장사를 해?
“분명....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고 있는듯한 모습이셨....”
“흠....나는 본디 인간을 잡아먹는데 관심도 없고, 그저 내 둥지를 침입한 너희들을 겁주고 쫒아보낼 생각이었다. 개미를 죽이는 건 쉽지만, 굳이 그 개미를 죽일 이유는 없지 않는가?”
그렇게 말하는 류월은 오히려 자신이 아주 대인배인 것처럼 장황스럽게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자! 이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했으니, 어서 치킨을 가져오너라!”
그런 태도로 자신에게 치킨을 바치라는 꼬맹이 모습의 용.
마음 같아서는 이미 몇 대는 쥐어박고 싶었지만, 용이지 않은가.
힘이 약하면, 기어야지.....
그렇게 성격 더럽고, 뻔뻔하고, 자기중심적인 용은, 치킨을 무려 7마리는 더 먹고 나서야 먹는 것을 그만두었다.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