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화 〉차원이 다른 맛 (24/289)



〈 24화 〉차원이 다른 맛

-자. 여기가 조리실이다.-

제이든이 나무로 이루어진 문을 끼익 열자, 문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훅하고 피부로 느껴졌다.


-야! 스프준비는?-

-아...아직 시간이 더 걸릴  같습니다!-

-뭐? 이런 X발! 야! 뒤지고 싶어? 어?! 약 2분 내로 준비 끝내! 고기는!-

-지금 바로 나갈  있습니다!-

-오케이! 일단 빵 먼저 나가고, 스프는 빵 나가면 바로 따라 나가.-

그리고 들려오는소리.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발과 귀를 멍하게 만들 것  같은 고함과 욕지거리.

마치전장터를 연상케 하는 곳.

바로 조리실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이런 공간에 들어가게 된다면, 몸이 굳어버린 채로, 아무것도못 하며 어리바리 까다가 욕을 뒈지게 처먹는 곳.

그러나 강준에게는.


‘하....이거 그립네...’


이런 광경에도 놀라움은커녕, 사색에 잠길 정도로 평온한 모습이었다.

이미 20살 때부터 주방에서 살다시피 한 강준에게는 마치 집으로 돌아온 듯한 평온함이 깃들었다.


-‘이 꼬맹이....이런 곳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다니....하인즈 님이 그런 말도안되는 조건을 받아 드릴만  배짱은 있는 것인가?’-

그런 강준의 모습을 본 제이든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고작 열세 먹은 여자아이가, 성인 남성들의 욕설과 고함이 즐비한 이곳에서 이런 여유란...

그렇게 조리실을 방문한 두 사람은 점심식사 배분이 끝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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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잠시동안 조리실을 빌리게 된 강하 라고 하는 여자아이다. 하인즈 님의 말씀이니까, 방해하지 말도록.-

그렇게 아비규환이던시간이 지나고, 잠시 잠잠해진 틈을 타, 제이든은 잽싸게 강준을 소개했다.


-이런 꼬맹이가 말입니까?-


그러자 제이든의 말에 반박하며 나서는  사내가 있었다.

다른 사내들과 다르게, 팔에 완장을 차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주방의 주방장일 것이다.

-칼리. 일단 하인즈 님의 중요한 인물이다. 주제넘은 말은 하지 말도록.-

덩치가 크고, 구릿빛의 피부를 가진 칼리라는 사내는, 그런 강준이 아니꼬워 보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하인즈의 중요한 사람이라고 제이든이 일갈하자, 한 발 뒤로 빠지는 모습이었다.

-그럼 이만 가 보도록 하지.-


-예이, 수고가 많으십니다~-

-.....-

그렇게 제이든은 뺀질거리며 인사하는 강준을 조리실에 데려다준 뒤, 혼자조리실을 나섰다.

-흥....주제도 모르고 건방을 떠는 것도, 여기까지겠지.-

아무리 강하라는 소녀가 평범한 소녀 같지 않더라 하더라도, 남자들로만 구성된 주방에서 그런 압박을 견딜리는 없을 터였다.


-...서류 작업이나 해야겠군.-

 내기는 하인즈가 이긴 것이 안 보듯 뻔했다.

그렇다면 이젠 관세에 대해 자세한 서류를작성해야  때.


제이든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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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꼬맹이.-

제이든이 주방을 나서자. 아까의 태도는 어디 간 듯 강준을 날카롭게 바라보며 칼리는 말했다.

-네년이 하인즈 님의 중요한 인물인지는 몰라도, 이곳은  주방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나? 이 주방의 모든 것은 내 손안에 있어야 한다. 네년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그렇게 초장부터 강하게 강준을 압박하는 칼리.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이런 칼리의 태도에 주눅이 들거나, 분노하거나 하겠지만.

강준은


-흠....스톡* 만드는솜씨가 형편이 없군...이건 뭐야? 브라운 스톡을 로스팅*도 하지 않은 채 만들어? 게다가...시머링* 도 마찬가지로 그대로 끓였군....-


(스톡*:고기의 뼈나, 생선, 채소를 물이나 와인에 끓여, 좋은 향이 나는 물. 스프와 스튜에 들어가는 기본적인 베이스.
로스팅*:생 원두 볶는다는 뜻이 많으나, 여기서는 스톡을 만들 때 재료들을 오븐이나 팬에 구워 색을 내는 작업을 뜻한다.
시머링*:끓는점 바로 아래 온도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조리법, 신속하고 효율적인 요리 방법으로, 스톡을 만들 때는 필수 조리법이다.)

-...퉷. 정말 형편없군.-

-이...이..!!! 이 년이 감히!!!-


강준은 눈 앞에 놓인 스톡을 바라보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한 입 맞보고는, 그대로 뱉어버렸다.

그 스톡을 직접 맡았던 칼리는 거의 눈 앞이 시뻘개진 체로 윽박질렀다.

요리사에게 대한최대 굴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여놓고, 강준은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었다.


-자. 지금부터  주고도  보는 것을 보여주지. 잘 보기나 해.-

-뭐..그게  소리...-

그런 칼리를 보는 강준은,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남자들의 세계는 간단하다.

그저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될 뿐.

이것도 이 자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테니.

-흠...일단  스톡부터 먼저 손봐야겠군.-

강준은 조리대의 앞으로 가서, 재료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먼저 소 뼈를 꺼내 들어, 살들을 발라 뼈를 남겨둔다. 그리고 차가운 물에 담구어, 핏물과 이물질을 씻어내었다.

강준이 지금 만들 것은 소 뼈를 사용한 비프스톡, 브라운 스톡이라고도 불린다.

그다음은 미르포아*준비를 할 시간이다.
(미르포아*:스톡이나 스프에 향미를 내기 위해 당근, 셀러리, 양파 등을 혼합한 것.)


강준은 양파와 셀러리, 당근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우..와...저 손놀림을 봐...저렇게 빠른데도 마치 장인들처럼 모 나는 재료가 없어...-

-분명 처음 이 주방에 온 것일 텐데...마치 자기 집처럼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다니...-

-이..이..이것들이! 지금 저년한테 당한 수치는 이미 잊은 거냐?!-

그런 모습을 본 조리사들은 점차 강준의 실력에 감탄하기 시작하며, 어느새 멍하니 강준의 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분통이 터지는 칼리는 조리사들을 다그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준은 계속 손을 움직였다.

‘헤에...역시 대 상단의 배에 있는 조리실답네.’

강준은 이 조리장에 있는 풍부한 식재료들을 보고 감탄을 냈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버터도, 이곳에는  무더기로 있었다.

아마 배에도 청라의 창고와 같이 비슷한 처리가 되어있는 곳이 있겠지.

부자니까  정도는 당연할  이다..

강준은 손질해 둔 소 뼈를 물에서 꺼내, 물기를 잘 없애고, 비어있는 화덕에  뼈를 넣었다.

이것이 브라운 스톡의 기본적인 조리법인 로스팅이었다.

이렇게 로스팅 되어가는 소뼈들은 갈색을 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캐러멜화 이다.
(캐러멜화*:높은 열에서 재료들을 가열할 때, 재료 속에 있던 당분들이 겉으로 나와 표면을 갈색으로 만드는 현상)

그렇게 골고루 뒤집어 가며, 색을 냈다면, 화덕에서 꺼낸다.

그다음 냄비를 꺼내, 열을 올리고, 버터를 넣어 녹여준 뒤, 미르포아를 넣어서 채소들의 색감을 내어준다.

얼추 갈색이 난다면,  물과 소뼈, 사세 데피스*를 넣고 강한불에 끓여준다.
(사세 데피스*:향신료 주머니를 뜻하며, 말 그대로 작은  보자기 주머니에 향신료들을 넣어, 그대로 스톡에 넣어 향을 내는 데 사용하는 것.

사세 데피스를 사용하는 이유는, 후추나 정향 같은 작은 향신료들을 넣고 끓일 때, 나중에 꺼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세 데피스를 넣으면, 그냥 나중에 주머니만 꺼내면 되기 때문에 아주 편리하다.

강준은 이번 사세 데피스에 월계수 잎, 파슬리 줄기, 통후추, 정향, 타임 정도를 채워 넣었다.

브라운 스톡은 고기의 뼈로 우려내기 때문에, 타임도 잘 어울린다.

그리고...

-무..뭣? 저걸 넣는다고?-

-갑자기 왜..?-

그리고 그들은 다음으로 강준이 행한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로 토마토를 썰어 그대로 스톡에 넣은 것이다.


-하! 바보 같은 짓을 하는군. 브라운 스톡에 신맛을 내면 아무리 잘한들 그게 무슨 가치가 있지?-


칼리는 그런 강준의 모습을 보고, 한껏 강준의 스톡을 비난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야 이 시대의 사람들은 토마토 자체를 거의 조리하지 않았고, 브라운 스톡에 산미가 있는 토마토가 들어간다면, 강한 산미 덕에 스톡이 망한다. 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뭐..보고만 있으라고.-

경악과 비난을 퍼붓는 조리사들에게 그저 지켜보라는 말을 남긴 강준은 묵묵히 손을 움직였다.


브라운 스톡이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바로 불을 줄여 보일링을 해준다.

브라운 스톡의 핵심은 바로 소 뼈에 들어 있는 콜라겐, 이 콜라겐이 브라운 스톡의 풍미를 한층 더 높여 주는데,  뼈에 있는 콜라겐이 추출되기 가장 좋은 조리법이 바로 보일링이다.

그렇게 끓으면서 스톡 윗 부분에 떠오르는 기름을 제거해주면서 뭉근하게 끓여주고  뒤, 면 보자기에 한번 걸러내면...

-자! 이게 바로 진짜 베기 비프 스톡이다.-

강준은 의기양양하게 그릇에 비프 스톡을 담아, 조리사들 앞에 당당하게 내놓았다.


-허어....어떻게 이리 불순물 하나 없이 고운 색이 났지?-

-내 얼굴이 비쳐 보일 정도야...!-

-이 향도 끝내주는데..?-

그런 스톡을 보던 조리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감탄만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만큼 강준이 만든 비프스톡은자신들이 만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형태를 내뿜고 있었다.


-허! 그래 봐야 이미 토마토를 넣은 시점부터 이건 망했다고! 맛을 볼 가치도 없군.-

그럼에도 칼리는 토마토를 근거로내세우며 강준의 비프 스톡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토마토를 넣은 음식이 맛이 있을 리가...심지어 스톡에 신맛을 내다니....


-쫄았냐?-

꿈틀.

-...뭐?-


그러던 와중, 칼리의 귀에 날카롭게 들려오는 목소리.


-쫄았냐고 묻잖아.-

강준은 입을 귀에 걸 듯한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칼리를 도발했다.


-하긴....자신보다 나이도 어리고 여자인 내가, 자기보다 훠얼씨인 맛있는 스톡을 만든 게 분하기도 한 모양이지...안 그래?-

-...어이가 없군. 그깟 게 비프 스톡이라고?  용납을 할 수가..-

-먹어봐.-

-.....-

-그렇게 자기 기준에  바르다고 생각하면, 먹어보라고? 왜? 쫄려? 그런 배짱도 없는 새끼가 주방장을 해?-

-이게 미쳐도 단단히 미쳤나!-


강준의 도발에 자신의 인내심이 바닥 나버린 칼리는 결국 강준의 목덜미를 붙잡으며 말했다.

-그렇게 화낼 필요가 없지....그냥  입 먹어보면 다 끝나지 않아? 맛이 있을까? 없을까? 안그래?-

-크..크윽...-


197cm  거구에 멱살을 붙들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준의 말은 멈출 기세를보이지 않았다.


-자. 먹어봐. 네 깟놈이 만든 것보다, 차원이 다를 테니.-


강준은 칼리의  앞에 자신이 만든 스톡을 들이밀며 말했다.

-...까짓  먹어보지! 맛이 없기만 해봐라! 네놈의 그  혓바닥을 뽑아주지!


그런 강준의 말에 결국 칼리는 숟가락을 들어, 스톡을 한 술 떴다.

-‘.......뭐야...이 다채로운 향기는....코가 삐뚤어질 것만 같다...’-

평소의 자신이 만든 스톡과는 뿜어나오는 향의 스케일이 달랐다.

그 향은 매우 간드러웠으며. 당장이라도 이 숟가락을 입에 넣어보고 싶었다.


-합.....-

결국 칼리는 숟가락을 자신의 입속에 넣어, 스톡을 털어 넣었다.

-주방장님! 어떠십니까?-

-맛은? 맛은?-

-주...주방장님?-


그러자, 칼리는  그대도 숟가락을 넣은 체, 완전히굳어버렸다.

-......장....-

-예?-

-젠장!!-

시간이 지나자 칼리는 외마디 윽박지르며, 강준이 만든 비프 스톡을 그릇째로 들어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뭐야...뭐냐고 이 풍미는...!소뼈의 구수한 맛과 채소들의 감칠맛, 그리고  모든 것을 합하여 다시금 강렬한 향을 내는 향신료...그리고...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응?  말이지?-

-시치미 떼지 마라! 분명토마토를 넣었을 텐데, 어째서 신맛이 하나도 나질 않는 거냐!!-

-그거야 간단하지, 토마토의 신맛은 열을 가하면 단맛과 감칠맛으로 바뀌거든, 그만큼 비프 스톡에 어울리는 재료는 없지.-

그렇게 칼리는 거의 비명을 지르며 강준에게 토마토의 맛의 정체를 묻자, 그게 무슨 별일이냐는 뜻이 대수롭지도 않게 말한 강준 이었다.


-‘정말 인정하기도 싫지만, 이 맛을 맛 보았다면....인정할 수 밖에 없어,,,’-


-....죄...송합니다...제가....말도  되는 무례를 저질렀습니다....부디,,,저의 사죄를...-

-주....주방장님!-

-마..말도 안되는...!-


칼리는 이미 깔끔하게 비운 접시를 치우고, 강준의 앞에 무릎을꿇으면서 사죄를 빌었다.

칼리는 그래도 거대한 로한 상단의 운행선의 주방장으로 뽑힐 만큼, 재능이 있는 요리사였다.

그만큼 요리에 충실하며, 요리에 대한 관점도 일반인보다 훨씬 앞서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알 수 있었다.


이 스톡은 자신 혼자서는 결코만들어  수 없는, 그야말로 궁극의 맛이었다.


강하.


이 앞에  있는 이 자그마한 꼬마는.

자신의 수준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압도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이제야 이해를 하는군...나쁘지 않아.-


강준은 그런 칼리을 보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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