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소악마와 함께 춤을!
-흠...지금쯤 어떻게 되어 있을지....-
제이든은 내심 기대에 찬 마음을 품고 방을 나섰다.
관세에 대한 서류는 준비가 끝난 지금. 강준이 어떻게 되어있을지 매우 궁금했다.
주방장인 칼리에게는 도 넘은 행사는 하지 말라고 했지만, 제이든은 칼리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요리라면 매우 자신감이 있는 사내였다.
그런 그가 주인으로 있는 주방에서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그것도 여자아이가 요리를 하겠다고 설친다면, 그의 성격으로는 용납을 하지 못할 테지.
-칼리의 윽박에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울고 있을 모습이 훤하군...-
주제도 모르고 하인즈와 자신에게 대든 그 꼬맹이.
주방 구석에 박혀 질질 짜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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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게 무..무슨....-
그러나. 상상은 현실을 넘지 못하는 법.
분명 그는 강준이 칼리의 구박에 정신을 차리지도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야! 이 고기 구운 사람 누구야?-
-저...접니다 셰프....-
-이 닭고기는 너무 덜 익어서 아직도 가니쉬*로 나온 파슬리를 먹으려고 한다!-
(가니쉬*:음식의 외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음식에 곁들이는 장식)
-죄....죄송합니다 셰프!-
-다시! 그리고 스튜!-
-예! 셰프!-
-뭐야 이게?! 정신 안 차려? 이 스프는 너무 맑아서 이묭박이 보면 4대강 사업이 성공한 줄 알겠다!
-예!.....예? 4대...강?-
-다...닥치고 다시! 재료들을 확실하게 우려내!-
-ㅇ.!...예! 셰프!-
제이든의 눈앞에는, 자신보다 갑절은 큰 키를 가진 남정네들을 향해 윽박지르고, 욕을 하는 강준의 모습이었다.
마치 자신이 상상한 모습의 정반대의 상황을 눈으로 보게 되자, 제이든은 잠시동안 입을 닫지도 못하고 그 광경을지켜보았다.
-엇? 제이든 님 아닙니까?-
-어..! 카....칼리! 지금...어,..와...무슨...어...-
그러자 옆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제이든이 뒤돌아보자, 그곳에는 칼리가 서 있었다.
-당황하시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저도 처음에는 무척 황당했으니까요..-
-아니...지금 저 꼴이 무슨....아니! 칼리! 네가 차고 있던 그 완장이 도대체...-
그런 자신을 어르던 칼리를 보던 제이든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의 오른팔에 항상 차고 있던 주방장의 증표인 빨간 완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칼리는 자신이 주방장이라는 자부심이 매우 큰 사나이였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차고 있던 완장에 깊은 애정이 있으며, 그 누구도 그 완장을 건드리지 못하게해왔다.
그런 칼리가 자신의 완장을 잃어버리고는, 이렇게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리...가...
-호..혹시 지금 저 꼬맹이의 팔에 차고 있는 그것이...-
-예. 맞습니다.-
-아..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뭐...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꼬맹이가 아닌 셰프님입니다.-
-에? 뭐? 셰...셰프?-
-그럼 저희는 지금 바쁘니 먼저 들어가시길, 물론 저녁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쾅!
그렇게 제이드가 어버버하는 사이, 칼리는 제이드를 주방 밖으로 보낸 뒤, 문을 닫아버렸다.
-............-
황당함과당혹감.
그것이 제이드의 머릿속을 휘감았다.
-‘뭐...지금 내가 도대체 뭘 본거지?.....이..일단 하인즈 님께 이 일을 알려야...!-
제이드는 현 상황을 머릿속으로 이해하기도 전에, 발을 돌려 하인즈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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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혹시 지금 취했나?-
-아니...! 정말 제가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하인즈는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제이드에게 일을 조금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이 반쯤 나간 채로, 횡설수설하고 있는 제이드의 말을 들어보니.
나에게 건방진 태도를 보이던 그 꼬맹이가 주방의 조리사들을 통제하고 있다. 라는 말인데...
-...오늘은 조금 쉬는 것이 좋겠네. 요즘 일이 너무 많았지? 내가 자네가 유능하다고 생각하네만....조금은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이 어떤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아니.......! 아!!!!!!!!!!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렇게 제이드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위로하는 하인즈와
속이 터질 것 같은 제이드.
그렇게 의미 없는 말들이 오가는 사이.
-하인즈 님.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문 뒤에서 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음...드디어 결판의 시간인가...지금 바로 들여보내도록.-
-하인즈 님...이건...정말로 위험하...-
-그만하게! 이제 정신 좀 차리고. 난 이제그 꼬맹이가 무엇을 했는지 봐야겠어.-
드디어 한나절이 지나고, 강준이 토마토가 팔릴 수 있다는 증거를 가져올 것이다.
‘어디. 그 잘난 꼬맹이가 내기에서 지고, 쩔쩔매는 꼴을 볼까?‘
상상만 해도 유쾌하군.
그렇게 두 상인의 막대한 자본을 건 승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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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저녁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하인즈와 청라가 있는 방에, 자신이 요리한 메뉴를 직접 들고 올라온 강준이 말했다.
-방울토마토를 활용한 수프와 토마토 파스타를 준비해 봤습니다.-
-....!...흠....그렇군...-
-‘뭐지? 이 냄새는? 분명 이것이 토마토로 만든 것이 맞단 말인가?’-
그 음식을을 보게 된 하인즈는 지금 이 상황과 내기에도 관계없이 순수하게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강준이 내온 음식들은 하나같이 맛있는냄새를 줄줄 풍겼기 때문이다.
“이국의 재료인 토마토를 활용한 국과 국수 요리입니다. .”
“으음....그렇게 들으니 이해하기가 참 어렵구나...”
“딱히 이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맛이 있는가, 없는가만 보시면 편합니다.”
“하하하! 그게 맞는 말이기는 하지.”
-먼저 수프부터 드시지요.-
-그...그러지...-
“먼저 국부터 드시지요”
“호오...정말 생전 처음 보는 요리지만....당장이라도 먹고 싶구나..”
하인즈는자신의 앞으로 내미는 수프 그릇을 받아들였다.
-이건...정말 처음 보는 요리로군.-
그 스프는 티 없이 투명한 색을 띄고 있었다.
그 안에는 닭고기로 보이는 것과 달걀을 풀어 익힌 것, 그리고 자그마한 토마토를 반으로 잘라 그대로 넣은 모습이 보였다.
-...일단 한 입 먹어보지.-
그렇게 말한 하인즈는 스푼을 들어, 한 술 들었다.
-...!-
-노..농후하다. 마치 닭 한 마리가 그대로 이 스프에 녹아든 것만 같다.-
-그 뒤로 씹히는 이 고기는....분명 닭의 가슴살에 해당하는 퍽퍽한 부위일 텐데....어째서인지 너무나도 부드럽고 탱글하게 씹힌다.
그 닭가슴살은 강준이 녹말을 발라 익힌 것 이었다.
녹말가루가 퍼지면서, 닭 가슴살이 퍽퍽해지는 것을 막고, 탱글한 식감을 가질 수 있게 해준 것 이었다.
그리고 이 달걀도고소하고, 입에 착착 붙는다.
“호오...정말 기가 막히는군. 역시 강하. 네 요리는 천하일미로구나!”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크흠...그래. 맛있기는 하다만...그렇다고 이 요리가 그렇게 획기적이지는 않다. 토마토도 자그마한 것이 들어가 있을 뿐, 이것만으로 토마토의 이미지를 바꾸기란...-
-자. 이제 그 안에 들어 있는 토마토를 스푼으로 으깨어 주세요.-
-으..으깨? 이 토마토를?-
-예.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렇게 차분하고, 부드러운 음식에 기껏 토마토를 씹지도 않고 남기고 있는데, 그런 스프에다가 산미를 넣겠다니...
-일단 해 보시지요-
-...알겠네.-
결국 하인즈는 강준이 시키는 대로 방울토마토를 으깬 뒤, 다시 한번 스프를 떠 마셨다.
-...!??!!_
분명 상큼한 산미가 느껴진다. 하지만. 전혀 과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 차분하여 악센트가 없던 스프가 확실한 강타를 혀에 내리 때렸다.
-어떠하신지..?-
-크..크흠...맛은 있구나, 좋아. 어서 다음 요리를 들고 와라.-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붉히는 하인즈.
순식간에 다 먹어 치워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은 그릇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분명 맛이 있기는 했지만, 이 스프의 메인은 토마토가 아니었다. 여러 재료들과 어울려져서 좋은 맛이 난 스프. 아무리 이 스프가 맛이 있더라고 해도, 굳이 토마토를 넣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래. 이걸로 사람들이 토마토를 먹게 하는 것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아직 이 계집이 잘난 체 하기에는 이르다!'-
-다음 요리인 토마토 파스타입니다.-
-.....정말 빨갛군.-
그 다음으로 강준이 들고 온 토마토 파스타는 정말 악마의 스프처럼 생긴 모습이었다.
시뻘건 토마토의색이 뿌려진 면을 보자 하니...역시, 토마토를 사람들에게 먹게 하는 방법은 무리였다.
이런 형태의 요리를 보고, 누가 토마토 요리를 먹을까?
잠깐이나마 돋았던 흥미가 순식간에 사그라들던 하인즈는 그렇게 토마토 파스타를 한 입 먹었다.
-?!?!??!?!?!-
그러자 엄청나게 강렬한 맛이 하인즈의 혀를 맴돌았다.
폭풍처럼 몰려오는 향신료들과, 토마토의 풍미. 마치 악마의 유혹에라도 홀린 것처럼 감미로운 맛 이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분명...분명 이것은 토마토 요리가 맞다. 하지만! 어떻게 토마토의 산미 대신, 이렇게 감칠맛과 단맛이 나게 만든 것이지?!-
결국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하인즈는 숟가락을 탁자에 세게 내리찍으며 말했다,
-확실히 토마토를 그대로 사용한다면, 이런 식으로 감칠맛이 나게 하기에는 힘듭니다.-
-그렇다면...어떻게 한 거지?-
-그 답은 바로...이겁니다.-
그러자 강준은 자신의 소매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 하인즈에게 내밀었다.
-이..이건...뭐지?-
-바로, 토마토 페이스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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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페이스트*.
(페이스트*:식재료의 조리, 또는 더 가공하기 위해 갈거나 개어서 농도를 낸 풀처럼 만든식품이다.)
토마토의 수분함량을 줄이고, 맛을 응축 시켜 만드는 페이스트이다.
그 농도와 풍미는 일반 토마토를 이용했을 때보다 훨씬 더 짙으며, 현대 요리에서의 토마토 요리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재료이다.
만드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토마토를 준비해, 곱게 갈거나, 잘게 썰어낸 뒤, 체에 걸러내어 걸리는 것이 없게 한 뒤.
냄비에 졸여주기만 하면 된다.
타지 않게 온도를 조절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만드는 법 자체는 매우 간단하다.
기호에 따라서 소금과 향신료를 넣기도 하지만, 지금은 소금만을 넣고 만들었다.
토마토는 열을 가하면 토마토 안에 있는 영양소의 흡수율과 감칠맛, 그리고 단맛이 배가되는데.
그것을 일반 토마토보다 엄청나게 압축시킨 것이 바로 토마토 페이스트.
그 결과, 토마토의 풍미와 감칠맛, 단맛은 엄청나게 상승한다.
-그렇기에 토마토 페이스트는 스튜와 이번 요리처럼 파스타에도 매우 잘 어울리며, 몸도 건강해지는 아주 좋은 식품이죠!-
-그...그렇군..[후룹]...과연...토마토란 것이[후룹],,,이렇게 맛이 있을[후룹]줄은...-
‘....일단 다 먹고 이야기를 하지 참...’
하인즈는 강준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절대로 포크를 손에서 떨어뜨려 놓지 않았다.
“이거..정말로[후룹] 신통방통한 맛[후룹] 이로구나!!!”
‘이쪽도 마찬가지냐?!“
그런 모습은 청라도 마찬가지였다.
뭐...괜찮다. 이제 이것으로.
-자. 어떠십니까? 제가 증명한 이 요리는.-
-...이것 이라면...정말 가능할지도 모른다....-
토마토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이 나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누가 감히 이 요리를 눈앞에 두고 먹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저희가 내기에서 이긴 것이로군요...-
강준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정말로 토마토는 악마의 열매일지도 모르겠군...’-
하인즈의 앞에있는 이 소녀.
마치 악마가 자신에게 달콤하게 속삭이는 듯, 한 모습에 하인즈는 생각했다.
-‘악마라....상인이라면 악마와도 거래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인즈는. 속을 알 수 없는, 저 작은 소악마에게홀려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