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관찰사, 하백(夏伯).
[흑룡은 건재했다.]
[칫. 그럴 줄 알았다. 그 흑룡인데, 쉽게 나자빠 뒈졌을 리가 없지. 그 충조 놈은 겁대가리도 없이 달려들다 뒈져버렸지? 그 꼴을 내가 봤어야 하는데...]
[충조 놈...자기 기분 멋대로 사는 놈이었으니 말이야....]
[그딴 것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뭔데? 또 흑룡이 이번에는 땅에 코를 박고 이승하직했대? 이젠 그딴소리를 믿는 녀석도 없을 거다.]
[여의주. 흑룡의 여의주를 인간이 삼켰다.]
[무..뭣? 그게 무슨 말이지?]
[흑룡의 여의주라면....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그여의주의 파편 하나만이라도 흡수 할 수가 있다면, 지금보다 갑절은 더 한 힘을 가질 수 있을 테지.]
[그걸 인간이? 말이 안 되는군. 평범한 인간 따위가 가질만한 힘이 아닐 텐데?]
[서론은 집어치워라. 결론은 하나.]
[.....그 인간을 잡아먹는다면....]
[여의주의 힘은 우리 것이 되는 것이지...]
[악귀들에게 이 소식을 널리 알려라.]
[그런 정보를 다른 놈들에게 알려도 되는 건가?]
[잊었나? 그 인간의 곁에는 흑룡이 있다. 어중이떠중이인 놈들은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하지만, 대충 눈을 가리는 정도는 되겠지. 그 악귀들을 이용해 우리가 자연스레 숨어들 수도 있다.]
[그렇게 몰래 들어가서...]
[그 인간 놈만 꿀꺽하면 장땡이라는 거지? 좋은데?]
[가라! 이 소식을 널리 알려라.]
[곧, 혼돈의 시대가 찾아올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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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오늘은 멀미를 안 하네?”
덜컹거리는 마차 속에서 혁수는 강준이 희한하다는 듯이 말했다.
원래 같았으면, 멀미 때문에 힘 하나 없이 쓰러져있을 양반이 웬일로 쌩쌩했기 때문이다.
“글게? 멀쩡하네? 용이 되어서 그런가?”
강준은 자신의 몸이 반인반룡이 되자, 신체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관상은 이마에 달린 뿔 말고는 달라진 것이 없지만,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힘도 강해지고, 몸에 피로가 쌓이지 않았다.
‘저번에 맨손으로 바위를 부쉈을 때는 식겁했지...’
저번에 혁수가 낑낑대면서 옮겼던 바위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고, 주먹질 한방에 가루가 된 것을 봤던 강준은 소름이 끼쳤다.
‘솔직히 놀랍긴 하지만, 멀미를 안 하는 건 좋네.’
앞으로도 마차를 타게 될 일이 많아질 것 같은데, 이런 거라도 있어야지.
솔직히 현재의 강준이라면 마차를 탈 필요도 없이 그저 달리기만 하더라도 마차보다는 빠를 것이다.
그런 신체 덕에 자신의 무릎에 누워있을 필요가 없어져, 쓸쓸한 눈빛을 하고 있는 향이를 무시하는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하다.
“이제 곧 도착합니다!”
그때 강준 일행이 타고 있던 마차의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도착인가?”
강준은 마차의 창문을 열어, 바깥을 살펴보았다.
마치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는 담장이 시야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퍼진 입구와, 멋들어진 기와가 지붕으로 얹혀진 거대한 집.
관찰사 하백 영감의 댁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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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샌드위치를 배 터지게 먹은 기소와 이야기를 해본 결과.
흑룡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생각보다도 빠르게 퍼졌다는 것을 알았다.
애초에 흑룡이라는 존재 자체가 한에서의 위상이 엄청나서, 악귀를 물리친 도사가 한탕 벌어먹기 위해 무지한 마을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다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 말들이 감찰사의 귀에 들어가니, 가만히 둘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기소가 하림까지 오게 된 계기였다.
하지만 이게 참 이상하게 흘러가게되었는데.
소문의 근원지인 강준은 평범한(강준이 잘 속였다.) 인간 이었지만, 실제로 흑룡은 존재했고, 강준의 말에 꼼짝 못 하자, 기소도 이 일을 어떻게 보고해야할지 매우 곤란해하고 있었다.
결국 생각해 낸 방법이.
강준 일행을 그냥 하백 영감과 이야기를 하게 하는 것이다.
강준은 벼슬도 없고, 양반집 규수의 딸도 아닌, 그저 평민.
평범한 인물이라면감히 양반들에게 말을 거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강준은 달랐다.
그 누가 감히 흑룡이 아끼는 인간에게 뭐라 할 수 있는가.
솔직히 기소도 초면의 강준에게 함부로 대한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니, 아무리 권력을 대행 받아 왔다고 한들, 기소 혼자 이 일을 정하기에는 매우 힘들었다.
그러니 그냥, 하백 영감에게 데려가서 결판을 내는 것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이 길기는 하지만, 그냥 자기 짬이 딸리니, 더 높은 사람에게 보낸다. 라고 생각하면 간단한 것 같다.
“기소님. 돌아오셨습니까? 그런데 뒤의 사람들은....”
“이 자들은 하백 영감님의 귀한 손님이다. 극진히 모시도록.”
사실 하백은 그저 하림마을에나타난 사기꾼을 잡으러 오라고 한 말밖에 없으나, 뭐 어쩔것인가? 흑룡이 있는데.
“나는 하백 영감님께 보고를 드리러 가야 하니, 일단 사랑방으로 모시도록 하게.”
“예!”
그렇게 강준 일행들은 하백 영감의 댁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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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을 청한 지가 오래되기는 되었나 보군, 이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들을 줄이야.”
“어르신. 제 목을 걸고 한 치 거짓이 없사옵니다!”
하백은 자꾸 내려가는 눈꺼풀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그동안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잠을 깊이 자지 못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신의 앞에서 열창하는 기소를 보던 하백은 다시금 머리가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분명 자신은 하림마을에서 일어난 악귀침공을 막아낸 도사를 잡아오라고 시키긴 했다.
평소 같다면 그 공을 치하하고, 포상을 내려 마땅하나, 흑룡 류월의 이야기가 떠돌자, 그 일은 평범하게 처리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태어나 자란 한 의 수호신 류월.
그 존재는 감히 왕제보다도 숭고하고, 위대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그저 전승해서 내려오는 신화일 뿐.
그런 류월이 실존한다고 말하고 있다.
“.....네 생각은 어떠한가. 엘드라.”
그런 하백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등 뒤에서 꼿꼿이 서 있는 체, 전혀 자세를 바꾸지 않은 자신의 호위무사, 엘드라에게 의견을 물었다.
“...분명 기소가 데려온 자들 중, 심상치 않은 힘을 가진 존재가 있기는 합니다만....그렇게 강대한 인물이라고는...생각되기가 어렵습니다.”
엘드라는 자신의 긴 귀를 쫑긋거리며 말했다.
엘드라. 자신의 호위무사이자 악귀갑사, 바람의 어금니를 이끄는 단장인 그녀는, 한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외간은 한의 사람답지 않게 눈 색이 다르고, 코도 높았으며, 저번에 보았던 애슐란의 사람과 비슷한 외견을 가진 그녀는 인간이 아닌 엘프라고 소개한 종족이었다.
그녀와 그녀의 동족들은 오래전, 애슐란과의 문호를 개방하기도 전에 밀입국한 애슐란의 사람이었다.
그녀들의 터가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지며, 살 곳을 잃자, 배를 타서 다른 대륙으로 건너온 것이 한이라는 나라로 불시착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 그녀들을 가엾이 여긴 하백의 선조들은, 그녀들이 살 곳을 마련해주고, 그런 보답을 하기 위해, 그녀들은 하백의 가문에 소속되어 악귀들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악귀갑사가 되었다.
그녀들은 도술과는 다른 신비한 힘을 다루며, 엄청난 무력을 보여주는, 하백의 가문의 위상을 높여주는 것에 큰 도움을 주었다.
특이하게도 그들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늘 젊은 모습을 유지했으며, 지금 하백의 옆에 있는 엘드라도 이미 300살은 쉽게 넘긴 나이를 지니고 있었다.
“흠....일단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군.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지?”
“일단 사랑방에 모셔 놨습니다.”
“....좋다! 그들을 내 방으로 부르도록.”
‘이렇게 생각만 많아져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일단 내 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판결할 것이니.’
그렇게 말한 하백은 기소를 시켜, 사랑방에 있는 그들을 불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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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가 참 끝도 없네...”
강준 일행은 기다림의 끝에, 자신들을 부르는 하백의 명령에 사랑방을 나서, 그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이젠 뭔지도 모르겠다...자다 일어나보니 갑자기 마차를 타지를 않나...삐까번쩍한 집에 찾아가질 않나..”
혁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중얼거렸다.
혁수 이놈도 참 대단한 놈인 게, 그런 큰 소란이 있었는데 그냥 잔다고 못 들었단다.
일이 다 끝나고 나서야 배를 긁적거리며 일어난 혁수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찾았지만, 이미 일은 끝난 뒤였다.
그렇게 끝도 없어 보이던 복도를 지나, 한 방문 앞으로 도착했다.
한지로 만들어진 미닫이문에 고급스러운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 누가 봐도 중요한 인물이 여기에 있겠구나 싶을 정도였다.
“하백 어르신. 부르신 손님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들여 보내게.”
하인처럼 보이는, 자신들을 여기까지 안내한 사내가 공손하게 방 안쪽까지 들리게 말하자, 그 방 안에서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들어가시지요...”
“아 넵....그럼 실례합니다.”
그 소리를 들은 하인이 방문을 드륵 하고 열며, 강준일행을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흠...자네가 그 소문의 흑룡인가?”
그리고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한 남자.
흰 머리칼을 흩날리며, 긴 다크서클이 눈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지만, 그런 것에 좌우되지 않는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
하백 영감이라 하길래 늙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젊은 사람이라 강준은 살짝 놀랐다.
그 앞에 공손한 태도로 얼굴을 내린 체 있는 기소와. 그런 하백의 뒤에 무사처럼 딱딱한 포즈를 취하며 서 있는...
“....엘프?”
“음? 엘프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니....신기하군.”
그 무사는 노란색 긴 머리칼을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뒤로 묶고, 긴 귀를 가진.
판타지 게임이나 영화에 단골적으로 나오는 존재 엘프였다.
“하...하하..그러게나 말입니다..”
“-혀...형! 엘프녀야! 나 실제로는 처음봐...!”
“-아 닥치고 좀 있어...나도 처음보니까...”
그런 존재를 본 것이 흥분되는지 혁수가 귓속말로 뭐라고 말하지만, 지금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기...는 개뿔 강준도 내심 그녀의 외간을 보며 신비해 하고 있었다.
그녀의 복장은 갈색 가죽 갑옷과, 호피 무늬가 새겨진 옷을 둘러메고 있었으며, 특이하게도 엘프하면 생각나는 활과 화살이 아닌 호승총을 등에 메고 있었다.
“그럼...기소. 그들이 앞에 있는 지금 다시금 나에게 전했던 말을 그대로 해 보거라. 단. 한치의 거짓이라도 섞여 들어가 있다면,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하백의 눈은 자신들의 앞에 서 있는, 소문의 근원지. 강준을 노려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