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청란-1
흑룡.
그녀가 처음 눈을 떴던 곳은, 오래전. 나무가 우거진 한 숲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인식했을 때는, 자신을 낳은 존재는 보이지 않은 채, 그저 스스로 깨고 나온, 자신을 뒤덮었던 알의 껍질만이 자신의 옆을 장식했다.
용들은 기본적으로 부모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키워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새끼용은, 자신이 태어난 숲을 거점 삼아, 여러 가지를 스스로 배울 수 있었다.
기의 사용법도 마찬가지.
그렇게 약 백 년.
필멸자 에게는 꽤나 긴 시간이었지만, 용에게 있어서는 한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그 사이 꽤나 성장한 용은, 이제 그 누구도 새끼용이라고 불리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은 어떤 곳인가.
백 년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저 사람이 지나가지도 않던숲 안에서만 살아왔기에.
흑룡은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온 숲을 떠난 용은, 어떤 생명체들이 모여 있는 한 곳에 도착했다.
그 생명체들은 이 세계의 지분을 대부분 차지하던 인간.
인간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자신에 비해 아주 작은 신체, 기의 흐름도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들은 용을 보고는 놀람과 두려움에 떨었다.
그들은 용이 자신들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용은 전혀 그런 생각따윈 없었고, 그저 처음 보는 지성체에 신비함을 느낄 뿐 이었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손에 칼을, 활을 무기들을 무장하고 용에게 덤벼들었다.
그런 조잡한 무기 따위로는 용의 비늘에 흠집 하나 내지도 못했지만.
용에게는 충격이었다.
자신을 이렇게나 두려워한다니.
그래서 용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의 마을을 떠났다.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용은 다시금 어느 한 숲에 자리를 잡았다.
이 세계의 지분을 대부분 차지한 생명체들은, 용인 그녀를 두려움, 숭배, 신화 같은 존재만으로 바라왔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어디에나 있었고, 그만큼 용이 있어야 할 곳은 점차 줄어들었다.
용인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런 인간들 따위, 눈만 깜빡해도 전부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분명 초창기에는 그런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고 무턱대고 자신에게 공격을 쏟아붓는 존재들에게 분노를 느꼈다.
마른하늘에 검은 벼락이 내려치고,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집들은 화마에 삼켜지고, 사람들의 삶터가 망가졌다.
그런 것은 용이었던 그녀에게 잠시만의 화풀이는 될 수 있어도. 나중이 되면 그저 허무감 만이 그녀를 감쌌다.
상대가 되지를 않았다.
대화든, 싸움이든.
그래서 그녀는 그저,다시금 숲에 틀어박히는 것으로 정했다.
그렇게 한 숲의 중심지를 찾은 그녀는 보았다.
[뭐냐? 네놈은.]
그것이 처음으로 자신을 제외한 용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너는 누구지?]
[하하! 어린 새끼룡 치고는 당돌한 녀석이구나.]
그녀의 몸은 숲에서 가장 높다던 나무는 가뿐하게 넘기는. 거대한 모습이었지만.
그 용이 보기에는, 막 알에서 나온 새끼였을 뿐이었다.
그 용은 새하얀 비늘을 가진, 자신과는 생김새가 조금 다르기는 하였지만. 확실히 자신과 같은 종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대화를 하며, 자신과 같은 종족을 보았던 그녀는.
[누가 당돌한지는 보면 알겠지.]
그 흰 용에게 바로 싸움을 걸었다.
처음으로 만난 동족이라 그런 걸까?
심장이 뛰고, 감정이 요동쳤다.
아직 용의 나이로는 어린 그녀였기때문일까?
그녀는 온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객기 넘치게 덤벼들었던 그녀는.
[어리구나, 어려.]
순식간에 바닥에 쓰러져, 굴러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자신을 백룡이라 칭하던 용은 그녀와 비교하자면, 상대조차도 되지를 않았다.
기의 흐름과 사용법, 근접전, 기술, 모든 것이 그녀를 웃돌았다.
[너는 이 숲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지?]
이미 한번 개박살이난 그녀는 백룡에게 물었다.
[인간 세계에 내려가기 전에, 잠시 쉬고 있었지.]
[인간 세계? 하지만 그 거대한 몸으로 내려가 봤자, 우매한 그놈들은 공포에 떨기만 할 뿐 일 텐데?]
[방법이 다 있지.]
그렇게 말하던 백룡이 재주를 부리자,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던 백룡은 어디 가고, 왠 인간이 갑자기 나타났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
흰 백발을 찰랑거리는 인간, 백룡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백룡은 그런 재주를 부러워하는 그녀에게도 가르쳐 주자, 곧잘 배운 용이 따라 인간이 되었다.
칠흑 같은 머리가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자신의 인간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 그녀에게 백룡은, 그녀에게 [흑룡]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렇게 인간의 모습을 한 두 용은, 숲에서 나와 인간의 세계를 돌아다녔다.
처음으로 인간의 도시에 들어온 흑룡은 모든 것이 신기했다.
인간들은 인간들의 방식대로 지식을 쌓고, 서로 뭉쳐서 살아남았다.
그것 중에서도 흑룡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인간들이 만든 요리였다.
굳이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되는 용은 그닥 식사를 즐기지 않는 용이 많았다.
그런 용은 백룡도 마찬가지였지만, 흑룡은 인간들의 요리에 큰 관심을 두었다.
그렇게 용들은 자연스레 인간들의 세계에 포함되어갔다.
어떨 때는 모험가가, 어떨 때는 대 마법사가, 어떨 때는 작은 마을의 꽃가게 주인이, 어떨 때는 한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대부호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백룡과 흑룡, 두 용에게는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런 인간들의 삶에 녹아들어, 그들과 공감하며 그들을 더 이해하고자 한 흑룡과,
인간들과 함께 살기는 하지만, 항상 한 발을 빼고, 깊게공감하지않는 백용이 그 차이점이었다.
“인간들은 무서운 존재란다.”
이번에는 인간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 백룡이, 어느 날 흑룡을 불러 말했다.
“흠...우리가 인간들에게 무서운 존재가 될지는 몰라도, 인간들이 무섭다니? 나이를 많이 먹어 노망이라도 난 모양이군.”
“인간들은 어디서든 살고, 무엇이든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 탐욕적인 존재란다.
그들이 숲을 지나가면 길이 생기고, 땅이 있다면 마을이 생기지.“
“하나 다짐하도록 하여라. 인간들의 세계에 머무는 것은 좋지만, 절대로 그들을 사랑하지 말거라.”
“사랑? 책에서는 본 감정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나는 잘 모르겠군.”
“그래......그거면 됬다.”
백룡은 그렇게 말하며, 흑룡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흑룡과 백룡은 인간세계를 끝없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인간들이란 백룡의 말대로 탐욕스러운 존재들이었다.
세상에 큰불이 난 것처럼, 커다란 불길에 휩싸였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더욱 더 부를, 명예를, 모든 것을 더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죽고 죽였다.
가는 곳마다 피와 살육이 난무했으며, 인간들은 자신들의 생김새와 다른 존재들을 모조리 죽이거나,노예로 부렸다.
인간들의 욕심은 그곳에서 멈추지 않았다.
우연찮게 흑룡의 정체를 파악한 인간들이, 그녀를 마음대로 다루기 위해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인간들이란, 여전하구나...]
흑룡은 보았다.
백룡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좌절감과.
그것을 모두 압도하는 슬픔을.
백룡은 그렇게 덤벼든 인간들을 모조리 쓸어버린 것만이 아닌, 곧바로 인간들의왕을 두 손으로 끝장내었다.
그렇게 전쟁은 끝이 나고, 세상은 다시금 조용해졌지만.
[나는 이제 지쳤구나. 조금 잠들고 싶은 기분이야.]
[흑룡, 부탁하마. 너는 인간을 사랑하지 말거라.]
백룡은 그렇게 흑룡을 처음 보았던 숲으로 돌아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흑룡은 그렇게 백룡 없이, 혼자서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백룡이 하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거나, 그저 평범한 여자이이로 위장해 살고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만약 실수로든 고의로든,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자, 인간들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금 정체가 들켜, 잠시 인간세계로 돌아가기 전, 어느 한 숲에서 쉬고 있었을 때였다.
“요...요요...용이다!”
푸른 머리칼을 지닌 한 사내아이.
그것이 바로 류월과 청란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