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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화 〉청란-3 (43/289)



〈 43화 〉청란-3

 뒤로도, 흑룡은 청란을 따라 마을에 자주 내려오게 되었다.

다행히도 아랫마을 사람들은 정체불명의 소녀에 대한 정체를 파헤치는 것보단.

귀여운 여자아이가 새로운 마을에 정착한다는 사실에만 기뻐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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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월.”

“음? 그게 무엇이지? 혹여 나를 지칭하는 호칭인가?”


어느새. 정이 들어버릴 것만 같은 숲속의 돌에 걸터앉아있는흑룡이 청란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분명 흑룡의 인간형처럼 조그만 하던 키가, 어느새 훌쩍 자라 흑룡의 머리가 허리에 닿을 만큼, 자란 청란이 느지막이 누군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래!  이름이 없다며? 그러니까 내가 지었어.”


청란은 바다처럼 푸른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언제나 짓는 환한 미소를 흑룡에게 지어 보였다.


“흠. 그 이름의 뜻은 뭐지?”

그런 흑룡은 반농담식으로 자신에게 붙이려는 이름의 유래를 물었다.

청란은 공부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것을 즐거워하는 성격이었다.

그렇기에  이름에  뜻은 없거니 싶어, 한번 골려줄 생각으로 말한 흑룡이었다.

“멀리 방랑하다. 라는 뜻이야. 너희 용들에게는   어울리는 이름이지?”

“흐음....”


그러나 뜻밖에도 류월 이라는 이름의 뜻을 풀어주는 청란.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마을의 책방을 자주 찾아가고는 했지.


그건  이름을 짓기 위해서였나?

나를 위해서.

오직 나를 위한 이름을.

“왜 그래...? 혹시 마음에  들어?”

“후후...아니야. 마음에 드는군. 류월. 오늘부터 나는 류월 이다.”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던 흑룡이 자신이 지은 이름이 혹여나 마음에 안 들까 싶어 전진긍긍하는 청란의 얼굴을 조금 더 보고 싶은 마음인 흑룡이었지만.

어느새 눈에 망울이 질 것 같은 얼굴이 되었기에 그만두기로 했다.

이름이라.

이때까지 태어나서 여행을 다니며 거짓 이름을 짓고는 했지만.

순수한 자신의 이름을 얻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하! 다행이네. 좋아! 앞으로도   부탁해. 류월.”

류월 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인 흑룡을 보며, 안도감과기쁨이 뒤섞인 표정을 짓는 청란.

“그래. 청란.”

너는 어째서 나에게 이런 미소를 지어주는 걸까?

흑룡. 아니 류월은 그런 청란을 보며 생각했다.

그 미소를 보면, 이때까지 살아왔던 일들이 마치 꿈처럼.

그래. 마치 자신이 청란과 같은 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약.

정말 만약에 내가 인간이라면, 너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까?

류월은 문득 그런 생각이들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랄 뿐.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미지투성이였다.

돌이켜보면 류월의 인생  가장 행복한 시간이 점차 모래시계처럼 줄어들고 있었지만.

류월도, 청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지금만을 충실하게, 서로의 미소를 보는 것만이 좋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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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그저 딱 사흘이었다.

아랫마을 근처의 산에 꽤나 비싼 약초가 자란다는 이야기를 들은 청란이 최근 몸이 피로해지신 어머니를 위해 류월과 함께 그 산으로 향했던 것이 사흘 전이었다.

류월의 힘이 있다면 약초도 쉽게 찾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둘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언제나 좋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떠난 후. 아랫마을에 시낭의 병사들이 몰려왔다.

 땅에는 각 가후, 요론, 시낭이라는 세 나라가 서로 피 튀기는 견제를 일삼으며 지내왔다.

그동안에는 서로 간의 무역이라던지, 왕래가 끊기지는 않았지만, 서로 간의 경쟁은 확실히 내보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시낭이  나라에게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그렇게 시작된 침략은, 마침 시낭의 국경과 가까운 아랫마을로 향했고.

그 침략은 전혀 평화롭지 못했다.

그렇게 한 바구니에 약초를 가득 담아온 청란의 기대 넘치는 얼굴이 아랫마을의 입구에 도착하자 일그러지는 것은 당연했다.

청란은그토록 애지중지하며 품에 품어오던 바구니를일체의 고민 없이 집어던진 후, 자신의 집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 청란을 쫓아간 류월은, 보았다.

“아...아아..!!!....아아아!!!!...”


청란이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는 가족들의 핏덩이를 미친 듯이손가락으로 긁어모으는 장면을.


“청..청란! 그만두거라! 네 손이 망가지지 않느냐!!!”

“아흐...흐하....으허.....”

그런 청란의 손톱이 깨어지고, 살갗이 찢어지자, 보다 못한 류월이 청란을 말렸으나, 청란은 말 한마디 못한 채, 그저 짐승과도 가까운 괴음만을 쥐어짜고 있었다.


그렇게 울부짖는 청란의 인기척을 알아챘는지, 이미 폐허가 된 집의 기둥 아래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한 노인이 다가와,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주었다.

마을 사람들은대부분 몰살. 젊은 남자들이 저항하자 그대로 찔러 죽였으며, 찾아볼 수도 없었고, 젊은 여자들은 포박당해 끌려갔다고 한다.

그렇게 남은 아이들과 노인들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조리 목을 쳐, 죽여 버린 상태였다.

그 노인은 운 좋게 숨을 곳을 발견해,들키지 않고 사흘 동안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 말았는지, 청란은 제 어미의 몸에 얼굴을 박고 절규를 내질렀다.

청란의 엄마는 그런 병사들에게 끝까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는지, 온몸에 피멍이 가득했고, 그 시체는 이미 추잡하고 끔찍한 욕망에 더럽혀져 있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청란의 동생들은, 목과 사지가 분리된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류월은 기억한다.

청란이 처음으로 류월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을 때. 어디서 그런 참한 색시를 구해왔냐며 방긋 웃어주는 미소.

우리가 마을을 떠날 때도, 침구에 누워, 인사한다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던, 마음씨 착한 여성이었다.

 데굴데굴 굴러다니던 목도, 처음에는 자신을 낯설어하던 아이들이었지만, 어느새 친해져 즐겁게 제기차기를 하던 청란의 동생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배가 갈려 내장이 튀어나온  죽어있는 목수도, 날카로운 비녀가 수십 개씩 박혀 죽은 비녀를 팔던 아가씨도, 혀와 눈이 뽑혀,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며 죽은 책방 아저씨도.

모두 류월을 아껴주고, 미소를 지어주던 사람들이었다.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한 사람들이 고깃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낭자한 모습은,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아온 류월이라고 한들, 분노가 끓어오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류월의마음을 비트는 것은.

  번도 본 적없는 청란의 괴로운 표정이었다.

그것이 류월의 마음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강력한 내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내가 방심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그렇게끝없는 자기혐오에 빠지려는 류월을 다시금 현실로 되돌려 놓은 것은 바로.

“.....류,,,월...”

이미 목이 갈라질 대로 갈라져, 쉰 목소리로 겨우 류월을 부르는 청란이 바닥을기며, 류월의 치마폭을 잡았다.


“...도...와줘....제발...나를 도와줘...! 그....새끼들...을...전부....죽여...줘....!!!”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듯한 청란의 목소리에, 류월은 청란을 감싸안았다.

“제발....그새끼...들이....내...엄...마...하고 동...생들을....죽였어.....책방 아저...씨도.....비..녀집 누나도....전부 죽어버렸어....”

“이런...부..탁을 하는 것이 너무 미안해.....그런데...한 번만 도와줘.....안 그러면...이....이..마음...속 에있는...불길이.....나를 태워버릴 것만 같아.....아아...”

쉴새 없이 꾸역꾸역 흐르는 눈물을 흘리며, 청란은 류월의 작은 품 안에 안겨 처절하게 외쳤다.


“.......청란....걱정하지 말거라...”

류월의 몸이 안개에 휩싸였다.

하늘에서는검은 벼락이 몰아치고,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 내가 그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테니.]

이제 이곳에는 항상 밝은 미소를 짓던 사내와 그런 사내를 따라다니던 아가씨는 없다.

그저 상처에 몸부림치는 남자와 분개하는 흑룡만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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