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청란-5
한의 군사들은 아주 효율적이고, 순조롭게 3국의 영토들을 하나씩 점령해 나가기 시작했다.
3국의 영토에 있던 마을과 도시들을 점령한다 하더라도, 일반 백성들에게는 불필요한 무력행위는 금지 시켰으며, 항복해오는 이들은 약간의 조사만 진행한 뒤, 한의 군대로 포함시켰다.
이미 흑룡이라는 존재를 느꼈던 사람들의 전투 의지는 매우 낮았으며, 급기야 저항 한번 안 하고, 한의 군인들을 환영하는 마을조차 있었다.
류월이 나서면 그 전장은 백전백승이었으며, 그만큼 한의 군인들의 사기는 끝없이 올라갔다.
그렇게 이미 한이 지배한 영토가 3국을 합쳐도 더 커졌을 무렵.
결국, 3국에서의 항복 서한이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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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종이꽃이 휘날리고, 온 마을 곳곳에서 풍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드디어 기나긴 전쟁이 끝나고. 한이 3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오늘은 그 한이 정식으로 나라가 되어, 왕제 취임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고생 많았구나.”
“그러게, 이런 옷을 입는 것에는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말이야...하하!”
“....이럴 때에도 농이나 치다니....”
류월은 값비싼 비단과 온갖 귀중한 보석들을 치렁치렁 매단 귀한 옷을 입은 청란에게 말해주었다.
6년.
자그마한 용병집단의 우두머리가 어느새 한 나라의 왕제가 된 기간이다.
길다면 참 길고, 짧다면 참 짧은 기간.
그리고 매우 긴 시간을 살아가는 류월에게는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6년의 기간 동안 류월은 청란의 곁에서 그의 행보를 바라보았다.
“왕제이시여, 이제 곧 나가셔야 할 듯합니다.”
“아! 벌써 그렇게 되었는가? 알았다. 내 지금 가지.”
“그럼 저는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취임식의 시간에 늦지 않도록 찾아온 하인에게 왕제의 말투를 하며 말하는 청란을 얼굴을 구기며 바라보는 류월이 있었다.
“.......들어도, 들어도 참 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구나.”
“...뭐, 지금은 한 나라의 왕제 아니겠어? 익숙해져야지 뭐.”
“하여튼, 너는 항상 그런 점이 문제인 것이니라.”
“하하! 뭐 어때! 나 다녀올게!”
그렇게 류월의 머리를 가볍게 쓸던 청란은, 다시금 자신의 가면을 씌우고, 방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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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59력, 해한달.-
-가후, 요론, 시낭을 통일 시키고, 막강한 힘을 보인 나라, [한]이 세워졌다.-
-막강한 흑룡을 마음대로 부리며, 어떠한 문제가 있어도 척척 전략을 짜내가는 전략가.-
-그가 바로 한의 1대 왕제, 충하가 되었다.-
-충하가 왕제 명을 받아들여, 한의 왕제가 되자, 온 백성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한의 시초와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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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란이 왕제가 되고, 한이 세워지자, 그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매우 바빠졌다.
신생왕국에다가, 3국을 통일한 통일국가였기 때문에, 백성들의 문화도, 언어도, 이곳저곳에서의 차이점이 있기도 하고, 관료들도 저마다의 생각의 차이가 달라, 그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그런 와중의 청란은 평민에서부터 시작된 핏줄이 천한 왕제였기 때문에, 아직 고지식한 관료들과의 기 싸움에도 능숙하게 해내야 했다.
“흠....심심하구나.”
류월은 자신이 누워있던 침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이 한의 개국의 큰 공을 세운 덕에, 그녀는 한의 수호신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어떤 전장이든 이겨내는 위대한 흑룡.
그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시...실례하겠습니다....류월님...”
“음? 그래. 무슨 일인고?”
그렇게 따분하던 찰나, 한 하인이 먹음직스러운 과일이 담긴 접시를 류월의 방으로 들고 왔다.
“호오...이것 참 맛있어 보이는구나.”
“그...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과일이 담긴 접시를 탁자에 둔 하인은, 쏜살같이 류월의 방에서 빠져나왔다.
“......에휴.”
전쟁영웅.
다른 말로 하자면 대량학살마 였다.
류월은 보통 사람이 그런 것도 아닌, 손 한번 까딱하면 순식간에 자신이 죽어버릴 수도 있는 존재.
그렇기에 백성들은 자신을 우러러 바라보지만, 궁의 사람들은 자신을 무서워하고, 견제하기 바빴다.
자신의 심기가 조금이라도 뒤틀리면, 순식간에 누구든 죽여버릴 수 있는 생물.
그것이 류월 이었다.
“흐흠. 심기가 좀 불편한가 보네?”
“....네년은 여기 무슨 일이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약간 상기된 목소리.
“뭐 어때? 같은 동족이 얼마 있지도 않은데....구경오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아?”
새파란 머리칼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 류월과 비슷한 세로로 째진 동공,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압감.
그녀는 바로 청룡이었다.
한이 아직 나라가 아닌, 전쟁 중이었을 때, 청룡은 누구도 모르게 한의 중심부에 침입하였다.
“인간을 도와 사람들을 쓸어버리는 동족과 그런 동족을 마음대로 부리는 띨빵한 인간이 누군지 궁금했거든.~”
류월이 검은 번개를 일으키며 위협함에도, 청룡은 그저 좋은 구경을 했다며,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뒤로도 청룡은 종종 한을 찾아와 류월과 청란을 만나고 돌아갔다.
청룡은 마치 백룡과도 비슷하면서, 달랐다.
백룡과 마찬가지로 정체를 숨기고, 인간세계에 섞여들어 가는 것과는 비슷하지만, 그녀는 인간을 아낄 줄 아는 용이었다.
하지만 청룡은, 인간을 마치 소모품처럼 바라보는 눈빛을 종종 보이곤 했다.
인간을 애정도, 증오도 없는, 그저 인형으로만 보는 그런 청룡을 류월은 좋아하지 않았다.
“네년이 그런 말을 하는 날도 있다니, 하! 하늘이 두 쪽이 날 것 같군.”
“어머~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상처 받는다구~”
“....볼일 다 봤으면 꺼져라.”
“....그렇게 그 인간이 소중해?”
“뭐?”
“아니~ 그냥 그렇게까지 그 인간을 위해 사람들을 죽여 왔는데, 너에게 돌아온 게 뭐야?
이런 방구석에서 매일매일, 그저 숨죽이며 살고 있을 뿐이잖아?“
“건방지지 않아? 화가 나지 않아? 네가 마음만 먹으면 전부 쓸어버릴 수 있을 텐데, 후훗.”
“꺼져.”
류월은 기를 뽑아내어 검은빛 전기를 내뿜는 구체를 소환해, 청룡에게 적대감을 내보였다.
“아이 무서워~ 알았어 알았어~이제 가 볼게~”
그런 청룡은 능청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창문으로 걸어갔다.
“뭐, 볼일은 이미 끝났고 말이지.”
“조심해, 그렇게 아끼는 인간에게 뒤통수나 맞지 말고~”
그렇게 중얼거리던 청룡은 창문을 박차고 류월의 방에서 사라졌다.
“.....기분 나쁜 녀석...”
여느 때와 같이 거슬리는 청룡의 말이었지만, 무엇이었을까?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한 감정이 용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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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란? 갑자기 무슨 일인가? 이런 시간에 나를 불러내다니?”
이미 달이 밝게 떠오르는 늦은 밤, 류월은 왕궁의 성곽에 있었다.
그 이유는 청란이 사람을 불러, 자신을 이곳에 불러내었기 때문이다.
그런 류월의 눈앞에 있는 청란.
뭐지?
그의 눈에서 무언가 엄습할 불안감이 보였다.
“처..청란? 오늘 왜 이러는....”
“포박.”
“으읏...!
그런 청란이 무어라 중얼거리자, 자신의 발밑에서 푸른 빛이 새어 나오더니, 이내 실체화가 되어서 그런 류월을 움직일 수 없게 묶어내었다.
“청란....도대체 이게 무슨....!”
류월은 당황스러웠다.
청란이 가끔 자신을 놀리기는 했지만, 이것은 정도가 지나친 정도였다.
“류월. 아니, 흑룡.”
허나, 청란은 그저 싸늘한 눈으로, 자신을 흑룡이라 불렀다.
“가..갑자기 왜 그러는 것인가..? 이..이 몸이지 않느냐...? 왜 그런 식으로 나를 부르는 건가..?”
류월은 갑자기 자신을 마치 생판 남으로 보는 청란의 말투에 옷깃이 빳빳이 설 만큼,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나라를 어지럽히고, 끝없는 파괴를 바라는 흑룡이여. 그 죄를 묻노니.”
청란은 그런 자신을 애달프게 바라보는 류월의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그 손끝에서는 쉬이 볼 수 없을 만큼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그건....추방역식? 청란! 정말로...정말로 이 몸을 버릴 생각이냐?!!”
저 식은 분명, 자신이 청란에게 알려주었던 도술.
“왕제이시어, 준비가 끝났사옵니다.”
“부디, 명령을.”
그러자 어느새 나타난 왕궁직속 도술사들이 청란의 곁에 모여들었다.
청란의 손 끝에서 터져 나온 빛이 어느새 류월의 몸을 휘감아, 꿈쩍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큭...이거 놔라! 감히...감히이!!!”
“소용없다. 이 도술식은 청룡의 여의주로 새긴 것, 흑룡인 너조차도 깰 수는 없다.”
청룡.
분명 오늘, 볼 일이 있다고 왕궁에 찾아왔을 터인....!
“청룡...! 하..하하! 그 빌어먹을 녀석에게 구걸하면서까지...도대체...왜...!”
류월이 실소를 내며 청란에게 이유를 물었다.
어째서, 자신에게 이러는지, 그 청룡의 힘을 받아서까지.
“술식....전개.“
허나, 청란은 그저 술식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러자 류월의 몸을 휘감던 빛들이, 점차 류월의 공간 통째로 반투명한 구로 덮어버렸다.
“청...란....”
“가라. 두 번 다시는 이 땅을 밟지 못할 것이다.”
류월을 감싼 구체는 점차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류월은 자신을 추방하려는 청란을 핏발이 선 두 눈으로 끝까지 보았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심장이 불타는 것만 같았다.
그러자.
“...!”
미안하다.
청란은 주위의 신하가 절대로 보지 못하게끔, 류월에게 입을 속삭였다.
류월은 분명히 보았다. 자신에게 속삭이는, 청란의 얼굴을.
그런 청란의 두 눈은 붉게 물들어, 눈물이 방울방울 매여 있었다.
어째서....어째서.....
“어째서...청란 네가 울고 있는 거냐.....청란...”
류월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왜 미안한 짓을 하느냐, 도대체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렇게 류월을 감싸, 떠오르던 구체는, 순식간에 공중으로 사라져, 청란에게 그런 말을 물을 시간도 없이, 이윽고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류월이 떠나간 곳에는.
검게 물든 몸 색에 새파란 꽃이 장식으로 달려있는, 조그마한 비녀만이.
덩그러니 바닥에 굴러다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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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월을 감싼 구체는 순식간에, 어느 한 숲의 구석으로 떨어졌다.
“....아아아!!!!!!!!!”
청란이, 자신을 배신했다.
그것이 류월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 했다.
어째서? 어째서?
내가 강력한 힘을 가져서? 그만큼 인간들을 죽여서?
내가...용이라서?
그렇게 사랑하던 그의 눈이, 그렇게 자신을 어루만지던 그의 손이.
자신을 저버렸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슬펐다.
하지만.
류월은 청란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저주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보인 눈물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가슴은 무너져 내려갔지만, 그 누구도 원망할 수가 없었다.
그를 원망하기에는, 이미 자신이 너무나 그를 사랑했기에.
그렇게 배신을 당했는데도, 류월은 청란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백룡....”
그제야 흑룡, 류월은. 백룡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절대로 그들을 사랑하지 말거라-
아마 백룡도, 자신과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류월은 배신을 당했음에도, 청란을 미워하지도 못한 체, 마음만이 부서져 내려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염없이 쌓여가는 감정을, 류월은 더 이상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있는 산속에 봉인막을 치고, 하염없는 잠에 빠져들었다.
이 마음이 언젠가는 나아지기를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