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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화 〉청란-7 (47/289)



〈 47화 〉청란-7

나는 그렇게 흑룡과의 시간을 함께즐겼다.

그 사이 흑룡은 자신이 있던 숲속을 자주 벗어나, 어느새 아랫마을의 인원이 되었다.

다들 흑룡을 아끼는 모습에 내 어깨가 으쓱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류월.”

며칠 전부터 계속 고민한 그 이름을, 흑룡에게 말했다.

“음? 그게 무엇이지? 혹여 나를 지칭하는 호칭인가?”

그러자 흑룡은, 나를 돌아보며 다가오더니, 물었다.

분명 흑룡의 인간형 키는 나와 비슷했는데, 어느새 내가 이렇게 훌쩍 자라버렸다.


“그래! 넌 이름이 없다며? 그러니까 내가 지었어.”

“흠. 그 이름의 뜻은 뭐지?”

“멀리 방랑하다. 라는 뜻이야. 너희 용 들에게는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며칠 동안 책방 아저씨한테 그동안 아끼고 아끼던 고급 곶감을 바치고 나서야, 좋은 이름을짓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책방 아저씨와 함께, 어떤 이름이 좋을까 하며 밤낮을 고민한 결과, 류월이라는 이름을 택했다.

“흐음....”

“왜 그래..? 혹시 마음에 안 들어?”

흑룡은  이름을 듣자, 팔을 괴며, 한참을 고민하는 듯 보였다.

혹시 마음에 안 드나? 다른 이름이 좋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안절부절못하자, 그런 나를 보던 흑룡은 씩 미소를지으며 말했다.

“후후...아니야. 마음에 드는군. 류월. 오늘부터 나는 류월이다.”


다행이다.

“하하! 다행이네. 좋아! 앞으로도 쭉 잘 부탁해. 류월”

“그래. 청란.”


그렇게 흑룡은 류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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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아아!!!!!”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않는다.

고작 사흘, 사흘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가.


나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엄마의 온기를 어떻게든 느끼기 위해 꽉 껴안았지만,

느껴지는 것은 공기마저 차게 식어버릴 듯한 엄마의 몸이었다.

동생들 또한 목이 잘려 바닥을 굴렀다.

항상 나와 류월을 보며 웃어주던 마을 사람들 또한 이미 끔찍한 사체가 되어있었다.

어째서, 조금만 일찍 오지 못했던 걸까.

마음속에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이, 어느새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몸이, 내 몸이 전부 불꽃에 타올라, 재가 되어버릴 것만 같다.


“.....류...월...”

나는 꺽꺽거리며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류월을 불렀다.


“...도...와줘....제발...나를 도와줘...! 그....새끼들...을...전부....죽여...줘....!!!”

엄마를, 동생을, 마을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이런...부..탁을 하는 것이 너무 미안해.....그런데...한 번만 도와줘.....안 그러면...이....이..마음...속 에있는...불길이.....나를 태워버릴 것만 같아.....아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죽인 인간들에겐, 나 따위도 그냥 손쉽게 죽여버릴  있는, 그런 존재.

“.......청란....걱정하지 말거라...”

류월의 몸이안개에휩싸였다.

하늘에서는 검은 벼락이 몰아치고,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 내가 그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테니.]


아.

나는 류월의 품에 고개를 박으며 그녀가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그대로 엎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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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3일이 지났다.

류월은 그대로 날아가, 우리 마을을 유린한 군사들을 모조기 도륙내어 버렸다.

그 뒤로 우리는 아랫마을에서 나와,  곳을 돌아다녔다.

류월이 마을을 유린한 군사들을 모두 죽여도, 가족들과 마을사람들의 무덤을 만들어도.

내 안의 불꽃은 멈추지 않았다.

세상은 지독하다.

사람들은 서로를 위하는 척하며, 서로를 탐내고, 죽이고, 유린한다.

그런 세상에서 일개 인간인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내 옆에는 류월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속이고, 사람들을 속이고, 모두를 속여서라도, 이 끔찍한 일들을 끝내버릴것이다.

나는 그렇게 가면을 만들었다.

 누구도 내 본얼굴을 알  없게, 지독하고 추악한 가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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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선동했다.

군대를 만들었다.

류월을 시켜 적 부대를몰살했다.

사람들은 나를 치켜세우고, 류월은 내 곁에 있다.

그렇게 나는 희대의 사기꾼이, 희대의 대량살인마가 되었다.

괜찮아.

매일 밤, 끔찍한 악몽에 휘둘려도, 사람들의 비난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피가 내 손에 흘러도.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류월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버틸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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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3국을 통일한 한의 왕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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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제이시어, 다시금 한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째서 경들은 그러는 것이요?”

형형색색의 고급비단으로 옷을 지은 관료들이, 나를 몰아세웠다.


“흑룡, 류월은 우리나라를 세우는 큰 공을 세운, 수호신과도같은데, 어째서 그런 흑룡을 배척하라니!”

“왕제이시어, 그 흑룡은 우리가 감당할 수가 없는 무력을 지녔사옵니다. 만약 딴마음을 품었다가는, 순식간에 우리 한은 지도상에서 사라질 수가 있습니다.”

“지금의 한은 3국이 어설프게 모여 있사옵니다. 그렇기에 흑룡을 좋게 보는 시선보다는, 두려움과 증오의 시선으로 보는 백성들이 훨씬 많사옵니다.”

또 사람들.

그렇게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끝내고, 겨우 평화가 왔거늘.

인간들은 또다시 다른 존재를 배척하고, 거부한다.


“닥쳐라. 나는 내 친우이자, 한의 개국공신인 류월을 배신할 수가 없느니라. 오늘 경합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왕제전하...!”

그렇게 나는 관료들이 있는이 방을 빠져나가,  방으로 돌아왔다.


“하....”

이제야, 평화로울 줄 만 알았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고민이 참 많으신가 봐?”

“....청룡, 여긴 어쩐 일이냐.”

그렇게 탁자에 앉아, 머리를 감싸고 있을 무렵,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반응했다.

나와 비슷한 파란 머리를 찰랑거리며, 청색의 옷을 입은, 류월의 동족.

청룡이었다.

류월과 함께,  곳을 돌아다니다 만난 존재이며, 가끔 이렇게 찾아오고는 했다.

“자신을 기꺼이 도와주던 흑룡을, 배신하려고?”

“.....닥쳐! 그게  소리야!”


청룡이 흑룡을 배신할 것이냐 묻자, 나는 발끈하여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나는 말이지, 딱히 너희 인간들이 지지고 볶고, 무엇을 하든 딱히 신경은 안 써.”

“뭐, 흑룡도 자기가 좋아서 너를 돕는 거니, 내가 끼어봤자, 딱히 좋을 일은 없겠지.”

“하지만, 같은 동족이 이런 곳에 박혀서, 사람들의 멸시와 공포,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즐겁지는 않아.”

“..........”

나는 생각했다.

내 욕심이 류월을 붙잡아 놓는 것이아닐까?

내가 죽고 나면?

류월은 혼자 이곳에?

나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리고.


“....청룡, 그렇다면, 나를 도와줄 수 있어?”

나는 손을 꽉 쥐며, 청룡에게 말했다.


난 류월을 위해, 다시금 두꺼운 가면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제, 류월을 배신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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