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8화 〉청란-끝 (48/289)



〈 48화 〉청란-끝

 달이 울면 다시 세상이 가라앉아 나는 사라진 별을 그리며 묻는다.

 하늘에 떠있는건 검게 물든 해인가


어느새 별이 보이기 시작하면


내 주위에는 다시 또 어둠이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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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이 떠오르는 밤.

나는 류월을 성의 외각으로 불러내었다.

“청란? 갑자기 무슨 일인가? 이런 시간에 나를 불러내다니?”

무슨 일인지 싶어 걱정이 가득한 얼굴.

자신이 아닌, 나를 걱정하는 그 얼굴에 가면의 금이 뻗어 나가는 듯했다.

“처...청란? 오늘 왜 이러는....”

그런 류월을 앞에두고, 아무 말 없이 응시하는 나를 보던 류월이 나에게 손을 뻗으며 다가왔다.


“포박.”

“으읏...!”

기를 흘려내어, 술식을 짜내었다.

그러자 내 기에 반응한 술식이 빛이 형상화된 사슬이 되어, 류월을 묶어내었다.

“청란....도대체 이게 무슨....!”

류월의 얼굴에서 퍼져나오는 당혹감.

“류월. 아니, 흑룡.”


나는 마음의 가면을 더욱 두껍게 썼다.


“가..갑자기 그러는 것인가..? 이..이 몸 이지 않느냐...? 왜 그런 식으로 나를 부르는 겐가..?”


“나라를 어지럽히고, 끝없는 파괴를 바라는 흑룡이여. 그 죄를 묻노니.”


나라를 바르게 세우고, 필요한 희생을 치루었던 류월이여.

류월은 그런 자신을 애달프게 바라보았다.

아아.

그러자, 내 손끝에서는 쉬이   없을 만큼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그건....추방역식? 청란! 정말로...정말로 이 몸을 버릴 생각이냐?!!”

“왕제이시어, 준비가 끝났사옵니다.”

“부디, 명령을.”

어느새 어둠 속에서 감춘 몸을 들어내며나오는 인간들.

나의 명령을 따르는 척,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안도감이 퍼져나갔다.

역겨워.

내 손끝에서 터져 나온 빛이 어느새 류월의 몸을 휘감아, 꿈쩍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큭...이거 놔라! 감히...감히이!!!”

“소용없다. 이 도술식은 청룡의 여의주로새긴 것, 흑룡인 너조차도 깰 수는 없다.”

청룡은 그런 내 계획을 듣자, 자그마한 여의주를 빌려주고는, 떠났다.

‘참....너 같은 인간이나 할 생각이네, 심성이 뒤틀린 녀석 말이야.’

“청룡...! 하..하하!  빌어먹을 녀석에게 구걸하면서까지...도대체...왜...!”

“술식....전개.”


그러자 류월의 몸을 휘감던 빛들이, 점차 류월의 공간 통째로 반투명한 구로 덮어버렸다.

“청...란....”

깨어진다.

“가라. 두  다시는  땅을밟지 못할 것이다.”

헤지고, 거미줄 같던 실금이 새겨지던 가면이. 깨어진다.


류월을 감싼 구체는 점차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류월은 자신을 추방하려는 나를 핏발이 선,  눈으로 끝까지 보았다.

그러자.

아.

“...!”

그러자, 류월의 눈이 크게 떠지더니, 이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재서야 산산조각이 되어 흔적도 남기지 않은 가면을 느꼈다.

미안하다.


나는 주위의 신하가 절대로 보지 못하게끔, 류월에게 입을 속삭였다.

시절, 너에게 이런 부탁을 하게 만들어서.


이렇게 너를 떠나보내게 만들어서.

이미 망가져 버린 나는, 이런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내 두 눈은 붉게 물들어, 눈물이 방울방울 매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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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항상 생각하고는 해.

만약.

그때 복수 같은 감정도, 타오르던 마음도 전부 너에게 맡기고 살았다면.

우리는그저 평범하게 살아갔을지도 몰라.

마음의 상처는 아직까지도 아물지 않았지만.

네가 있다면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저 평범하게.

다른 마을에 섞여 들어가서,평범하게 살아보는 거야.

마을의 한 곳에, 작은 집을 짓고.

나는 머리가 나빠서, 몸 쓰는 일밖에  줄 모르겠지.

아침에 눈을 뜨면,  옆에는 네가 있어.

너는 잠꾸러기니까, 햇빛이 방으로 새어 들어와도. 너는 칭얼거리며 잠꼬대를 할지도 몰라.

그러면 나는 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하루를 시작하겠지.

그렇게 집을 나와서, 땀 흘리며 움직이는 동안, 너를 생각할 거야.

어서 이 시간이 훌쩍 지나갔으면 좋을 텐데 하고 말이야.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집으로 돌아가면.

넌 마당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뛰어올 거야.

그렇게 서로 못 본 시간이 아쉬워, 서로를 마구 안다가, 어느새  가마솥에 올려놓은 밥을 태워 먹고는 울상을 지을 거야.

 먹는걸 제일 좋아하니까.

그렇게 다시금 같이 저녁을 준비하고,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어느새 어둑한 밤이 되면, 같은 침구에 누워,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가. 잠들 거야.

그렇게 서로 생각하겠지.

이 시간이 영원하기를.

서로의 손을 맞잡고, 그렇게 생각하며 말이야.

아아.

미안해.

이미 뒤틀려버린 나는, 너를 위해서 이런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아.

이곳은 너를 싫어하는 사람들로 가득해.

내가 죽고 나면, 너를 감싸줄 사람조차 없다는 현실이, 너무 무서워.

난 네게 류월이라는 이름을 지었지.

어디든지 자유롭게,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존재.

하지만.

너에게도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

나보다도 긴 인생을 살아가는 너는, 이 세상 전 곳을 돌아다니겠지.

그러다가 잠시 쉬고 싶을 때, 돌아올 수 있는 곳을.

난 그런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

미안해.

너에게는 항상 미안하구나.

그리고.

사랑해.

이 말은 꼭 전하고 싶었어.

그동안 겁쟁이같이 용기가 없어서, 이렇게라도 남기고 싶어.

사랑해.

사랑해.

정말....정말로 사랑해.

내 세상은 너로 인해 움직였어.

사랑해. 류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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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란의 무덤은 어디냐.”

류월은 편지지를 들던 손을 떨구고는, 향종에게 말했다.


“충하 선왕께서는, 성의 외각, 작은 평야에 계십니다. 그것이 충하 선왕의 뜻이었기에.”

“안내해라.”

그렇게 말하는 류월의 말에, 향종은 신하를 내세우지도 않은 체, 자신의 발로 직접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류월.....”

그런 류월의 모습은 강준이처음 보았기에, 걱정이 되면서도, 차마 말리거나,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강준과 향이, 혁수는 그저 류월의 등을 따라가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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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오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청란의 무덤은 소박하지만 관리가 되어있는, 그런 무덤이었다.


“충하 선왕께서는 자신들의 왕자에게 늘 말하고는 하셨습니다. 자신은 뒤틀리고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그런 무덤의 앞에 류월은 다가가 앞으로 섰다.

“....이 꼴이 뭐더냐.”

“이 나를 배신하고도, 이렇게 초라하게 있다니, 참으로 우습구나!”


그렇게 나를 배신하고, 내 마음을 뒤흔들었으면서, 고작 자신은 이런 무덤에 박혀 있다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사랑해.-

“....아아....”

그토록 미워하려고 했는데, 그토록 가슴이 아프게 사무쳤는데.

-사랑해.-

이런  따위 절대로 보여주기 싫었는데.

-정말....정말로 사랑해.-

-사랑해. 류월.-


“아아아아!!!!!!!!!!!”

류월은 그런 청란의 무덤 앞에서 결국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구나.

너도 나를 사랑했구나.

그렇게 미우려고 했는데.

그토록 가슴이 아팠는데.

너도.

나를사랑하는구나.

류월이라는 이름은. 나에게 어울리지가 않았다.

결국.

너에게 배신당했을 때도, 나는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니.

어찌 다른 곳으로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단 말인가.


류월은 청란이 자신에게 주었던, 각시붓꽃이 장식된 비녀를 꼭 끌어안고, 하염없이,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것은.

한 어리석은 소년과 사랑을 갈구하는 용의 이야기.

그  사람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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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월의 그림을 그려주신 에밀라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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