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일손이 모자라!
시간은 잠시 과거로 흘러가서.
강준은 왕제전하의 특례로 거대한 주막을 열 수 있는 집을 구했다.
인테리어도 꽤나 값비싸게 잔금을 치루어, 이쁘게 꾸몄고, 식기나 도구도 장만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가 있었으니....바로.
“일손이 모자라.”
강준은 찌푸린 이마에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렇다.
아무리 강준이 뛰어난 요리사라 한들, 막대한 주문량을 처리하기에는 혼자선 무리였다.
그리고 지금 멤버가 강준, 향이, 그리고 혁수, 단 3명으로는 당장 주막을 개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음....류월님은?”
그런 강준의 말에 의문심을 가지며 말하는 혁수,
“뭐? 걔를 일하게 시킨다고? 가게 날려 먹을 일 있나...”
그런 혁수의 질문에 강준은 기겁을 하며 반대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생물이 바로 류월인데,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며 일한다? 상상도 가질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
“히익! 깜짝이야! 언제부터 있었어?”
“아까부터 다 듣고 있었느니라.”
그러자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온 류월 덕분에 강준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그것보다도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일을 못 한다고?”
“.....어.”
“아니 그게 무슨 말인 게냐! 이 위대한 이 몸이 왜 일을 못 한다는 말인가?”
강준이 단번에 자신의 취업 의지를 꺾어버리자, 반발하는 류월.
“그 위대한 용님께서 미천한 인간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일할 수 있겠어?”
“응? 내가 왜 고개를 조아려야 하느냐? 이 위대한 몸이 직접 미천한 인간들을 위해 일해 주거늘, 그들이 나에게 고개를 조아려야지.”
“자 탈락.”
“어째서어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당연하다는 듯이 내뱉는 류월을 무시한 강준은 무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일할 사람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강준이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고 있을 때.
“게 아무도 없느냐?”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그 적막함을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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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까지 오시다니, 죄송하기 그지없군요.-
-아닐세. 자네가 음식점을 연다는데, 내가 찾아오지 않을 수가 없지.-
유창한 영어를 나누는 강준의 앞에서 차를 홀짝거리는 이 사람.
애슐란, 이라는 한 나라의 거대한 지분을 가진 엄청난 사업가이자, 상인.
로한 상단의 주인, 하인즈 로한 이었다.
-그나저나, 자네가 부탁한 물품은 마음에 들던가?-
-그걸 말이라고....정말 하나하나 놀랍습니다.-
본격적으로 장사를 하기 위해, 애슐란의 식품과 향신료를 팔아달라는 전서를 보낸 것이 고작 5일 전, 강준은 이렇게까지 빠르게 준비를 해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선하면서 다양한 식재료.
맡는 것으로만 해도 코를 행복하게 하는 향신료.
그리고 가장 대단한 것은 바로.
-내가 들고 온 그....무엇인가.....아! 레닌, 레닌이었지. 그것이 자네가 바라는 것이 맞던가?-
레닌.
소나 양의 위장에서 생기는 효소로, 어미의 젖을 소화하기 위해 위의 점막에서 뿜어내는효소이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
바로 치즈를 만들 때 사용하기 때문이다.
레닌의 주성분은 우유 속에 들어 있는 단백질 성분인 카제인을 응고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그렇게 우유가 굳어지면서 치즈가 만들어진다.
물론 식물성 성분이나, 식초 같은 산미가 있는 재료로 치즈를 만들 수있지만, 동물성 성분이 들어간 레닌에 비하면 탄력이나 식감 쪽이 부실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강준은 고민하고 있었다.
양식에서 치즈라는 존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그렇기에 치즈는 필수, 하지만 레닌이 어린 송아지의 위벽에서 나온다는 것만 알았기에, 채취법도 문제지만, 송아지를 마구 사들여서 제대로 추출을 할 수 있는 것도 문제였다.
그렇기에떠올렸다.
약사는 약사에게, 치즈는 치즈 장인에게.
서양에서의 치즈는 그 역사가 매우 깊었기에, 현대의 서양과 비슷한 존재인 애슐란에도 분명 그런 치즈를 만드는 장인들이 있을 터.
그래서 강준은 식재료를 부탁하는 서신에 여러 가지 치즈들과 레닌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하인즈는 멋지게도 강준이 부탁한 것을 훌륭하게 보존된 상태로 가져온 것이었다.
-자네가 좋아한다면 다행이군, 하지만 명심하게, 상인에게 빚을 진다는 것은 상당히 무거운 것임을.-
-하...하하... 기억해 놓겠습니다.-
과연 뼛속까지 상인인 하인즈.
그런 틈에도 단순한 부탁이 아닌,빚을 만들어뒀다는 말로 강준을 속박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별수 없지.
하인즈에게 빚을 만들 만큼, 치즈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으니.
-그럼 재료 확인도끝났으니, 이만 가보도록 하지.-
-어? 벌써 가십니까?-
-뭐, 나만큼 거대한 상단을 이끄는 자는 일거리가 항상 쌓여있지, 여기도 짬을 내서 온 걸세, 다음번엔 그 청라라는 그 상인이 담당할 걸세.-
-그럼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다음번엔 꼭 자네의 요리를 먹고 갈 터이니!!-
그렇게말한 하인즈는 어느새 마차를 타더니, 홀랑 가버렸다.
“참...얼마나 내 요리에 빠진 건지야 원....”
그렇게 중얼거리던 강준이 하인즈의 마차를 배웅하고, 다시금 주막의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 저 마차들은 분명....”
다시금 흙먼지를 일으키며 주막으로 달려오는 마차들이 있었으니.
바로청라의 마차와 하백의 마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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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야....이런 곳에서 하백 영감님을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는 자네도 한창 바쁠 시기 아닌가?”
“하하! 제가 이 아이와 인연이 조금 있기에.”
“하여 두 분은 무슨 일로 오셨는지....”
그렇게 찾아온 청라와 하백이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눌 때, 강준이 두 사람의 방문 목적을 물었다.
“흐흠...강하 네가 주막을 새로 개업했다는데, 후견자인 내가 오지 않으면 섭섭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나도 류월님께 실례를 범한 적이 있기에, 사죄를 드릴 겸, 자네의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네.”
“그건 그렇고, 이왕 온 김에 허기가 조금 지는구먼....”
“자네도 그런가? 나도 먼 길을달려온 참, 나도 마찬가지라네.”
“이럴 때 누가 맛있는 요리를 해주면 참 좋을 터인데..”
“흠흠...”
“.....당장 만들만한 것은 간단한 것밖에 없는데 괜찮으신지?”
“오오! 상관없네. 네 요리는 언제나 훌륭하니.”
“한 상 차려준다면, 감사히 먹도록 하지.”
이 두 놈들, 딱 봐도 그냥 밥 먹으러 온 거잖아!!!!
그렇게 헛기침을 하며 두 눈을 피하는 두 사람에게, 급한 대로 간단한 요리를 만들게 된 강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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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참으로 맛나구나.”
“이하동문이오.”
“...맛있게 드셨으면, 다행입니다.”
그렇게 한 상 든든하게 먹은 두 사람은 부른 배를 두들기며 천하 태평하게 말했다.
“그나저나 강하, 자네 일손이 모자라지는 않는가?”
“예..? 아 예. 마침 일손이 모자라기는 합니다만.”
““그것 마침 잘 됐군!””
갑자기 웬 일손?
마침 사실대로 모자르다고 하자, 두 사람은 동시에 말했다.
“실은...강하, 네 주막이 개업한다는 말을 듣고, 혹여 일손이 모자라지 않을까 하여, 마침 일 잘하는 아이를 한 명데려오기는 했다만...”
“자네도 그런가? 하하...우리 쪽 사람도 자네가 주막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그 주막으로 가고 싶다 한 인물이 있기에, 이렇게 찾아왔다네.”
“예? 그것이 참말이십니까?”
“그렇고 말고, 일단 그 아이를 부르도록 하지.”
일손이 모자라긴 하다만, 처음 보는 사람을 믿고 일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강준은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을 보고 생각을 바뀌었다.
“청라 어르신, 부르셨습니까?”
검은 양 갈래 머리, 높게 치솟은 눈매, 나와 조금 차이 나는 키.
바로 청라의 집에서 일하던 벼루였다.
“벼루? 네가 왜 여기에?”
“그게...청라 어르신께서, 네가 개업한 주막에서 일한 사람을 찾는다길래....나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싫어?”
“아..아니 아니! 잘 왔어!”
벼루는 주방에서도 일해 본 적이 있는지, 같이 샌드위치를 만들때도 버벅거리지 않았고, 천성이 착하고 성실해서 고용하기 참 좋은 아이였다.
그렇게 청라가 부른 벼루가 들어오고, 다시금 문이 열리더니, 그 곳에는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그리고, 강준의 옆에 있던 혁수의 낯빛이 순식간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대...대장님?!?!?!”
“오! 혁ㅅ....아니 도령! 잘 지냈나? 훈련은 매일 열심히 하고 있지?”
“예...옛! 매일 빼먹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슴다!!!”
“그으래? 그럼 나중에 대련이라도 한번 하며 오랜만의 재회를 만끽해볼까?”
“히...히익....!”
그자는, 하백의 댁에 있을때, 한창혁수를 굴려대던 엘프 자매 중 한 명. 힐라였다.
“분명...힐라....씨? 힐라씨가 어째서?”
“아! 그건 제가설명하겠습니다.”
강준은 너무뜻밖의 인물이라 어벙한 표정으로 하백에게 무슨 일인지 물으려 했으나, 그 말을 가로막은 힐라가 자신이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 고향의 애플파이를 재현해주신 강하 아씨에게 저희 자매는 엄청난 고마움을 느끼고, 보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있었는데요, 마침 아씨께서 주막을 연다고 하시어, 일손의 도움을 위해 이 힐라! 은혜를 갚기 위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아, 제가 오게 된 이유는, 일단 엘드라 언니는 하백 도령님의 호위를 맡으셔서 힘들고, 나머지자매들 중 제가 요리를 가장 잘하기 때문이랍니다! 리리아가 자신이 가겠다고 떼를 쓰기는 했는데....나머지 자매들이 말리느라 혼이 났죠....리리아는 요리를 진짜 못해서...”
하백의집에 있었을 때처럼 힐라는 입을 쉬지 않고 말하는 것 같다.
뭐...밝으니까 좋지 뭐.
그렇게 강준은 순식간에 일손을 손에 넣었다.
그나저나혁수는 힐라의 대련이라는 소리에 거의 눈깔을 뒤집고 있는데....
뭐. 알아서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