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6화 〉두 여자의 접시. (56/289)



〈 56화 〉두 여자의 접시.

“나 이 비녀 싫어!!”

누가 봐도 거대한 기와집의 한 양반집에서 누군가가 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금 실을 꿰놓은 고급 옷감으로 만든 옷과, 반짝거리는 보석으로 잔뜩 치장한 전신.

마치 바다처럼 찰랑거리는 머릿결과 치켜 올라간 눈빛.

정 2품, 이조판서의 손녀딸, 채현은 볼을 부풀리며 투정을 부렸다.

“아씨, 그러시면 이 비녀는 어떠하신지...?”

비녀가 마음에안 든다 하자, 하인이 다른 귀한 보석들이 박혀있는 비녀를 꺼내 들었다

“......그것도 별로야! 마음에 안 들어!”


하지만, 채현은 그것마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채현의 투정에 하인들만 죽어 나가는 꼴이었다.

요즘 들어 채현은 무엇이든 까탈스럽게 불평하기에, 어찌 이 아이를 돌봐야할지 고민이었다.

심지어 주인어른께서도 채현의 투정을 모두 받아주어라. 명했기에, 하인들은 이를 어찌할지 머리만 싸맬 뿐이었다.

“어머, 아씨. 오늘은  무엇이 싫으신지요?”

그렇게 하인들이 발만 동동거리고 있을 때, 그런 그녀의 방에 찾아온 사람이 있었으니.

인자한 미소와 연륜이 느껴지는 한 여자.

고순. 이었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렇게 짜증을 내면,  이쁜 얼굴이 다 망가져 버린답니다.”

“고순...그래도....”

고순은 채현이 갓난아기 때부터 그런 채현을 돌봐온 유모 같은 존재였다.

그런 고순이 채현에게 찾아왔으니, 이제 채현은 고순에게 맡기자 싶은 하인들은 눈치 빠르게 둘만을 남겨놓고 방을 빠져나갔다.

“오늘은 무슨 일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신 것인지요?”

“....몰라! 그냥 기분 나빠!”


언제나처럼 인자한 미소를 지은 고순이 채현에게 묻자, 채현은 그저 볼을 부풀리고 고개를저었다.


“어머....그렇게까지 기분이 나쁘시다면, 오늘 그 주막에 아씨를 데리고 가려 했지만...취소해야겠네요.”

“무...뭐? 아...아냐!  기분 안 나빠! 완전 신나!”


고순이 이를 어쩌나, 싶은 표정으로 얼굴에 손을 올리면서 말하자, 채현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채현이 젖먹이였을 때부터 봐온 사람이 바로 고순 이었다.

그런 채현의 기분 정도는 어떻게 해야 풀리는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최근, 채현이  빠져있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스타 주막이었다.

“자! 나는 괜찮으니까! 어서 가자! 빨리~!”

“후훗. 아씨, 일단 그 흐트러진 머리부터 정리하고 가실게요.”

그렇게 고순은 고단수처럼 채현의 머리를 정리하며 비녀를 꽂아주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리 언제 먹어?”

“사람들이 많아서, 조금 기다려야 할  같네요.”


그렇게 도착한 스타 주막이었지만, 길게 늘어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줄을 보며 채현의 볼이 다시금 크게 부풀어 올랐다.

“아 싫어! 싫어! 서서 기다리니까 다리아파! 그냥 돈 더 준다고 하고 먼저 지나가면 안 돼?”

“으음~ 저번에 어떤 양반님께서, 그렇게 말하며 돈다발을 던지고, 들어가려다가 된통 혼이 나서 쫓겨난 적이 있었지요.”

“저...정말? 거짓말이지?”

“정말이랍니다.”


스타 주막은 양반이든 천민이든 모두 같은 손님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같은 손님인데 누구는 줄도 서지 않고 먼저 먹거나 하는 그런 행위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돈 많은 상인이든, 나라의 높은 나리든, 모두가 공평하게 줄을 서서 입장해야 했다.


“그렇게 힘이 드시면 그냥 돌아갈까요?”

“아...아냐...그냥 서 있을게...”

서글서글하게 말하는 고순의 말에, 채현은그냥 서서 기다리는 것을 택했다.

그만큼 스타 주막의 음식은 맛이 있었으니까.
_________________
“어서 오세....어! 아씨! 오랜만이에요!”

“안녕.”

그렇게 긴 시간을 기다린 채현이 주막으로 들어서자, 그곳에서 일하는 여자아이가 채현을 반겼다.

긴 갈래 머리를 하고, 치켜세워진 눈을 가진 아이는 채현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런 채현을 반겼다.

자신보다 약간 작은 키를 가진 벼루라는 아이였다.

“자리로 안내해 드릴게요. 이쪽으로 오세요!”

그렇게 싱긋 웃으며 자리를 안내하는 벼루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스타 주막은 언제나 봐도 이국적인 분위기가감돌았다.

처음 보는 장식품들과, 천장에는 반짝거리는 불빛들이 수없이 놓아져, 마치 밤하늘의 별빛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도 그거면 되겠나요? 아씨?”

“그럼! 난 그것을 먹으러 이 주막에 왔는걸?”

“네! 그럼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벼루가 오늘도 그거냐고 묻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는 채현은 주문을 받아들고 총총거리며 뛰어가는 벼루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도...저 애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면....’


그러나 자신은 달랐다.

이조판서의 손녀딸, 이라는 자리가 자신을 옭아매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잘나신 양반집 손녀딸이라 좋겠다고.

나도 되고 싶어서 이조판서의 손녀딸이 된 것이 아니거든?

“....있지, 고순.”

“네, 아씨.”

“내가 정말 안주인이 될  있을까?”


채현은 식탁에 머리를 박은 채 중얼거렸다.


계약혼.

양반의 여자아이로 태어난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일.

채현은 곧, 어떤 양반집의 아들과 결혼하게 되는 신세였다.

남편의 생김새도, 성격도 아무것도 모른 채, 식을 올리게 되는 결혼식.

채현은 그런 자신의 운명에 낙담했다.

무릇 소녀란 사랑에 꿈을 꾸며, 자신만의 왕자님을 꿈꾼다고 하지 않던가.

자신도 우연히 어떤 남자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로망을 꿈꾸고 있었다.

“오? 아씨! 오랜만입니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주문한 음식을 들고 오는 엘프, 힐라가 아씨를 보며 인사했다.

“반가워요. 언제나 그렇지만 엘프라는 존재는 신비하네요.”

“하하! 요즘 그런 소리는 맨날 듣고는 하네요.”

고운 흰 피부와 쫑긋거리는 긴 귀.

힐라는 머쓱해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자! 아무튼 주문하신 수플레 팬케이크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말한 힐라가 주문한 음식을 탁자에내려놓았다.

채현이 주문한 음식은 마치 튀어 오를 것만 같이 부풀어 오른 빵 반죽,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버터가 인상적인 수플레 팬케이크였다.


“그럼, 좋은 식사 시간이 되시기를.”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을게요.”

그렇게 힐라는 요리를 놔두고 떠나갔다.


“......정마알! 엄청 기다렸어! 어서 먹어야지!”

요즘에는 양반집의 손녀처럼 보이기 위해 내숭을 익힌 채현이, 힐라가 떠나자마자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바로 이 팬케이크를 건드려서는 안 됐다.


“이거먼저 뿌리고 먹어야지!”

작은 자기에 딸려나오는 양념, 메이플 시럽이라고 하는 이것이 팬케이크의 핵심 이었다.

채현이 자기를 들어 올려, 팬케이크에 기울이자, 점성이 있는 갈색의 메이플 시럽이 주르륵 흘러, 팬케이크 위를장식했다.

윤기 나는 메이플 시럽이 팬케이크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먼저 주어진 포크와 나이프로 팬케이크를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잘랐다.

처음에는 쓰는 방법이 자신이 쓰던 수저와 많이 달라서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아주 손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메이플 소스가 잔뜩 스며든 팬케이크의 한 조각을 들어,한입 먹었다.

“...으음~ 역시 이 팬케이크가 정말 최고라니까?”


폭신폭신한 식감에 스며든 달콤하면서 약간 씁쓸한 시럽의 맛이 완전 환상의 궁합이었다.

빵 반죽은 고소하면서 은은한 달달함, 그리고 지금은 녹아버려서 형체를 찾기 힘든 버터의 살짝 짭조름한 맛, 그 맛이 달콤한 메이플 시럽과 찰떡궁합이었다.


“맛있어! 맛있어!”

“..에구...아씨도 참....이쁜 얼굴에 시럽이 묻었잖아요.”

“고순이 닦아줘!”

“이런....나이도 있으신데 아직까지 어릴 때처럼 응석이나 부리고는...”

“헤헤!”


정신없이 먹느라 뺨에 시럽이 묻은 지도 모르고 먹는 채현의 얼굴을, 고순이 뭐라 하면서도 닦아주자, 채현은 헤실헤실 웃었다.

그렇게 팬케이크를 담은 그릇이 비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______________________
“하...맛있었다....근데 정말 고순은 아무것도  먹어도 돼?”

“전 괜찮아요 아씨, 아씨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걸요...”

그렇게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보고 만족감을 얻던 채현이 고순에게 물었지만, 고순은 그저 싱긋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래도.....”

“아씨.”

“응?”

“잘 하실거에요. 아씨는 정말 아름답고 당찬 아가씨인걸요? 안주인 역할도 멋지게 해낼 거랍니다.”

“....정말?”

“그럼요~ 저도 옆에 있을 텐데요.”

“....정말로? 정말로 내 옆에 있어 줄 거야?”

“네. 어디서든 아씨의 옆에는, 제가 있어요.”

“.....그럼! 뭐 안주인 역할이 별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당찬아가씨는, 어느새 근심을 덜어내고 환하게 웃었다.

기분에 따라 자주 울고, 화내고 어린 아씨.

‘.....그렇기에떠날 수가 없구나.’


그런 채현의 미소를 바라보는 고순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그저, 천한 하인일 뿐이지만, 채현을 어릴 때부터 돌봐오던 고순은 채현이 자신이 낳지도 않은 딸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언제나, 채현의 곁에는 고순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