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소고기 요리. (63/289)



〈 63화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소고기 요리.

아델리아와 진혁, 그리고 애슐란의 외교관들이 자리에 앉자, 상은 빠르게 준비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드러우면서 달콤한 크림스프.

버터를 충분히 바른 폭신한 빵.

여러 가지 과일과 리코타 치즈를 곁들인 샐러드.

정말이지 간단한 요리들이었지만, 그 맛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애슐란 사람의 입맛에 맞게 애슐란 식으로 준비해 봤는데, 괜찮은가?”

-네! 무척이나 잘 맞아요!-

‘애슐란 식은 거의 구색만 비슷한 느낌이고, 완전히 차원이 다른 요리야....이런 맛은 어떻게 내는 거지...?'


그런 향종이 묻자, 아델리아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이런 음식, 왕궁에서도 먹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럴수록,  요리를 만든 사람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이 요리를 만든 자가 바로...?’

그리고 그 순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듯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제는 그 여자아이가 매우 유창하게 애슐란 어를 한다는 것이었다.

-메인 요리를 가져왔습니다.-

 여자아이, 강준은 손에 내용물이 가려진 그릇을 들고, 당당하게 연화판의 한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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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여기도 오랜만이구먼.”

강준은 다시금 찾아오게  궁궐의 소주방*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소주방*:시즌1 에피소드 49화 참조.)

“그래서, 왕제전하가 뭐라고?”

“아 예.... 애슐란에서 오시는 왕녀님과 그 사절단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만찬을 열려고 하니, 강하 님의 주도하에, 만찬을 준비하시라고 명하셨나이다.”


강준은 자신의 뒤에 서 있던 꽤 관직이 높아 보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반말을 하며 물었다.

그리고 그런 강준의 태도에도 연신 머리를 숙이며, 순순히 왕제의 명을 나열하는 그.

그의 정체는 바로 왕궁 직속 대령숙수. 갑진 이었다.

왕제의 식사를 준비하는 높은 관직인 그도, 강준의 앞에서는 그런 자신을 드러내기가 두려웠다.

처음에 강준이 소주방에서 요리를 할 때는 그의 자존심은 박살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자신이, 궁궐의 최고 요리인인 자신이 아닌,  처음 보는, 그리고 여자아이인 강준이 감히 왕제님이 드실 음식을 만든다니.

당장이라도 호통을 치며 쫓아내고 싶었지만, 왕제전하의 명이 있었기에, 그러지도 못하며 이만 빠득빠득 갈 뿐이었다.

허나, 강준이 요리를 끝내고, 남은 것을 맛볼 기회가 생겼는데.

 한 입은 갑진이 어떻게든 붙잡고 있던 자존심을 모조리 박살내어 가루로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 맛을 맛본 순간.

자신은 절대로 자신의 키의 절반도 되지 않은 그 여자아이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임을 깨달았다.


“흠...좋아, 준비해볼까?”


그런 갑진이 자신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든, 강준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체, 이번 만찬의 매인 메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소고기 요리.]

미국의 전설적인 요리 연구가 ‘줄리아 차일드가뵈프 부르기뇽을 보며 말한 말이었다.

그만큼 거창한 호칭이 붙은 만큼. 그 맛 또한 매우 훌륭했다.

먼저 소고기는 스튜에 사용하기 위해 두꺼운 지방층을 잘라내고, 큼지막하게 썰어낸다.

그 다음 스튜에 들어갈 야채들을 손질해 준 뒤, 고기와 야채들을  냄비에 넣어준다.

월계수 잎, 타임 같은 향신료도 넣어준다.

모든 재료들이 준비가 끝났으면 이제, 레드 와인을 부어줘야 하는데.

여기서도 그냥 레드와인을 넣어서는 안 된다.

뵈프 부르기뇽의 부르기뇽은, 프랑스의 남서부, 부르기뉴 지방에서 나온 말이다.

부르기뉴 지방에서는 피르 누아, 라는 특이한 품종의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데.

그 맛이 매우 뛰어나서, 여러 요리 전문가들도 뵈프 부르기뇽을 만들 때는 피르누아로 만든 와인을쓰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가 그런 와인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아는가?

그래서 강준은, 무식하게 나가기 시작했다.

한으로 들어오는 와인들을 모조리 맛을 보며, 최대한 비슷한 맛의 와인을 찾기 시작했다.


{이거다! 드디어 찾았다!}

술이 들어가서 얼굴이 붉게 물든 채로 와인이 담긴 병을 들며 신나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꽐라 그 자체였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그렇게 힘들게 찾은 와인을 냄비에 재료들이 잠기도록 부어준다.

그다음은 12시간에서 하루 정도를 냉장고에서 숙성을 시켜준다.

그렇게 숙성이 끝난 고기와 야채는 와인에서 건져내 준다.

이제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고기의 겉 부분을 시어링을 해, 마이야르를 내준 뒤, 야채도 색을 내준다.

 뒤에는 아까의 레드 와인을 부어주고 알코올 성분을 날리기 위해 강하게 끓여준다.

이때 감칠맛을 내기 위해 강준이 따로 준비한 치킨 스톡과 수제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어줘, 더욱 깊고 진한 맛을 내준다.

이제 약불로 푸욱 익혀주면, 끝!

그렇게 뵈프 부르기뇽이 완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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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프 부르기뇽입니다.-

-......-

-......-

그렇게 강준이 왕녀와 외교관들에게 직접 서빙을 하고, 자리를 나왔다.

그러나 누구도 한마디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은 그저, 접시 안의 요리에만 박혀 있었다.

큼지막한 고기와 먹음직스러운 야채들, 향기로운 와인의 향과 향신료들.


“흠..흠...그럼 이번 음식도 맛있게 맛 보아주었으면 좋겠군.”

-아..! 아...예..그럼 감사히..-

그렇게 왕녀들이 넋을 잃고 접시만을 바라보자, 향종이 식사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왕녀들은 저마다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무,,뭣? 칼을 살짝 갖다 대기만 했는데....그냥 갈라진다고? 이 얼마나 부드러운 고기...’-

그렇게  조각, 아델리아는 떨리는 손으로 한 조각 들어, 맛을 보았다.

-!?!!-

고기는 혀에 닿자마자 녹는 수준으로 매우 부드럽고, 그 안에서 터져 나오는 감칠맛과 깊은 맛이 그녀의 혀를 감쌌다.

와인의 풍부한 향과 미세하지만, 확실하게 자신의맛을 뽐내는 토마토.

그리고 스튜 그 자체의 깊은 풍미.

어느새 그녀는 왕녀의 품위로 감싼 자신이 아닌, 진정한 자신인 말괄량이 아가씨의 모습으로 돌아와 뵈프 부르기뇽을 먹고 말았다.

‘와 진짜 존나 맛있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옆에서 보통, 이런 공적인 공간에서 왕녀가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그런 그녀를 막고, 나무라는 존재인 진혁이 있었으나.

그런 그도 뵈프 부르기뇽의 맛에 포로가 되어, 계속 고기를 입에 넣을 뿐이었다.

보통, 이런 만찬에서는 서로 천천히 음식을 먹으며 맛의 칭찬이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지만.

애슐란의 사절단들은  한마디 전혀 없이,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향종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아이의 음식에 적응했다고 생각했건만.....항상 내 예상을 뛰어넘는구나...’

그래도 강준의 음식을 먹어보았던 향종도  지경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렇게 그들은 접시를 깔끔히 비울 때까지, 아무런 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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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단했어.-


이내 만찬이 끝나고, 향종이 준비해준 귀빈실에서 아델리아는 중얼거렸다.

그토록 맛있는 요리는 그녀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아직도 혀에 맴도는 그 진한 풍미는, 마치 신기루처럼 느껴지던 만찬의 시간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진혁.-

-예, 왕녀님.-

-그 음식을 들고 온 여자아이....아마 그 아이가 그 요리를 만들었을 거야.-

아델리아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요리를, 그리고 그런 만찬의 자리에서 전혀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들고 오는 모습.

엄청난 자신감에  있는 모습의 그 아이가,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고, 뵈프 부르기뇽을 만든 장본인이 틀림없었다.

-몰래 그녀에 대해 알아봐 줘.-

-.....알겠습니다.-

그런 아델리아가 진혁에게 명령하자, 진혁의 존재감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순식간에 모습을감추었다.


-반드시 알아내겠어....!그 아이의 정체를...!-

아델리아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되잡으며 중얼거렸다.

이제여기에는 고귀한 애슐란의애슐란 디 바이제르는 없다.

그저, 가진 호기심은 무조건 풀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말괄량이 여자애가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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