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너두? 나두? 야 나두!
“....래서 이 녀석이 주막을 아주 박살을...”
“...부터 미행을 하던 것인지...”
“....녀가 우리에게 왜 관심을...”
“으...으윽...”
진혁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먹먹한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음? 어이. 이 애송이 녀석, 일어난 모양인데?”
“그래? 어후...다행이다, 그래도 뭐 크게 다치지는 않았나 봐, 금세 정신을 차렸네.
아. 그렇다고 함부로 움직이지는 마. 뭐, 그렇다고 움직일 수는 있을까 모르겠네.”
“....속박인가..”
진혁은 감긴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몰꼴과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자신을 쓰러뜨린 소녀와 덩치가 큰 남성, 그리고 흑색의 이질적인동공을 가진 어린 소녀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흑색으로 빛나는 물체가 꽁꽁 묶어놓은 상황.
확실하게 당했다.
이거 아델리아를 볼 면목이 없네.
“일단 얌전히 있어, 그리고 정보만 잘 불어준다면 무사하게 보내주지, 잠시 이 검도 우리가 맡아 놓으마.”
그렇게 말하는 어마무시한 힘을가진 소녀가 드라고노바를 대충 들며 말했다.
(주인.....)
원래 에고 소드인 드라고노바는, 자신이 마음에 안 드는 사용자가 자신을 사용할 수 없게 거부하는 힘을 가졌지만, 드라고노바는 그런 힘을 쓸 생각도 못 한 체 벌벌 떨고 있었다.
“....젠장.”
진혁은 느지막이 욕설을 중얼거렸다.
이 자들의 정체는 무엇이지?
궁궐의 만찬을 만들 정도의 요리 실력을 갖췄고, 이 자신을 간단하게 압도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자들이, 어떤 꿍꿍이를 가졌는지 알 수 없었다.
“이거 볼 때마다 중2병 같은 녀석이네, 빨리 왜나를 몰래 따라왔는지 말해, 왕녀의 명령이냐?”
“어?”
그렇게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해야 할지 고민하던 진혁의 머릿속에, 불현듯 익숙한 단어가 들려왔다.
“중2병이라니....?”
그것은 이 세계가 아닌 자신이 살던 현대의 신조어.
이 세계 사람이 그런 단어를 알 방법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설마...
“혹시....너네 들도 한국 사람....?”
“뭐?! 설마 너도?”
이 세계에 떨어진 지 약 3년.
진혁은 처음으로 자신의 세계의 사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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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너도 현대에서 살다가, 갑자기 이 세계로 떨어졌다?”
“네, 누님.”
“콱 씨! 형이라고 부르라고!”
“예...형님....”
강준은 자신을 누님이라고 부르는 진혁에게 화를 내자, 진혁은 움찔거리며 호칭을 바꾸었다.
그렇게 동향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준혁은 어느새 속박이 풀린채, 그들에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너도 참 고생이 많았겠구먼, 말도 잘 안 통했을 텐데...”
“영어야 수능 친다고 빡세게 배우면 뭐 합니까...대화할 때는 전혀 쓸모가 없던데...”
진혁이 떨어진 애슐란은 영어를 사용하는 세계였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의 영어의 피해자였던 진혁은, 그들의 언어를 대충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소통의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아예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그러고 보니 너도 기, 아니 마력이란 게 있냐?”
“아뇨, 이 세계 사람이 아닌 저는 마력이 일체 없습니다. 다 이 친구 덕분이죠.”
(에헴! 그만큼 나는 대단한 검이라는 거지!)
그렇게 말하며 진혁은 자신의 애검, 드라고노바를 들어 올렸다.
사용자와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여 저장하는 힘을 가진 드라고노바는, 그 특성덕분에 사용하기도 힘든 계륵 같은 존재여서, 어느 산속의 동굴에 박힌 채로 긴 세월을 잊혀져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자신을 발견한 진혁은, 체내에 마력이란 마력은단 하나도 없었기에, 그런 자신을 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 자신과 드라고노바의 조합은 정말 잘 맞았기에, 그들을 서로를 필요로 하며, 같이 싸워나갔다.
“그나저나 형님은 어떻게 그리 강해지신 겁니까? 우리 애슐란의 탑 급 메지션도 강하...아니 강준 형님에겐 쨉도 안될 것 같은데...”
진혁은 자신의 나라의 마법사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쓸 때 사용하는 마법진도 없고,항상 중얼거리는 영창도 없이, 손 하나만 튕겼을 뿐인데, 그런 마력을 내뿜는 다는 것 자체가 규격 외의 힘이었다.
“아 뭐....그냥 어쩌다가...”
“모두 이 위대한 흑룡, 류월인 이 몸의 힘이지! 흐흥!”
그런 진혁이 강준의 놀라운 힘을지목하여 물어보자, 강준은 그저 얼버무리고 말려 했건만.
“진...진짜 드래곤...아니 용이십니까?”
“그렇다! 이 몸이 바로 그 대단한 흑룡이지!”
저 멍청한 도마뱀이 그냥 전부 불어버렸다.
아무리 동향 사람이라고 해도, 현재는 애슐란의 왕녀와 가까운 진혁.
진혁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결국, 애슐란의 왕가에 [한 에는 아주 강력한 흑룡이 있다!]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어휴....이놈의 도마뱀은...아무튼 배는 안 고파? 일단 대충 먹을 것 좀 만들어 봤는데....먹을래?”
“먹을 것이라면...무엇인지?”
“간단하게 된장찌개 끓였어, 한국 사람인데 오랜만에 된장 생각이 좀 날까 싶어...”
“와! 된장찌개!!!! 와 진짜....한국 음식이 너무 그리웠는데...와 저 현기증 올 것 같아요...”
그러자 아주 격한 반응을 보이는 진혁.
그 반응은 아주 당연했다.
김치의 민족인 한국 사람이 한 달 동안만 한식을 안 먹고 빵만먹어도 죽을 것 같은데, 진혁은 그것을 3년째, 그것도 현대의 양식보다 떨어지는 식사를 해왔다.
그런 진혁에게 감자, 양파, 두부가 숭덩숭덩 들어간 뜨끈한 된장찌개와 아삭아삭하고 매콤한 김치? 이건 못 참지!
“그 마음 이해한다......형님이 같이 가자고 해외에 따라가서 맛있는 것을 먹는 건 좋은데...진짜 김치랑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진단 말이지...음음..!”
혁수도 그런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진혁은 오랜만에 정말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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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진짜 꿈만 같네...”
진혁은 어두운 밤의 거리를 그림자처럼 내달리며 중얼거렸다.
거진 몇 년 만의 한식, 그것도 초일류의 실력으로 만든 된장찌개의 맛은 가히 최상의 맛이었다.
(주인, 그렇게 맛있었어?)
“....또 다시 돌아가서 먹고 싶을 정도.”
(대단하네! 주인, 전의 왕궁에서 먹었던 만찬보다 더 행복한 미소를 짓던데?)
진혁은 입안에 조금 남아있는 금방의 식사의 맛을 혀로 느끼며, 드라고노바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아델리아한테는 뭐라고 말하려고?)
“...그러게...일단 형님이 말하라고 한 대로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아델리아가 시킨 대로 미행을 하기는 했지만, 강준의 정체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웃돌았다.
요리를 잘 하는 것만이 아닌, 반룡의 신체와 진혁과 동향의 사람이었다니....
‘그나저나 어쩌다가 여자애로 변하게 된 걸까?’
이 세계에 오기 전까지는 32살 먹은 남자였다고 했지만, 지금의 모습은 영락없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나중에 한 번 더 들러야겠다...”
애슐란의 사절단은 공식적으로 약 2주간, 한에 머무를 계획이었다.
그전에는 몇 번 정도쯤은 그 주막에 들를 수 있겠지.
진혁은 금방 식사를 떠올리며 슬며시 미소를 짓고는, 궁궐로 가는 속도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