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실력 테스트.
* * *
늦은 밤.
한의 궁궐의 담장을 따라 검은 그림자 셋이 움직였다.
와....왕녀님...! 이 늦은 시간에 하인들에게도 말없이 어딜 가시는 겁니까...!
세 그림자 중 하나인 파렌이 기겁을 하며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이고는 아델리아에게 물었다.
응? 말했잖아, 그 요리를 만든 사람한테 간다고.
아니 아무리 그렇다 해도....진혁님! 진혁님도 말려야죠...!
그런 아델리아에게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무슨 소리냐는 대답을 들은 파렌이 이번엔 진혁에게 도와달라 요청했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있으니까. 안전은 확실하지.
그건 다행이....아니죠! 다른 나라에 초청받은 왕녀가 밤을 틈타 몰래 왕궁을 빠져나간다는 것이 들키면, 보통 소란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요!
허나 이미 오늘은 무엇을 먹을지 기대에 차 있는 진혁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이 참! 그래서, 너는 그 요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는 말이야?
아...아니...궁금하기는 하지만...
그런 파렌이 성가셨는지 정공법으로 물어보는 아델리아의 질문에, 파렌은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렇다.
파렌 그 역시, 너무나도 궁금한 것이다.
그 맛난 요리의 제조법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애달픈 사랑을 하듯이 설렜다.
그것 봐! 그러면 이제 그냥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
아니..그러니까....하....모르겠다. 이제.
그렇게 그림자 셋은 궁궐을 빠져나와 어둠에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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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은 조금씩 머리가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자신을 스토킹하던 진혁.
두 번째는 그런 진혁을 스토킹한 아델리아 왕녀.
그리고 이번에는 웬 청년 한 명을 또 데려온 것이다.
.....분명 만찬 때 봤었나?
아...네! 애슐란 왕가 직속 요리인, 파렌 헤르체 라고 합니다!
단발 갈색 머리에 콧등의 주근깨가 수북한 청년이 강준에게 인사했다.
강준이 기억하기로는, 만찬의 끝자리에서 자신의 요리를 이도 저도 아닌 표정으로 우물우물 씹던 청년이었다.
그런데 애슐란 왕궁의 요리사였네?
.....그래서 이 파렌이란 친구를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마 이 친구를 데려온 이유야 상상이 가던 강준이지만, 예의상으로 아델리아에게 물었다.
그야 물론 네 요리를 가르침 받기 위해 찾아왔지!
‘역시나...’
그런 강준의 질문에, 아델리아는 아주 당당하게 우리 아이 공부 좀 잘 부탁해요 같은 뉘양스로 자신에게 아이를 부탁하는 옆집 아줌마처럼 대답했다.
물론 맨 입으로는 부탁하지는 않을 거야, 뭐 바라는 것이라도 있어?
그렇게 물질만능주의를 외칠 법한 아델리아의 말에, 강준은 고민하다 대답했다.
흠....그렇담 왕녀님께 빚으로 달아두죠, 당장은 크게 바라는 것이 없으니.
돈은 지금 당장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벌어들이고 있는 데다가, 만찬의 도움으로 왕제가 빵빵하게 보답해주니, 일단 여기서는 왕녀에게 빚이나 달아두면, 언젠가는 쓰겠지.
그리고 레스토랑의 신입을 가르치는 건 늘 해오던 일이니까, 익숙하기도 하고.
호오....감히 애슐란 제 3 왕녀, 이 애슐란 디 아델리아에게 빚을 남긴다 이거지?
뭐, 그런 위대한 왕녀님께 하나 쌓아 놓으면, 언젠간 크게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하하! 언제나 그렇지만, 그 배짱 하나는 정말 마음에 든다니까?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해.
그런 강준을 바라보며 크게 웃는 아델리아.
‘이런 나에게도 배짱을 부리는 저 아이, 정말 갖고 싶네....’
능력 좋고, 말재주도 좋으며, 담력도 좋은 강준이 탐이 나는 아델리아였지만, 지금은 이걸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그럼 우리 요리사를 가르치는 겸, 간단한 식사 하나 부탁해~
“아! 실례지만 저도 한 그릇만...”
예이 예이, 어이 너. 어서 따라와라.
ㅇ....옙!
그렇게 파렌은 영문도 모른 채, 강준을 따라 쫄래쫄래 주방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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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충 실력 좀 볼까? 오믈렛은 할 줄 아나?
예....예! 할 수 있습니다!
‘뭐지....나는 왜 지금 내 앞의 꼬맹이 여자아이의 말을 듣고 있는 거지?’
분명 기억은 있다.
궁궐에서의 만찬 때, 늘 음식을 서빙하며, 나온 요리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자리를 뜨는 소녀.
근데 이 소녀가 그 만찬의 요리를 만들었다고?
말도 안 된다.
그런 엄청난 요리를, 아직 열세 넷 되보이는 이 아이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파렌은 아직 받아드릴 수 없었다.
하지만 뭔가.
이 아이에게 느껴지는 이 압도적인 자신감과 카리스마가, 파렌의 몸을 움직이게 하였다.
마치 주방장의 앞에 서 있는 느낌.
자. 재료는 준비해뒀어, 한번 만들어 봐.
예! 해보겠습니다!
파렌은 일단 그런 생각들을 제쳐놓고,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 밑 준비를 시작했다.
오믈렛
달걀을 이용한 간단한 요리지만, 요리사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요리.
그런 특성의 오믈렛은 요리사의 실력을 판가름하기 아주 좋은 메뉴였다.
먼저 달걀을 3~4개 정도 그릇에 담아, 잘 풀어준다.
그다음 소금과 후추, 그리고 작은 양의 생크림을 잘 섞어둔다.
그다음 작은 팬에 기름을 두르고, 불을 붙여야 하는데.
이...이것은 어떻게 사용하는 겁니까?
자신이 보통 사용하던 주방의 마력석이 담긴 화로가 아닌, 웬 꾸불꾸불한 글씨가 동그랗게 둘러싼 화로를 보며, 파렌이 강준에게 물었다.
아~ 이건 처음 보겠구나? 하긴 그렇긴 하겠다. 잘 봐봐, 밑에 돌릴 수 있는 밸브가 있지? 거기다가 손을 올리고, 돌리면....이렇게!
우왁..! 부..불이 나왔잖아..?
그런 강준이 시범을 보이며 불을 켜자, 파렌은 식겁하며 놀랐다.
이 화로는 강준이 류월에게 부탁하여 직접 만든 레인지로써, 사용자의 마력을 자동으로 흡수, 그리고 불의 술식이 적힌 글자가 불을 내뿜는 방식이었다.
밑의 밸브를 이용해 미세한 온도 조절도 가능한, 마치 현대의 가스레인지나 인덕션 같은 방식의 화로였다.
굉...굉장하다....!
그런 화로를 바라보며 파렌은 내심 감탄을 질렀다.
자신의 주방에 사용하는 고급 마석은, 불의 마법이 적용된 아주 비싼 마석이었다.
마석의 사이즈대로 약한 불과 강한 불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큰 마석은 강한 불만 내뿜었기에 불 조절이 힘들었다.
그리고 연비가 매우 나빠서, 하루에 몇 개씩 갈아치워야 했다.
돈이 흘러넘치는 왕궁에서야 마석을 사용했지, 다른 곳에서는 그냥 장작을 떼워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허나 이 마법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신도 사용 가능한 데다가, 미세한 조절은 물론이고, 사용자의 마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연비도 굉장히 좋았다.
‘이런 마도구를 사용할 정도라니...대단하네.....엇차! 지금은 일단 오믈렛에 집중하자...!’
약한 불로 불을 맞추어 주고, 작은 팬에 달걀 물을 부어준 뒤, 젓가락으로 휘저어 준다.
이렇게 익히면, 골고루 열이 가해져 잘 익고, 식감 또한 매우 부드러워진다.
어느 정도 달걀이 익기 시작하여, 밑 부분이 안정되기 시작하면, 가장자리를 살살 들어 내어준다.
그다음엔 과감하게 반을 접어, 달걀을 모서리로 옮겨준 뒤, 주걱이나 젓가락을 이용하여 모양을 잡아준다.
그다음 살살 굴려 가며 색이 나지 않게 조심해서 잘 익혀주면, 끝!
여기! 완성했습니다!
이쁜 타원형 모양의 오믈렛이 접시에 담겨, 강준의 앞에 나왔다.
오믈렛은 처음 주방에서 일할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연습해온, 파렌의 자신 있는 요리 중 하나였다.
흠....모양은 잘 만들어졌고, 색도 나지 않았네, 음. 안쪽도 부드럽게 익은 반숙이야. 잘했네.
감사합니다!
그런 파렌의 자신감 못지않게, 강준이 봐도 그럭저럭 잘 봐줄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오믈렛이었다.
‘오믈렛은 연습하지 않고는 절대로 잘 만들 수가 없지, 요리에 투자한 시간은 이 오믈렛에 고스란히 나오니까.’
강준은 바로 옆에서 파렌이 오믈렛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요리에 집중하는 파렌의 눈은, 누가 봐도 열정 있는 요리사의 모습이었다.
허나.
요리를 사랑하고, 열정만이 있다고 그 누구나 일류 요리사는 될 수 없다.
자. 이번엔 내가 만들어 보지.
강준은 소매를 걷어 올리며, 자신의 오믈렛을 만들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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