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5화 〉 강준VS류월 (75/289)

〈 75화 〉 강준VS류월

그렇게 시작된 레시피 북 만들기.

물론 애슐란에 없는 재료로 레시피를 짜 봤자, 곤란하기만 할 뿐이라 틈틈이 파렌에게 애슐란에 존재하는 식재료들을 물어보며 작업을 계속해왔다.

다행이 웬만한 식재료들은 현대의 식재료와 거의 비슷하게 존재했기에, 문제없이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약 사흘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기본적인 재료 손질과 스톡, 그리고 그것을 응용한 소스를 바탕으로 기본적인 요리의 레시피 작성이 끝이 났다.

이제 삽화만 넣는다면 레시피 북 완성이다.

“이제, 조금만 더 그리면....다 그려요....”

며칠 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계속 그림을 그려온 벼루가, 퀭한 얼굴로 강준에게 말했다.

대충 레시피 북에 들어가는 삽화는 약 45장.

그림 한 장당 평균 40분을 사용하기에, 곧 한을 떠나야 하는 사절단의 기간에 맞추려면 미친 듯이 그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스케치부터 선화, 색칠까지 전부 벼루 혼자서 담당했기 때문에 더더욱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벼루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당연히 홀에서도 인력이 하나 줄어들었기 때문에 더욱 테이블 회전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음...별 수 없다. 혁수, 네가 나서야겠다.”

“엥? 나?”

그 문제에 심히 고민하던 강준은 결국, 모자란 인력을 대체하기 위해 혁수를 갈아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런 강준의 말에, 혁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강준에게 되물었다.

“별수 없잖아. 벼루는 지금 레시피 북 작업에 들어가서, 홀에 사람이 비는걸.”

류월은 이미 홀에서 일하고 있고, 힐라는 제빵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향이는 주방의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고, 파렌은 조금이라도 더 배워야 하는 입장이다.

그럼 남은 건 결국, 한 사람. 혁수밖에 없었다.

“하...하지만, 나는 계산을 담당하고 있는데....그건 어떡해?”

“물론, 그것도 네가 해야지.”

“......형, 형이 반룡인지 뭐시기인지가 되서 잘 모르나 본데, 저도 한계라는 게 있는 생물이거든요?”

서빙과 계산, 둘 다 하라는 강준의 말에, 혁수는 그게 무슨 미친 말이냐며 어이없다는 듯이 강준에게 따졌다.

“1금.”

“....응?”

“벼루가 돌아올 때까지, 일하면 보너스로 하루당 1금씩 줄게.”

그런 혁수의 눈앞에, 검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제안하는 강준.

“.....내가 돈으로 막 굴복하는 사람으로 아는데....그렇게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힐라에게 부탁해서 당분간 새벽 훈련 제외해줄게.”

“....잘 알고 있네! 서빙 까짓거 나한테 맡겨!”

1금이라는 말에 잠시 멈칫했던 혁수는 매일 새벽, 힐라에게 끌려다니며 고통받는 훈련을 쉬게 해주겠다고 하자 미끼를 덥석 물어버렸다.

그렇게 신이 나서 방방 뛰어다니는 혁수의 뒤에, 검은 그림자가 재빠르게 나타났다.

“이봐! 그러고 보니 며칠 전, 그림 실력을 뽐내는 시간이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왜 이 몸을 깨우지 않은 것이야! 덕분에 그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느냐!”

그렇게 강준과 혁수 둘이서 쑥덕쑥덕 거리고 있던 것을 발견한 류월이 다가와 강준에게 버럭 화를 내며 따졌다.

“....지가 졸린다고 먼저 들어가 놓고는 뭐라는 거야....”

“뭣이?”

“아, 생각만 한다는 게 입 밖으로 나와 버렸네.”

“거 참....이 몸의 그림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데, 그것을 놓치다니 바보로군.”

“뭐? 네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당연하지! 이 몸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당연히 먹보 도마뱀으로 알고 있었지.’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류월 앞에서, 이번에는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성공시킨 강준이었다.

“그래? 좋아, 그렇게 잘났다면 그 잘난 그림 실력 한번 보자.”

“좋다! 내가 그린 멋진 그림을 보고 나서 감동이나 하지 말거라!”

그렇게 말한 강준은, 저번에 벼루가 시험 작으로 그린 스파게티 그림과 종이, 그리고 펜을 챙겨 류월에게 건넸다.

“일단 그 그림을 한번 그려봐.”

“흠...실물이 아닌 건가? 시시하군...”

그림의 주제가 자신에게 급도 안 된다는 태도로 말하던 류월은, 어느새 잉크를 묻힌 펜을 들고 있는 손을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근데 잠깐.

“너 붓도 아닌데 펜의 사용법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깃털이 달린 펜을 아주 능숙하게 다루는 류월을 본 강준은 당혹해하며 물었다.

'분명 펜의 사용법을 알고 있는 건 현대에서 건너온 나와 혁수, 애슐란에서 건너온 힐라와 파렌, 그리고 강준이 직접 사용법을 알려준 벼루밖에 없을 텐데....?'

“하! 이 몸이 얼마나 긴 세월을 살아왔는지 모르나? 예전에는 이 땅이 아닌 다른 대륙을 돌아다녔지, 그때 익힌 지식이다.”

그런 강준의 질문에 코웃음 치며 말하는 류월은 다시금 그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대단한데? 만약 류월이 진짜로 그림을 잘 그린다면, 벼루를 도와서 더욱 빨리 책의 삽화를 끝낼지도 모르겠는 걸?’

정말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 류월을 바라보며, 어느새 심드렁하던 마음에 기대가 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각거리는 펜의 소리만 울려 퍼지던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자, 끝났느니라. 이 몸의 멋진 그림을 보고 놀라 자빠지지나 말거라!”

“오오! 좋아! 한번 보자!”

“과연...어떻게 그렸으려나...?”

완성된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건네받은 강준과 혁수가 그 그림을 보는 순간이었다.

“............”

“............”

“어떠냐? 이 몸의 그림이!”

당당하게 외치는 류월의 앞에서 그림을 보던 두 사람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어?? 그러니까.....어?”

“....뭐야 이거? 아니 그러니까....응?”

이해.

류월의 그림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해 자체가 불가능한 그림이었다.

뭐랄까....만약 외계인이 그린 그림을 보면 드는 감상이 아닐까 싶었다.

못그린 것은 아닌데...기묘하면서도 이해가 가지를 않는 그림이었다.

“....그 전에 스파게티는 어디로 간 거야?”

한참 말이 없던 강준이 침묵을 깨고 류월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스파게티를 보고 이런 그림을 그려낸 거지?

“응? 바로 이거 아닌가.”

“....이 꾸물거리는 기생충 같은 게 스파게티라고?”

틀렸다.

이거는 피카소가 와도 [으윽, 이게 그림? 디스꺼스팅 하군...] 이라고 할 만한 그림이야.

“.....기대한 내가 바보였군.”

한층 올라가던 기대감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가버렸다.

“이 훌륭한 그림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다니.....네놈은 미적 감각이 전혀 없는 게로구나...쯧쯧....불쌍 하군........”

“뭐?”

그런데도 류월은 자신의 그림이 멋지다며 되려 강준을 그알못으로 만들어버렸다.

“지랄하네! 야! 우리 주막 사람들 다 모아놓고 이거 보여줘 봐라! 죄다 이상하다고 할걸?”

“틀렸다! 네가 이상한 것이지 나는 아주 굉장하단 말이다!”

“좋아! 그럼 내일 아침, 주막 사람들 다 모아서 물어보자, 만약 과반수가 네 그림이 괜찮다고 하면, 내가 하루 동안 네 시종이 되어주마! 그 대신, 네가 지면, 내일 쉬는 시간 없이 홀만 주구장창 돌릴 거다!”

“호오....좋다! 당연하겠지만 내 그림이 압승일 테니, 받아들이지!”

“두말하기 없다!”

“당연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이는 마치 스파크가 튀는 것처럼, 아니 실제로 검은 스파크가 빠직거리며 신경전을 벌였다.

그리고, 시간은 흐른다.

________________________

“어....그래서 저희가 모인 이유가 무엇이라고요?”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이지만, 힐라는 아침 훈련을, 향이는 강준을 돕기 위해, 이 시간에 일어나고는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 주막의 식구들이 전부 모이게 되었는데....

“내가 너희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이야....”

“그게....무엇인가요...?”

"무...무슨 일이시지...?"

“뭔가 중요한 일인가..?”

­셰프님의 저 진지한 얼굴....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

“....졸려.”

그런 주막 직원들의 앞에서 근엄한 얼굴을 지은 강준의 얼굴을 본 주막 직원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강준의 다음으로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사건의 전말을 전부 알고 있는 혁수는 그저 잠이나 더 자고 싶어 하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지만 말이다.

“너희들이....이 그림을 평가해 주기를 바란다!”

“““.....예?”””

­....뭐라고 하신지는 모르겠지만....저 종이에 중요한 일이 적혀있는건가....!­

그렇게 강준은 소매에 넣어두었던 종이 한 장을 꺼내, 주막 직원들의 앞에 내밀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