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새싹은 초목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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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땡!]
배의 출항을 알리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한에서의 2주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사절단이 다시 애슐란으로 떠나는 시간.
아델리아는 배의 최상층에 존재하는 자신의 방에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한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작은 토마토 파스타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를 토마토 파스타의 열풍이 애슐란을 덮치고, 그 요리의 매력에 빠진 자신에게 들려오는 소식인.
[한] 이라는 나라에서 토마토 파스타가 만들어졌다. 라는 사실을 알아낸 이상, 언젠가는 이렇게 직접 찾게 될 것이라고는 그녀 스스로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나마 예상하지 못한 것은, 그 기회가 아주 빠르게 찾아온 것과, 그 토마토 파스타를 만든 사람이 꼬꼬마 여자애였다는 것? 정도.
허나 그 아이의 재능은 상상을 초월했다.
현재 애슐란에서 만들어지는 토마토 파스타와 비교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의 요리실력.
너무나도 탐나는 재능과 실력에 아델리아는 그녀를 바라게 되었다.
뭐....당사자의 반대 덕에 그러지는 못했지만.
한 자체도 나쁘지 않은 나라였다.
나라 자체는 작기는 했지만, 대륙의 나라, [류화]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친밀하게 지내도 전혀 나쁠 것이 없는 나라였다.
그리고 그 한의 주인인 향종은, 항상 웃는 상을 유지하는 상냥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 속내는 전혀 다른, 자신의 성격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믿음이 갔다.
싱글싱글 웃으면서 한에게 유리한 조약을 맺게 한 것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았지만, 화를 내기보단, 감탄할 정도의 교섭력에 실없는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건 다 상관없었다.
이것을 얻은 것만으로도, 한에 온 가치가 충분히 있었으니까.
아델리아는 이미 수 십 번을 펼쳐본 [기초 조리 교본]을 들어, 다시금 책을 펼치고는, 그 문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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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지금쯤이면 이미 떠났으려나...?”
어느덧 해가 높게 떠오른 정오.
강준은 브레이크 타임을 틈타, 바닥을 쓸던 빗자루를 잠시 세워두고는, 중얼거렸다.
오늘이 애슐란의 사절단으로 한에 온 아델리아와 진혁이 떠나는 날이었다.
고작 2주 정도인데, 엄청 오랜 기간 동안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
뭐, 아무튼 만찬의 대가로 주머니도 두둑하고, 오랜만에 열중해서 책도 써봤으니까 좋았다.
그리고 파렌.
자신이 열과 성을 다해 기초 지식을 머릿속에 때려 박아 넣어줬으니, 그곳에서도 잘할 것이다.
“흠....오늘은 그동안 고생도 한 직원들을 위해서, 일찍 닫을까..?”
애슐란의 사절단으로 인해, 수도로 인파가 몰린 탓에 근래 직원들의 고생이 많았다.
특히 레시피 북의 삽화를 그린 벼루와 자신이 궁으로 갈 때마다, 주방장 노릇을 해온 향이도 있고.
“얘들아! 오늘은 이만 가게 일찍 닫고, 맛있는 거나 먹으면서 좀 쉴까?”
“찬성~! 대 찬성입니다!!!”
그렇게 결심한 강준이 주막의 홀에서 제각기 자기 할 일을 하던 직원들에게 말하자, 곧바로 찬성을 외친 힐라가 방방 뛰며 신나했다.
“오! 좋지! 요즘 엄청 힘들었어...술이나 한잔하고, 잠이나 늘어지게 자고 싶다...”
매출을 관리하는 혁수가, 오늘 매상을 아델리아에게 무더기로 받은 애슐란 제 노트에 끄적거리던 손을 멈추고, 허리를 쭉 펴며 말했다.
“하지만...그래도 될까요?”
“걱정하지 마, 이 정도 일했는데, 하루 정도는 쉬자고.”
그래도 가게를 쉰다는 것에 불안한지, 괜찮냐고 물어보는 향이에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가게를 운영하는 데에는 직원 관리도 아주 중요하다.
매일 일만 시키는데, 성실하게 일을 잘 할 수 있을 리도 없고, 사람은 좀 쉬어줘야 잘 굴러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막의 장사를 접고, 쉬려는 순간.
주막의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안녕하심까!!!
“어?너...여기서 뭐 해? 애슐란으로 돌아간 게 아니야?”
주막의 문을 연 사람은 바로, 빵빵하게 부풀어, 터질듯한 가방을 매고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이던 파렌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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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애슐란 왕가 직속 요리인, 파렌 하르체. 이 야심한 밤에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지?
아델리아는 매우 흥미롭다는 듯이, 손을 얼굴에 갖다 대며, 오밤중의 방문자, 파렌에게 물었다.
아마 강준과 이야기를 할 때부터 쭈욱,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아델리아의 앞에서, 파렌은 입을 우물거리며,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어떻게든 나열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괜히 왕녀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파렌은 다시금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그리고 떠올린다.
그가 한에서 겪은 새로운 세계를, 발전의 가능성을, 근본적인 요리의 즐거움을.
그런 생각을 하자, 어느새 요동치던 손끝은 이내 굳게 결심을 한 듯, 떨림이 멈춰있었다.
저는....애슐란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에 머물고 싶습니다.
내뱉었다.
더 이상 주워 담을 수 없는, 파렌 일생 최대 최고의 도박수.
흐음....그 이유는 무엇이지?
저는, 저번에 말씀했던 대로 우물 안 개구리입니다. 그리고, 저는 우물 밖을 나오고 싶습니다.
아주 간단하고 짧은 대답.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함축적인 의미를 모를 만큼 아델리아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침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파렌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하게 맺혔다.
좋아. 그렇게 하도록, 아버님에게는 내가 말씀해 놓도록 하지.
ㅇ...예?
그 적막을 깬 아델리아가, 별다른 트집 없이, 아주 깔끔하게 허락했다.
분명 허락을 바란 파렌이긴 했지만, 너무나도 시원하게 허락한 아델리아의 말에, 당황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뭐...뭐지? 이렇게 간단하게 허락을 하다니? 왕녀님의 생각은 도대체....’
‘흠...뭐 예상대로네, 요리가 전공이 아닌 나도, 솔직히 아직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서 새로운 요리를 더 알고 싶은데, 요리사인 파렌은 더욱, 미칠지도 모르지.’
탐구심에 대한 열정은, 아델리아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자신만 해도, 자신의 현재 지위와 상황만 없었다면, 한에 눌러살며, 그 주막에 뺀질나게 다녀서 새로운 요리를 맛보고 싶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렇다면 차리리 파렌이라도 남겨서, 더욱더 훌륭한 요리사로 만들면, 자신에게도 나쁜 것은 없었다.
더욱, 더욱더 노력해서, 애슐란의 요리계를 바꿔주길 바라네, 파렌 헤르체.
그렇게 말하는 아델리아의 눈은, 천사의 공주라는 별명과 같이, 아주 자애롭게 빛나고 있었다.
.....예!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여 파렌은, 애슐란 행의 배를 타지 않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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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됐습니다. 셰프님! 염치가 없지만, 혹시 주막에 남은 방 하나 있습니까?
이때까지의 일을 설명하던 파렌은 배시시 웃으며, 강준에게 말했다.
크..크큭....너도 참...대단한 녀석 이구만...
강준은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요리에 열정을 지닌 사람을 아끼는 것은, 현대 때부터 그랬다.
업장에서 일하는 요리인들을 보면, 그중에서 진심으로 요리를 사랑해서 하는 사람들도 점차 나자빠지기 마련이다.
매일 시달리는 육체적 업무, 소란스러운 주방, 선배들한테는 욕지거리를 듣는 것은 이미 일상.
그렇게 점차 요리 자체에 질려버리는 사람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나사가 하나 빠져버린 녀석은 언제나 있는 법.
장사가 끝난 뒤, 강준에게 다가와 여러 가지를 물어보는 직원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는 강준은, 입으로는 귀찮다고 말해도, 언제나 끝까지 성실하게 붙어서 설명하고, 보여주고,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지금 강준의 눈앞에 있는 파렌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거대한 초목을 꿈꾸며, 열심히 뿌리를 내리는 새싹에게 강준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물을 주고, 땅을 갈아주며, 잘 자라게 도와주는 것.
그럼! 당연하지! 어서 와라! 스타 주막의 정식 인원이 된 것을...축하한다!
그것이 강준의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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