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8화 〉 천사는 주방에 강림한다. (78/289)

〈 78화 〉 천사는 주방에 강림한다.

* * *

한으로 떠났던 사절단이 어느새 2주간의 시간이 흘러 애슐란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긴 여행으로 지친 몸뚱이를 당장이라도 자신의 방에 돌아가 쉬게 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든 다스린 진혁은 한으로 떠나기 전, 그때와 비슷하게 대리석으로 된 바닥을 걸으며 화려하게 치장된 문 앞으로 다가왔다.

언제나 그렇듯, 경비병은 진혁의 얼굴을 보자마자, 곧바로 황금으로 도배된 문을 열었다.

그리곤, 저번과도 마찬가지로 서류 더미가 한가득 쌓인 탁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와 달라진 것을 서류 더미의 높이가 더 높아졌고, 진혁을 반기는 국왕의 안색이 좀 말랐다는 점일 것이다.

­아! 어서 오게 진혁! 긴 여행으로 몸이 지쳤을 텐데, 불러서 미안하군.­

­괜찮습니다.­

­허허....이렇게 불렀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군, 한 과의 조약지침에 대해 올라오는 서류들이 많아서 말이야....새로운 나라와 친구가 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닐세 허허!­

그렇게 멋쩍은 듯이 웃는 국왕이 탁자에서 일어나, 소파와 탁자가 있는 앞으로 다가와, 먼저 소파에 앉고, 진혁은 이어서 그 앞에 앉았다.

­차라도 한잔하겠나? 최근 향이 좋은 잎 차가 들어와서 말이지, 아! 쿠키도 있네.­

­아....쿠키는 괜찮습니다. 차만 받도록 하죠.­

그렇게 티타임을 제안하는 국왕에게 쿠키는 거절하는 진혁.

‘이 세계의 쿠키만 먹다가, 형님이 만든 쿠키를 먹으니.....애슐란의 쿠키는 퍼석퍼석해서 못먹겠네.....입이 고급이 되어버렸어...’

그렇게 국왕이 손수 내온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한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한의 왕제, 향종님의 첫인상은 꽤나 나쁘지 않으셨습니다. 인자하시고, 나긋나긋 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셨죠, 뭐, 앞으로의 두 나라에 관한 조약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다른 사절단의 서류에 적혀 올라갈 것입니다.­

­하하....또 처리할 서류가 늘어날 듯하군...

그나저나 ‘그’ 인물은 찾았나?­

찻잔을 내려놓은 국왕이 진혁에게 물었다.

­그 인물이라면....아~ 형...아니 파스타를 만든 사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습관대로 강준을 형님이라고 할 뻔한 진혁이 가까스로 입을 막아, 틀어버렸다.

­그렇지, 아델라가 그렇게 난리를 치며, 한까지 갔는데....어떻게 되었는가?­

­뭐....싫어도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리지?­

자신의 질문에 의뭉스럽게 질문하는 진혁에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 국왕.

­애슐란에 돌아온 아델리아가 어디 있을 것 같습니까?­

­아! 아델라!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지?­

­....흠...지금 시간이 보자.....곧 저녁 식사 시간이군요.­

­저녁....식사 시간이 무슨 문제가 있나?­

­하하...아뇨, 그냥, 그때쯤 되면, 아델라가 직접 모습을 비출 겁니다.­

그렇게 말한 진혁인 다시 찻잔을 들어, 향기로운 차의 향기를 느끼며 한 모금 들이켰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때는 사절단이 애슐란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왕궁의 주방에는 뜨거운 열기와 우렁찬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 저녁엔, 사절단과 왕녀님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는 만찬의 자리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이! 고기는 다 준비 됐나? 당근 썰어둔 건 어디 있어!­

그리고 시끌벅적한 왕궁의 주방장. 가리우스 기린 의 목청도 그에 따라 덩달히 올라갔다.

요리인들을 통솔하고, 만찬을 완벽하게 완성한다는 사명을 등진 가리우스는, 오늘따라 더욱 크게 날뛰었다.

그렇게 한시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가득한 주방에, 낯선 인기척이 들려왔다.

­흠.....상당히 시끌벅적하군...­

­음...? 당신 누구.....와...왕녀님?!?!­

가뜩이나 신경이 날카로웠던 가리우스가 신경질을 내며 돌아보자, 그곳에는 바로.

애슐란의 제 3 왕녀, 애슐란 디 아델리안. 일명 천사의 공주라 불리는 왕녀가 팔짱을 낀 체, 주방을 돌려보고 있었다.

­애....애슐란 왕가 직속 요리장, 가리우스 기린이 왕녀님을 뵙습니다!­

­아, 고생이 많아~­

‘왕....왕녀님? 갑작스럽게 주방에는 무슨 일인 거지...?­

갑작스러운 왕녀의 등장에, 가리우스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다름이 아니고, 오늘 저녁에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지?­

­ㅇ...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 만찬을 직접 만들려고 말이야.­

­아 그렇습니.....예?­

갑작스러운 왕녀의 선언에 가리우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아델리아를 쳐다보았다.

그럼에도 아델리아는 아주 당당히, 그리고 약간의 흥분감이 가미된 얼굴을 보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주방에 남는 자리 하나 좀 쓸게, 괜찮지?­

­아...아무리 그래도 귀하신 왕녀님이 직접 칼을 만지신다니....그 무슨...!­

­에이 괜찮아~ 왜? 안되?­

­아...아니....그러니까....­

­대충 저 구석에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알겠지?­

‘아니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고...!’

자신이 요리하는 곳, 구석에 왕녀가 있는데, 그 누가 신경을 쓰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 천사님은 이미 빠른 걸음으로 주방에 들어선 이후였다.

­에...에잇! 네놈들은 왕녀님에 대해 신경끄고! 어서 움직이기나 해!­

­­­예...예!­­­

가리우스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주방인들에게 소리치며 닦달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사건의 중심지인 아델리아.

­자....이 요리책이 과연 얼마나 쓸모 있는지 한번 볼까?­

품속에 귀중히 챙겨놓은, [기초 조리 교본]을 꺼낸 아델리아가 씨익 웃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저....주방장님....­

­왜!­

애슐란 왕궁 직속 부요리장, 다렌 파르민이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 가리우스에게 다가왔다.

­아니...왕녀님은 갑자기 왜 주방으로 오신 겁니까?­

그리고는 도저히 참다못해 나온 말이 왕녀님이 저기서 저러는 이유였다.

­.....자신이 직접, 만찬에 나갈 요리를 만들 것이라 하신다....­

­아 그렇구나....아니 예에??!! 왕녀님이 도대체 왜....?­

그 소리를 듣고는, 자신과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이는 다렌의 모습에, 역시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지 싶은 가리우스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글쎄다....왕녀님의 생각을 우리가 어찌 알겠냐? 그냥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지...­

­그렇긴 하다만....궁금하시지 않으십니까?­

­뭐?­

그렇게 말하는 다렌은 왕녀님의 앞에 있는 냄비를 가리키며 말했다.

­도대체 저 냄비에는 무엇이 들어있으며, 왕녀님은 어떤 요리를 만들고 계시는지 말입니다. 궁금하시지 않으십니까?­

아델리아는 마침 한창 냄비에다가 무언가를 넣고, 잘 섞이도록 저어주던 중이었다.

­끄....끄응.....솔직히 궁금하지 않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지...­

사실 미치도록 궁금하다.

가리우스는 애슐란 에서의 요리실력 중 탑은 자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것을 보증하는 애슐란 왕궁 주방장이라는 직책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아주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평생 손에 물 한번 묻혀본 적 없는 왕녀가 갑자기 자신의 구역에서 요리를 만든다고 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뜬금없는 흥미로 괴상한 것이나 만들 것이 뻔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어라? 그게 없네? 저기~ 잠시만!­

그렇게 생각에 빠진 가리우스를 다시 현실로 끌고 온 것은 왕녀의 외침 덕이었다.

­네? 무슨 일이신지?­

­그게, 조금 큰 접시가 필요한데....혹시 어디 있는지 알아?­

­아! 그거라면 다렌! 왕녀님을 모시고 안내해 드려.­

­예! 이쪽입니다 왕녀님!­

그릇을 찾는 왕녀에게, 다렌을 붙여서 안내를 시켰다.

­.....갔나?­

이미 두 사람은 접시를 찾으러 옆 방으로 들어간 상황.

­...꿀꺽...­

만약, 그 의문스럽고, 미지의 냄비 안을 볼 기회는 지금이라고, 가리우스의 머릿속이 번뜩였다.

‘지금이면.....슬쩍 엿볼 수 있지 않나?’

‘아니! 감히 왕녀님이 만든 요리를 몰래 보려는 건가? 미쳤어?’

‘근데 궁금하잖아 솔직히....안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슬쩍 보는 데 얼마가 걸린다고 생각하냐? 지금이 기회라니까?’

­....그래. 얼마나 걸린다고...­

마음속의 서로가 양분화해서 싸우는 것이 느껴진 가리우스는, 결국 슬쩍 보자는 자신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다짐을 한 가리우스가 화로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왕녀의 냄비에 다가갔다.

그리고, 뚜껑을 열게 되는데............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