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애슐란의 왕가들.
* * *
가리우스가 냄비를 열자, 그곳에 들어있던 것은.
가.....감자?
껍질이 까진 체, 잘 익고 있는 감자들이었다.
감자를 왜 이렇게 많이 삶으신 거지?
가리우스는 더더욱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도대체 왕녀님은 무슨 요리를 하려는 거지?
그냥 삶은 감자를 내놓으실 생각인가?
‘......요리를 해본 적 없는 왕족이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그렇게 아델리아와 다렌이 접시를 들고 돌아올 동안 냄비의 내용물을 확인한 가리우스는, 얼른 뚜껑을 닫고, 아무 일 없었던 건처럼 행동했다.
‘그럼 그렇지. 뭘 또 대단한 걸 만들고 계신다고 생각한 거야? 요리의 ’요‘자도 모르시는 분일 텐데.’
그렇다.
결국에는 그저 왕녀님의 흥미였을 뿐이었다.
요리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뿐더러, 왕녀님이 그리 쉽게 도전할 것이 아니었다.
저.....주방장님, 그래서 도대체 저 냄비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뭡니까?
아아~ 별거 아니더군, 그냥 삶은 감자가 한가득 들어있었어.
삶은 감자라니....풉! 왕녀님은 귀여우시군요? 나중엔 소금이라도 찍어서 접시에 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하하! 됬어 그만해, 이제 신경 쓸 일도 아니고, 우리가 할 일을 하자고!
그렇게 왕녀의 요리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두 사람은,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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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시간이 흘러, 해가 내려오고 달이 스멀스멀 떠오를 때쯤.
왕궁에는 한참 만찬의 때가 도래했다.
현을 아름답게 울리는 바이올린과 화려한 손놀림으로 건반을 치는 피아노 소리.
그리고 만찬을 장식하는 요리들이 속속 올라왔다.
그 만찬의 주인공은 물론 사절단의 노고를 치하하는 왕족, 국왕과 그 핏줄들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진혁 또한 테이블의 한 자리를 이미 꿰차고 있었다.
2주간, 고생 많았네, 이 자리를 빌려 그대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뜻으로 만찬을 준비했으니, 실컷 즐겨주길 바라네.
그렇게 국왕의 말을 시작으로, 속속 음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데, 아델라는 어디에 있는 거죠?
국왕의 바로 옆에 앉은 애슐란의 왕비.
애슐란 디 바이엘른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3 왕녀, 아델리아를 맞이하기 위해, 잔뜩 치장하고 기다렸건만, 정작 만찬의 주인공인 아델리아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흠....보나마나 한에서 새로 얻은 책이나 물건에 푹 빠져, 방에 박혀있는 것은 아닐지...?
그렇게 말한 애슐란 제 2 왕녀 애슐란 디 카리안느 가 금빛 머릿결을 뒤로 내리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온 아델리아의 성격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카리안느는, 어차피 뻔하지라는 생각으로 말한 것이었다.
‘왕녀가 갑자기 사절단으로 한에 가겠다고 떼를 쓴 것도 말리지 못했는데...하여튼...’
하하! 곧 있으면 아델라도 모습을 보일 겁니다. 잠시 기다리도록 하죠.
카리안느의 말에 하하 웃으며 대답한 자는 바로.
애슐란의 왕가 후계자.
제 1 왕자 애슐란 디 카이제르 였다.
오라버니도 참....아델라한테는 너무 상냥하다니까요....이런 건 그냥 쉽게 넘어가면 안 돼요! 자신의 위치에 따른 행동거지를 잘 알려줘야 하는데.....
2주간의 여행에 힘이 든 것일 수도 있고, 내 귀여운 여동생이니 그렇게 말하기가 힘들구나....
하! 저는 오라버니의 여동생이 아닌 모양이죠?
물론! 카리안느도 내가 아끼는 동생이란다.
그런 카이제르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까칠스럽게 대답하는 카리안느에게, 다정한 눈빛으로 말하는 카이제르였다.
그래서, 온다는 거야? 안 온다는 거야? 참나....이쪽은 검술 수련도 빠지고 왔는데....안 그런가? 진혁?
마치 타오르는 것 같은 밝은 갈색의 머리를 휘날리며 말한 존재.
제 2 왕자인 애슐란 디 제라스였다.
뭐....곧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게나 말이야.....난 빨리 너와 대련을 하고 싶단 말이지....
언제든지 어울려 드리겠습니다. 제라스님.
제라스는 자신인 형처럼 인자하고, 머리가 총명하고 박식하지는 않지만.
항상 활발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왕자였다.
그래서 검술도 좋아하는 제라스가, 자신에게 대련을 걸어올 때마다, 진혁은 그를 상대해 줘야 했다.
귀찮지만 뭐 어쩌겠나, 왕자의 명을 거스를 수도 없고.
누나도 말 좀 해봐. 너무 조용하다니까!
.....
그런 제라스는 자신 앞에 앉아있는 여성, 제 1 왕녀 애슐란 디 프리안 에게 말을 걸었으나.
프리안은 그저 특유의 무표정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녀의 표정과 행동은 도통 무표정과 침묵 외에는 보이지를 않아서, 프리안은 얼음의 공주라고 불리고 있었다.
허나.
‘아델라는 무슨 일일까? 오랜만에 보는 여동생인데....내 모습 이상하지는 않을까? 얼굴을 마주 봤을 때는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하지...? 아아....어쩌면 좋을까...’
그녀의 머릿속은 오랜만에 보는 귀여운 여동생의 생각에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그녀 특유의 무표정 덕분에, 그녀는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그저,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든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고치려고 노력은 하나, 아직은 무리인 모양이다.
그렇게 만찬으로 나온, 어느새 애슐란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토마토 파스타를 먹으며,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시점이었다.
자! 음식은 모두 입에 맞으셨습니까?
음? 아델라! 지금 뭘 하는 거니?
갑작스럽게 문밖에서 튀어나온 아델라는, 옷은 조리복을, 머리에는 조리모를 쓴, 그야말로 요리인의 복장을 한 채로, 만찬에 끼어들었다.
토마토 파스타는 정말로 맛있는 음식이죠, 허나! 제가 만든 요리를 드시면, 그 생각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뭐하냐고! 너라는 애는 참, 왜 이렇게 갑작스럽고 혼란스러운 일만 하는 거니? 그리고 요리라니? 네가 만들었다고?
그런 아델라의 행색에 발끈한 카리안느가 말을 폭풍처럼 쏟아내었다.
후훗.....또 아델라가 특이한 일을 꾸몄나 보군요..?
....그러게나 말이야.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왕비는 언제나 처럼의 아델라를 보고는 안심한 듯 미소를 보였다.
국왕은 머리를 짚었지만 말이다.
아~~그러니까....일단 드셔 보시고 생각하죠!
이어지는 카리안느의 잔소리에 지친 아델리아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사용인들이 뚜껑에 가려진 접시를 들고, 테이블에 앉은 인원 하나하나에게 접시를 내려놓았다.
이...이게 뭐야?
아델라 네가 만들었다니...흐음....
.......
자자~ 접시들 다 받았죠? 그럼.....뚜껑을 열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아델리아의 말에, 모두들 반신반의하면서 베일에 감춰진 요리를 보기 위해, 뚜껑을 열었다.
응?
뭐....뭐야 이게?
......!
아델라! 이게 뭐야?
그 감춰진 요리를 보자마자, 모두가 느끼는 감정은 바로 의문이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이런 요리를 보아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한 명.
‘와....이거 얼마 만에 보는 거지? 그나저나 아델라가 이걸 만들었다고? 형님이 쓴 책이 개쩔긴 하나보다...’
현대에서 건너와, 한에 가서 강준을 만난 한 사람.
진혁 만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소개합니다.....이 음식의 이름은...바로! 감자 크로켓입니다!
아델리아는 마치 극장의 무대에 오른 주인공처럼, 과장된 포즈를 보이며 요리의 정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