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한 사람을 위해 피는 꽃(1)
* * *
“저기....주모....”
앵두 같은 빨같고 요염한 입술이 강하를 불렀다.
이미 술을 몇 잔 마셨는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은, 남성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에는 충분한 모습.
그와 대조되는 마치 눈처럼 새하얀 백발과, 쫑긋거리는 여우 귀를 본 사람은 누가 그녀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이 강하를 부른 이유는,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문제였다.
“혁수 씨 말이야....혹시 고자야?”
탁자에 얼굴을 박은 매화가 혹시나 하던 생각을 입 바깥으로 나왔다.
매화에게 남자 걱정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
요망한 눈웃음과 색기 넘치는 육체로 들이밀기만 해도, 그 누구 넘어오지 않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런 매화에게 전혀 넘어오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스타 주막의 계산원이자 강하의 1번째 노...아니 직원인 혁수였다.
처음에야 혁수를 노리던 매화는 아주 기세등등했다.
자신의 매력에 푹 빠진 혁수를 어떻게 다룰지, 같은 생각을 하며 기쁜 마음을 가진 그녀였으나.
오늘로 치면 거진 한 달째.
매화는 아직도 혁수와 가까워지지 못했다.
막 만났을 때야 뭐, 아직 부끄럽거나, 숙맥인 사람인가 싶었던 매화가, 아주 천천히 다가가려 했지만.
혁수는 그런 매화에게 강경하게 거리를 두었다.
이때까지 단 한 번도 남자를 홀리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매화에게는 아주 큰 충격이었다.
혁수를 처음 노릴 때만 해도, 괜찮은 남자네 싶어서 편하게 굴었던 매화도, 점점 자신의 매력이 먹히지 않자, 점점 오기가 생겼다.
계산을 마칠 때 은근 들이대거나, 혁수의 시선에 들어댈 때마다 자신의 색기를 내비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점차 처음의 기세가 꺾여간 매화는, 술이나 마시며 강하를 애타게 부른 것이었다.
이 정도로 자신이 매력을 뽐내는데, 넘어가지 않는 것을 보며, 혁수는 고자가 분명하다고 생각한 매화였다.
“그 녀석, 어제만 해도 춘화집 보다가 향이한테 걸렸는데.”
“뭐? 아니, 나를 놔두고 그런 종이 쪼가리나 본단 말이야??”
허나, 결코 고자가 아닌, 정상적인 성욕이 있다는 말을 강하에게 전해 들은 매화는 벌떡 일어나 손으로 탁자를 쿵 하고 쳐 내렸다.
어젯밤. 꽤나 좋은 물건을 구했다며 시시덕거리던 혁수에게 뭔데 싶어서 다가간 강하가 보았던 것은, 저번의 책방보다 더 화끈한 춘화집 이었다.
“다 보고 나면, 형한테도 빌려줌.”
“와이씨 콜, 언제 다 보는데?”
“나중에 정리 다 끝내고 내 방으로 와.”
“오케이 바로 간다. 아, 파렌도 부를까?”
“흠....걔는 형이 원래 남자인 건 모를 테니까, 내가 따로 전해주지 뭐.”
여자애의 모습을 하고 있던 강하였지만, 그의 속은 32살 먹은 아저씨였다.
그런 아저씨가, 요망한 옷을 입은 여성들이 그려져 있는 춘화집에 관심이 없을리가.
그렇게 방끗 미소를 짓던 혁수가 계단을 올라, 막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음? 혁수 도령님? 손에 든 것이 무엇인가요?”
마침 1층에 있는 강하를 돕기 위해 내려온 향이와 딱 마주쳐 버린 것이다.
“우왁! 깜짝이야!”
춘화집에 정신이 팔려, 자신의 바로 앞까지 향이가 다가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혁수는, 깜짝 놀라 손에 있던 춘화집을 떨어뜨려 버렸다.
“어...이것은.....”
“아니 저...향아..? 이건...그러니까.....”
“......저질...”
“으윽....!”
계단에 툭 떨어진 춘화집을 본 향이는 순식간에 얼굴을 굳히더니, 혁수에게 싸늘한 한 마디를 꽂아버렸다.
“아니 도령님은 지금 벼루 같은 애들도 있는 이곳에서 어쩜 이런 천박한 책을 가지고 올 수 있단 말인가요?”
“아니...그게...”
“저번의 책방에서도 그렇고 도령님은 어떻게....”
그렇게 향이의 말이 길어질 듯 보이자, 강하는 주막을 나와 마루에 걸터앉아서, 담뱃대에 불을 붙였다.
“후우.......글렀네 저건...”
강하가 기다리던 흥분감과 기대감이 담배 연기와 함께 어두운 밤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기대하고 있었는데...”
“응? 뭐가?”
“아....아니다. 아무튼 고자는 아냐 저 녀석.”
그렇게 어젯밤의 춘화책을 그리워하며 중얼거리던 강하는 매화의 말에 다시금 현재로 돌아왔다.
“아니 그런데 왜 나한테 안 넘어 오는거야아....”
강하의 말에 더욱 절망감을 느낀 매화는 더더욱 침울해졌다.
“으음.....”
그것을 바라보는 강하는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물론 혁수도 건장한 청년.
이런 매화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을 리가.
“아니....매화씨 말이야...항상 주막에 올 때마다 나한테 엉기는데....어떻게 해야 해?”
매화가 주막을 찾아올 때마다, 그녀가 떠난 뒤 강하에게 하소연을 하고는 했다.
그렇다.
혁수 이 새끼는 나이 27살 처먹어 놓고 모쏠 아다 새끼라서, 매화가 자신을 꼬시고 있는 건지, 아님 지가 착각하고 있는 건지 구별조차 못 했다.
때는 약 7년 전.
혁수가 1학년이고, 강하가 복학생이던 시절.
같이 조별과제 하던 여자애와 잘 나간다고 하길래, 그럼 고백해보라고 했다가, 남친 있는 줄도 모르고 노빠꾸로 고백해서 공개 처형당했던 사건이 있었다.
혁수는 그 일 덕분에 바로 군대런을 가고 난 뒤, 복학생이 되서 혼자 밥 먹고 다녔다고 한다.
강하가 객관적으로 보기엔, 혁수는 그럭저럭 괜찮은 녀석이었다.
키도 크고, 열심히 헬스도 해서 몸도 근육질인 커다란 떡대, 얼굴도 곱상하다기보단 강렬하게 생겼고, 성격도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여자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기에, 매우 쉬울 수도 있으나, 그냥 이 새끼 자체가 여자애와 이야기 자체를 잘 못 하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요리에 빠져서 연애 자체를 신경 쓰지도 않았으니, 모쏠아다 새끼 둘이서 머리 굴려봐야, 답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강하는 이제 매화가 혁수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안 상태.
이제 그 둘 사이를 살짝 밀어주기만 하면....
“그럼 내가 전해줄까?”
“.....응?”
“혁수에게 호감이 있는 건 맞잖아? 말하기 힘들면 내가 전해줄게.”
“아...아니아니 잠깐만요!!!”
잊었는가.
강하도 32살 처먹고 모쏠아다 였다는 것을.
그런 매화를 보고, 눈치도 없이 그냥 노빠꾸로 혁수에게 달려가려던 것을 매화가 간신히 말렸다.
“아니....그런 걸 남에게 시켜서 말하는 게 어디 있어요?”
“어? 이러면 안 돼?”
“당연하지!! 그럼 내 체면이 안 선다고...!”
“그런 건가...”
‘하....주모도 도움이 안 되잖아? 이걸 어쩌면 좋담....’
그렇게 더더욱 침울해져 있는 매화에게 다가온 사람이 한 사람 있었으니.
“이야기는 다 들었슴다!”
긴 귀를 쫑긋거리며, 어느새 두 사람이 있는 탁자로 다가온 힐라가 기새등등하게 등장했다.
“어...그러니까....에르프? 에루후?”
“그냥 힐다라고 부르십쇼!”
“아 뭐....그렇긴 한데....갑자기 무슨 일로?”
“에이....혁수 노리고 있지 않슴까?”
“엣! 아! 그러니까! 앗!”
갑작스러운 힐다의 등장에 당황하던 매화는 더 갑작스러운 힐다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더욱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후후....이 힐다...! 풋풋한 나이대의 연심쯤이야 쉽습니다!”
“어라? 분명히 힐다, 네 나이는 분명 오백 살쯤 되지 않던..”
“전 영원한 20살!”
그런 힐다에게강준이 꼽사리를 끼며 말했지만, 힐다는 방긋 웃으며 강준에게 대답했다.
눈은 웃고 있지 않았지만.
“아무튼! 저에게 맡겨 보십쇼! 혁수의 마음을 확실하게 얻을 수 있을 테니.”
“어....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자자...귀를 쫑긋 새워 보시죠, 그러니까....”
그렇게 말한 힐다는 매화에게 딱 붙어서, 귓속말을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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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표지를 그려주신 에밀라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이 세번째로 그려주셨네요.....
(감동의 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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