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부부의 접시
* * *
“하아......”
한껏 얼굴을 찌뿌린 채현은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님, 오늘은 또 어떤 일이신가요?”
그런 채현의 곁에 있던 고순은, 무슨 일인지 물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채현은 어떤 양반가의 삼남의 자식과 혼약을 맺었다.
그의 이름은 화륜.
아직 열 세넷 밖에 되지 않은 채현 보다도 한 살 정도 어린 남자아이였다.
처음 그를 만난 곳은 결혼식이였다.
그런 그를 본 채현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얼굴은 자신보단 아직 여리고, 몸집은 외소했으나, 뚜렷한 이목구미의 외모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나이 대라는 것이 또 좋았다.
계약혼이라는 것이 나이를 가리지 않았기에, 자신보다 한참 어른인 남성과 결혼을 할 수도 있었지만, 또래의 나이인 화륜이라면 조금은 친근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도 잠시.
이미 결혼한 지 약 두 달은 지나가는데도, 화륜과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같은 방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화륜은 언제나 채현을 봐주지 않고, 자신이 챙겨온 책에만 신경을 쓰고, 채현이 말이라도 걸려한다면 단답식으로만 말을 이어갔기에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만 벌써 두 달.
항상 활발하고 대화를 즐기는 채현의 속은 이미 부글부글 끓어 넘치기 직전이었다.
“음...그러고 보니 화륜나리께서 채현마님을 좀 피하는 느낌도 있기는 하죠...”
“으음....왜 그러지...내가 싫은가....?”
화륜의 태도는 마치, 채현을 의식하며 피하는 행동을 보였기에, 앞으로 평생을 같이 살아갈 남편이 자신을 피한다는 것에 큰 의구심이 든 것이였다.
“아! 그러면 이건 어떠신가요?”
“응? 뭔데?”
그렇게 두 사람의 고민이 이어질 때 쯤, 고순이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손뼉을 짝 하고 치더니 자신이 떠올린 생각을 채현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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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거리는 마차, 그 안에는 두 사람이 탑승해 있었다.
“....저기....저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건지...”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 화륜은 영문도 모른 체, 채현의 손에 이끌려 마차에 탄 이 시점에 매우 당황하며 채현에게 물었다.
“그렇게 굴지 마셔요. 세상의 하나뿐인 아내의 부탁인데, 싫으신가요?”
“아...그게...아닙니다...”
그런 화륜에게 채현은 능청스럽게 말하며 끝까지 어디로 향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아! 이제 도착했네요! 자! 내리죠, 서방님.”
“여....여기는?”
빠르게 나아가던 마차의 속도가 줄어들더니, 이윽고 완전히 멈추었다.
채현은 아직도 제자리에 굳어, 가만히 있는 화륜의 손을 끌고, 마차에서 내렸다.
그런 두 사람을 반기는 것은.
서라벌의 명소, 스타 주막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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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사람이 붐비는 스타 주막.
화륜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누며 시끄럽게 있는 장소는 처음 이였기에, 딱딱하게 굳어, 그저 채현의 손에 이끌린 체 주막의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오세...어! 아씨! 잘 지내셨어요?”
그런 두 사람을 반기는 양갈래 머리의 소녀, 벼루가 반갑게 채현에게 인사했다.
“응, 자리는 있을까?”
“네! 그런데....옆의 그 분은?”
“아! 내 서방님!”
“........처음 뵙겠습니다....”
“...어머...! 아씨! 결혼하셨어요? 어머나...!”
“결혼하고는 처음 주막에 오는거라....아무튼 자리 안내 좀 해줘!”
“네! 이쪽으로 와 주세요!”
벼루는 채현의 결혼 소식과, 그녀의 남편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양반들은 결혼을 빨리 한다고는 했지만, 자신의 또래인 채현의 결혼소식이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화륜과 채현은 벼루의 안내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서방님은 어떤 게 좋아요?”
“서..서방....”
“아....서방님이라고 부르는 게 싫어요?”
“아...아뇨! 괜찮습니다. 저희는 결...혼 했으니...까...”
어느새 매뉴판을 손에 꽉 진 체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는 채현의 말에, 화륜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음...나는 언제나 먹는 수플레 팬케이크....서방님은 어떤 게 좋으신지?”
“아...아무거나 괜찮습니다...”
“흠...그럼 이걸로....저기요!”
그렇게 메뉴를 고른 채현과 화륜은 벼루에게 결정한 매뉴를 알려주며, 요리가 나올 때 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감도는 어색한 기류.
채현은 탁자에 팔꿈치를 대며 얼굴을 받혀, 그런 그를 바라보았지만, 화륜은 그녀의 시선을 피할 뿐 이였다.
“.......제가 괜히 데려 온걸까요?”
“...네?”
“서방님의 얼굴이 전혀 기뻐보이지가 않아서, 괜히 이렇게 끌고 왔나 싶네요.”
“아...아뇨! 저...저는 이런 공간이 처음이여서....쑥쓰럽지만 긴장 하고 있기에...”
“자, 요리 나왔습니다.”
“어라! 주모? 왠일로 여기까지 나오셨네요?”
그렇게 중얼거리던 화륜의 말이 끝나자, 그들의 앞에는 주문한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온 강하가 탁자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우리 단골손님이 남편을 데려왔다고 해서 말이지, 너무 궁금하더라고. 그래서, 그쪽이 서방님?”
“....처음 뵙겠습니다.”
“....흐음~ 그렇군. 뭐, 맛있게 먹고 가, 꼬마 손님들.”
“주모도 솔직히 주모처럼 안보이거든요?”
“됬네요~”
그런 화륜을 바라보던 강하는 몸을 획 돌려 다시금 주방으로 돌아갔다.
“참....주모도 우리보다 조금 나이가 많을 뿐이면서....”
“....저 분이 이 주막의 주모...인가요?”
“네, 뭐 저렇게 보이셔도 요리 솜씨는 최고거든요! 일단 먹을까요?”
그렇게 대답한 채현은 어느새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자신의 앞에 있는 수플레 팬케이크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
화륜도 일단 맛을 보기위해 자신의 앞에 놓여진 것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건....무엇이지?”
허나. 그의 앞에 놓아진 것은, 그가 생전 처음 본 음식이였다.
마치 달팽이처럼 동그랗게 말린 무언가, 그 사이사이엔 거뭇한 액체가 들어가 있고, 그 위에는 하얀 고체가 뿌려져 있었다.
냄새는 매우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풍겨왔으며, 그 표면은 반짝거렸다.
‘이 것의 사용법은.....저렇게 사용하는 것인가..?’
포크와 나이프도 처음 본 화륜은, 자신의 앞에서 팬케이크라는 것에 열중한 채현을 보며, 어설프게 칼질을 시도했다.
그렇게 잘라낸 한 조각을 화륜은 한 입 맛보았다.
“.....!”
처음으로 느껴진 것은 바삭한 식감.
입으로 씹을수록 바삭하던 식감은 조금씩 쫄깃한 떡을 씹는 것처럼 바뀌어갔다.
그리고 혀에서 느껴지는 진한 달콤함.
마치 조청을 찍어 먹는 듯한 달콤함이 입안에서 퍼져나갔다.
그저 설탕을 입에 붓는 달콤함이 아닌, 약간의 씁쓸함과 코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매콤한 향기.
그리고 하얀 고체가 까드득 거리며 극상의 맛을 이루어냈다.
화륜은 그런 시나몬 롤의 맛에 정신을 차릴 여유도 없이, 미숙하지만 빠르게 손을 놀려가며 접시를 비워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어느새 비워진 접시를 바라보며 금방까지 자신의 입 속에 있었던 시나몬 롤의 맛을 다셨다.
“맛있나요?”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이미 자신의 몫을 다 먹은 채현이, 손가락에 묻은 시럽을 핢으며 화륜을 바라보았다.
“네. 이런 맛은 처음 맛보았습니다. 식감은 바삭하면서 쫄깃하고, 그 뒤에 이어오는 달콤함이.....극상의 맛 이였습니다!”
“..푸훗..!”
어느새 몸에 남아있던 긴장은 옅어진 체, 화륜은 금방 자신이 느꼈던 맛을 필사적으로 전해주었다.
그런 화륜을 보며, 금방까지의 무뚝뚝하고 말이 없던 화륜이 아닌, 자신의 나이에 맞게 맛있는 것을 먹고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아....죄송합니다. 제가 흥분을 한 탓에.”
자신을 보며 웃는 채현을 본 화륜은 이내 얼굴이 화끈해지며 다시금 말을 더듬었다.
“서방님은, 제가 싫으신가요?”
“무..무슨! 아닙니다! 그럴...리가...”
“헌데 왜 저와 말을 나누지 않으시는지...”
채현은 화륜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느낀 의문감을 물었다.
“.....아름다우셨습니다.”
한참이나 입을 웅얼거리던 화륜은 그에 대한 대답을 말하기 시작했다.
“첫째 형님이나 둘째 형님 같지 않은, 저 같이 한심한 놈에게 이렇게 아름다우신 분이 아내가 되다니, 너무 죄송스럽고, 눈을 마주칠 용기조차 없었습니다.”
“.......”
“한심하지요.....? 이런 변변찮은 녀석이 서방이라니...하하..”
자신은 모지랭이였다.
사내가 되어서 검 하나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며, 말타기 솜씨는 형편없었다.
듬직하고 멋있는 형님처럼 되고 싶었지만, 화륜은 그러지 못했다.
그런 자신은 어느새, 방에 박혀, 그림을 그리거나 책만 보는 멍청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 자기혐오적인 발언을 하는 화륜을 바라보던 채현은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손을 뻗어, 그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윽!”
한심한 자신에게 따귀를 날릴 것이라고 생각한 화륜은, 눈을 감고 움찔거렸다.
허나 채현은, 상냥하게 그의 입가에 뭍은 빵조각을 떼어내, 자신의 입에 넣었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서방님이 책을 집중하며 읽을 때, 계속 말을 걸고 싶었지만, 집중하며 책을 읽는 모습이 어쩐지 멋있어 보여서, 그걸 바라보고만 있었어요.”
그런 채현의 모습을 본 화륜의 얼굴은, 벌겋다 못해, 완전 익어버릴 것 만 같았다.
“그래도, 저는 역시 서방님과 이야기 하는 게.......좋아요.”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 이였지만, 그것이 부끄러운 짓이라는 것을 늦게 깨달은 채현 역시, 얼굴을 붉혔다.
“우리, 앞으로도 계속,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네.....”
그렇게 그 둘은 조금이지만 확실하게, 부부의 길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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