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전쟁이다 맛알못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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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하루의 반이 지나고, 지친 몸을 쉬게 하는 브레이크 타임.
저마다의 휴식을 취하거나, 짬을 내서 개인의 할 일을 처리하는, 오늘도 그런 시간 이였을텐데.
“죄송하지만 류월님, 저는 그 의견에 반대입니다.”
“뭣이라? 어허....네 녀석들은 입이 어떻게 되었는가 보구나...”
“아니 제 말이 맞다니까요?”
하지만 오늘의 주막은 달랐다.
주막의 여성 맴버 중 셋.
주방의 향이.
제빵의 힐라.
서빙의 류월.
언제나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 세 여성이 오늘은 이상하게도 소리를 높혀가며 자신들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무슨 일이야? 뭔데?”
그런 소란스러운 소리를 감지한 강하는 주방에서 깎던 감자를 내려놓고 쏜쌀같이 달려나왔다.
“그..그게.....향이 언니하고 류월 님 하고 힐라 언니가....”
그런 셋을 바라보며 어찌할지 몰라 발만 동동거리던 벼루가 강하를 발견하곤 쪼르르 달려왔다.
그녀들은 서로의 눈에서 마치 작은 번개가 나올 것 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아! 마침 잘 오셨어요!”
“그래! 이 이야기는 네가 있어야 한다.”
“그럼요! 그만큼 셰프님에게도 중요한 일 이라구요!”
그렇게 열변을 다해가며 소리치던 세 사람은, 강하를 보고는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뭐...뭔데? 무슨 일인데 도대체....”
류월과 힐라라면 몰라도, 향이마저 심각한 얼굴을 지었기에, 강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래 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의 대답은 바로.....
“셰프님의 요리하면 볶음밥이잖아요!”
“아니, 치킨이다.”
“둘다 틀렸어요! 애플파이야말로 최고의 음식 이라구요!”
“.....엥?”
그러나 그들이 대답한 이야기는, 잔뜩 긴장한 강하의 어깨를 떨어뜨리기에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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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약 20분 전.
여느때와 같이 브레이크 타임을 즐기며 탁자에 앉아 저마다의 휴식을 즐기던 세 사람은 그동안 먹어왔던 강하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새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여러분들은 어떤 음식이 가장 좋으신가요?"
찻잔을 홀짝이던 힐라는 잔을 내려놓고 향이와 류월에게 물었다.
"당연히 치킨이지."
"네? 볶음밥이 아니라요?"
"응? 두 분들 무슨 소리심까? 당연히 애플파이죠~"
“셰프님의 음식하면 볶음밥이죠. 쌀알 하나하나가 기름에 발려 씹히는 맛이 있고, 여러 가지 재료들과 향신료가 조화롭게 어울리는걸요?”
“아니, 단연코 치킨이지. 바삭하면서도 쫄깃한 치킨의 다리에 매콤달콤한 간장의 소스, 튀김의 안에 숨겨진 폭발하듯이 터져나오는 육즙을 맛본 자는 절대 치킨의 유횩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에이~ 두 사람들 다 뭐예요 그게~ 겉 부분은 바삭하면서도 쫄깃하고, 달콤하게 조려진 사과가 입안을 행복하게 만드는 애플파이가 최고인 것이 당연하잖아요?”
“........”
“........”
“........”
그렇게 지금 이 사단이 난 것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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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그러니까....서로 좋아하는 음식이 최고라고 싸운거야? 초딩...아니 애들도 아니고...”
싸움의 이유를 알게 된 강하는 맥빠지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아뇨!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요!”
“그렇다! 이 훌륭한 맛을 최고라고 느끼지 못한다니,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 아닌가!”
“그러니까 셰프님은 어떤게 가장 최고라고 생각하시나요?”
“......끄응...”
그런 세 사람의 질문에 강하는 골머리를 앎았다.
모든 요리는 제각각의 취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강하는, 감히 요리에 대한 위아래를 나누지 못했다.
같은 요리를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면, 조리 실력 같은 것으로 판가름 내릴 수도 있겠지만, 그녀들이 고른 요리들은 전부 자신이 만들었던 것들 뿐이라 어떤 요리가 더 맛있다. 라고 결정하기에도 힘들었다.
그렇게 한참 고민에 빠져있던 강하.
응? 무슨 일이에요?
그러던 와중, 강준이 놔두고 나온 감자의 뒤처리를 모두 끝낸 파렌이 뒤늦게 홀에서 나와, 현 상황을 물었다.
아, 이게 대충 어떻게 되는 거냐면....
수군수군. 속닥속닥.
그런 파렌에게 귓속말로 사건의 전개를 대충 알려주었다.
흐음....그렇게 된 것이군요?
그래, 혹시 넌 좋은 생각 없냐? 내가 고르기에는 좀...
으음....아! 이건 어떠신지?
오! 뭐라도 떠올랐어?
그러니까....
강하의 말에 머리를 굴리며 생각하던 파렌은 감았던 눈을 번뜩 뜨더니, 강하에게 귓속말로 뭐라뭐라 소근거렸다.
오....오...! 좋은데? 좋아! 그걸로 가자!
파렌의 의견을 들은 강준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연신 따봉을 날려댔다.
그럼 지금 바로 준비해야겠네...
저도 돕겠습니다!
그렇게 무슨 일을 꾸미던 두 사람은 재빠르게 주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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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타임이 끝난 스타 주막.
그런 주막의 입구에는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 쓰여진 표지판이 하나 달려있었다.
[특별 행사! 진행 중!]
스타 주막에 갑자기 열린 행사라는 말에, 손님들의 관심도가 쭉쭉 올라갔다.
처음 보는 색다른 요리들을 만들어내는 스타 주막이 이번에는 무슨 일을 벌이는지 모두들 궁금해 하며 주막으로 들어섰다.
그 행사란 바로, 주문을 마친 손님에게 소량의 볶음밥과 간장치킨, 그리고 애플파이를 나누어준 뒤, 손님들에게 평가를 받는 식의 행사였다.
자신이 결정하기 힘들다면, 손님에게 맡기라는 파렌의 의견을 적극 채용한 결과였다.
그런 의견에 세 사람도 동의한 지금.
손님들의 판단이 그녀들의 승패를 가릴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흠....자네는 어떤 것이 마음에 드는가?”
“에혀.....세 가지 요리 전부 훌륭하니, 무엇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구만...”
“나도 마찬가지일세...이것 참 난제로다...”
“허나, 이 셋 중 하나를 기필코 골라야 한다면....!”
“이것 이겠지...!”
그렇게 음식을 맛본 손님들의 선택이 하나 둘 씩 이루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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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 장사는 이걸로 마무리 되었고....알고 있으니까 진정 좀 해!”
주막의 하루가 끝나갈 무렵.
손님들도 다 빠져나갔고 뒷정리도 끝나자, 그녀들은 강하의 앞 까지 달려와 투표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벼루야, 손님들이 적어낸 종이가 담긴 상자는 챙겨왔지?”
“ㄴ....네에! 끙차...! 여기 있어요!”
평가를 내린 손님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급조해서 만든 나무상자를 끙끙대며 들고 오던 벼루가, 강하의 앞에 상자를 내려놓았다.
“자....다시 한 번 말하지만, 손님들의 취향은 아주 각양각색이야, 이 투표에 졌다고 결코 그 요리가 다른 요리보다 뒤떨어지거나 하지 않...”
“알았으니까 빨리 열기나 하거라!”
“참나.......그럼 연다?”
이 승부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려던 강하의 말을 끊어버리며 재촉하는 류월.
강하는 그런 흑도마뱀을 노려보며 상자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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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마지막 종이는....역시 볶음밥!”
총 62개의 종이 중, 49표나 볶음밥이였다.
“역시! 볶음밥이 최고가 맞았네요. 후훗.”
“이.....이건 말도 안 된다...!!!!”
“사기죠? 맞죠?”
그런 결과에 만족하며 팔을 허리에 올리며 미소를 짓는 향이와.
자신의 눈 앞에서 일어난 일을 인정 못하는 두 사람.
“음...보자, 투표할 때, 이걸 고른 이유를 간략하게 적어달라고 쓰여 있거든? 대부분의 의견이 세 가지 음식 전부 맛있는데 그나마 익숙한 쌀이 들어가서.....라네?”
강하는 두 사람에게 손님들이 적은 종이들을 내보이며 확인 사살 시켰다.
하긴, 한의 사람들은 대부분 한식을 먹던 사람들이였으니, 밀가루로 만든 애플파이는 빵 자체가 익숙하지 않고, 치킨은 느끼한 맛이 강하긴 하니, 그나마 먹어본 적 있는 쌀로 만든 볶음밥이 더 많은 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후후...제가 이겼네요~그럼....약속을 이행하실까요?"
“아니! 그렇게 따지면 저도 애슐란 사람들한테 먹일래요!!”
“맞다! 이건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이 곳은 한인걸요?"
".....크윽...."
"뭐라 반박할 수가 없잖아...."
그렇게 한번에 그들의 주장을 논파한 향이는 입가에 번번히 퍼진 미소를 드리우며, 무언가가 적힌 표지판을 두 사람에게 들렸다.
[볶음밥이 제일 맛있습니다!]
[저희가 잘못 알았습니다!]
".........."
"..........."
볶음밥이 가장 맛있다고 적혀있는 표지판을 든 두 사람의 얼굴이 급격히 썩어들어갔다.
"향아....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이거, 힐라님과 류월님이 투표에서 떨어진 두 사람이 하자고 먼저 말씀하신걸요?"
"........거참..."
그런 광경을 바라보던 향이는 이건 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향이에게 물었지만, 애초에 이런 벌칙을 하자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바로 힐라와 류월이였던 것이였다.
말 그대로 자업자득.
스스로 뿌린 씨를 수확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강하는 더 이상 무어라 말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세 여자의 대결은, 힐라와 류월이 썩은 얼굴로 하룻동안 표지판을 들고다니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뭐...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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