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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화 〉 그녀는 방 안에서 무엇을 하는가? (89/289)

〈 89화 〉 그녀는 방 안에서 무엇을 하는가?

* * *

한적한 브레이크 타임의 주막.

“모두들 오전 시간 동안 수고 많았어, 푹 쉬고 있어.”

강하는 오전동안 열심히 뛰어다녔던 주막의 직원들에게 손을 흔들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올랐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주막의 직원들.

“......요즘 쉐프님 이상하지 않아요?”

적막한 공기를 깨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바로 힐라였다.

그렇다.

요즘의 강하는 어딘가가 수상한 기운이 돌았다.

보통 같으면 주막에 들어앉아 새로운 요리를 구상하거나, 파렌을 데리고 이것저것 시키거나 하던 강하가.

오전 장사를 끝내는 브레이크 타임만 되면, 자신의 방에 들어앉아서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긴 하네요....무슨 일인지 걱정도 되요...”

그런 힐라의 말에 동의하는 향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강하의 요즘 행동에 시선이 가는 것이 힐라 만이 아니었다.

“어떤 근심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벼루는 노트에 끄적거리던 손을 멈추고 말했다.

저번의 삽화 건으로 대량의 질 좋은 종이로 만든 노트와 펜을 대량으로 선물 받은 벼루는 시간이 남으면 언제나 노트에 그림을 그리고는 했다.

“근심? 형이? 글쎄....”

강하가 어떤 고민거리가 생기면, 언제나 그것을 최선적으로 해결하는 성격임을 아는 혁수는, 그런 강하가 방구석에 박혀서 끙끙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벼루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혹여 맛있는 것을 나누어 주기 아까워서, 몰래 숨겨두고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감히 이 몸을 빼고 그런 짓을 했다가는 그 녀석을 아주 그냥...!”

언제나 먹을 것이 머릿속에 가득한 류월은 주먹을 쥐며 발끈하듯이 말했다.

“에이 셰프님이 류월님도 아니고 그럴 리가...헙!”

“뭬야?”

어느새 스타 주막에서 일하며, 열정적으로 민위어를 배우던 파렌이 그런 류월의 말에 웃으면서 대답했다가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는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늦은 모양이다.

“오냐, 네 놈이 그 잘난 류월님의 앞에서 그런 말을 지껄이면 어찌 되는지 함 보자꾸나!”

“으아아!!! 죄송해요오!!!”

파렌의 말에 열 받은 류월이 머리 위에 작은 번개를 빠직거리며 파렌에게 달려들었다.

파렌은 그런 류월에게 도망치며 자신의 잘못을 빌었다.

“.....파렌은 다 좋은데, 눈치가 좀 없는 것 같아...”

“그러게요...”

“음...”

이미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주막의 직원들은 늘상 보는 풍경처럼 또 시작이네 같은 얼굴만 지을 뿐, 그다지 류월을 말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정작 류월도 화를 내기는 하지만, 진심으로 화가 나서 파렌을 피떡으로 만들거나 하지도 않았다.

“아..!! 아아!!!! 제가 잘못.....푸하!!!으후랑ㅁ너아”

“어허! 애슐란 사람이면 애슐란 언어를 해야 하지 않느냐?”

­살...살려...살려줘요...!­

“에혀...너도 한에 와서 언어를 잊었나 보구나...헬프가 아니라 워터 아니더냐, 자 따라하거라! 물은 워터!”

­부그륵....부그르르륵....­

류월이 파렌의 머리를 붙잡고, 물속에 집어넣기는 했지만....뭐....죽지는 않을 테니 괜찮을 것이다.

“그럼 셰프님은 저 방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글쎄요.....그래도 각자의 시간도 필요하니 저희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그렇기는 한데....너희들은 궁금하지 않아? 과연 셰프님은...저 방에서 우리 몰래 뭘 하고 있을까?”

“뭐....춘화집이라도 보는 거 아냐?”

“풉!”

“추..추추...춘화집이라니!!!”

생각 없이 툭 던진 혁수의 한마디에, 향이는 벌떡 일어나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

“강주...아니 셰프님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참고로 형은 가슴이 큰 여자를 좋아하더라.”

“가..가가...가슴...!”

“에? 진짜로? 우와~ 강준 아씨, 의외의 성벽...”

“......엄...그냥 조용히 그림이나 그려야지....”

뒤이어 말하는 혁수의 말에, 향이의 얼굴은 새빨개져서 제대로 된 언어가 나오지 않고 더듬더듬 거렸다.

“아씨의 이상형은 어떤데?”

“예? 사부가 그걸 알아서 우짠답니까?”

“아니 궁금하잖아~”

“음...분명 형이 즐겨보던 야ㄷ...아니 춘화집에 나오던 여자들은....”

“그만!”

어느샌가 히히덕거리며 강하의 은밀한 취향에 관해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에게 큰소리를 지른 향이.

“지금 올라가서 셰프님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겠어요!”

“응? 아니, 금방까지 개인의 시간은 보호해주자고 말한 사람이 누군데...”

“셰프님이 그런 저열하고 불결한 책을 보도록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버럭 소리를 지르던 향이의 발이, 2층 계단으로 향했다.

“...어쩌죠? 사부?”

“흠....이렇게 된 이상...”

“이상?”

“우리도 따라가 보자!”

“역시 사부! 우리가 못하는 걸 태연하게 해버려! 그 점에 전율해! 동경하게 돼!!”

“음? 무슨 일이냐?”

“향이 부 주방장님은 어디 가신대요?”

“어...저....가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에휴....모르겠다.”

그렇게 스타 주막의 직원들은 향이를 앞세워서 당당하게 강하의 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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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이 소란의 당사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후후...오늘도 이 시간을 기다렸다....!”

강하는 자신의 방에 고이 숨겨놓은 ‘어떤 것’을 꺼내 보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 녀석들에게 보이면, 달라고 할 것이 뻔하니, 절대로 안 알려주지....내 것도 얼마 없는데...”

그렇게 희희낙락 웃음을 지으며, 즐거운 순간을 만끽하려던 그 순간.

“셰프님!”

“우왁!! 뭐...뭔데!”

갑작스럽게 열린 방문으로 향이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형, 뭐 하는지 궁금해서...어라? 그건....”

“하 씨.....조졌네...”

그런 덕에 자신이 들고 있던 것을 급히 숨기지 못했던 강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강하가 애지중지 아끼며, 자신만 먹으려고 아껴두었던 것.

바로 커피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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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일반적으로 커피 열매(커피체리)의 씨앗인 커피콩을 볶은 뒤 갈아서 물에 우려내서 만드는 음료.

매달 정기적으로 애슐란의 하인즈 상단에서 보급을 받는 강하는, 상단에서 새로 발견한 것이라며 그녀에게 보였던 것이 시작이었다.

현대에서 살았을 때도, 매일 커피를 마실만큼 커피를 좋아하던 강준에게는 아주 좋은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허나,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소량이었던 커피콩을 받은 강하는 스타 주막의 직원들 몰래, 브레이크 타임 때마다 자신만의 다과회를 즐기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상황을 직원들에게 딱 들킨 것이었다.

“것 봐라 이놈아! 내 말이 맞지 않는가?”

“그러게요....정말 류월님의 말이 맞을 것이라고는....”

“죄...죄송해요! 저는 셰프님이 혹시 외설적이고 추잡한 춘화집이라도 보고 계신 줄 알았어요...”

“하..! 하하! 그럴 리가 있겠어?”

그렇게 모두에게 들킨 상황.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질 상황이라면 역시나.

“그래서, 그것은 맛있는 것이냐?”

“형! 치사하게 자기만 마시고!”

“커피라는 것은 어떤 맛이 나는 것인가요?”

“하.....너희들도 한잔 씩 마셔 볼래?”

이미 반짝거리는 시선으로 커피콩을 바라보는 직원들에게, 강하는 커피 한잔을 권했다.

“좋아요! 전 마셔보고 싶어요!”

“저...저도...”

“새로운 음식이라면, 꼭 먹어봐야지요!”

“그래....뭐...별 수 없나?”

이미 체념의 한숨을 푹 내쉰 강준은, 새파란 커피콩은 다시 숨겨놓았던 곳에 놔두고, 자신이 직접 로스팅한 짙은 갈색의 커피콩을 꺼내었다.

그리고 오직 커피만을 위해 가져다 둔 맷돌을 꺼내, 직접 커피콩을 갈아주었다.

은은한 커피의 냄새가, 작은 강하의 방에 퍼져나갔다.

면 보자기를 하나 꺼내, 컵 위에 올려둔 뒤, 미리 준비한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를 이용해 면 보자기를 한번 적셔준다.

그 다음, 갈아낸 커피 가루를 넣고, 천천히, 마치 가루 윗부분에만 물을 적시듯이 조금씩 물을 부어주면, 커피 가루 안에 든 이산화탄소가 부풀면서, 마치 빵이 발효하는 것처럼 부풀어 오르는데, 이것이 바로 커피 번(빵) 현상이다.

중심부를 통해, 천천히 돌려가며 물을 부어주면, 한 방울, 두 방울씩 커피가 응축된 방울들이 컵 아래로 떨어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흔히 커피 원액, 에스프레소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대로 먹으면 매우 쓰기에, 물을 타서 마시면 아메리카노, 우유를 타서 마시면 라떼가 된다.

그들에게 에스프레소는 아직 일렀기에, 따뜻한 물을 탄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건넸다.

“자 마셔봐.”

“오...좋은 향이 나요...”

“차와 비슷한 걸까요? 만드는 방법은 전혀 다르지만...”

“잘 마시겠다!”

그렇게 하나씩 찻잔을 받은 직원들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반응.

“푸웁...! 무...뭐냐 이것은? 쓴물이지 않느냐!”

“우에....혀가 너무 써요...”

“크..크흡...이건 좀,,,”

“뭐 커피는 원래 그런 맛으로 마시는 거지..”

그렇다.

커피는 녹차와는 다르게 쓰면서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풍미를 맛보는 것.

초심자들에게는 역시 커피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후....오랜만의 아메리카노...좋은데?”

“씁쓸하지만...느껴지는 풍미가 아주 좋아요!”

“와...이건 코가 행복한 차네요...향이 너무나 다채롭습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커피를 즐기던 혁수.

온갖 차를 좋아하던 향이.

한창 요리를 배우며 코와 혀의 민감도가 상승한 파렌은 그런 커피를 즐기며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자자~ 너네한테는 너무 쓰지? 우유를 타면 좀 먹을 만 하니까, 우유 타줄게.”

“네...고맙습니다...”

“어우...이런 걸 어떻게 먹는대요? 신기하네...”

“나 원 참....이런 것을 좋다고 마시다니...이해가 되지를 않는군.”

그렇게 불평불만을 하던 세 사람, 류월과 벼루, 그리고 힐라는 질색을 하며 잔을 내려놓았다.

“뭐...애들 입맛에는 맞기가 힘들기는 하지.”

“뭣이?”

“예?”

그런 세 사람을 바라보던 깅하가 지나가듯 중얼거린 말에 류월과 힐라가 발끈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다시 먹으니 그럭저럭 먹을 만 하구나...음...! 좋다!”

“류월님도 그러세요? 이 커피란 거,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맛이네요~ 정말 ㅈ...좋아요!”

애들 입맛이라는 포인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내려놓았던 찻잔을 다시금 들어 올린 힐라와 류월이 굳은 입가를 억지로 벌려가며 커피를 들이켰다.

“이것 가지고는 모자라는구나! 한 잔 더 주거라!”

“옳소! 저도 한 잔 더요!”

“......저는 그냥 우유 타 주세요...”

그것도 모잘라서 한 잔 더를 외치는 두 사람과,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던 벼루는 우유를 요구했다.

그렇게 그들은 4잔이나 커피잔을 비웠고, 그날 밤, 커피 속에 든 카페인 때문에 잠들지 못해, 괴로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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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에휴....아까운 내 커피....”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나버린 커피콩을 바라보던 강준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나저나 들킬 뻔했네...혁수 그 개자식...쓸때없는 말이나 하고 말이야...”

그리고 자신이 커피콩을 숨겨두었던 서랍의 바닥을 들어내어, 한 책을 들어내었다.

“후후....이것만큼은 죽어도 못 들키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진짜 비밀.

강하는 오늘도 헤벌쭉 하게 웃으며 춘화집의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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