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 아니;;; 에반데;;; (93/289)

〈 93화 〉 아니;;; 에반데;;;

* * *

뚜벅. 뚜벅.

“저...저자가 바로 그 자인가?”

“허어....내가 보기에는 전혀 그리 보이지 않건만...”

어느 날, 궁궐에 찾아온 한 손님은 궁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애슐란 사절들의 만찬을 책임진 숙수.

향종 왕제께서 아끼는 인물.

한의 전국에 이름을 떨친 스타 주막의 주인.

그리고, 아는 사람들은 아는 한의 수호신, 흑룡 류월을 길들인 자.

들으면 들을수록 점차 그 대단한 위신을 떨친, 인물은 꽤나 높은 벼슬을 가진 자조차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인물의 실물을 본 자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밝은 갈색의 긴 머리를 땋은 머리카락.

성인 남성의 절반을 겨우 넘길 정도의 작은 키.

치켜 올라간 눈매에 아직 앳된 얼굴.

그리고 긴 치마를 입은, 영락없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

그런 그녀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지켜보던 이들은 고개를 숙였으나, 하나같이 생각했다.

‘저 아이가 정말 그 소문의 인물이 맞나?’

하나같이 주변인과 소곤거리며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

‘아...귀찮네 진짜...’

그런 시선을 전부 알아채고 있는 강하는 얼굴을 찌푸리며 터벅터벅 걸었다.

원래 같았으면 오늘도 스타 주막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을 그녀가 왜 왕궁에 왔는가?

“여기 맞아?”

“ㅇ...예! 이곳에서 향종 왕제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떤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춘 강하는 자신을 안내한 한 하인에게 물었다.

“하...오늘은 또 뭔데 날 부른 거지...?”

강하는 만사 귀찮은 듯이 목을 돌려 스트레칭을 했다.

어젯밤. 스타 주막으로 찾아온 궁궐의 사람이 말하길, 왕제가 강하를 불렀다는 것이다.

무슨 일로 자신을 불렀냐고 물어도, 그자는 왕제가 직접 말할 것이라는 말만 남기고 순식간에 돌아가 버렸다.

“전하! 강하 아씨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들라 하여라.”

하인이 목청이 터져라 큰 소리를 지르며 강하가 왔다는 것을 알리자, 방 안에서 왕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십시오.”

“그래, 수고가 많네.”

출입을 허락 맡은 강하가 문을 열었다.

스타 주막의 홀에 1/3 정도 될 만한 꽤나 넓은 방이 그런 그녀를 반겼다.

이렇게 넓은 방에서 혼자 지낸다니, 왕은 역시나 왕이라는 것인가....

“오. 왔는가, 기다리고 있었네”

“....오늘은 또 무슨 일이랍니까? 여기까지 부르시고.”

그런 강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향종은 자신의 방에 들어온 강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반겼다.

이미 그런 그의 미소에 순수한 마음 따윈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강하는 가볍게 무시하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뭐...자네는 몇 개월 전, 애슐란의 사절단들을 기억하나?”

“예? 아 예....뭐....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냥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고, 이미 공주님이랑 거래도 했지만 말이지....’

이미 애슐란의 공주, 아델리아와도 인연이 있는 강하였기에, 향종이 갑작스레 애슐란의 사절단 이야기를 꺼내자, 순간 흠칫한 강하는 대충 안다고 얼버무렸다.

“그 사절단들이 애슐란에 돌아가고 나서, 좀 이상한 소문이 퍼지더군.”

“소...문이라 하시면?”

“한에는 엄청난 요리 실력을 갖춘 자가 있다 하니, 그자가 써낸 요리비법을 애슐란의 공주가 애슐란에 퍼뜨리자, 온 사람들이 그 비법에 감탄하여 만 백성이 박수를 보냈다....라....”

“.........”

“여기에 나오는 그 정체 모를 자.....나는 그 정체를 알 것 같은 기분이라네.”

들켰다.

아니 그 왕녀는 자기가 궁금하다고 해서 써 줬더니만, 이렇게까지 일을 벌였다고?

무...물론 많은 사람들이 기초 조리법을 알고,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것을 바라기는 했지만.....

“듣자 하니 그자의 정체를 알아내어, 위대한 공적을 찬양해 석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고 하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석상? 지금 이 한의 궁궐에서도 꽤나 높은 양반들도 내 앞에서 굽신 거리는 마당인데....

물론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너무 유명해져도 귀찮아진다고....!

향종의 말에 따르면, 강하는 이미 애슐란에서는 유명인사인 듯해 보였다.

아직 그 비법서를 쓴 내 정체를 알지는 못하지만, 뭔가 귀찮아질 듯한 느낌이...

“아..하하...그...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정말 대단하군요...?”

“.......”

“예, 제가 그 비법서를 써냈습니다.”

어떻게든 얼버무리기 위해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지만, 향종의 침묵에 결국 강하는 순순히 털어놓게 되었다.

“이것 참....애슐란의 공주가 그렇게 활발하고 거침없는 자 일 줄은 몰랐군...

그나저나 어떻게 밤의 궁궐을 빠져나간 것인가...”

대충 비법서를 쓰게 된 경위를 설명하자, 향종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그렇게나 심각한 상황입니까?”

강하는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심각한 표정을 지은 향종에게 물었다.

“....이걸 받게.”

“예? 이...이것은 무엇입니까?”

“일단 읽어보기나 하게.”

그런 강하에게 향종은 품에서 꺼낸 종이를 강하에게 들이밀었다.

무엇인지 묻는 강하의 질문에도, 향종은 별 말 없이 그 종이 안의 내용을 읽어 보라고 할 뿐.

궁금증을 참지 못한 강하는 냉큼 그 편지를 열어, 내용을 읽어보았다.

“.....우리의 친구인 한, 이번에 돌아오는 개월제....개월제? 이건 뭐지....개월제를 맞이하여, 이를 같이 즐기기 위해 이렇게 초청장을 보내오니, 부디 조리 비법을 쓴 자와 함께 사절단을 파견.......예???”

사절단? 조리 비법을 쓴 자? 다 같이?

“이...이게 사실입니까?”

“그렇다. 참....이 나도 그 편지를 받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대충 정리해 보자면.

이번에 애슐란에서 열리는 기념날에 한의 사절단을 초대한다는 내용.

거기까지는 뭐, 괜찮았다.

나를 초대하기 전까지는.

“한과 애슐란이 서로를 텄다고는 하다만, 아직까지 한의 입지는 그렇게 동등한 입지라고 볼 수는 없겠지. 우리 입장에서는 이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다는 소리네.”

말 그대로, 학창 시절, 덩치 큰 친구가 –어? 그거 좋아 보이네? 나도 좀 빌려줘.­ 하는 곤란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됐으니, 이번 애슐란으로 떠나는 사절단에 같이 참가해 줘야겠네.”

“하..하지만...”

“애초에 그대가 뿌린 씨앗이니, 그대가 정리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

할 말이 없었다.

스타 주막을 개업해야 하는 강준으로서는 대충 거절하고 싶기는 하지만, 향종의 정론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럼, 사절단이 애슐란으로 떠나는 것은 약 닷새 후, 그때까지 준비하게.”

“....알겠습니다.”

“아, 데려갈 인물이 있다면 데려가도 좋네, 자네 주막에는 애슐란과 인연이 있는 자들도 있어 보이니 말이네.”

울며 겨자 먹기로 향종의 제안으로 보이는 명령에 대답한 강하를 보던 향종이 문뜩 떠올린 내용을 강하에게 말해주었다.

확실히 원래 애슐란에 터를 잡아 살았던 힐라나, 애슐란 왕궁 직속 요리인이었던 파렌도 있으니, 애슐란에 데려가면 좋아할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저...근데 왕제저하...”

“응?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가?”

“그....류월은 어찌합니까?”

“.........”

흑룡, 류월.

한의 수호신이자, 걸어 다니는 자연재해.

“허...참...내 그 생각을 하지 못했군.”

언제나 재미있어 보이는 일에는 무작정 들이받고 보는 류월의 성격상, 이런 일에는 절대로 따라오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녀석이었다.

허나, 친분을 다지기 위해서 가는 장소에, 공포의 상징이자 선망의 존재인 용을 데려가는 것이 과연 맞는가...?

“제 생각이지만 그 도마뱀 녀석은 절대로 따라옵니다.”

“풉...! 도...도마뱀...”

그런 자신의 생각을 향종에게 전해주자, 향종은 위대한 흑룡을 도마뱀이라는 것에 격하게 반응하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내 한의 전 사람을 찾아봐도, 그 흑룡을 도마뱀이라고 부르는 자는 자네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런 위대한 존재를 도마뱀 취급하는 자네가 있다면야 뭐....관리를 부탁하네.”

“...예?”

“애초에 자네도 인간이라고 하기 힘들지 않겠는가? 그리고 흑룡은 특히나 자네에게 꼼짝을 못하니, 잘 부탁하네.”

이 자식 나한테 떠넘기고 있잖아?!

어느새 다시금 그 특유의 능글맞은 얼굴을 지은 체, 강하에게 류월 문제를 떠넘기는 왕제였다.

“그럼, 조만간 다시 연락하지,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네. 그럼.”

“아...아니! 잠깐만....야 이!!!”

그렇게 대화를 어거지로 끝낸 향종이 강하를 방 밖으로 보내버렸다.

“이런...그 쌍판대기를 그냥....”

그렇게 덩그러니 방 밖으로 나오게 된 강하.

“.....하....아 몰라 시펄...일단 돌아가자....”

한숨을 푹 쉰 강하는 별수 없이 터덜거리며 스타 주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