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아니 진짜 에반데;;;
* * *
“그래서, 우린 애슐란으로 가게 됐다.”
오늘의 장사가 끝난 늦은 밤.
언제나 그렇듯 주막의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언제나 이 시간에 나누고는 했다.
뭐, 보통 때야 내일 메뉴에 신메뉴를 넣어볼까, 같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애슐란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바로 격하게 반응을 보이는 것은 역시나 파렌이었다.
그는 본디 애슐란 왕가 직속 요리인 이었으며, 고향을 떠나 이 한의 스타 주막에서 요리를 배우며 일하는 처지.
그런 파렌이 오랜만에 고향을 찾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데 역시나 대단하세요~ 애슐란 분들도 셰프님의 재능과 실력을 높게 봐주신 거로군요?”
“아...뭐....그렇긴 하지...?”
그리고 애슐란에 초대되었다는 것에 순수하게 감탄하며 눈을 반짝이는 향이에게, 강하는 떨떠름하게 웃어 보였다.
‘알아! 내가 개쩌는 것쯤은 안다고! 근데 이건 좀;;;;’
현대에 있었을 때도, 일류 요리사들의 인터뷰가 실린 잡지들 중, 메인 1면을 장식해봤던 강하는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었다.
대충 보니까, 사절단이라는 말은 변명이고, 거의 귀빈 취급하며 데려오려는 것에 강하는 보이지 않는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그럼 언제 가는검까?”
“대충 닷새 후에 출발할 예정이라고 하던데....이미 애슐란 행 배는 하전에 이미 정박하여 있다고 하더라...”
애슐란 양반들은 기어코 왕실의 문양이 그려진 기를 매단, 전용기를 이미 대령했다고 한 소식까지 들은 강하는 더더욱 짓눌렸다.
“그럼.....주막은? 어떻게 함까?”
“.....그게 문제라는 거지...”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 가장 큰 문제를 들이민 힐라가 물었다.
배를 타고도 약 5일은 걸리는 거리, 축제다 뭐다 하면서 걸리는 시간 등등....넉넉잡아서 약 20일은 걸릴 정도의 긴 시간 동안 주막의 문을 닫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주막에 남을 사람을 정해서 따로 장사를 할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들었는데....”
현재 스타 주막의 조리인은 3명.
주막의 주인이자 조리장인 강하.
그리고 그런 강하의 수제자, 라고도 할 수 있는 향이와 파렌.
향이 같은 경우는 이미 강하가 궁궐을 다니면서 주막을 맡길 때도, 혼자서 척척 장사를 해낼 만큼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아마 강하가 없더라도, 향이와 그를 보조하는 파렌이 남는다면, 장사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허나.
“저...저는 강하 셰프님이랑 함께 있고 싶어요....”
“고향인가....오랜만에 가족을 만날 수 있겠어...!”
향이는 강하의 곁에 있기를 원했고, 파렌은 오랜만의 고향 생각에 들뜨고 있는 상황.
결국 강하는 스타 주막의 휴업을 결심했다.
그리고, 가장 골머리를 썩이는 존재가 있었으니....
“호오....애슐란인가....몇 백년간 이 한에서만 살아왔었지....다른 나라로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살아있는 천재지변.
한의 수호신.
흑룡 류월.
“하.....”
류월의 성격이나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녔다.
현대로 치면, 다른 나라로 떠난 사절단이 적은 확률이지만, 터질지도 모르는 핵폭탄을 같이 데려가는 상황.
강하가 옆에 있다면,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테지만, 애초에 핵폭탄을 들고 간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잘못하면 외교상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 수도.....
“.....너는 여기 남으면 안 되냐?”
“뭣?! 그게 무슨 소리더냐? 이 몸 혼자 여기 남으라니!!”
이미 류월 그녀도 애슐란으로 떠나는 여정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기대하고 있는 심정이었기에, 강하의 요구에 펄쩍 뛰며 거절했다.
“후....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닷새 후! 우리 전원, 애슐란으로 떠난다!”
“““와아!!!!”””
결국 복잡한 머리가 사고를 정지하며, 될 대로 되라 식이 되어버린 강하가 외치자, 스타 주막의 직원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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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후, 이른 아침.
나뭇잎들이 빨갛고 노랗게 익어가는 계절이 다가오는지, 아침의 공기는 시원하고 상쾌한 숲의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스타 주막의 직원들은 모두 주막의 입구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자! 다들 모였지?”
““““넵!”””” “여기 있다.” “아 졸려...”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 같네...’
오늘은 드디어 애슐란으로 떠나는 날.
언제나 시큰둥한 혁수 빼고는 모두들 눈을 반짝이며 떨리는 가슴을 안고 있었다.
마치 수학여행을 인솔하는 선생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 강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자, 우리를 싣고 하전으로 갈 마차가 곧 도착한다고 하니, 일단 기다리자.”
“아...마차....”
“어우..! 그거만 타면 전신이 뻐근해서 죽을 맛이라니까....”
“....엉덩이가 터질지도...”
곧 마차가 온다는 말에, 방금까지의 높은 탠션의 주막 직원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한때, 류월 일 때문에 지겹도록 마차를 탔던 향이와 혁수, 그리고 벼루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뭐...별수 없잖아, 이렇게 많은 인원을 데리고 그렇게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으니까...”
지금은 반룡으로 변한 신체 덕분에 그렇게까지 마차를 타는 것이 힘들지 않은 강하였지만, 한때 멀미로 고통받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들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한의 지역 특성상, 산을 건너는 길이 많았기에, 더더욱 힘든 여정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마차를 타기 싫더냐?”
“당연하죠! 어우....그걸 타고 가다 보면 차라리 걸어가고 싶다니까?”
그런 일행들의 모습을 팔짱을 낀 체, 지켜보던 류월이 혁수에게 묻자, 혁수는 오만인상을 다 지으며 불평을 냈다.
“흠.....그럼 마차를 타지 말자꾸나.”
“예?”
“아니 넌 또 뭔....”
대답을 들은 류월은 잠시 고민에 빠지더니, 뜬금없이 마차를 타지 말자는 선언을 하고 말았다.
당연히 얼토당토않은 소리였기에, 강하와 혁수는 그게 뭔 개소리냐는 눈빛으로 류월을 바라보았다.
“잊었느냐? 이 몸이 어떤 존재인지?”
“그야 거대한 도마뱀...”뭣이?“....아니 위대한 흑룡입죠, 뭐...”
“그래, 그런 이 몸이 고작 너네들을 옮기는 데 큰 힘이 필요할 것 같으냐?”
“....그럼 뭐 어떻게 하자는 거야? 설마 네가 우리들을 태우고 날아가기라도 할 거냐?”
“왜? 싫으냐?”
“....뭐? 그럼 진짜 널 타고 가자고?”
류월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류월 혼자서만 자신이 제일 잘났다는 듯이 허리에 손을 올린 체, 기고만장한 태도를 취했다.
“기를 이용해서 모습을 감추는 것쯤은 이 몸에게 식은 죽 먹기니 말이다.”
“흠....”
류월의 말도 일리가 있다.
일단 마차보다 빠르고, 탑승감은....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공중을 날아간다는 체험은 한평생 겪어보기 힘든, 귀한 체험이니 말이다.
“와...! 그럼 류월님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런...내가 살면서 드래..아니 용의 등에 탈 기회가 생기다니....!”
“이건 안하면 손해 아님까? 저는 찬성!”
그리고 주막의 사람들조차 죄다 타고 가자고 하는 모양새니...
“.........좋아, 그럼 하전까지 가는 길은, 흑룡한테 맡기자.”
“잘 생각했다!”
주막의 직원들의 기대를 이기지 못한 강하는 결국, 류월의 의견을 수락했다.
“음...일단 잠시...”
그러자, 류월이 손가락을 딱! 하고 울리자,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무언가 투명한 막이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우..우왁!!”
“어푸...! 이건...그때 그거?”
그 투명한 막이 강하를 뚫고 지나가자, 이 전에 이런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렇다. 네 녀석들이 이 몸을 처음 보았을 때와 비슷한 봉인막 같은 것이다. 뭐, 봉인의 효력은 없고, 다른 인간들에게 보이지 않게 되는 효과밖에 없다.”
투명한 막은 점점 원형의 돔의 형태로 퍼져나가더니, 꽤나 거대한 넓이를 자랑하던 스타 주막을 전부 덮고 나서야, 커지는 것을 멈췄다.
“자...그럼..!”
투명한 막이 멈춘 것을 확인한 류월이 다시금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몸에서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안개는 점점 높게, 점점 커지더니, 고층 아파트의 크기가 되자 커지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그 안개가 점차 걷혀가자, 그 안에 있는 것은.
자연재해.
압도적인 먹이사슬의 정상층에 존재한 존재.
흑룡 류월.
그녀의 몸은 검은 비늘로 뒤덮여있고, 살짝 찔리기만 해도 온몸이 터져나갈 것 같은 발톱이 땅을 긁었다.
마치 거대한 산봉우리 같은 커다란 어금니가 그르렁거린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듯한 어둡고, 치렁치렁한 뿔이 이마에 박혀 있었다.
“...............와..”
스타 주막의 사람들은 모두들 자신의 입이 열린 것도 모른 체, 침을 흘리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은 저 존재의 앞에서는 한 톨의 먼지 정도 밖에 되질 않는다는 것을.
[자, 모두 준비는 되었나?]
“으아...! 어우 귀청이야....다들 괜찮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류월의 말에 모두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그럼 출발하기 전에....슬슬 너에게도 알려 줘야겠구나.]
“응? 뭔데?”
이제 모두를 태워서 하전에 있는 항구로 가려던 찰나, 류월이 강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녀석도 반은 어엿한 용, 슬슬 인간의 모습이 아닌, 용의 모습으로 바꾸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겠나?]
“아아...그렇구나......어!?!?”
내가....저런 모습으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