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오랜만에 손님으로.
* * *
짭짤한 소금의 향기가 풍겨온다.
철썩거리며 넘실거리는 파도의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이곳은 바다의 도시, 하전.
“오오...! 바다의 내음....!”
힐라가 즐거운 듯이 팔을 벌리고는, 한껏 바다의 향을 들이마셨다.
도술로 모습을 감춘 우리는, 한적한 공터에 내려서 다시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닌, 귀중한 체험이었다.
“그러고 보니, 힐라는 언제 이 한으로 왔었지?”
“글쎄요...아마 200년 전쯤...? 그 이후로는 주욱 하백 도련님 가에서 일해 왔으니. 바다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숲으로 둘러싸인 하백의 집에서 200년간 지낸 힐라에게 오랜만의 바다는 꽤 즐거운 모양이었다.
“....할머니...”
“누구얏!!”
그리고 누군가가 조용히 속삭인 말에 발끈하며 뒤돌아 윽박지르는 힐라.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아름다운 엘프인 그녀이지만, 나이 이야기는 여자라면 절대 금지인 것은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하하! 할머니라니, 그렇담 이 몸은 그 할머니보다도 더 할머니인 모양이군!”
나이 이야기가 나오잔 한껏 거드름을 잡으며 어깨를 으쓱하는 류월.
“...너는 할머니라기보단 애지 애.”
“이...! 그게 무슨 소리더냐! 언제나 진중하고, 생각이 깊은 이 몸이 애새끼라니!”
“애초에 그렇게 나이가지고 부심 부리는 게 애가 아니고 뭐냐?”
“이....!!!! 아...!!! 크윽...!!”
단호하게 팩트를 박아 넣는 강하의 말에, 화는 나지만 반박할 수가 없기에 있는 힘껏 뺨을 부풀리며 잔뜩 성을 냈다.
“일단 항구로 가볼까?”
애슐란으로 가기 위한 배로 향하기 위해, 강하 일행은 강하의 뒤를 따라 선착장으로 향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전이 항구의 도시로 불릴 수 있을 만 큼 거대한 선착장.
그 선착장이 가득 찰 정도로 거대한 함선은 그 위용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저 위에서 흔들리는 깃발을 보아하니.....애슐란 왕가의 마크?
아니...사절단으로 우리를 파견하는 게 맞기는 하는데....고작 이 인원을 데리고 오기 위해 이런 함선을???
“지금 탑승이 안된다고요?”
“예...그렇습니다...”
그 함선의 위용에 잠시 넋이 나간 강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함선에 다가가 관련자로 보이는 청년에게 말을 걸었으나, 지금 당장 승선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들려왔다.
이 이유라 함은, 원래대로 마차를 타고 우리가 올 줄 알았기에, 넉넉한 시간 항해에 필요한 물자를 보충 중이었기에, 함선 내부가 어수선하다는 것.
그렇게 한참 배에 물건을 실어 올리는 듯한 모습을 바라보던 강하는 그 말을 납득할 수 있었다.
‘하긴...마차타고 오면 오후쯤이나 돼야 도착하는데, 날아다니는 게 신나서 빠르게 왔으니...’
아직 해가 다 뜨지도 않은 아침이었기에, 자신들이 너무 빨리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 당장 배에 탈 수는 없다고 하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을 구경이나 할까?”
“저는 좋아요!!”
“이 마을에는 맛있는 게 있는가?”
“바다라...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아...!”
강하가 뒤돌아 이 이야기를 해주자, 다행히도 직원들 또한 남은 시간 동안 느긋이 여행자처럼 하전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왔을 때는 하인즈와 거래 때문에 느긋이 돌아다녀 보질 못했지?
“좋아! 그럼 용돈도 줄 테니까 각자 돌아다니면서 즐기다가, 오후에 이곳으로 집합. 알겠지?”
“““네엡!”””
‘와...진짜 수학여행 같네...’
마치 수학여행에 따라온 교사 같은 느낌을 받으며, 강하는 직원들에게 금화 하나씩 건네주었다.
월급도 주기는 하지만, 이왕 돈 좀 번 거, 넉넉히 줘도 되겠지.
그렇게 각자들의 하전 여행이 시작되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 따라다녀도 괜찮아?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러 가도 되는데?”
“그래도 저는 도련님 옆에 있는 게 좋은걸요?”
그렇게 오후에 모이기로 하고 서로 흩어졌지만, 향이는 강하의 옆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전까지 날아 올때도, 강하의 옆에 붙어있지 못해 심술이 난 향이는, 이번에야말로 강하의 옆에 있을 생각이었다.
‘이거...뭔가 데이트 같....야 이 미친놈아! 애 상대로 뭔 생각을 하는 거야?’
32살까지 요리와 사귄 탓에 여자를 사귀어 본 적 없던 강하.
그는 현대에서는 의외로 인기가 많았다.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미슐랭 스타가 달린 레스토랑의 총주방장.
외모도 시원하고 직장도 빵빵한 그는 여자들에게 아주 좋은 남자였다.
허나 그는 남중, 남고, 군대, 그리고 남자들이 가득한 주방에서 일했기에, 말 그대로 여자들을 대하는 방법을 몰랐다.
은근슬쩍 들이대는 여자들 상대로 저온 조리법은 그렇다니, 이번에 새로 나온 조리 도구가 어떻다니.
이딴 소리나 하니까 그에게 다가가던 여자들도 질려서 떠나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향이는 아직 17살 정도였지만, 발육도 상당하고 항상 강하에게 스킨쉽을 걸어와서 참 곤란하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지금의 모습은 여자아이 아닌가.
자신을 연애 대상이 아닌, 그저 귀여운 자신의 겉모습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그럼 어디로 갈까?”
“도련님이 좋으신 곳이면 어디든 좋아요!”
‘....나도 잘 모르니까 물어보는 건데...’
결국 두 사람은 마을의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침의 마을은 언제나 부산한 듯,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나저나 배는 안 고파?”
“조금 고프기는 하네요.”
아침도 먹지 않고 왔으니 배고플 만도 했다.
좋아, 그렇담.
“그럼 주막이나 한번 찾아볼까?”
스타 주막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가끔 만드는 쪽 말고 사 먹는 쪽도 나쁘지 않단 말이지.
아침이지만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주막을 찾아, 두 사람은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아 네, 지금 식사 되나요?”
“그럼요! 자자 안으로 들어오세요~”
사극의 주막에 나올법한 진짜 주모가 두 사람을 대접했다.
나이가 꽤 찬 중년의 여성.
인심 좋은 미소.
‘저게 진짜 주모지..!’
강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늘은 무슨 날인가? 아침부터 손님이 또 오시네~”
“음? 저희 말고 또 있나 봐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두 사람을 안내하던 주모가 중얼거렸다.
“예~아씨와 같이 어린 여자아이가 기똥차게 혼자 왔더라고요~”
“아...여자아이...혼자....설마..!”
뭔가 어렴풋이 예상되는데...?
“오! 너희도 이곳에 왔군.”
“....역시 너였냐?”
“류월님?”
이미 몇 그릇은 해치운 듯, 바로 옆에 빈 그릇들을 쌓아놓은 류월이 두 사람을 반겼다.
마음대로 돌아다니라고 했고, 우리도 밥을 먹으러 왔기는 했지만, 어쩜 저리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먹을 것에 환장하는 걸까?
용이란 족속들은 다 그런 걸지도 몰라.
“네 요리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하더구나. 특히 생선 요리가 맛있었다!”
“생선? 아~하긴, 여긴 하전이었지?”
아직 유통이 그리 좋지 않아, 생선 같은 어패류는 한의 주막에서 보기 힘드나, 이곳은 바다가 있는 하전, 싱싱한 생선쯤은 널리고 널린 곳이었다.
“흠...그럼 우리도 생선구이나 한번 먹어볼까?”
“좋아요!”
“주모! 여기 고등어 하나!”
“예~ 잠시 기다려 주세요~”
생선 요리라 하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강하는 고등어를 골랐다.
“이쪽에도 두 개 더 부탁하지.”
“.......”
“뭐...뭐냐?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냐?”
그만큼 먹고도 또 요리를 주문하는 류월을 말없이 바라보자, 그런 시선에 불쾌감을 느낀 류월이 말했다.
“...너 배 안부르...아니다...많이 먹어라...”
할 말은 많지만, 해 봤자 의미도 없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깨달은 강하는 말을 삼갔다.
“자! 고등어 구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강하가 류월과 티격태격하는 사이, 어느새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고등어가 나왔다.
“호오...생 고등어인가?”
“그러게요...서라벌에서는 주로 자반고등어였는데.”
고등어 특성상, 이동 중 부패가 심해, 염장하여 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소금을 잘 뿌려, 부패를 방지하고 발효가 되는데, 그것이 자반고등어이다.
이 염장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잘못 염장하면 다 상해버려서, 고등어를 전문적으로 염장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간잽이라고 불렀다.
생선을 썩게 하는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하는 것과 생선을 발효시키는 미생물의 증식을 유도하는 적절한 소금의 양을 유지하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냥 생선 무게당 몇 g 뿌리면 되는 게 아니라, 온도와 습도, 심지어는 생선의 근육량과 살아온 환경까지 고려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초고난도 조건까지 떠안아야 한다.
그래서 간잽이들 중 10년 이상이나 수련에 힘써온 경우가 많다고 한다.
허나 이곳에서는 신선한 고등어가 잡히기 때문에, 굳이 염장할 필요가 없는지 생 고등어가 구워 나온 것 같았다.
바싹하게 익은 껍질을 떼자, 바스락거리는 좋은 소리가 울렸다.
“으음...! 맛있네?”
“그러게요? 살이 너무 부드러워요...!”
한 입 먹자, 고등어의 높은 밀도의 살과 입에 대자마자 녹아버리는 풍부한 지방이 감칠맛을 올려주었다.
마침 가을이 시작되는 이 시기는, 고등어들이 산란기를 끝내, 알로 가던 영양분들이 모조리 살로 흡수되기 때문에 가을 고등어는 며느리도 주지 않는다는 말이 괜히 있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등어는 특히 생선의 비린 향이 강해서, 비린 음식을 못 먹는 사람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싱싱한 고등어는 비린 맛도 없어서 더욱 맛있었다,
“맛 좋구나!”
이내 주문한 고등어를 순식간에 해체하고, 뼈까지 집어 들어 쪽쪽 빨아대던 류월이 만족한 듯 소리를 내었다.
오랜만의 주모에서 손님이 되어 요리를 즐기는 일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