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8화 〉 실물 영접. (98/289)

〈 98화 〉 실물 영접.

* * *

열띤 분위기와 열기가 김이 되어 모락모락 주방을 채워간다.

언제나 바쁜 주방이라는 공간은 잠시 손을 쉴 틈도 없이 재료를 손질하고, 불 앞에서 요리하며, 음식물이 묻은 접시들을 설거지한다.

하지만 지금, 주방에 모인 요리인들은 모두가 숨을 죽인 체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저분이 그 분인가..?­

­그 요리인이라면 누구나 읽는 [기초 조리 교본]을 써내리신...?­

­그런데...생김새가 좀....­

­쉿! 닥쳐! 무례하다!­

소곤거리는 소리가 그들의 기대감과 마치 위대한 위인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이 장소의 중심.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강하는 내심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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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탈리 호의 주방에 한번 와 달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갑작스럽게 강하를 찾은 아넬의 입에서 더 갑작스러운 요구가 나오자, 당황한 나머지 다시금 말을 번복하며 질문하는 강하의 앞에서 아넬은 더욱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사실...현재 애슐란의 요리인들은 모두 강하님이 집필하신 [기초 조리 교본]을 보며, 열광에 빠져있습니다.”

“.....예?”

“그렇기에, 지금 강하님이 계신 이 순간, 어떻게든 한번 가르침을 받고자 하기에....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아...”

아넬이 말한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팬들이 연예인을 보고 싶어 하는 상황이라는 건가....

“그래서...혹시 가능하시다면...”

“가죠.”

“네..? 아...네! 감사합니다!”

아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하가 덥석 수락하자, 아넬의 얼굴이 밝아지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이런 것이 부담되기는 하지만, 요리를 사랑하며,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어 하는 요리인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강하는 그런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며, 아넬의 부탁을 수락한 것이다.

그렇게 강하는 아넬을 따라, 이 나탈리 호의 주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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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방장은 누구지?­

수많은 시선이 쏟아지는 것을 어떻게든 견디며, 강하는 주방장을 찾았다.

“예! 제가 이 주방의 주방장, 시란 아탈린 이라 합니다!”

그러자, 한 남자가 불쑥 튀어나와 강하의 앞에 섰다.

금발 사이 약간의 희끗희끗한 새치가 나기 시작하는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한 시란은 마치 연예인을 실제로 보는 듯 감출 수 없는 기대감에 한껏 입꼬리가 실룩거리고 있었다.

­흠.....좋아. 일단 이 주방의 식품 창고를 보여주게.­

­예! 이쪽으로 오십시오!­

강하는 우선, 이 주방의 식품 창고를 보기 위해 시란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주방에서 우선 확인하는 것은 바로 위생.

시란은 주방의 가장 오른쪽 벽에 달린 문을 벌컥 열었다.

­흠....이 곳도 마석으로 온도가 조절되는 듯 보이는군...­

­예! 언제나 재료의 보관을 위해, 고급 마석이 아낌없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애슐란은 한과 다르게, 마석과 술식만 있다면, 누구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도술사가 없다면, 도술을 사용 할 수 없는 한과는 다른 차별점이었다.

식품 창고의 내부는 마법으로 낮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선반에 각각 종류별로 재료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다른 재료와 섞이지 않게, 같은 종류의 재료들끼리 정갈하게 정돈해 두었습니다.­

­음....­

­...무슨 문제라도....?­

분명 재료들의 위치도 잘 정돈 되어 있고,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양배추, 날짜가 섞였네.­

“­...예?­

­자....! 이걸 봐, 이 양배추하고 저 양배추의 차이점이 보이나?­

­어.....이 양배추가 조금 더 싱싱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종류별로 정리한 건 좋지만, 종류만이 아닌 그 재료가 들어온 순서대로 기록하여 보관하면, 어느 것을 먼저 사용할지 알기 쉬워서 상하는 재료들을 줄일 수 있어.­

­ㅇ.....예! 다음부터는 날짜별로도 기록해 놓겠습니다!­

­기억해, 먼저 들어온 재료부터 사용한다. 선입선출.­

­선..입..선출...선입..선출....­

재료 보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알려준 강하는 이내 다시금 주방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청결 쪽은 나쁘지 않고....좋아, 자! 너희도 궁금하거나 조언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뭐든지 물어봐라.­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들이 궁금한 것이나 실력 면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나탈린의 요리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강하였다.

­저....그럼...제가 만든 스톡을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흠....보자....나쁘지 않네, 다만, 스키밍(Skimming:스톡을 끓일 때, 위에 떠오르는 불순물을 건져 내는 것.)을 조금 신경 써야겠어, 아무리 한번 체에 거른다고 해도, 스키밍이 덜되면 느끼한 기름이 딸려 오니까.­

­저...저도 한번 봐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음...이 베사멜 소스(Bechamel:같은 양의 버터와 밀가루를 약한 불로 볶아 루를 만들고, 뜨거운 루에 차가운 우유를 섞어 풀어가며 끓여 만드는 화이트 소스)를 만들 때, 루가 약간 탔네, 다음부턴 온도를 조절하기 힘들다면, 잠시 냄비를 불에서 떼서, 만들도록.­

­예..!­

그렇게 강하는 계속돼서 이어지는 요리사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며, 그들에게 적절한 답변을 해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저....강하님?­

어느새 시란이 우물쭈물하며 강하에게 다가왔다.

­셰프라고 불러.­

­아...! 셰프님. 이제 곧 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입니다만, 혹여 실례가 안된다면....강하 셰프님의 요리를 볼 수 있을까요?­

그런 시란은 강하에게 저녁 식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왔다.

­강하 셰프님이 만드는 요리를.....보고 싶습니다!­

­흠.....좋아, 이번 식사는 내가 만들어 보지.­

­가..감사합니다!­

이렇게 부탁하는데, 안 들어줄 수가 있나.

강하는 결국. 시란의 부탁을 승낙했다.

­강하님이 만드는 저녁이라고...?­

­잘 봐...이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보기 힘든 장면이야...!­

강하가 요리를 한다는 소리에, 모든 요리인들의 기대가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흠....뭘 하면 좋을까...?”

바다를 가르는 범선에서 먹는 요리라...

“...그거다!”

피쉬앤 칩스.

영국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요리로, 흰 살 생선을 튀김옷을 입혀, 튀겨낸 뒤, 마찬가지로 튀겨낸 감자튀김과 식초 및 다양한 소스를 곁들여 먹는 음식.

모두가 이 피쉬앤 칩스가 영국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이 피쉬앤 칩스는 17세기 경,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것이다.

당시 산업혁명이 한참이던 영국은 어업의 발달로 인해 흰 살 생선의 어획량이 급격히 증가했고, 면실유 및 식용유의 가격이 많이 저렴했는데, 그것으로 튀겨낸 피쉬앤 칩스는 영국의 노동자들이 즐겨 먹게 되며 퍼져나가게 되었다.

물론 한번 나가면 한참이나 바다에 있어야 했던 고기잡이 배에서도 금방 잡은 생선으로 피쉬앤 칩스를 먹었다고 한다.

이 나탈리 호 또한 현재 바다를 가르며 애슐란으로 향하고 있고, 마침 보니 대구도 많이 있어 정한 메뉴였다.

그렇게 저녁 메뉴를 피쉬앤 칩스로 결정한 강하는 먼저 식품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대구를 하나 골라왔다.

역시나 대구는 신선한 상태였다.

먼저 대구를 손질해준다.

비늘은 제거하고 세 장 뜨기를 하여 뼈와 살을 잘 분리해준 뒤, 껍질 또한 제거해 준다.

그리고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해두면 생선은 끝.

­오오....저 큰 대구를 저리 순식간에 손질하다니...­

­대단하시군...!­

‘....뭔가 부끄럽네...’

정작 강하에게는 별것도 아닌 것을 저렇게 바라보며 감탄하니, 조금 부끄러운 느낌이 들고는 하는 강하였다.

일단마저 손질을 끝낸 뒤, 강하는 감자 또한 손질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마리스 파이퍼(Maris Piper)라는 감자의 품종을 많이 애용한다고 하지만, 여기에서 찾기는 힘드니 그냥 있는 감자를 이용하기로 했다.

껍질을 벗긴 감자는 얇게 프렌치 프라이처럼 만들어도 맛있으나, 이번에는 두툼하게 썰어 내었다.

이제는 드디어 튀김옷을 만들 차례.

­여기 에일은 어디 있지?­

­에..에일은 식품 창고 옆 주류 창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흠, 좋아.­

저벅저벅 걸어가 주류 창고의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오크통(나무로 만들어진 술 보관통)이 줄줄히 보관되어 있었다.

­에일은 이건가?­

­아 예. 그래도 무거우니까 저희가 들어..­

­끙차.­

­.......?­

에일이 담긴 오크통을 찾은 강하는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주류 창고를 나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란 및 다른 요리인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맞다! 내 힘을 숨겼어야 했는데...!’

스타 주막에서 일하던 것처럼 습관적으로 행한 행동에 강하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하하...! 이거 좀 가볍네?­

­그...그냥 오크통만 해도 200파운드(약100Kg.)가 넘어가는...데...­

­....하하...­

강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그저,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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