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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화 〉 묻고 더블로 가! (100/289)

〈 100화 〉 묻고 더블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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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주막의 직원들을 태운 나탈리 호가 애슐란으로 출항한 지 3일이 지났다.

“으음....좀 지루하네...”

강하는 침대에 얼굴을 파묻은 채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편하고 좋은 기구들로 가득 차있기는 했지만,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것도 질리기 마련.

“그러게나 말이야....”

테이블에 얼굴을 찰싹 붙힌 혁수도 강하의 말에 동의하며 대답했다.

“뭔가 연무장 같은 곳도 없으니 몸도 찌뿌등하고....사온 책은 이미 다 봤고....”

“조금 심심하기는 하네요....”

이 지루함을 강하만이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한창 자신의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벼루를 뺀 나머지 직원들도 할 것이 없어 강하의 방에 모였지만, 여전히 무언가 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한 채 축 늘어져 있었다.

그렇게 마치 고체와 액체를 넘나들며 녹아들고 있을 때.

­똑똑.­

“음? 누구지?”

지루한 침묵을 깨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 모두 여기 계셨군요?”

“어라? 아넬씨? 어쩐 일이세요?”

“벌써 식사 시간인가?”

“넌 좀....저녁 먹은 지가 언젠데...”

이 나탈리 호에서 우리를 담당하는 아넬이 강하의 방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혹시 기나긴 항해 덕에 여러분들이 혹여나 지루함을 느끼고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이 나탈리 호에 비치된 유흥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곳에, 여러분들을 초대하기 위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유흥거리요?”

“오! 마침 지루하던 찰나였는데, 잘됬다!”

“여기서 이러는 것도 질렸어...”

“으음...이 몸도 몸이 결리던 찰나, 잘 되었구나.”

그렇게 아넬이 제안한 의견에, 모두 손을 들며 대찬성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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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거리는 유리 세공이 가득해, 늦은 시간임에도 마치 대낮처럼 밝았다.

그리고 수많은 테이블, 베팅칩, 그리고 룰렛까지.

“.......카지노?”

마치 강원X드에 온 것 같은 화려한 공간.

강하는 자신이 지금 있는 곳이 정녕 배 안임이 맞는지 아리송해 질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거대한 리조트 같은 곳에도 카지노가 있기는 한데....

“저희 나탈리 호의 카지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갑작스럽게 완전히 달라진 공간 덕에 멍하니 카지노를 바라보던 그들을 아넬이 반겼다.

아넬은 언제 옷을 갈아입었는지,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조끼, 심지어 나비넥타이를 입은 모습이 마치 카지노 딜러를 연상케 하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아...확실히 심심풀이로는 도박만 한 게 없기는 한데.....해..해도 되나?”

현대의 대한민국에는 도박은 불법이었고, 그런 대한민국에 살던 강하는 본능적으로 잡혀가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오! 카지노! 이거지! 돈 먹고 돈 먹기!”

“카지노 인가요....제가 애슐란에 살 때 선임이 데려간 적이 있기는 했는데....그곳보다도 훨씬 크고 고급스럽네요...!”

“음...그래서, 이 요상망측한 공간에서 뭘 하는 것이냐?”

“카지노? 그게 뭐야?”

“셰프님,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강하를 제외한 직원들은 딱히 거부감을 느끼지 않은 모습이었다.

“어....그러니까....도박장?”

“예에? 도...도박장이라니....그런 부적절한 것은 하면 안 되는 것이잖아요!”

카지노에 대해 전혀 몰랐던 향이는 이곳이 도박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기겁을 하며 그들을 말렸다.

“걱정하지 마시길, 이곳에서는 실제 돈이 아닌, 저희가 지급되는 칩만을 사용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을 걸면 재미가 없으니, 일정량의 칩을 상품과 교환 해 드리고 있답니다.”

아넬의 말에 따르면, 배에서만 있으면 지루하니, 돈을 걸지 않는 정도로 가볍게 즐기는 곳 정도라고 한다.

“오오...? 그 정도면 할 만한데?”

이 정도면 그럭저럭 재미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강하는 이내 의욕에 불이 붙었다.

“그럼, 참가를 희망하는 분들에게 칩을 배부하겠습니다.”

“저요! 저요!”

“아무튼 재미는 있어 보이네? 그럼 나도...”

“하...이런 일에 빠지면 섭하죠!”

“이...이 몸도! 이 몸도 그 동그란 것을 다오!”

“강하 셰프님이 하시면 뭐...저도 해 볼까요?”

그렇게 이 곳에 없는 벼루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칩을 받게 되었다.

“칩은 한 사람당 1칩 10개 5칩 10개 10칩 10개 50칩 5개씩 부과됩니다. 이제 이 칩을 이용하셔서 어느 테이블이든 앉아 게임을 즐겨 주세요!

규칙을 잘 모르신다면 제게 말씀드리면 하나하나 쉽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카지노에서의 밤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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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테이블에 앉은 그들.

그들이 앉은 테이블의 게임은 파이브 카드 드로우 포커.(Five­card draw poker:이름 그대로 5장의 카드로 하며, 카드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하는 포커 게임.)

아직 규칙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류월과 향이는 다른 테이블에서 비교적 룰이 간단한 블랙 잭(딜러와 카드를 한 장씩 받아 21에 가까운 수를 만드는 사람이 이기며 21을 초과하면 지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강하, 혁수, 힐라, 파렌, 이 네 사람이었다.

“너희들 자신 있어? 그냥 얌전히 저 둘과 같이 블랙잭이라도 하지?”

“흥! 형이야 말로 다 털리고 나서 울지나 말라고?”

“본격적인 게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엘프의 머리가 똑똑하다는 것을 보여 드리죠.”

시작도 하기 전에 서로 간의 신경전이 팽팽하게 지나갔다.

“그럼, 이 게임의 딜러는 제가 맡겠습니다.”

“딜러도 할 줄 알아요?”

“손님을 위해서 이런 접객 기술은 대부분 지니고 있답니다.”

반대편의 테이블에 선 아넬이 익숙한 손길로 트럼프 카드를 슥슥하고 빠른 속도로 섞어냈다.

“그럼....시작 하겠습니다...”

그렇게 네 명의 자존심을 건 포커 게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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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륵. 차르륵.

칩들이 옮겨가는 소리가 테이블 위에서 울려 퍼졌다.

“A 원 페어.”

“3 트리플.”

“미안해서 어쩌나? 집(풀 하우스)이 들어왔네~?”

“이런....!”

“크윽....”

혁수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카드를 들어 보이며, 이번 판에 걸렸던 칩들을 모조리 쓸어나갔다.

현재 가장 많은 칩을 소유한 자는 바로 두 사람.

강하와 혁수였다.

힐라는 좋은 패가 나오면 감출 수 없는 미소를 짓는, 그야말로 초짜 그 자체였고.

파렌은 강한 패라면 달리고, 약하다면 바로 죽는, 전형적인 안정적으로 플레이하는 사람.

허나, 혁수는 그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절대로 자신의 패를 예상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전전 판의 2원 페어로 뻥카를 쳐, 크게 번 것을 생각하던 강하가 이빨을 부득 갈았다.

거의 동급이라고 해도, 점점 혁수에게 칩을 빨리고 있는 상황.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 방법 밖에 없나?’

잠시 숨을 죽인 강하는, 어떤 결심을 한 듯 눈을 크게 부릅떴다.

“으앗!”

그리고는 자신의 옆에 쌓아두었던 칩을 ‘실수로’ 건드려, 칩들이 모조리 바닥으로 쏟아지고 말았다.

“에헤이 참...조심 좀 하지.”

“넌 실수도 안하냐?”

괜히 핀잔을 주는 혁수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바닥에 떨어진 칩을 줍는 강하.

허나,, 그녀의 소매에는 그 누구도 눈치를 챌 수 없게, 아까 자신이 만들었던 A원 페어의 스페이드 A를 한 장, 숨겨두었다.

“그럼, 다음 게임을....어라? A 카드 한 장이 비는군요.”

이어서 패를 돌리기 위해 카드를 확인하던 아넬이 A카드가 한 장 비는 것을 확인했다.

“음? 그게 무슨?”

“아까 형이 칩을 떨어뜨렸을 때 같이 떨어진 거 아냐?”

“그런가? 하지만 바닥에는 없던데?”

압도적인 연기력.

강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었다.

“일단 새 카드를 준비하겠습니다.”

“흠....”

혁수는 이 상황을 조금 의심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또 몇 게임이 끝나고.

“카드, 돌리겠습니다.”

새롭게 시작된 게임.

‘...왔다...!’

기회를 노리고 노리던 강하의 손에, 스페이드를 제외한 에이스 세 카드가 모였다.

이대로라도 꽤 강력한 트리플이지만, 강하는 지금, 그 찬스를 사용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숨겨 놓았던 스페이드 에이스를 자연스럽게 패에 넣었다.

“음....어이쿠...? 내 패가 상당히 좋게 떴네? 50짜리 네 장. 이 판은 내가 먹을 테니 다들 죽으쇼~”

상당히 강한 패가 떴는지, 초반부터 강하게 판돈을 올리는 혁수.

“.....죽겠습니다.”

“에이...나도 죽어...쯧!”

그런 혁수의 높은 판돈에, 힐라와 파렌은 동시에 죽었다.

그리고 남은 한 사람.

“.....레이스(판돈을 더 올리는 것.), 네 장 더.”

강하는 오히려 50짜리 칩을 던지며, 판돈을 더 올렸다.

“어우....형님 좋으신 패 떴나 봐? 강하게 나오시네?”

“우리 혁수 혓바닥이 기네? 쫄리면 뒈지던가.”

“.....좋아, 받고, 여섯 장 더!”

‘걸렸다!’

항상 자신이 이 테이블의 분위기를 주도했지만, 처음으로 혁수가 강하에게 이끌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지금 아니면 혁수를 이기기는 매우 힘들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이 판에 모든 것을 걸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서로 간의 돈 싸움이 이어졌을까?

“....올인!”

강하가 먼저 자신의 돈을 모두 배팅 대에 올렸다.

“오...올인? 형 이러다가 지면 진짜 피똥 싼다?”

“쫄려? 말했지 내가, 쫄리면 죽으라니까?”

“하...하하! 좋아! 나도 올인!”

“와....이걸 올인을...!”

“이 판이 끝나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이 긴 경기도 끝나겠는 걸?”

(*실제 돈은 단 한 푼도 걸려있지 않습니다.)

“베팅이 종료되었습니다, 카드, 오픈해 주세요.”

그리고 드디어 이 싸움의 결판이 정해지는 시간이 다가왔다.

“미안해서 어쩌나? 이번에도 풀 하우스! 잘 먹겠습니다!”

득의양양하게 자신의 카드를 오픈한 혁수가 중앙에 모인 칩을 끌어안을 찰나.

강준이 그보다 먼저 칩을 끌어모아, 자신의 앞으로 가져다 왔다.

“뭐..뭔데?”

“직접 까 보시오~”

그런 강준의 행동에 당황한 혁수가 되묻자, 강하는 그저 스스로 자신의 패를 확인해보라는 말뿐.

“에...에이 설마....! 포...포포...에이스 포 카드?!?!”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보지 말라, 안 배웠어? 으하하하하하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실제 돈은 단 한 푼도 걸려있지 않습니다. 정말 순수하게 이 두 사람은 과몰입 중인 겁니다.)

그렇게 승리를 확신한 강하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질 때쯤에.

“잠깐, 분명 스페이드 A는 내 손에 있었는데?”

“어?”

분명 자신의 손에 있던 카드가 강하의 패에 가 있자, 의문이 든 힐라가 강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셰프님이 A원 페어였을 때, A카드가 한 장 사라지지 않았나요?”

그리고 기억력이 좋은 파렌도 한 술 거들어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아...그...저...이건....그러니까...”

갑작스러운 변수에 당황하며 손을 마구 휘젓는 강하.

“동작 그만, 밑장빼기냐?”

“....게임 중 사기 행위가 적발되었으므로, 이 경기는 무효, 강하님의 칩은 전부 몰수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강하를 노려보는 혁수와, 아무렇지 않은 척 얼굴을 정리하지만, 씰룩거리는 입을 감추기 힘든 아넬이 경기의 무효를 알렸다.

“아...그러니까....미안?”

“이러어어언!!!!!!!!!!!”

그렇게 강하는 칩도 자존심도 모조리 털리게 되었다고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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