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아델리아는 못말려!
* * *
다그닥 다그닥.
마차는 이윽고 애술란의 수도, 발헤임에 도착했다.
멀리서 볼 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발헤임을 감싸는 성벽은 10층짜리 아파트만큼 높았고, 그만큼 거대했다.
성벽의 위에는 병사들이 좌우 열을 맞추어 창과 활을 들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으며, 성벽의 입구는 물건을 팔려는 행상인과 의뢰를 마치고 돌아온 모험가 등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애...애슐란 왕가의 마차?
개월제를 맞이하여 귀한 손님이라도 오는 모양이지.
허나, 애슐란 국기가 당당하게 펄럭이는 마차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길을 비키며 마차를 바라보았다.
“우와....사람 짱 많다....”
“얌마! 얼굴 들이밀지 마...!”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입을 헤 벌리며 창문을 뚫어지라 바라보는 혁수 덕에, 공간이 모자라진 강하가 혁수의 얼굴을 밀어내었다.
충성! 오셨습니까?
예, 그분들을 데리고 막 도착한 참입니다.
만월제가 다가오니 사람들이 모이는 통에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허허...이번 축제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군요...
4년 만에 돌아오는 만월제 아닙니까. 저도 그때는 근무를 빼고 축제에 가족들을 데려갈 참입니다.
이윽고 마차가 성벽의 입구에 다다르자, 앞에서 경건히 서 있던 병사 하나가 손에 든 창을 땅에 세우며 마부에게 간단한 심사를 끝내고는, 성벽의 문을 열었다.
““우와아아아....””
애슐란의 수도 발헤임의 풍경은 그야말로 영화 속 풍경 같았다.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인파가 가득 형성되어 있었는데, 마차가 지나갈 때면 누구나 꾸먹 고개를 조아리며 길을 비켰다.
“진짜 귀족이 된 기분인데?”
“네가 귀족? 푸핰! 개웃기네”
“이 몸은 혁수 마르텡 남작! 오오! 아름다운 소녀여, 그대의 이름은?”
“지랄한다.”
한껏 과장된 연기를 하며 자기소개를 하는 혁수의 모습에 웃었던 강하였으나, 소녀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얼굴을 팍 구겼다.
“한 과는 정말 다른 나라군요...! 이런 거리는 처음이어요...!”
향이도 어느새 창밖을 연신 둘러보며 감탄 어린 말들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인파들을 뚫고 마차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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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워~
마부가 고삐를 끌어당겨, 말들을 진정시켰다.
천천히 굴러가던 마차의 바퀴 속도가 줄어들더니, 이윽고 완전히 멈추었다.
도착했습니다.
아, 감사했습니다!
뭘요, 애슐란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이내 목적지에 도착한 듯, 마부가 강하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벌컥 하고 마차의 문을 열고 내리자, 그들의 눈에는 왕궁이 바로 앞까지 와 있다는 사실이 보였다.
애슐란의 왕궁은 화려한 탑이 뾰족하게 3개 나 있으며, 성벽보다도 높게 우뚝 서 있었다.
그럼에도 화려한 조각들과 이국적인 디자인은 판타지 만화에 등장하는 성보다도 아름다웠다.
“굉장하다....”
“이 광경을 바라볼 때마다, 제가 왕궁에서 일하던 게 맞던지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어느새 뒤의 마차에서 내렸는지, 파란이 다가와 역시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
실례, 안녕하십니까? 한에서 온 여러분들을 맡은 애슐란 왕가 전속 호위단장, 펜 하울린 이라고 합니다.
아..! 예! 반갑습니다.
반짝거리는 갑옷을 착용하고, 허리에는 거대한 검을 찬 남성이 강하들에게 다가왔다.
짙은 갈색의 머리칼을 지닌, 자신을 펜 하울린 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당당하고 풍채 있는 기품의 소유자였다.
얼굴에 있는 흉터와 자신감 넘치는 저 모습에, 갑옷 덕분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 안에는 흉악한 근육이 가득 차 있을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앗! 펜 씨!
이거 이거, 우리 주방 막내 아니냐? 임마! 네가 갑자기 한에서 안 돌아온다고 하길래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헤헤....
그런 펜 하울린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파렌에게, 마찬가지고 맞장구를 처주는 펜 하울린.
“아는 사람이야?”
“제가 궁궐에서 일할 때, 가끔 주방에 찾아오셨어요. 쾌활하시고 좋으신 분이예요.”
“오홍...”
그 모습에 강하가 파렌에게 몰래 귓속말을 걸자, 왕궁에서 일할 때 안면이 생긴 사람이었나 보다.
큼...아무튼 자! 왕궁으로 들어가실...
어어이!!!!!!!!!!!!!!!!
잔기침으로 다시금 엄중한 표정으로 돌아온 펜이 그들을 왕궁으로 데려가던 찰나, 그의 뒤에서 우렁차게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모두들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들려온 쪽에서, 어떤 형체가 마구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서...설마....아델리아 왕녀님?!
조금의 먼지도 없는 흰 드레스, 찬란하게 둘린 보석과 장신구들.
그리고 그런 치장에도 전혀 꿀리질 않을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여성.
에슐란 디 아델리아 였다.
드디어 왔느냐! 한참을 기다렸단 말이다!
팔을 마구 휘저으며,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도 요령 좋게 마구 달려왔다.
하아....왕녀님....아무리 그래도 왕녀라는 분이 그렇게 치맛자락 휘날리며 달려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펜은 한숨을 푹 쉬며 그런 아델리아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어허! 펜은 또 잔소리더냐? 일단 그 바보 같은 턱수염이나 자르고 말하거라!
바...바보....!
자신을 꾸중하는 펜에게 인신공격을 퍼붓는 아델리아.
아니...여기까지 달려오신 겁니까?
자네들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좀이 쑤시게 방에서 기다리는 것도 지쳤네!
한에서 야밤에 궁궐을 탈출하던 그 말괄량이 왕녀는 역시나 였다.
죄송합니다, 펜 경.
아..아닐세, 자네가 더 고생 아닌가.
왕녀의 인신공격에 잠시 멍해진 펜에게 꾸벅 인사를 드리는 사내.
애슐란의 3명 밖에 존재하지 않은 소드마스터.
진혁이 왕녀의 뒤에서 나타났다.
“오, 잘 지냈냐?”
“혁수 형님도 건강하셨죠?”
동향이라는 것 때문에 빠르게 친해졌던 진혁에게 혁수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다시 한 번 누...아니 형님의 요리를 맛 볼 기회를...!”
“그러냐? 참...”
그리고 강하를 보며 감격에 찬 미소를 보이는 진혁.
한에서도 그 누구보다 감동받으며 음식을 흡입하던 진혁이었기에, 더욱 강하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자! 뭣들 하느냐? 어서 가자꾸나!
“어...어엇...! 자..잠깐...!”
왕녀님! 잠시 기다리십시오!
더 이상 기다리기 싫었는지, 아델리아가 강하의 손을 덥석 잡더니, 이내 왕궁으로 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오...!”
대리석이 깔린 바닥이 반짝거리며 광을 냈다.
드높은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애슐란의 왕궁은 그야말로 왕족이 살만한 예술적인 풍경을 내보이고 있었다.
자! 이제 곧 아바마마를 알현하게 될 터이니.....흠....아무리 그래도 그 옷은 좀 그렇군.
예?
강하 일행의 앞에 서서 신나게 나아가던 아델리아가 갑자기 몸을 휙 돌려, 강하 일행을 눈으로 살펴보았다.
그들은 한에서 입었던 복장 그대로, 한복을 입고 있었다.
그래! 애슐란에 왔으니, 애슐란 귀족들의 옷을 입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오..옷이요?
드레스도 어울릴 것 같고....일단 내 방으로 가자꾸나!
자...잠깐만...!
어떤 대답도 허용하지 않는 듯 문답무용으로 강하를 끌고 가기 시작하는 아델리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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