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한창 때.
* * *
한의 사절단분들이 국왕님을 알현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끼익 하며 거대한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기 시작했다.
“하씨....떨리네...”
“나...뭐 이상한 곳 없지?”
알현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강준과 혁수는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점검하며 이상한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천천히 열리던 문이 완전히 열리자, 아주 넓은 공간이 그들을 맞이했다.
레드 카펫이 쭉 깔린 길옆으로, 화려한 옷들과 장식품들로 치장한 귀족들이 일렬로 쭉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허락하마.
그리고, 이어지던 레드카펫의 가장 끝에는, 한 남성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의자는 금과 보석으로 아주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크기 또한 상당히 거대했다.
그 남성은 마치 바닥에 끌릴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코트를 입고, 그의 머리에는 이 나라의 국왕임을 인증하듯이 금빛이 물든 순금 왕관이 올라가 있었다.
이 자가 바로 애슐란의 주인.
애슐란 디 바이제르 이다.
이...이번 만월제에 저희 한을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국왕 폐하.
강하는 바닥이 끌리는 치맛자락을 잡아 들어 올린 뒤,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다른 일행들도 강하의 뒤에 나란히 꿇어앉았다.
제일 걱정이 많았던 류월도 강하의 으름장 덕분인지,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한은 우리나라와 친분이 있지, 우리 애슐란의 축제를 즐기며 좋은 경험을 가지고 돌아가 줬으면 좋겠군.
황송하옵니다.
허허!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소.
그렇게 간단한 인사를 끝낸 국왕.
그대가....강하...맞소?
예?!......아.....예. 맞습니다.
갑자기 강하의 이름을 물어보는 국왕에게 깜짝 놀랐지만, 어떻게든 대답한 강하.
저...저자가 그....?
아무리 봐도 아직 어린 여자아이 아닌가?
한의 사람들은 생김새가 다르니 나이도 다른 것일지도 모르오...!
그리고 그녀의 정체가 밝혀지자마자 알현실의 소리는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개나소나 내 이름을 다 알 정도군...’
커흠!...아무튼 여기까지 왔으니 피로도 많이 쌓였을 테지. 자네들을 반기기 위해 준비되어 있는 만찬까지는 아직 시간이 넉넉하니, 우리가 준비해 둔 방에 몸을 뉘어 조금 쉬는 것도 괜찮을 테지.
국왕 폐하의 은복에 감탄 드립니다.
점차 시끌벅적한 소리가 강해지자, 국왕은 헛기침하며, 강하들을 내보냈다.
“....푸하! 나...뭐 실수한 거 없지?”
“몰라...나도 머리가 어질어질하던데....”
“폐...폐하를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아....”
다시금 천천히 알현실을 걸어 나온 그들은 그 거대한 문이 닫히자,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다.
“국왕이라는 녀석은 뭐, 그 뺀질거리는 녀석보다는 볼만한 녀석이더구나.”
“8대 국왕님이랑은 좀 다르게 생겼네, 그래도 눈매는 역시 비슷했지만.”
힐라와 류월 같이 전혀 긴장이 없었던 자들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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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에서 잠시 쉬어 주시기를.
감사합니다.
시종의 안내를 받은 강하가 방에 들어섰다.
처음에 들어갔었던 아델리아의 방보다는 화려함이 덜하지만, 충분히 고급스러워 보이고 멋진 방이었다.
오! 왔는가?
우악! 깜짝이야...!
그리고 어디 숨어있었는지 모를 아델리아가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아바마마는 어떠한가? 멋진 분 아니신가?
예...뭐...인자하시고 근엄해보이시는 분이셨습니다.
하하! 그렇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태도로 아델리아는 빙긋 웃었다.
“저....다녀오셨어요?“
그리고 그런 아델리아의 뒤에서 들려오는 벼루의 목소리.
벼루는 아직 어리기도 하고, 부담돼서 그런지 알현식에 나오지 않고 이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 벼루! 지루하진 않았....오오...!”
어떠냐? 귀엽지 않는가?
아델리아가 나오자, 벼루의 모습이 드러났다.
청하한 푸른색의 장미가 가득한 드레스와 항상 하던 양갈래 머리를 풀고, 찰랑거리는 생머리가 단아하게 흘러내렸다.
“으...그....어떤가....요?”
그런 모습이 왠지 부끄러운지, 벼루는 붉게 물든 얼굴과 드레스를 꼭 쥐고는, 쭈뼛쭈뼛 자신의 옷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엄청나게 귀..”
“잘 어울려. 아주 예뻐.”
그런 모습에 힐라가 활짝 웃으며 귀엽다고 말하려는 말을 자르고 나온 말이 있었으니.
파렌이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풀린 눈으로 벼루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치 아름다운 인어 같아. 정말 예쁘.....헉! 아...아니!! 나는 그냥....잘 어울린다고....”
자신이 엄청나게 낯간지러운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은 파렌이 정신을 차리고 손을 휘저으며 외쳤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벼루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어머....”
“휘우~뜨겁다 뜨거워~”
“이거 우리가 눈치 없이 끼어든 모양이로구나, 거참...”
그리고 그런 둘을 강하 일행은 마치 자기 일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저기! 파렌이 뭐라고 한 거...응..응....어머나~ 어쩜...!
그런 모습에 파렌이 벼루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하자, 힐라가 귓속말로 소곤소곤 파렌의 말을 번역해 주었다.
그러자 아델리아도 손뼉을 두들기며 입가에 진하게 미소가 번졌다.
“벼루야, 괜찮니?”
그리고 주저앉은 벼루에게 다가간 향이가 조심스레 현재 상태를 물었다.
“자...잠깐만요! 저 지금 얼굴이 말이 아니라서...잠시만...조금이면 되니까...”
“으..응...”
그러자 벼루는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얼굴색은 마치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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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상황이랍니까?”
진혁은 지금 눈앞에 있는 상황에 대해 이해하려는 것을 포기하고, 직접 물었다.
강하와 혁수를 비롯해 자신의 호위대상인 아델리아 마저 방에 들어가 있기는커녕, 방 문 밖에서 마치 어쩔줄 몰라 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알았다! 숨바꼭질 하는 거구나!)
“...넌 좀 조용히 하고 있어. 그래서...도대체 뭘 하고 계신 겁니까?”
허리에 찬 드라고노바의 헛소리를 가볍게 무시하며 진혁은 그들에게 다가가며 다시금 물었다.
“잠깐, 지금 이 안은 한창 뜨겁거든? 들어가면 안 돼.”
그런 진혁의 접근을 막은 힐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뭐 그건 그렇고, 폐하가 찾으십니다.”
“폐하? 갑자기? 폐하가 누굴 찾는데?”
머리를 벅벅 긁던 진혁의 입에서 웬 뜬금없는 소리가 들려오자, 강하가 물었다.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형님이죠.”
“나?”
“뭐, 정확히는 한에서 온 사절단분들이지만요.”
“뭣 때문에 우릴 불렀는데?”
“저야 모르죠. 그냥 데리고 오라는 소리만 들었는걸요.”
“으음.....알았어. 자, 일단 가자.”
무슨 일로 자신을 부른지 고민하던 강하는, 일단 진혁을 따라 직원들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어이, 너희들도 이제 나오거라.”
그러자 류월이 꼭 닫아 두었던 방문을 열어 재끼더니, 파렌과 벼루를 불러내었다.
“야 임마! 걔들을 왜 불러?”
“음? 사절단을 데리고 오라 하지 않았는가, 저 아이들도 같이 가야 하지 않겠느냐.”
“아니..그건 맞는데...넌 눈치라는 게 없냐?”
강하가 눈치 꽝인 류월을 나무라고, 사실 자신도 내심 방안의 풍경이 궁금했기에 슬쩍 들여다보았다.
“......너네 그러고 얼마 동안이나 있었던 거야?”
방 안에서는 서로 벽을 바라보며 멀찍이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벼루는 침대의 뒤에서 쪼그려 않아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며, 파렌은 문 근처의 벽에 머리를 쿵쿵거리며 부딪치고 있었다.
“하...한참동...안?”
강하가 들어온 것을 알아챈 파렌이 벽을 두들기던 머리를 멈춰, 고개를 돌려 강하에게 말했다.
“암튼 뭐....폐하께서 우리를 찾는다 하니, 일단 가자.”
“아 네....예..뭐....가야죠...”
“저...저도 가면 될까요..?”
“다 같이 오라는 말인 것 같아.”
강하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이 자리에서 벗어나, 문으로 향하자, 딱 하고 두 사람이 마주치게 되었다.
“.......먼..먼저 나가...”
“아...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도 못한 체, 떠듬떠듬 방 밖을 나왔다.
“......벼루가 뭐라든?”
“예?! 아.....아무말도...없었는...데...요...”
강하가 자신을 지나치려던 파렌을 붙잡아, 몰래 귓속말로 물어보자, 파렌은 다시금 얼굴이 홍당무가 되며 말을 더듬거렸다.
벼루 쪽을 바라보니, 마찬가지로 여성 진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이었다.
“자. 일단은 폐하가 찾으니 서두르자, 진혁, 길 안내 부탁해.”
“네입.”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을 찾는 국왕이 있는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