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멍석말이는 즐거워!
* * *
“하아.....이제 어쩌냐...”
강하는 금방 자신이 기절 시켜 바닥에 쓰러진 남성의 앞에 쪼그려 앉아, 한숨을 푹 쉬었다.
순간적으로 매우 화가 나서 저질렀기는 했지만, 점차 머리가 차갑게 식어가며, 매우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는 감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현재 자신의 상황: 애슐란의 귀한 손님으로 왔음>무도회장을 빠져나와 샴폐인에 독을 탄 괴한을 저지함.=혼란의 도가니 중심.
자신의 머릿속에서 척척 현재 상황을 정리한 강하는 당장이라도 한 대 피우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주방에서 담배를 피울 수는 없었다.
물론 만약 강하가 없었다면 오늘 밤, 무도회장은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라는 것은 사실이 맞았다.
하지만, 잠시 머리 좀 식히려고 했을 뿐이었는데 이런 귀찮은 상황에 말려들었는지,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는 것이 강하였다.
“.....일단 이렇게 있어 봐야 죽도 밥도 안 되겠지...”
그렇게 결단을 내린 강하는 손가락을 펼쳐, 기를 끌어모았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음....형은 어디 있지?”
혁수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그는 강하와 비슷하게, 한에서 온 귀한 손님이라는 존재로서 많은 영애들의 관심의 시선을 받았다.
그의 얼굴은 애슐란에서 보기힘든 이국적인 외모였으며, 덩치는 산만하고 매우 근육질이었다.
매일 호리호리한 남정네들만 보던 영애들이 그런 혁수에게 들러붙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들러붙은 영애들을, 어떻게든 한에 남아있는 매화를 떠올리며 뿌리치고는, 간신히 숨을 돌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나도 이 정도인데...형이면 완전 고생 꽤나 할 텐데....놀려줘야지!”
강하를 찾던 혁수는 역시나 여전히 장난이나 치며 강하를 놀릴 생각이 가득해서, 무도회장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강하를 찾았으나, 그녀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음?”
그의 눈앞에, 무언가가 둥실하고 떠올랐다.
“이건.....구..체?”
칠흑 같은 색을 가진 동그란 구체가, 혁수의 눈앞에서 둥실둥실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허나 그 크기가 매우 작아, 마치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크기였기에, 주변 사람들은 딱히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 구체는...형이 맨날 소환하던....그건데...?”
류월에게 힘의 사용법을 배워, 자신만의 능력을 개발한 강하의 능력 중 하나, 구체 생성이었다.
그녀는 이 구체로 갖가지 편의성이 뛰어난 방법으로 요리를 개발하거나 만드는 짓을 자주 했었다.
혁수의 눈앞에서 둥실거리던 구체는,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무언가 따라오라는 뉘앙스를 보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자..잠깐!”
그런 구체의 움직임에 영문을 모르던 혁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 구체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구체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무도회장을 나오게 되었는데.
“어라? 스승님? 향이? 그리고 류월하고....아델리아 왕녀도?”
“음? 너는 혁수?”
“여러분들도 이 구체를 따라서 온 건가요?”
“네....이 구체가 셰프님이 쓰던 도술이라는 것을 알아채서....”
갑자기 내 눈앞으로 이게 날라오더니, 따라오라고 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그래서 냉큼 따라 나왔지!
혁수는 자신만이 아닌, 스타 주막의 직원들과 아델리아마저 구체를 보고 따라온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흠....이건 분명 강하 그 아이가 보낸 것이 맞다.
헌데, 무슨 일이지?”
“우리를 부르는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이 아닐까요?”
“뭐....? 그럼 셰프님이 위험...해?”
“에이...설마, 형이 얼마나 강한데, 그렇게 쉽게 위험에 빠질 리가 없지.”
음....일단 저 구체를 따라가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의 방법같군.
그렇게 그들은 서로 강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화를 하다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구체를 발견하고는 일단 구체를 따라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혀...형?”
“어, 왔냐? 다행히 내가 보낸 거라고 알아챘구나?”
구체를 따라가던 일행들은 이윽고, 애슐란 왕궁의 주방으로까지 찾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광경을 보았다.
으...으읍!!으읍!!!
아 닥쳐, 한 번만 더 지랄하면 그 잘난 혓바닥을 뽑아 버릴 거니까.
튼튼한 밧줄에 전신이 묶여, 버둥거리던 한 남자와.
그런 그의 앞에서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비정한 말을 내뱉은 강하.
누가 봐도 심각한 범죄 현황을 직접 목격하고 있는 꼴이었다.
“혀..형...결국 범죄에 손을 대버리고 말았구나.....거..걱정 마! 내가 석식은 챙겨줄게!”
“아씨의 취향(?)은 잘 모르겠지만....이건 좀...많이..어...음...대담..? 네, 대담하네요...”
“셰...셰프님....? 이...이게 무슨....!”
흠....그런가....이런 취향이 있는 거였군....그래...
그 광경에 놀란 일원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눈빛으로 강하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야!! 그런 거 아니야! 야!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아니라고!!”
이상한 오해를 사고만 강하가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흠...그러니까....저 수상한 남자가 몰래 샴페인에 이상한 걸 타는 것을 목격했고, 그걸 제압했다고?”
“그래! 내가 미쳤다고 그딴(?) 짓을 하냐? 엉?”
“아..알았어...그러니까 그만 좀 해....미안 하다니까?”
“헹...!”
금방까지 있었던 일을 나열하며, 이상한 오해에서 벗어난 강하가 혁수에게 소리치자, 그는 쪼그라들며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래서....이게 그 수상한 약품...?
아, 예, 그거에요...아! 그래도 일단 조심..!
강하의 오해 풀기가 시작된 이후로, 한참을 고민하는 듯 서 있던 아델리아가 뚜벅뚜벅 걸어가,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작은 병을 주워들었다.
......킁......이건....!
뭐...뭔데요....?
......이런 미친놈이!
뻐억!
...크흑..!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던 아델리아는, 잠시 경악한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잡혀있던 남자에게 빠르게 다가와, 그의 얼굴에 강력한 싸커킥을 갈겼다.
우왁! 자...잠시만...! 왜 그러세요..!
이거...카라한 꽃을 갈아 넣었지..!
카라한...꽃?
그래, 애슐란의 변방 지역에 자라나는 독초다. 은은한 오렌지 향이 나지만, 이 꽃을 갈아서 짜낸 즙을 조금만 맛봐도, 바로 죽음에 이를 만큼 강력한 독초...!
그...그 정도로..?
이 빌어먹을 녀석이 감히...감히...! 우리 아바마마와 어마마마, 그리고 내 형제자매들이 있는 무도회장에....이런 독약을 뿌리려고 해...?
아...알겠으니까, 진정 좀 하세요!!
한 번에 이 독이 얼마나 위험한 독임을 알아챈 아델리아는 왕녀의 체면도 무시한 채, 소중한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 뻔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 막강한 분노를 폭력으로 바꿔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하가 아델리아를 어떻게든 말리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때.
왕녀님, 잠시 괜찮겠습니까?
뭐냐..? 너도 이 몸을 막으려는 것이냐?
그런 왕녀의 어깨를 잡은 사람은 바로, 파렌이었다.
뒤를 돌아본 왕녀가 파렌도 자신을 막으려고 하냐며 묻자.
아뇨, 왕녀님은 힘이 약해요, 사람을 팰 때는, 이렇게 패야 합니다.
빠악!
커헉..!
말리기는커녕, 불끈 쥐은 주먹을 거침없이 묶인 남자의 미간에 정확하게 꽂아 넣는 파렌.
“이 개자식이....왕족과 귀족을 암살하려는 것도 모잘라...뭐? 주방에 침입해서 음식에 독을 타? 이런 미친 새끼가....!”
그래! 잘한다! 아주 곤죽을 내 버려라!
야이씨....하....이건 뭐...
갑작스러운 파렌의 돌발행동에, 강하는 말리려고 뻗은 손을 이내 다시 거두어 들었다.
파렌도 자신과 마찬가지인 요리사.
자신의 공간인 주방에서, 심지어 음식에 독을 타는 이 행위에 자신처럼 똑같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강하는 말릴 수가 없었다.
“그래! 매운맛을 보여주도록 해라! 일단 내 도술로 죽지 않게끔 해 줄터이니.....이런.....음식이란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데....망할 녀석 같으니...!”
“잠깐! 그렇게 패면 파렌 네 손만 나가, 자, 이렇게 쥐고, 그래, 그리고 여기를 때려야 더 아파.”
“.....벼루야, 우린 잠시 저쪽으로 가 있을까?”
“ㄴ...네, 언니...”
그런 파렌의 마음에 동참하는지, 기를 펼쳐 죽지는 않게 큼, 조치를 취해주는 류월과, 어떻게 사람을 패는지, 어디를 때려야 아픈지 손수 알려주는 힐라를 바라보던 향이와 벼루는,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렇게 잠시, 주방은 뻐억! 빡! 하는 신명 나는 매타작 소리가 울려 퍼졌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자....일단 흥분한 건 알겠지만, 주먹은 잠시 내려놓고, 일단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알아봐야 하지 않겠어?”
끄...어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강하는 이제 더 이상 패도 괜찮겠다 싶어서, 이미 반응조차 없는 남자를 두들겨 패는 파렌을 말리며 말했다.
“예....아직 제 끓어넘치는 분노는 채 식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다, 이것은 매우 큰 문제다. 어서 이 녀석을 시킨 존재를 찾아야 해.
암살, 그것도 높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테러하기 위한 행위는 아주 크나큰 대죄였다.
자, 그러니까 얼른 불어, 안 그러면 계속, 이 지랄이 될걸?
.......내가 말할 것 같으냐? 그냥 죽여라...!
에휴....
어떻게든 정보를 털어먹기 위해서 입에 물려두었던 재갈을 벗겼으나, 남자는 그저 자신을 죽이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아까의 마석도 자신의 목숨 따위는 가치 없다. 라는 계산이 끝난 뒤에 벌인 일이겠지.
이미 자신의 목숨을 걸 만큼, 자신에게 명령을 시킨 자에게 충성을 맹세 한 듯 보였다.
“흠....일단 이 녀석의 입을 열어야 하는데....어쩌지?”
“그렇담, 나에게 맡기거라.”
“류월..? 네가?”
그렇게 한참 고민에 빠져있던 때, 류월이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뭐...뭐냐!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뭐....즐거운 꿈 여행 시간이다, 애송이.”
무슨 소리...컥!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남성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나아가던 류월이, 그의 머리에 손을 올리더니, 금방까지도 난리를 치던 그는 순식간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뭐...뭔 짓을 한 거야? 죽인 거야?”
“걱정 말아라, 곧 일어날 테니.....”
갑작스럽게 쓰러진 남성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강하가 류월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그저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그리고 몇 초가 지났을까.
끄아아아아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비명을 지르며 의식을 되찾았다.
“뭐...뭐야? 진짜 뭔 짓을 한 거야?”
“너는 그 하백이라는 녀석을 기억하고 있느냐?”
“하..하백? 그럼, 기억나지.”
“그때 그에게 걸었던 도술이랑 같은 것을 걸었다. 뭐, 저 썩을 애송이가 겪은 것은 며칠이고 이어지는 고문이라는 것이 다른 점이겠지만 말이다.”
말 그대로, 류월은 저 남성에게 환각을 걸어, 현실에서는 고작 몇 초지만, 그는 환상 속에서 며칠이고 계속된 고문을 받은 것이라는 거다.
“....허.”
그 소리에 강하는 자신의 팔에 우수수 돋은 닭살을 문지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뭐...뭐지...? 화..환각? 그건 전부....꿈이었단 말인가?
한참 비명을 지르던 남성은 자신의 사지를 바라보더니, 환각이였다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흠...한번 정도로는 약한가? 그럼....”
자...잠깐!!! 말할게!!! 말할 테니까 그만둬!!!!
“음? 금방 뭐라고 한 것 같기는 한데, 늦었나?”
허나, 자신을 향해 손을 뻗어오던 류월을 바라보더니, 공포에 찬 목소리로 모든 것을 자백하겠다고 말했지만, 아쉽게도 류월은 애슐란 어가 서툴렀다.
그렇게, 그가 정보를 말하게 되는 것은, 다시금 이어지는 환각에서 깨어난 이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