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8화 〉 백룡. (118/289)

〈 118화 〉 백룡.

* * *

드래곤.

인간들은 말한다.

세상 최고의 강자, 약육강식의 최상위권.

그 누구보다도 축복받은 생명체, 라고.

허나, 나는 말한다.

드래곤은 그저, 영원한 저주받은 생명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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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룡!!!!!!!]

류월이 자신이 숨기던 힘을 내뿜으며, 거대한 백룡에게 소리쳤다.

“....뭐..뭐지! 저 둘 사이에 나쁜 일이라도 있었나..?”

“모...몰라! 일단 뭔가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류월이 저렇게까지 격하게 감정을 내비치는 것을 본적은, 별로 없었던 강하와 혁수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노심초사하며, 그 둘을 바라보았다.

[......흑룡?]

그리고, 인간 모습의 류월을 멍하니 바라보던 백룡은, 나지막이 류월을 불렀다.

그러더니, 하얀 안개가 백룡을 감쌌다.

­내...내..두 눈으로....드래곤들의 싸움을....볼 수 있다는 말인가...! 이건 정말 대단해!!!­

­아이씨! 왕녀님! 닥치고 떨어져요!! 그러다 훅 간다니까!!?!­

­뒤..뒤로 빠져! 얘들아!­ “뒤로! 물러나!”

그 모습들 바라보던 아델리아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점차 그들 사이로 가까이 다가가려는 것을, 진혁이 억지로 잡아끌어, 스타 주막의 일원들과 같이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구체! 1, 2, 3, 4, 5, 6, 7, 8, 9호! 방어막!”

모든 일행이 저 두 존재에서 멀리 떨어진 것을 확인한 강하가, 자신의 구체를 불러들여, 그들을 둘러싼 방어막을 쳤다.

그들이 본 실력을 낸다면, 이런 방어막 따위는 얄팍한 종잇조각 정도밖에 되지는 않겠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몽환적인 하얀 안개가 걷히고, 백룡의 모습이 다시금 모습을 보였다.

금방까지 존재했던 거대한 덩치는 어디 가고, 그곳에는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첫눈 같은 새하얀 머리카락, 상당히 길쭉한 팔다리와 감은 눈.

누가 보면 상당한 미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녀의 머리에 달린 하얗디하얀 두 뿔이, 그녀가 평범한 인간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잠시 고개를 흔든 백룡은 천천히, 류월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기 시작했다.

또각거리는 구둣발 소리에 모두 흠칫거리며 숨죽여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백룡이 류월의 앞까지 바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어머나~흑룡, 너의 그 모습도 참 오랜만이구나~몇 년 만이지? 오래 살다 보면 시간 감각이 이상해져 버린단다.­

[자...잠까...! 이...이거 놓아라!!­

­역시 그 성격은 아직도 까탈스럽구나~­

“....엥?”

­사..사이가 좋아...보이네요...?­

마치 서로 주먹질이라도 할 것만 같았던 백룡은, 류월을 확 끌어안고는, 반가움을 표현했다.

“.....구체들 수고했어, 이제 돌아가.....허 참...괜히 긴장했네...”

잔뜩 긴장해 구체들을 소환해 침을 꼴깍 삼키던 강하는, 투덜거리며 구체들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동안 잘 지냈니? 아픈 곳은 없고? 아 참, 이제 어린애도 아닌데 이 질문은 좀 이상했을까?­

­......왜...­

­음?­

­왜....나를 두고 가버린 것이냐.....내가...얼마나 너를 기다렸는지 아느냐...?­

­......미안하구나..­

­내..내가..흑...혼자서....얼마나...흑..­

­....괜찮아...나 여기 있단다.­

찔끔.

류월의 눈에서 작은 방울이 글썽거리며 맺혔다.

류월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백룡의 품에 파고들어 가, 어리광을 부리자, 백룡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류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지금 타이밍에 말을 걸기에는 좀 그렇지...?”

“응....들어갔다가는 넌씨눈 소리 듣고 독자들이 하차할 거야.”

“뭔 개소리야.”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일행들은 조용히, 그저 류월의 속이 풀릴 때까지 그저 바라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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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안녕...하세요..?­

­음? 아아, 반가워, 너희들이 지금까지 흑룡과 같이 있어 줬구나? 힘들었지?­

­아...아뇨! 뭐....그보다도.....드래곤....맞나요?­

한참이나 지난 시간, 류월은 마치 모든 것을 풀어낸 것처럼, 백룡의 품에 파고들어 깊이 잠이 들었다.

그제야 얼굴을 들이밀 수 있었던 강하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와, 백룡에게 말을 걸었다.

­그치, 흑룡이랑은, 아마 수 세기 전? 수 십 세기인지 헷갈리네...아무튼 오래전에 만나, 같이 지낸 사이야.­

­그렇군요, 저는 류월의 이런 모습 처음 봤어요.­

­류..월? 그게 지금 이 아이의 이름이야?­

­아 네, 몇 백년 전인가, 자신과 친한 인간이 지어줬다고 했어요.­

­그래....그렇구나....­

계속해서 류월의 이름이 아닌, 그저 흑룡이라고 부르던 백룡이, 류월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진 것인지를 듣자, 아련한 눈빛으로 류월을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인간...이라....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구나, 나는 이왕이면 흑룡...아니 류월이 인간과는 얽히지 않는 것을 바랬지.­

­...네?­

­우리는 말이지, 죽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거의 영원을 살아간단다.­

조곤조곤, 백룡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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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날이 언제인지, 너무나도 까마득한 시간을 살며 잊어버렸다.

나는 강자였다.

말 그대로 그 누구도 건들지 못할 정도의 강자.

다른 존재들이라곤 자기 발톱만도 못한 먼지.

나는 압도적이었고, 너무나도 강력했다.

그렇기에, 지루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그저 자신이 강하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어 봐야, 밀려오는 지루함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모습을 하고, 그들의 세상으로 섞여 들어갔다.

인간들, 그들은 너무나도 미약하고, 나에게 비교하면 그저 하루살이들이었지만, 흥미로웠다.

영원을 살아가는 드래곤과는 다른, 아주 짧은 수명이었기에, 그들은 하루하루를 매우 충실하게 살아갔다.

열정.

그래, 나는 그 인간들이 가진 열정이라는 것에 조금씩 감화되었다.

그들은 사소한 일에도 웃고, 울고, 화내며 격한 감정을 가졌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사람들 사이에 살던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며, 그들과 같은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찰나를 살아가는 그들이었기에, 하루하루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의 감정은, 나에게는 치명적인 독이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늦게 깨달아 버렸다.

나와 소중한 감정을 나누던 그들은, 찰나의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것이, 너무나도 슬펐다.

인간의 감정에 동화되었던 나는, 그저 떠나가 버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사무치는 가슴을 부여잡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계속 방법을 찾아 나섰다.

그들과 똑같이 살아가기 위해서, 그들의 수명을 늘리거나, 아니면 내 수명을 줄이거나.

허나, 그 모든 것은 실패로 돌아가 버렸다.

나는 그들과 있으면서 항상 고통받았지만, 꾸역꾸역 그들의 삶에 엮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동족을 만났다.

갓 태어난 흑룡.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오만방자하고, 자신이 최강인 줄 아는, 애송이.

그게 맞기는 했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최강이 맞기는 하지.

그래서 나는, 일단 간단하게 힘으로 제압했다.

지금 와서 말하면 부끄러웠지만, 나는 그때 한 성깔 하는 드래곤이었다.

그렇게 나는, 흑룡을 데리고 인간 세상을 돌아다니며 여행했다.

흑룡은 드래곤 치고는 상당히 감정이 풍부한 존재였다.

인간들이 먹는 음식에 심취하고, 상당히 밝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다녔다.

허나, 나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나는 얼마나 살아가는 거지? 이 별이 수명을 다하여 사라질 때까지?

힘들다.

그래서 나는, 잠에 들기로 했다.

솔직히 잠이라고 말했지만, 자살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흑룡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하나 다짐하도록 하여라. 인간들의 세계에 머무는 것은 좋지만, 절대로 그들을 사랑하지 말거라]

나는, 그녀가 돌이킬 수 없어져, 나처럼 되지 말아주기를 바라며, 조언을 전해주고는 그녀의 곁을 떠나버렸다.

그렇게 흑룡과 헤어진 나는, 깊은 숲에서 끝없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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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지금 있는 이곳은, 어쩌다가 잠에서 깨게 되었는데, 엘프들이 있더라고.

그들이 제발 도와달라고 부탁해서, 조금 도와주고 있지.­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온 일들을 말해주던 백룡이 자신이 여기에 있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 은혜는 너무나도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말아줘, 이르마. 그러고 보니, 너도 참 많이 자랐구나. 꼬맹이였을 때가 새록새록 떠오르는데.­

­후훗...저는 백룡님을 처음 보았을 때, 얼마나 무서웠는걸요.­

­그래서, 나는 이곳을 만들었지, 내 쉼터이자, 무덤으로.­

­무...무덤이라니요?­

그렇게 덤덤하게 백룡의 이야기를 듣던 강하는, 무덤이라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백룡을 바라보았다.

­그래, 나는 이곳에서 머지않아 곧 죽을 예정이야.­

그럼에도 백룡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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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라 님이 그려주신 백룡의 모습입니다!

나비에게 정보를 전달받은 흑역 아닙니다.

그저 그냥 나비가 귀여워서 보고 있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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