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9화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119/289)

〈 119화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 * *

­주...죽는다니요? 어째서...?­

강하는 백룡을 바라보며 그 이유를 물었다.

­.....이젠 지쳤단다.­

수천 년.

수천 년을 살아오면서 정말 아주 많은 것들을 봐왔다.

인간들을 따라서 흥미가 있는 것을 공부하거나, 아니면 사랑을 하거나.

수많은 대륙을 넘나들고, 그만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쳐버렸다.

그녀가 알던 인간들은 모두 찰나의 순간에 죽어버리니, 그녀는 항상 그들을 보내며 슬퍼하다가,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만다.

인간들과 지내며, 그녀의 마음은 이미 바닥이 보일 정도로 닳아버렸다.

­이 이야기는, 류월에게는 비밀로 부탁해줘, 내가 죽어버리려는 것을 알아버리면, 난리를 칠 게 뻔하니까. 후훗...­

­.....­

그렇게 씁쓸하게 웃으며 말하는 백룡의 미소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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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괜찮은걸까?­

강하는 지금까지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입 밖으로 꺼내었다.

현재, 그들은 백룡이 있던 장소를 나와, 리브가 준비해준 손님용 방에 모여 있었다.

­....드래곤이란 평생을 죽지 못해 사는 존재.....라는 내용을 책에서 본 적이 있지, 그것이 그 드래곤의 선택이라면, 우리가 감히 그녀의 선택을 바꿀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런 강하의 말을 들은 아델리아는 그것은 그녀의 선택이라며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이 엄청 불편해, 드래곤이든, 인간이든, 눈앞에서 죽어버릴 거라고 들었는데, 심지어 류월도 백룡을 매우 그리워하고 있었잖아, 이대로 백룡이 죽어버린다면 류월은....?­

류월, 그녀는 현재 그들을 따라 나오지 않고, 백룡의 곁에 딱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어떡해? 백룡이 스스로 죽는다는데, 그 뜻을 우리가 돌릴 수 있어?­

­......백룡이 말했지, 이제 모든 것이 질려버렸다고.­

“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렇다면.....그녀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그녀에게 보여준다면, 마음을 돌리지 않을까?­

­그렇게 볼 수도 있죠, 하지만 셰프님, 우리가 수천 년을 산 백룡 님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모두가 백룡의 죽음이 떨떠름하기는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강하가 입을 열었다.

­뭐,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하면 되지 않을까?­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

그것은 당연히 정해져 있다.

­좋아! 까짓거 확신은 하지 못해도, 시도는 해볼 수 있지 않겠어?­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해 온 것이라면, 단 하나밖에 없었다.

­일단, 이 마을의 주방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자고.­

강하는 마음속으로 기합을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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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이요? 주방은 무슨 일로....?­

이르마는,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아온 강하의 말에 머리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아....뭐, 오늘 밤에 연다고 하던 만찬회 말입니다, 제가 준비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제가 또 요리사거든요! 이런 일에 가만히 있으면 몸도 쑤시고, 엘프 분들께 제 요리를 맛보여드리고 싶어서요!­

­허나, 여러분들은 손님인데, 그런 일을 부탁한다니...­

­아뇨 아뇨! 저희가 하고 싶어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가능할까요?­

­음....네, 그렇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리브에게 길 안내를 맡길게요.­

­감사합니다!­

과연 손님께 대접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 손님에게 대접받아도 되나 고민을 하던 이르마는, 강하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승낙했다.

­아, 그리고 부탁이 하나 더 있는데...­

­무엇인가요?­

­이번 만찬에 백룡님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백룡...님이요?­

뒤로 돌던 강하가 갑작스레 다시 돌아와서는 생각지 못한 부탁을 이르마에게 건넸다.

­제 요리를 꼭 맛보시고, 생각을 돌려봄이 어떨까 해서요, 그럼!­

­아...! 자..잠시...!­

갑작스러운 요구를 건네던 강하를 불러 세우려던 이르마였지만, 강하는 곧바로 슝 하고 나가버렸다.

­....이것 참, 어떻게 될지...­

그런 강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르마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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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주방입니다.­

­오....­

이르마의 부탁을 받은 리브가, 그들을 자신들 마을의 주방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아씨, 이번에도 요리를 만드는 거예요?”

“뭐...그렇지?”

“아싸! 고향마을로 돌아온 것도 모자라, 아씨 요리를 먹는다고! 이건 못 참지!”

한참 다른 엘프들과 대화를 나누던 힐라가 리브와 같이 주방으로 향하던 모습을 보더니, 금세 따라붙었다.

­힐라, 이분들은 요리사야?­

­물론! 심지어 인간들 나라의 지도자들도, 셰프님의 음식을 먹고 싶어 환장을 한다고!­

­와....대단하신걸?­

­아...뭐....그렇기는 하지..흐흫.....뭐...헿...­

힐라의 신나 보이는 표정에 궁금증을 느끼던 리브가 힐라에게 강하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눈을 반짝이며 강하를 바라보았다.

그런 시선을 느끼던 강하는 별 대수롭지 않은 척 하지만,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와 어깨는 별 수 없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칭찬은 아무리 들어도 기분이 좋은 것이었다.

­이...일단, 엘프들의 주식은 어떻게 되나요?­

­음....저희는 기본적으로 과일을 자주 먹는 편입니다.

가끔씩 사냥을 하고 오는 날이거나, 누군가의 생일일 때, 특별히 고기를 먹거나 파이를 만들죠.­

­그래서 애플파이가 정말 좋아요!­

­흐음...파이라...­

엘프들이 주로 뭘 먹는지 듣던 강하는, 일단 주방을 한번 쓱 둘러보았다.

파이를 만들기 때문에 화덕도 있었고, 불은, 애슐란 왕국의 주방과는 다른 방식이었는데.

­이건....어떻게 사용하는 거죠?­

­아, 저희는 불을 사용할 때, 나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정령에게 부탁하여, 불을 내고는 합니다.­

­요것도 제가 할 수 있어요, 샐리멘더, 나와 줘.­

이상하게 연료를 넣는 곳이 없었기에, 사용법을 묻자, 힐라가 정령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바람의 정령인 실프를 부를 때와는 다르게, 그녀의 손에서 마치 포근한 열기가 느껴지는 듯 보이더니, 붉은빛을 내며 샐리멘더가 소환되었다.

타오르는 머리칼과 날카로운 눈초리를 가진 꼬마가 샐리멘더 인 모양이었다.

[.!...!!!!.......!!...!!!!....]

샐리맨더는 오랜만에 자신을 소환해서 반가운지, 한참을 힐라의 뺨에 찰싹 달라붙어서 어리광을 피웠다.

­나도 오랜만이라서 정말 반가워! 응, 응, 그래서 부탁이 있는데, 여기에 불 좀 붙여 줄래?­

[!!...!!!....!...!!]

그러다가 힐라가 잠시 샐리맨더를 뺨에서 떼어내고, 불을 붙여달라고 부탁하자, 샐리맨더는 입에 바람을 모으더니, 레인지를 향해 바람을 후~ 불었다.

그러자, 입가에서는 바람이 아닌, 불길이 나왔으며,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레인지로 옮겨붙은 불이 계속 타오르며 일렁거렸다.

­이렇게 한번 붙여 놓으면, 샐리맨더의 마력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계속 사용할 수 있어요.­

­마력이 얼마나 되는데?­

­음....이런 레인지에 불을 대여섯 군데 붙인다는 가정하에....한 6~7시간?­

­오...상당히 오래 불이 유지되네?­

이렇게 불을 사용하는데도, 땔감 하나 없이 오로지 정령의 마력을 사용하는 데다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넉넉했다.

­이런 것보다, 파이어 볼 하나 만들어서 던지는 게 더 마력 소모가 심하죠.­

­엘프들과 정령들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엘프들의 문화는 자연스레 정령들과 함께 어우러져 발전했답니다.­

­그렇구나...­

그들의 문화는 인간들처럼 마법이 아닌, 정령술이 많이 발전한 모양이었다.

리브가 말하길, 정령들은 크게 물, 불, 바람, 땅 속성,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고 말했다, 다른 속성도 있기는 한데, 매우 희귀해서 엘프들도 보기 힘들다고 한다.

엘프들의 정령 친화력은 매우 높아서, 모든 엘프가 최소한 2종류 속성의 정령과 계약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처음의 세계수를 올라갈 때도, 요리할 때도 정령은 언제나 그들 옆에서 엘프들을 도와준다고 한다.

“와...진짜 정령들 편리하네....나도 나중에 노움을 불러내는 연습이나 해야지”

그 설명을 멍하니 듣던 혁수는 자신과 계약한 땅의 정령을 불러낼 연습에 매진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도와줄게! 하지만 명심해, 정령들은 도구가 아닌, 친구라는 것을.”

“옜썰!”

그런 모습을 보던 힐라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혁수에게 당부해주었다.

친구가 아닌 도구만으로 정령을 부린다면, 정령들의 분노를 사게 되니 주의하라고 한다.

“그래서 셰프님, 셰프님은 오늘 무엇을 만드시는지요?”

한참 정령 이야기로 삼천포로 빠진 오늘의 주제를 향이가 강하에게 물었다.

“음...엘프들은 파이를 좋아하는 모양이더라고, 그렇다면 그거다.”

“그거라면...”

“미트파이와 비프 웰링턴이지!”

강준이 바로 옆에 있던 화덕을 두들기며 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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