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이 고기는 너무 안 익어서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겠다!
* * *
백룡님, 실례합니다.
음? 무슨 일이야?
다시금 백룡이 있는 최하층으로 찾아온 이르마가 백룡을 찾자, 무슨 일인지 묻는 백룡.
오늘 저녁, 손님들을 환영하는 의미로 만찬이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오...그래? 손님이라면 그 아이와 일행들이지? 맛있는 거 많이 해줘야겠네~
그....손님이 직접 요리를 만드신다고 합니다.
음? 정말? 그 아이가 직접?
보통 손님이라면, 그저 대접을 받을 텐데, 자기 스스로 자신을 축하하는 음식을 만들다니, 참 웃긴 아이였다.
그렇다! 강하 그 애의 요리는 정말 최고니까 말이다!
그래? 그렇구나, 류월은 그 애의 요리가 좋아?
음! 그렇다!
백룡의 무릎팍에 마치 고양이처럼 딱 달라붙어서 백룡의 손길을 받던 류월이, 강하가 요리를 한다는 말에 벌떡 일어나 말했다.
그리고, 부디 꼭, 백룡님이 오셔서 음식을 맛보시기를 바라셨습니다.
나를?
네,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보고, 생각을 돌리게 할 것이라고......
음? 생각이라니? 무슨 말이더냐?
......그래? 알았어, 나도 나갈게.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 이렇게까지 나를 위해 만들어준다는데, 나가지 않으면 실례잖니.
그렇다! 강하의 요리는 정말 맛있으니까, 백룡 너도 정말 좋아할 것이다!
그래그래~ 그동안 우리는 잠자코 기다리고 있자.
알겠다!
백룡은 자신을 염려하는 이르마에게 밝은 미소를 보여주며, 그녀를 돌려보냈다.
‘........‘생각’을 돌리게 만든다라....그것 참 두렵구나...’
백룡은 씁쓸하게 웃으며, 류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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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에는 왕궁이 아니라서 일손도 없으니, 본격적으로 너희들이 나를 도와줘야 할 것 같다.”
앞치마를 두른 강하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그들에게 말했다.
“그럼요! 저도 언제나 도와드리고 싶은걸요?”
“고향에서 다시금 요리를 할 수 있다니, 좋네요~”
“예 셰프!”
스타 주막에서부터, 강하를 보좌해오며 살아가던 향이와 파렌, 그리고 힐라는 오랜만에 일이다, 싶은 기분으로 바로 기본적인 도구 세팅과 청결을 위해 깨끗이 손을 씻어둔 상태였다.
이보게, 그럼 우리는 뭘 하면 되나?
그리고 그 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보던 아델리아가 손을 들어, 강하에게 물었다.
뭐.....왕녀님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데요? 그냥 방에 먼저 올라가셔서 쉬고 계셔요.
지루하단 말이다! 지루해! 지루해!! 그리고 너의 요리인데 옆에서 구경하지 못하면 큰 손해란 말이다아!
딱히 있으나 마나 하는 왕녀였지만,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서 굳이 도와달라고 할 이유가 없기에, 강하는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왕녀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
“어휴....진혁아, 저 꼬맹이 좀 데리고 감자랑 당근 껍질 좀 벗기고 있어라.”
“네 형님.”
아! 금방 한의 언어로 대화했지? 나 욕했어? 응?!
아뇨 별것 아닙니다, 자~ 어서 가시죠~
야...야..!! 이거 놔 봐!! 너는 호위랍시고 이런 식으로 나를 대접해?
우린 옆에서 감자나 깎자고요~
결국 주방의 구석에서 채소 손질을 부탁했다.
진혁이 왕녀님을 잘 커버쳐서, 상당히 대처가 편했다.
진혁이 안 따라왔으면 어찌 됬을랑가 몰라.
“자! 보자...먼저 파이 시트가 필요한데...”
“그건 저한테 맡겨요!”
이번 요리에 중심은 미트파이와 비프웰링턴.
두 가지 요리 다 파이 시트가 필요했다.
그러자 스타 주막에서 언제나 빵 반죽과 파이 시트를 만드는 힐라가 자신이 파이 시트를 만들겠다고 소매를 걷으며 나섰다.
“그럼 이제 다른 재료들을...”
“그럼 저는 채소 손질을 할게요.”
“저는 고기를 들고 오면 되겠습니까?”
“어? 어어...그래. 잘 하네!”
이제 본격적으로 재료들을 손질하려던 찰나, 향이와 파렌이 말하지도 않았는데도 척척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스타 주막이 영업을 시작한 지 어언 몇 개월.
그동안 향이와 파렌은 주막에 없어서는 안 될 실력자로 거듭나 있었다.
척하면 척.
강하는 깜짝 놀라면서도 내심 그들의 실력이 늘어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먼저 미트파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파이 안을 채울 ‘필링’ 이라는 것을 만들어야 했다.
양파, 셀러리, 당근, 감자 등을 깍둑 썰어준다.
“음...! 역시 산에서 직접 채취하는 모양인데? 버섯의 질이 좋은걸?”
숲에서 살아가는 엘프들이라서 그런지, 버섯들의 상태가 매우 좋았다.
따로 버섯을 채취하는 버섯밭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양송이 버섯 또한 깍둑 썰어주고, 다음은 고기.
“고기 부위는 소의 등심과 안심 부위를 손질해 왔습니다.”
“좋아, 안심은 그대로 놔두고, 등심만 채소들과 비슷한 크기로 썰어줘.”
“넵!”
등심은 미트파이에, 안심은 비프웰링턴에 사용할 생각이었다.
이제 불을 사용할 시간.
먼저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소고기 먼저 센 불에 구워준다.
이런 방식을 시어링(Searing)이라고 한다.
완전히 익히는 것이 아닌, 겉면만 강하게 익혀 마이아르를 내주고, 바로 냄비에서 꺼내는 방식이다.
다음은 양파.
양파 또한 볶아주면서, 진한 갈색이 될 때까지 볶아준다.
양파의 성분에 있는 당분이 열을 받아 갈색이 되어가는 것을 케러멜라이징(Caramelizing) 이라고 부른다.
양파에 색이 나고 나면, 마찬가지로 꺼내서, 고기를 꺼내 따로 담아두었던 깊은 냄비에 부어서, 섞어둔다.
이제 금방까지 사용한 냄비 바닥에 짙게 탄 흔적이 보일 것이다.
이것을 퐁드(Fond) 라고 부르는데. 재료를 굽고 나서 남은 아주 깊은 맛을 내는 찌꺼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코팅 팬 같은 경우에는 이런 퐁드가 잘 남아나지 않기 때문에, 스튜를 끓일 때는 코팅 팬 보다 스테인리스 팬을 많이 사용한다.
이제 그 부분에 에일을 조금씩 넣어, 디글레이즈(daglaze), 그러니까 냄비 바닥에 있는 감칠맛의 원천들을 골고루 긁어내어 에일에 녹아들게 해준다.
그것을 마찬가지로 고기와 양파가 있는 냄비에 넣어주면 더욱 풍미와 감칠맛이 좋아진다.
이제 썰어두었던 나머지 재료들을 전부 넣어주고, 에일을 부어 가득 담아준다.
이제 이곳에다가 후추, 소금 간을 해주고, 고기 요리와 잘 어울리는 향신료, 로즈메리와 월계수 잎, 그리고 파프리카 가루를 넣어준다.
파프리카 가루가 무엇이냐고?
간단히 말하자면 매운맛이 거의 없는 고춧가루. 라고 생각하면 된다.
매운맛은 없지만, 그 특유의 감칠맛이 아주 좋아, 서양에서는 아주 친밀한 향신료 중 하나이다.
만드는 방법 또한 간단하다.
파프리카를 잘게 채 썰어, 바짝 말리고, 가루를 내기만 하면 끝.
이 가루를 훈연시키거나 하면 불 향이 감도는 훈제 파프리카 가루도 있지만, 이번에는 그냥 평범한 파프리카 가루만 사용했다.
그다음, 농도가 너무 묽으면, 파이가 흘러내릴 수도 있으므로, 농도를 잡아줄 밀가루와 버터를 넣어, 점도가 있게 해준다.
냄비에 담은 재료들이 잘 섞이도록, 한소끔만 끓여주고 불에서 꺼내준다.
불 위에서 재료들을 익히면, 아래쪽만 열을 많이 받고, 채소들의 형태가 망가지기 쉬우므로 뚜껑을 덮어서 화덕에서 익혀 줄 것이다.
“자, 파이 필링은 이대로 익히면 되고, 다음은 스테이크인가?”
비프웰링턴.
살짝 익힌 고기를 다진 버섯과 함께 파이 반죽에 싸서 오븐에 구워내는 영국 요리이다.
세계적인 인기 셰프 스타, 고든 램지의 시그니처 요리 중 하나이며, 그가 나오는 티비 프로그램에 꼭 등장하는 요리이다.
그 중, 헬스키친이라고 하는 고든 램지가 심사하는 셰프 선발 리얼리티 쇼에서, 그가 자주 과제로 내는 요리 중 하나이다.
그 이유는 스테이크가 파이 반죽에 감겨, 익혀낼 때, 겉 부분으로만 판단하기 힘들어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요리사의 실력을 검증할 때 유용한 요리이기 때문이다.
먼저, 소고기 안심에 소금, 후추 간을 해준 뒤, 파이 필링을 만들 때처럼 겉 부분을 시어링 해준다.
소의 안심은 근육과 지방 함량이 매우 적어, 아주 부드러운 살코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시어링이 끝난 소고기는 바로 팬에서 꺼내 도마에 올린 후, 머스타드 소스를 발라준다.
고기의 접착력도 늘려주고, 고기가 식어가는 과정에서 깊은 맛이 배어들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같이 곁들일 버섯, 이것을 뒥셀이라고 한다.
양송이에 소금, 후추 간을 해주고, 잘 갈아내 준다.
그다음에 다진 양파와 마늘 조금을 넣고, 기름기 없는 팬에 볶아내어 수분기를 날려준다.
버섯이 머금고 있는 수분기를 잘 제거하지 않으면, 고기와 뭉칠 때 자꾸 풀어지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버섯을 볶을 때 향을 내기 위해서 타임 조금을 넣어주며 볶아준다.
수분기가 전부 빠졌다면, 넓은 그릇에 담아 식혀내 준다.
이제 고기를 말아줘야 하는데.
“파렌, 그것도 챙겨왔지?”
“네, 근데 이건 어디에다 쓰는 건가요?”
고개를 돌려 파렌을 바라본 강하가 파렌에게 묻자, 파렌은 고기를 챙겨올 때 가져온 것을 꺼냈다.
그것은 보존용으로 소금에 절여둔 고기, 햄이었다.
겨울나기용으로 고기를 보존하기 위해서 고기를 절이는 행위는, 기원전부터 있었으며, 이곳 엘프 마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잘 보고 있어.”
강하는 두꺼운 햄을 아주 얇게 썰어 내준 뒤, 자신의 마력을 사용해 투명하고, 얇은, 비닐 같은 막을 도마 위에 펼쳤다.
고기를 말아줘야 하는데, 이런 곳에 비닐랩이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마력을 사용해 비슷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마력이 짱이야 진짜.
먼저 펼쳐둔 비밀 막에 얇게 썰어둔 햄을 깔고, 그 위에다가 만들어 둔 뒥셀을 깔아준다.
햄으로 감싸, 고기가 풀어지지 않게 해주고, 육즙이 빠져나가는 것도 막아주는 1석 2조의 효과였다.
다음에는 소고기 안심을 올려주고, 마치 김밥을 싸듯이,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단히 눌러주며 말아준다.
그다음에는 모양을 잡고, 냉장고에서 잠시 굳혀준다.
냉장 시설이야 엘프들도 정령을 이용해 만든 냉장창고가 있긴 했지만, 그냥 강하가 챙겨온 미니 냉장고에서 식혀주었다.
얼추 식혀져 모양이 잡혀질 때쯤, 파이 필링이 완성이 되었다.
화덕에서 꺼내, 뚜껑을 열어보면, 질척하고,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완벽한 미트파이 필링이 완성되어 있었다.
“파이 시트는 다 끝났어?”
“예썰~ 준비 완료입니다!”
마침 파이 시트를 다 끝낸 힐라가 파이 시트를 들고 왔으니, 이제 파이를 만들 시간.
엘프들도 파이를 자주 만들어서 파이 틀도 있었으니 간편했다.
먼저 파이 시트를 파이 틀 아래에 깔고, 포크로 구멍을 내어 숨 쉴 구멍을 만들어준 뒤, 필링을 채워준다.
다음에는 파이 시트로 뚜껑을 만들어 덮어줘야 하는데, 이 이음새에 달걀을 풀어 만든 달걀물을 발라준다.
접착 효과도 있고, 화덕에서 구워내면 황금빛을 내기 때문에 아주 좋다.
그렇게 뚜껑을 덮고, 파이 뚜껑에도 데코레이션으로 칼집을 내어준 뒤, 화덕에 넣어준다.
그 다음엔 고기.
고기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파이 시트로 고기를 감싸, 잘 말아준 뒤, 겉 표면에 달걀물을 발라주고, 윗부분도 파이처럼 칼집을 내어 모양새를 만들어준다.
이제 화덕에 넣어 파이와 비프웰링턴을 구워내기만 하면 끝!
“좋아, 이제 시범은 충분히 보여줬으니, 너희들도 도와서 만들어야겠다, 엘프들 인원이 몇인데 안 그래?”
“““옙!”””
그렇게 그들은 미트파이와 비프웰링턴을 정신없이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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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 파이와 비프웰링턴 입니다.
언제나 성질이 불같은 고든 램지도, 비프웰링턴을 잘 만드는 요리사에게는 언제나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숙련된 요리실력이 필요한 요리지요.
근데 이 글을 쓰는 저는 정작 저 두 요리를 먹어보지도 못했.....따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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