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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화 〉 맛있다. (121/289)

〈 121화 〉 맛있다.

* * *

엘프의 마을, 이샤렌의 엘프들은 한창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래전, 전쟁으로 인해 헤어졌던 힐라가 외부의 인간들과 돌아왔기에, 그들을 반기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거대한 세계수의 내부에는 많은 엘프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을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탁자와 의자들이 가득했고.

정령들은 엘프들의 분위기에 취해,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화려한 빛들을 내뿜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축제의 만찬을 손님들이 만든다는데?}

{진짜? 외부인들이 만든 음식이라.....괜찮을까?}

그리고, 만찬에 가장 중요한 음식들을 엘프들이 아닌, 외부인이 만든다는 이야기는 금세 여러 엘프들의 입을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한창 시끌시끌하게 축제를 준비하는 엘프들.

­으음....항상 지하에 있어, 바깥을 나오는 것은 참 오랜만이구나.­

{어....저 분은....!}

{외부인들을 반기는 자리에, 드래곤 님이 나오시다니...?}

그러던 중, 그들은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아주 고귀한 존재인 백룡이 바깥으로 나온 것을 보며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백룡은 언제나 그녀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지하 굴에서 시간을 보냈으며, 바깥으로 나오는 일이 극단적으로 적었다.

그렇기에 그런 그녀가 나올 정도니, 외부인들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나? 싶은 엘프들.

­이르마, 나는 이곳에 앉으면 되겠어?­

­나는 바로 옆에 앉을 것이다!­

­네~네~ 두 분의 자리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요리를 보여줄지, 참으로 기대가 되는구나!­

­류월, 그렇게 좋아?­

­그렇다!­

­그래 그래. 네가 미소를 지으니, 나도 기대가 되는걸?­

그렇게 두 용이 자리에 앉아 곧 나올 요리에 대해 간단한 잡담을 떠들고 있을 때쯤.

­실례합니다!­

“자...잠시만요...!”

불쑥 그들의 사이를 지나가는 덩치가 큰 인간 남자와 양 갈래 머리를 한 작은 인간 소녀가 손에 들린 접시를 엘프들이 앉아 있는 곳마다 하나씩 놓아주었다.

그리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커다란 쟁반 위에, 수많은 요리들을 들고 나타난 강하.

그렇게 그들을 반기는 만찬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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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이? 이것들은 파이 인 건가...?}

{냄새가 참 좋은걸?}

황금빛 색을 머금은 파이와 비프웰링턴이 고소한 향기를 내뿜었다.

­일단 사람 수를 정확히 파악을 하지 못해서, 준비를 많이 했으니까, 부족하면 언제든지 말해 주세요~­

­오..맛있어 보이는걸? 잘 먹을게~­

그런 음식들을 바라보던 백룡은 빙긋 웃으며 강하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음....살짝 기대하기는 했는데, 파이인가...그래도 류월도 있고, 이만큼 고생한 수고도 있으니까 실망한 티는 내지 말아야겠네.’

수 천년.

그것이 백룡이 살아온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인간 세계에서 머무른 세월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백룡은 인간 세계에서 온갖 음식들을 맛보았다.

그 음식 중 파이또한 포함이 되어 있었으며, 그렇기에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기대감이라는 것이 오랜 세월 동안 풍파 되고 닳아온 그녀였기에, 이제 와서 이런 음식으로 자신의 생각이 달라질 리가 없었다.

‘맛 좀 보고, 아가들이 불편하지 않게 먼저 내려가 있어야겠다.’

즐거운 축제 분위기에, 자신이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떡 하니 지키고 있어봤자, 엘프들이 불편할 것 같았던 백룡은 우선 파이가 담긴 접시를 자신의 앞으로 가져왔다.

­음..? 이 향기...뭔가 이상한데...?­

그리고 가까이에서 파이의 향을 맡았던 백룡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동안 자신이 보아왔던 파이는, 과일을 꿀로 달콤하게 조려, 안을 채우는 파이였다.

그러나 이것은 달랐다.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고기의 향.

고기 냄새였다.

‘뭐가 들어간 거지....?’

무엇이 들어가서 이런 냄새가 나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백룡은 앞쪽에 놓은 식기로 파이를 한 조각 크기로 잘라내었다.

­.....!­

그러자, 마치 숨겨둔 폭탄처럼, 풍부하고 그윽한 향이, 그녀를 덮쳤다.

평범한 과일 파이가 아니다.

소고기와 각종 채소, 그리고 자신이 맡아보지 못한 향신료의 냄새.

킁. 킁킁...

백룡의 코는 이 향기를 더욱 자신의 몸속에 깊게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코를 벌름거렸다.

­음? 괜찮은가?­

­응? 아...어어. 괜찮아, 류월 너도 얼른 먹으렴.­

­알았다!­

그 냄새에 잠시 취해, 멍하니 파이를 바라보던 백룡에게 무슨 문제 있냐고 물어보는 류월의 말에 백룡은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별일 아니라는 말에 안심한 류월은, 이 음식이 익숙한 듯, 이미 자신보다 빠르게 작은 입으로 오물거리며 파이를 맛보고 있었다.

­아! 맛있다! 오늘도 역시 강하의 요리는 최고로구나!­

그리고는 입가가 귀에 걸릴 것처럼 환하게 미소 짓는 류월이 감탄사를 남발하며 웃었다.

......꿀꺽.

‘아...하하...나도 참, 이제 와서 이러다니...’

그런 류월의 모습에, 백룡은 입가에 침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일단, 먹어보자.’

잡다한 생각은 떨치고, 일단 파이의 맛을 느껴보기 위해, 한입 크기로 썰어낸 파이 조각의 속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한 입 맛보았다.

­?!....???­

미지.

미지란 말 그대로 알지 못한다는 뜻.

허나 그 단어는, 백룡에게는 잘 쓰이지 않았다.

그녀가 누구인가.

수천 년을 산 드래곤이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야말로 아주 거대한 도서관이나 다름없었고, 그만큼 세상의 온갖 지식을 알고 있는 그녀.

허나, 이 요리는 아무리 그녀 속의 도서관을 뒤져봐도 나오지 않았다.

바삭하고 부드러운 파이 반죽, 그리고, 느껴지는 고기의 진한 풍미와 육즙이, 잘 익은 채소들과 어우러져 더욱 감칠맛 넘치고 단맛이 우러났다.

빵과도 잘 어울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향이 코끝을 간질거렸다.

맛있다.

­으음?­

­무..무슨 일이더냐?­

­아...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냐...응..­

맛있다. 라니.

수천 년의 세월 동안 그런 감각은 이미 닳아서 사라진 지 오래였을 텐데.

이 요리가, 죽어버린 미각을 일깨웠다.....고?

‘하....하하....이...이 파이를 만든 건 정말 운이겠지...? 그럼, 다른 요리는 이것보다는 부족할 것이 뻔해...!’

그저 행운.

그저 단순히, 운 좋게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 백룡은,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두 번째 요리를 자신의 앞으로 가져왔다.

‘빵...? 아냐, 이것도 희미하지만, 다른 냄새가 섞여서 나고 있어.’

그 요리는 마치 거대한 식빵처럼 보였지만, 희미하게 나는 냄새가 이것이 평범한 빵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일단....잘라볼....음?!!?!’

루비.

거대한 빵을 잘라내자, 마치 루비처럼 영롱한 빨간 색을 내는 고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자세히 살펴보니, 고기만이 아닌 버섯과 햄 또한 고기를 감싸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무슨 맛일까.

‘기대? 이 내가 기대를 하고 있다고?’

어느새 백룡은, 이 요리는 어떤 맛을 내는지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지....’

백룡음 금방 자신이 떠올린 생각이 틀리다며, 고개를 휘젓고는 마찬가지로 한입 크기로 잘라내어, 입으로 가져갔다.

­하...하하...­

한번 씹을 때 마다 폭포처럼 새어 나오는 고기의 육즙, 씹을 때마다 감칠맛이 풍부하게 터져 나오는 고기에, 숲의 내음을 그대로 품은 버섯의 풍미, 그리고 짭짤하며 고소한 햄이, 쫄깃한 빵과 만나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맛있네..­

­그렇지 않느냐! 강하의 요리는 언제나 맛있다!­

맛있다.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각인가.

­하하....맛있네, 정말...­

백룡은 고개를 돌려, 류월을 바라보았다.

아주 밝게 웃으며, 맛있게 음식을 먹는 류월.

‘다행이야, 네가 저 아이와 만나서.’

언제나 내 곁에 머물던 아이는, 어느새 이렇게나 자라났다.

그리고, 이 음식이 있다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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