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2화 〉 ???:훗...그녀석은 우리 사천왕 중 최약체! (122/289)

〈 122화 〉 ???:훗...그녀석은 우리 사천왕 중 최약체!

* * *

­그래, 그 정보는 틀림없겠지?­

가까스로 촛불 하나만이 남아, 어스름하게 불빛을 내는 어두컴컴한 방.

­예, 우리와 내통하던 애슐란의 에몬 베르크. 그자가 결국 왕가에서 소란을 피우다가, 잡혀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래애....혹시나 싶지만, 그 멍청해 빠진 영감탱이가 우리에 관한 정보를 털어놓지는 않겠지?­

­물론입니다, 이미 손을 써 두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일렁이는 불꽃 사이, 두 그림자가 아무도 몰래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쯧, 욕심 많은 돼지 새끼이긴 했지만....분명 도움이 된 건 사실, 이렇게 패 하나를 잃어버리다니....나중에 가면 판돈이 후달리겠는걸?­

­하지만, 그자를 구해내기에는, 너무나도 위험부담이 큽니다.­

­알아 알아, 아무리 쓸모가 있는 패라고 해도, 그것만 붙잡고 있다가는 스트레이트는 만들 수가 없지, 잘 잘라냈어.­

­예.­

­그래서어....감히 내 패를 망쳐버린 그새ㄲ...아니 그 자의 정체는 알아냈어?­

­이번에 애슐란이 새로 친분을 맺은 [한] 이라는 나라에서 찾아온 강하라고 하는 소녀 입니다.­

­뭐? 소녀? 그딴 계집년이? 흐음.....일단 알았어, 너는 일단 그 강하라는 년을 잘 주시하고, 새로 알아낸 정보는 재깍재깍 나에게 알려.­

­예, 알겠습니다.­

­이제 가봐­

­그럼, 실례.­

볼일은 다 끝났다는 듯이 손을 휘적거리는 남자의 손길에 반응한 그는, 마치 바람처럼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강하....강하 라....어떤 년인지는 몰라도,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암, 그럼 그럼.­

훅 하고 촛불이 꺼지기 전, 마지막으로 밝게 타오르던 불빛은 그의 뒤틀린 욕망을 보여주는 삐뚜름한 미소를 비췄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엘프.

생명과 처녀의 여신인 아샤의 사랑을 받는 종족.

그들은 숲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아샤의 축복으로 젊음을 선물 받아,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종족이다.

그들의 정령 친화력은 아주 뛰어나고, 십수 세기를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그들도 모르게 우월감이라는 것이 마음속에 싹트고 있었다.

자신들이야말로 모든 종족(드래곤 빼고)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다른 종족들은 미개하다는 마음이, 알게 모르게 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오늘, 외부인이 요리를 만든다는 것에도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끽 해봐야 50살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들은, 엘프들에게는 아주 미숙하고, 어리석은 존재들이었으니까.

그렇다, 분명 그래야만 했다.

허나.

{마...맛있다...! 이...이게 뭐라고 하더라...? 아무튼 엄청 맛있어!}

{아!! 그거 내가 먹으려고 하던 거였단 말이야! 내놔!}

{먼저 찜한 사람이 임자야! 이건 나도 양보 못 해!}

그들은 현재, 그들이 알게 모르게 깔보고 있던 인간들이 만든 음식들을 가지고, 치졸하게 싸우는 지경까지 오고 말았다.

종족으로써의 우월감? 엘프로서의 자존심?

그런 것 따위, 그들의 앞에 놓인 요리에 비하면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아직 많이 남아있어~ 자, 여기 립파이*도 있으니까, 이것도 같이 먹어.}

(립파이:파이 시트를 나뭇잎 모양으로 잘라내어 구워낸 후, 그래뉴당이나 설탕을 뿌려내는 달콤한 과자. 여러분들도 언젠가 먹어보신 적 있는 그거, 맞습니다.)

그런 엘프들의 유치한 싸움을 말리며, 힐라가 아직 한참 만들어 놓은 음식들을 그들 앞에 내려다 두었다.

{힐라아! 너 뭐야? 어디서 저 인간들과 알게 된 거야? 이거 너무 맛있어!}

{그러니까! 저 아이의 정체는 뭐야?? 인간이면서도, 이렇게나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내다니?}

{하하! 그치? 우리 셰프님이 좀 대단해!}

그런 힐라의 모습을 바라보던 엘프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 요리를 만든 강하를 칭찬하자, 강하도 아닌데 자꾸만 어깨가 들썩이는 힐라였다.

원래 자기와 친한 지인이 칭찬받으면, 그 지인도 아닌데 기분이 좋아지고는 한다는데, 딱 그 꼴이었다.

{근데 힐라, 너도 이 파이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줬어?}

{물론이지! 이 파이와 고기를 감싸는 빵반죽, 그리고 이 립파이도 내가 만든 거야!}

{정말이야? 대단한데?}

{야! 야! 일단 먹자! 너 아까처럼 내꺼나 뺏어가지 말고, 어서 먹기나 해!}

그렇게 엘프들은, 고귀한 자존심 따위는 가볍게 내던져버리고, 접시에 코가 닿을 듯 미친 듯이 요리를 먹어 치웠다.

“하....역시 고기랑 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니까?”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강하.

모든 언어를 번역해주는 펜던트를 류월이 강탈...아니 빌려 갔기 때문에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표정만 바라봐도 어떤 감정이 깃들었는지는 물보듯 뻔했다.

“혀엉....그래서 우리는 언제 먹어?”

그러던 사이, 뾰족귀 사이를 날렵하게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요리를 옮기던 혁수가 꼬르륵 거리는 배를 쓰다듬으며 강하에게 다가와 물었다.

“일단 엘프들에게 다 먹이고 나서, 우리 것은 내가 따로 준비해 뒀으니 걱정하지 말고! 무브무브!!”

“힝...배고픈데....”

하지만, 아직 엘프들은 한참 모자란다는 듯이 빠르게 접시를 비워가고 있었기에, 그들이 여유롭게 식사할 시간은 멀었다.

“힘내요 혁수 오빠, 열심히 일하고 먹는 밥은 더 맛있어요!”

혁수와 마찬가지로 미트파이와 비프웰링턴을 열심히 옮기던 벼루가 혁수를 다독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고맙다 벼루야, 역시 너밖에 없....아니다, 임자 있는 아가씨한테 이런 말은 좀 그런가?”

“ㄴ..네..네...네에??!?!”

“푸학!!!....콜록 콜록...!”

자신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벼루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려다가, 파렌을 떠올린 혁수가 벼루를 배려한답시고 말을 꺼냈지만, 벼루는 혁수의 말에 볼이 새빨개지며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마침 주방에서 잠시 나와, 물 한 잔 마시며 잠깐의 휴식을 취하던 파렌도 그 말을 들었는지, 마시고 있던 물이 사레에 걸렸는지, 물을 내뿜으며 거칠게 기침을 했다.

“.....눈치라고는 더럽게 없는 놈 같으니....”

“어...? 왜? 나 지금 실수한거야?”

“너는 진짜.....아니다, 어서 움직이기나 해 이 근돼 짜샤!”

“아..! 아!! 엉덩이 걷어차지 마! 알았어! 간다고 가!”

강하는 눈치라고는 개밥에 비벼서 근처 바둑이에게 건네준 혁수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바로 쫓아내 버렸다.

“에휴....매화는 저런 놈이 뭐가 좋다고 헤실헤실 거리는지야 원....”

콩깍지가 씌어도, 정말 단단히 씌였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강하는, 미트파이와 비프웰링턴을 마저 굽기 위해, 주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만찬이 끝나자, 그 자리에는 빵빵하게 부른 엘프들의 배와 부스러기 한 조각 남지 않은 접시만이 그 자리를 채웠다.

{어후...배불러....}

{너무 많이 먹었나봐....}

{근데....너무 맛있어서 멈추지를 못했어...}

{맞아, 솔직히 저걸 남기는 건 요리에 대한 모독이라구....}

저마다 부른 배를 두들기며, 행복한 미소를 짓던 엘프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이번 과식에 대해 자기 위안을 하기 시작했다.

­요리는 입맛에 잘 맞으셨는지?­

그리고 어느새 주방에서 나온 강하가, 그런 그들에게 다가와 자신이 만든 음식의 감상을 물었다.

­오! 정말 대단했어!...요!­

­내 생애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었어요!­

­정말 당신이 만든 것이 맞나요? 난 무슨 이상한 포션이라도 탄 줄 알았어요....너무 맛있어서...­

­하하...맛있었다면 다행입니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그녀의 음식에 대한 평가는 매우 후했다.

­참으로 맛있지 않느냐? 난 요즘 저 아이의 음식을 먹는 것을 낙으로 살고 있다.­

혼자서 미트파이 4개와 비프웰링턴 5개를 해치워 버린 류월이 입가에 묻은 소스를 혀로 핧짝 거리며 바로 옆에 앉은 백룡에게 말했다.

­그래....네가 저 아이와 붙어 다니는 이유를 알겠구나.­

그 류월이 어째서 저 아이와 붙어 다니는지 알게 된 백룡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 아이는 분명,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미 강하의 신체는 인간이 아닌 반룡이라는 것 쯤은 백룡의 눈에 아주 쉽게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이 저 아이가 특별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반룡이라는 것은 저 아이에게는 그저 하나의 수단일 뿐, 강하의 본질 자체가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저 아이는....아마 다른 세계의 사람이겠지.­

이 세계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미지의 요리법은, 그녀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것임을 인정하면 아주 쉽게 납득이 갈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어.’

그렇게 시끌벅적한 엘프 마을의 환영회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립파이 정말 맛있죠....!

어릴 때 가끔씩 어머니가 한가득 사올때면, 심심삼아 하나 먹는다는 것이, 어느새 빈 비닐만 한가득....!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