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내 몸의 시한폭탄.
* * *
부르셨나요?
만찬이 끝난 후, 강하는 다시금 백룡이 자리를 잡고 있던 세계수의 최하층으로 내려와 있었다.
‘여기는 역시 적응이 잘 안 된다니까...’
바닥에 끝도 없이 펼쳐진 하얀 꽃들이, 마치 저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강하는 이게 좋다고 만들어 놓은 백룡의 센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음, 왔니?
그리고, 인간의 모습을 한 백룡이 그런 그녀를 맞이했다.
식사는 입에 맞았을는지 모르겠네요.
후후....너도 참 짓궂구나, 내가 식사에 집중하는 모습을 몰래 힐끔힐끔 쳐다보지 않았니.
하하...요리사가 흥미가 깊은 것은, 자신의 요리를 맛보는 손님의 반응이라서 말이죠~
강하는 이미 백룡이 자기 요리에 푹 빠져, 정신없이 먹은 모습을 다 보았음에도 요리에 관한 질문을 하자, 백룡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나저나 몰래 훔쳐봤었는데, 역시 용이라는 종족은 참...
그래, 역시 이 세계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내 생에 처음 보는 요리들이었지...
....! 그걸 어떻게...?
그리고 이어지는 백룡의 말은, 강하가 깜짝 놀라기에는 충분한 말이었다.
강하.
그의 본이름은 강준이며,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미슐랭 셰프로 일하던 남자.
그와 친한 동생인 혁수와 함께, 변변치 못한 사고로 인해 이 세계로 떨어진, 이세계인 이었다.
이 세계의 사람은 누구나 마력을 띄고 있지, 하지만 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력이 전혀 보이지 않더구나.
그러고 보니 류월도 그렇게 말했었지....
아무리 생김새가 똑같다고 해도, 현대의 인간과 이세계의 인간의 차이점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 요리는 네가 다른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요리이니.
그런....가요?
뭐, 이세계의 존재를 소환하는 마법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으니 말이야.
네??!?
특히 인간들이 과거에 주로 사용하던 마법이었지, 상대가 마족이든, 인간이든, 전쟁을 벌일 때, 조금이라도 상대보다 뛰어난 무언가를 통해, 이기려는 작자들은 언제든지 있었단다.
그렇...군요?
‘진짜 말 그대로 마왕 같은 상대와 겨루는 '용사' 같은 것인가?’
허나, 이세계인들은 이 세계의 존재들과 다르게, 마력이라고는 전혀 없고, 그들이 가진 지식도 이 세계에 정착시키기 힘들어, 결국 이 마법은 잊혀져가게 되었지.
......그렇다면....저도?
그래, 누군가가 너희들을 소환한 것 같구나.
소환, 소환인가...
그렇다면....그렇다면...! 저는...아니 저희는,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나요?
묵묵히 백룡의 말을 들어오던 강하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속에 맴도는 한 마디를 끄집어냈다.
가능하단다.
..........!
하지만, 너희들을 소환한 마법 영창을 한 존재가 직접, 너희들을 보내줘야만 가능하단다, 애초에 그 술식 자체가 마력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서, 우리 같은 드래곤 같은 종족이 아니라면 혼자서 소환하기에는 크나큰 어려움이 있을 테지.
.....백룡님이 나선다고 해도 말인가요?
그렇단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너희들을 부른 것은 내가 아니니, 도와줄 수가 없어 미안하구나.
그리고, 이어지는 백룡의 말.
아닙니다. 정말로....감사합니다!
위대한 드래곤조차도 나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주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괜찮았다.
지금은, 이런 실마리를 얻은 것에 감사하도록 하자.
그리고 궁금한 점이 하나 있는데...
...네? 무슨...일인데요?
그렇게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실마리에 기뻐하며 주먹을 쥐던 나에게 백룡이 말했다.
어째서 너는 류월이의 힘을 쓰는 거니?
어....그거요?
그렇단다, 분명 인간이기는 한데, 용의 힘이 섞인....반룡?
하하...이거 말하자면 조금 길어지는데...
그렇게 강하는 자신의 힘에 대해 궁금해하는 백룡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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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류월이의 용석을 삼켰더니, 그렇게 됐다. 라.
류월의 말로는, 이 세계 사람이 아니라서 마력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라고 하던데요.
음음, 그건 맞는 말이란다. 용의 힘이란 그렇게 간단히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 류월이의 말대로 일회용으로는 사용 가능해도, 너처럼 자신의 몸에 용의 기운이 합쳐지는 경우는.....이것 참,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야.....너를 만나고 나서 이때까지 겪어본 적이 없는 일들이 마구 터져 나오는구나.
하하....그렇다면 저뿐만이 아니라....혁수나 진혁.....아니 저와 같은 세계에서 오게 된 사람도 용의 힘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가요?
음....그건 아마 힘들 것 같구나.
....왜요?
....이걸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아!
이 힘이 어째서 자신만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강하의 질문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던 백룡은, 무릎을 탁 치더니, 자신의 마력을 끌어모았다.
자, 이게 뭘까?
엄....그릇...인가요?
그래, 이건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그릇이란다.
그러더니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텅 빈 그릇을 하나 만들었다.
이 그릇을 너라고 생각하고 들어보렴, 이 세상의 사람들은 보통, 이런 자신만의 그릇에 크든, 작든 마력을 지니고 있단다.
그렇게 말하던 백룡은 손가락을 내젓더니, 이내 빈 그릇에 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용의 마력.
손가락을 계속 휘젓던 백룡은, 금방 그릇에 생겼던 투명한 물이 아닌, 새하얗고 불투명한 액체를 공중에 둥둥 띄워놓았다.
용의 힘이란 매우 특별해서, 다른 힘과는 전혀 섞이지 않는 특성을 보이고 있단다. 자, 이런 식으로.
오오...
백룡이 자신이 만든 액체를, 투명한 물이 담긴 그릇에 부어내자, 그 액체는 그릇에 들어가, 물과 섞이지 못하고 튕겨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너는 그런 마력이 없었기에, 용의 마력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지.
그리고, 그릇에 들어있던 물을 없애, 다시금 텅 빈 그릇에다가 액체를 넣자, 이번에는 스무스하게 그릇을 액체가 가득 채웠다.
하...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혁수나 진혁이도 텅 빈 그릇을 가지고 있을 텐데요?
허나, 백룡의 말대로라면, 혁수나 진혁도 텅 빈 그릇일 테니, 충분히 가능할 텐데, 어째서 자신만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생긴 강하가 백룡에게 물었다.
사람은 모두 그릇을 가지고 있지만, 그 크기는 제각각이란다.
그런 강하의 질문을 듣던 백룡은, 이번에는 여러 가지 크기의 빈 그릇을 만들었다.
처음에 꺼냈던 그릇보다 큰 그릇도 있지만, 훨씬 작은 그릇 또한 존재했다.
그리고, 네가 삼켰던 그것, 인간들이 여러 가지 호칭을 붙이기는 했지만, 나는 일단 [용석]이라고 부른단다.
어...그건?
빈 그릇을 다 꺼낸 백룡이, 또 무언가를 꺼내자, 강하는 어디서 많이 봤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반짝거리는 윤택을 지닌 동그란 구슬.
그녀가 이런 몸이 된 원인인 여의주였다.
하지만, 류월이 건네준 것은 칠흑같이 어두운색을 가졌는데, 저 용석이라고 불리는 것은 매우 새하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네가 알던 것과는 다르게 생겼지? 이 용석은 생성해내는 용의 성질에 맞추어져서 색깔이 바뀐단다.
그렇군요?
자, 다시 넘어와서, 이 용석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드래곤은 아주 어마무시하게 많은 마력을 만들어 내는데, 가끔, 육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마력이 넘치는 경우가 있단다.
그럴 때, 이 드래곤의 육체는 그런 넘치는 마력을 구체화해서 내보내는데, 그것이 용석이란다.
으음.....그렇...구나...
‘그러니까.....저걸 인간에 대입해 보면....그냥 배설...아니 부산물 아냐? 그리고 그걸 나는 먹어버렸...’
음? 왜 그러니? 표정이 안 좋은데?
아...아뇨아뇨! 계속 설명해 주세요.
백룡의 설명을 들은 강하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져 갔지만, 계속 설명해달라는 그녀의 말에 백룡은 이어서 설명을 이어갔다.
금방, 내가 인간들은 전부 각자의 접시를 가지고 있다고 했지? 하지만 이 용석은 딱 정해진 용량이 존재한단다.
자, 이 액체를 용석의 마력이라고 치고, 다른 접시들에도 부어볼까?
그렇게 말하던 백룡이 제작기 다른 그릇에 양이 똑같은 액체를 들이부었다.
그러자, 크기가 작아서 액체가 넘쳐흐르는 그릇도 있지만, 크기가 상당해서 다 부었는데도 아직 자리가 남은 그릇 또한 존재했다.
이렇게 그릇이 커서, 용석의 힘이 다 담기면 단기간 동안 용의 힘을 사용할 수 있지, 하지만, 그릇이 작아서 용석의 힘이 넘치게 된다면....그 힘을 감당하지 못한 그릇이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단다.
.....산산조각이 나면 어떻게 되나요...?
아마 죽겠지?
히익...!
아주 가벼운 어투로 끔찍한 결과를 이야기하는 백룡이었다.
그 중에서도, 네가 아주 특별한 경우란다, 그릇의 크기와 용석의 힘이 아주 딱 맞아떨어져서, 그대로 융합해버린 경우, 그것이 네가 용의 힘을 쓸 수 있고, 너만이 그 힘을 쓸 수 있는 이유란다.
그렇군요...
‘그렇구나, 그래서 내가 반룡이 된 것이구나?’
백룡이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 덕에, 강하는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자...잠시만, 만약에 내가 지금의 그릇보다 작은 크기였다면....나 그때 용석을 삼켰을 때 죽었겠네?......진짜 십년감수 했구만...’
머릿속으로 자신의 끔찍한 광경을 떠올리던 강하는 팔뚝에 돋은 소름을 팔로 덮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직 너도 완벽하게 융합이 되지 않은 것 같네?
네?
급하게 융합이 되어서 그런지, 그릇이 상처투성이야, 이러다가는 그릇이 깨져버릴지도 모르겠구나.
어.....네?
그러니까 그 말인즉슨, 나 지금 시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