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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화 〉 이름짓기. (124/289)

〈 124화 〉 이름짓기.

* * *

­어....금방 말하시는 말씀에 의하면....그릇이 깨지면, 그 그릇의 본체인 인간도 죽는다....맞나요?­

­그렇단다?­

­아니 ‘그렇단다’ 가 아니잖아요오오오오!!!!!!­

­히약...!­

아주 심각한 이야기를 뭘 그리 당연하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하는 백룡을 바라보던 강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빼액 내질렀다.

‘아니 뭐야 뭐야....나 진짜로 죽어?

그건 그렇다 쳐도 어째서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거야...?’

­아아.....아직 못 먹어본 음식들도 많고.....아직 남자로 돌아가지도 못했는데....이렇게 죽다니.....꺼흑....­

­아..아아! 걱정하지 마렴! 내가 도와줄 테니 고칠 수 있단다?­

­......제발 빨리 좀 말씀해주시겠어요...?­

갑자기 시한부 판정을 받아버린 내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꺼이꺼이 울고 있자, 백룡이 손뼉을 마주치며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그것도 모르고 울며불며한 자신의 모습이 쪽팔려진 강하였다.

....저 누님 나 놀리는 데 재미 들인 걸지도 몰라.

­크..크흠....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음....잠시 이쪽으로 오겠니?­

­네? 뭐....네.­

격양된 기분을 진정시키고, 마음을 다스리며 조곤조곤 백룡에게 자신의 안에 있는 그릇의 해결 방법을 묻자, 백룡은 강하에게 손짓을 하며 다가오라고 말했다.

­자, 보자아....­

­엣?...헤엣...? 히익..?!­

백룡은 자신의 바로 앞까지 온 강하를 바라보더니, 그녀의 가슴팍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갑자기 가슴을 왜 만지시는 거예요! 이건 명백한 성희롱이라고요!­

그러자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을 친 강하가 자기 가슴을 손으로 가리며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체 백룡에게 말했다.

와...금방 나 진짜 여자 같았....

­음? 성희...롱?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릇의 재구성을 위해 내 마력을 흘려놓기 위해서는,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다.­

그런 강하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백룡이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하...하지만....하필 가슴이라니...­

­아! 점막을 통해 마력을 흘러 넣으면 더 확실하단다?­

­....여기요...­

하지만 아직 가슴을 만지작 거린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거부감이 드는 강하가 불평을 하자, 백룡이 떠올렸다는 듯이 말한 내용을 듣고는, 순순히 자신의 가슴을 들이대었다.

‘점막....점막.....그러니까...그거 맞지?...나에게는 난이도가 너무 높아....아니 애초에 남자였을 시절에도 못한 걸 어떻게 해!!!’

그렇다.

32세 모솔아다 강준의 재등장이었다.

­자...그럼 이어서..­

잠시 멈췄던 행동을 재개하던 백룡이, 손바닥에서 무언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흐음...! 조...조금만 살살...!­

‘죽고 싶다...’

남자였던 내가, 여자아이가 되어서 거대한 괴물이기는 하지만 외관은 아주 아름다운 여성이 가슴을 만지작거리자 신음을 내는 이 상황이. 강하에게는 너무나도 수치스러웠다.

그래도 드레스를 입었을 때보다는 나으니 뭐....그냥 꾸욱 참는 수밖에.

­아....? 뭐...뭔가가 채워지는...? 어.....이게?­

­네 그릇은 지금 류월의 힘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구도에 한계가 오는 듯 보이니, 내 힘으로 그 그릇을 강화시켜 주는 거란다.­

백룡의 마력이, 가슴을 통해서 마치 심장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물결이 전신을 휘감는 느낌.

‘아....뭔가 안정되는 기분이야.....’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자, 응급처치는 끝냈단다. 이제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강하의 가슴팍에서 손을 뗀 백룡이 말했다.

­당분간이라면.....또 다시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건가요­

­음, 간단하게 한 번에 고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애초에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 봐서....함부로 휙! 하고 마력을 부어 넣었다가는 그릇이 깨져버릴 수도 있어서, 완전히 나아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네...­

­시간이라면....얼마나...?­

­보자....한 3개월? 얼마 걸리지는 않네~­

­엄청 길어..!­

드래곤이라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게 3개월이다.

하지만 강하가 이 곳에서 3개월이나 있을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많지는 않았다.

당장만 해도 다시 애슐란 왕궁으로 돌아가야 하고, 한에 있는 스타 주막의 영업도 돌아가서 개업을 해야 했다.

­저....3개월이나 있지는 못해요....애초에 내일이나 모레가 되면 돌아가 봐야 하는데...­

­어머, 그것참 곤란하게 되었구나...­

한숨을 푹 쉬며 그 정도 시간 동안 있기에는 곤란하다고 말하는 강하.

­....그러고 보니, 류월에게 들었단다, 음식점을 하고 있다며?­

­네? 아 네, 그렇...죠? 그래서 더더욱 돌아가 봐야 하고요.­

­....류월이도 일을 하니?­

­뭐, 요리 쪽은 전혀 가망이 없어서, 손님들을 반기고 주문을 받고, 음식을 옮기는 일 정도?­

­그래? 어머! 류월이는 예전부터 인간들에게 항상 거만하게 굴었는데, 이제는 인간들 상대로 일도 하다니....뭔가 대견하게 느껴지는구나...­

류월이 스타 주막에서 인간들 상대로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백룡은 빙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류월이는, 자주 웃니?­

­....네, 항상 제멋대로에, 잘난 척을 하는 꼬맹이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요.­

­그렇구나..........좋아, 결정했단다.­

­네?­

강하가 해주던 이야기를 눈을 감고 조용히 듣고 있던 백룡이, 눈을 번쩍 뜨고 손을 꼭 마주 모았다.­

­네가 그러지 않았니? 내 생각을 바꾸겠다고, 그게 너무나도 잘 통한 것 같구나.­

­아...아아? 그것참...다행이네..요?­

­후후, 앞으로 아주 재미있어 질 것 같단다...­

영문도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는 백룡.

­그러고 보니, 류월이의 이름을 지어준 것도, 인간이라고 했지?­

­네? 네네, 그렇죠?­

­이름이라.....나도 언제까지 백룡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상하고, 이름이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건 그렇죠.­

그녀가 새하얀 드래곤이라서 백룡이라고 불리고는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하얀 드래곤이니까 백룡이라고 부르자!] 같은 매우 성의 없는 호칭이기는 했다.

­그래서 그런데, 그럼 너희가 내 이름을 지어주지 않으련?­

­에? 저희가요?­

­류월이도 인간이 지어준 이름이잖니? 그렇다면 나도 인간들이 지어주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러던 백룡이 급작스럽게 강하에게 상당히 중요해 보이는 임무를 마치 게임 캐릭터 닉네임을 추천해달라는 어투로 가볍게 요청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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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우리가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던데 말이지....­

이곳은 세계수의 중간층에 존재하는 손님 대접용 방.

애초에 엘프 마을 자체가 숨겨져 있어서, 손님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마을에 온 적이 없었기에, 매우 급하게 만들기는 했다만, 상당히 나쁘지 않았다.

잠자리는 침대....가 아닌 해먹이라는 것도 특이했다.

특히 류월이 아주 좋아하는 기색이었다.

지금도 해먹에 들이누워, 그네처럼 마구 흔들고 있으니 말이다.

“용님의 이름을 지어 달라니....저...정말 우리가 함부로 결정해도 되는 걸까요...?”

“뭐, 저쪽에서 부탁했으니, 그리고 영 아니다 싶으면 저쪽에서 거절할 거야.”

“그렇겠죠...? 그래도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향이가 저렇게 걱정을 하는 이유도 이해가 갔다.

드래곤.

이건 단순하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아니다.

만약 저 백룡이 인간 세상에서 정체를 드러낸다고 치자.

근데 만약 개떡 같은 이름을 지어두면 어쩌겠는가.

막 [크...큰일입니다 폐하! 북쪽 숲의 패자, ­얄리얄리 얄라성­이 쳐들어 왔습니다!

뭐..뭣? ­얄리얄리 얄라성­이라면, 엄청난 힘을 가진 드래곤....­얄리얄리 얄라성­이 확실하단 말이냐!] 같은 일이 일어나면,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이다.

­크흠! 일단 자기가 생각난 이름을 하나씩 말해봐.­

­나! 나다! 역시 드래곤은 강력하니까.... 슈퍼 울트라 드래곤은 어떻..­

­기각.­

이름의 제안을 부탁하자 마자 번쩍 손을 들고 말한 왕녀의 의견을 광속으로 기각한 강하.

­히잉....멋있는데...­

­왕녀님...제발....­

(이히힉..! 슈퍼 울트랔ㅋㅋㅋㅋ 주..주인....! 나 너무 웃겨....!!)

'...저 왕녀의 머릿속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진심으로 저 이름이 멋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금새 풀이 죽어버린 아델리아 였다.

“음....그냥 엘리자, 카랄리네, 이런 건 어떻슴까?”

“그것도 나쁘지 않기는 한데, 너무 인간적이지 않아?”

"헤헤...그런가?"

“시루떡!”

“죽어. 너는 그냥 죽어버려.”

“.....공주님..?”

“확실히 공주처럼 이쁘기는 하지만, 그건 이름이라기보단 호칭 같아서 말이지.”

그렇게 서로서로 여러 가지 이름의 후보가 나오기는 했지만, 뭔가 마음에 쏙 드는 무언가가 나오지 않았다.

“.....이건 어떻느냐?”

“음? 뭔데?”

“...이 몸이 예전부터 생각하기는 했던 것인데 말이다...”

그때, 아직까지 말 한마디 없이 침묵을 지키던 류월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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