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마녀의 영혼은 의외로 맛이 없다.
* * *
엘프의 마을에 도착한 지 3일이 지났다.
어? 셰프님이다!
셰프님!!! 오늘 저녁은 뭔가요?
어…. 글쎄.....뭘 만들까..?
이제 엘프들은 지나가다가 강하를 발견하면, 쪼르르 달려와 세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미 강하의 입지는, 엘프 마을 이샤렌에서는 거의 촌장 다음의 위치에 존재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이 생전 맛보지 못한 진미는, 엘프들을 굴복....이 아니라 포로....가 아니라! 강하를 존경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까 셰프님! [백설] 님께서 셰프님을 찾으시던 데요?
응? 그래? 알았어 고마워.
그러다 문득, 무언가가 생각이 났는지 엘프 중 한 명이 강하에게 누군가가 강하를 찾는다고 전해 주었다.
백설.
그것이 백룡의 새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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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그렇다, 새하얀 눈 이라는 뜻이지, 어떠냐? 어울리지 않느냐?”
“오.....괜찮은데?”
“백룡의 이미지를 생각하면....딱인데?”
“저...저도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새하얀 눈.
온몸이 새하얀 백룡에게는 상당히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겨울이 되어, 첫눈이 내릴 때면, 항상 백룡을 떠올리고는 했지. 하....마치 첫눈처럼, 그리움을 담아서 지어보았네.”
류월은 떠올린다.
청란과 같이 다닐 때건, 숲속에 박혀 잠만 자고 있을 때건, 첫눈이 내릴 때면 언제나 그녀가 떠올랐다.
“....킁...그...그래! 잘 어울린다! 그럼 류월 네가 백룡에게 직접 전해주...”
“아! 괘...괜찮다! 강하 네가 부탁을 받았으니, 네가 전해 주거라.”
그런 류월에게 먹먹한 감정을 느끼던 강하가 류월에게 말했으니, 류월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자신 대신 강하에게 부탁했다.
“........너 혹시 부끄럽냐?”
“무...뭣? 그...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거라! 이...이 몸은 그...그저....그래! 이 해먹이라는 침구가 마음에 들어 누워있고 싶을 뿐....이니라...”
그런 류월을 바라보던 강하가 그녀의 마음속에 정곡을 찔러넣자, 류월은 얼굴을 붉히며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뭐, 그래 내가 전해 줄게.”
“그..그래! 알겠다, 잘 다녀오거라.”
그렇게 스타 주막의 직원들과 떨거지(주로 왕녀)의 의논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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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이라..
[새하얀 눈] 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름이 지어지자, 백룡이 부탁했던 대로 직접 그녀를 만나러 온 강하가 백설이라는 이름을 말해 주었다.
어쩜....너무 마음에 든단다? 그런데 이 이름은 누가 지어주었니?
류월이 지었습니다.
어머나?! 류월이가? 어머....그런데 류월이는?
백설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든 백룡이 이름을 지어준 류월을 찾았다.
부끄러워서 안 왔어요.
어머나아~ 그 애도 차암~ 나중에 내가 직접 찾아가야겠는걸?
이름을 만든 류월이 부끄럽다고 안 왔다고 하자, 백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백룡은 백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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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그래,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니?
그 시각, 백설은 자신을 찾아온 인물, 진혁을 마주 보며 물었다.
혹시, 이 검을 알고 계시는가 해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런 백설을 바라보던 진혁이 허리춤에서 자신의 애검이자 파트너, 드라고노바를 꺼내 보였다.
(주...주이인...? 나 조금 무서운데..?)
드라고노바.
드래곤을 처치하기 위해 이름 모를 드워프가 벼려낸 에고웨폰.
허나 그 강력한 힘의 대가로, 사용자의 마력을 빨아들이는 효과가 있어,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며 봉인되었던 것을, 진혁이 발견해 지금까지 같이 싸워왔다.
진혁은 오랫동안 드라고노바와 같이 지내며, 그 검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어째서, 그 드워프는 드래곤을 상대하려고 한 걸까?
그리하여, 흑룡 류월보다도 오래 살고 있는 백설이라면, 혹시 그 이유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하여 진혁은 백설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음....어라? 이 검은....
..! 혹시, 알고 계십니까?
백설은 그런 드라고노바를 바라보더니, 무언가 생각이 나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아~! 기억났다! 이 검, 라이젠이 만든 검이구나?
라이...젠?
응응! 그 예에에전에, 내가 여러 가지 금은보화나 귀중한 금속들에 눈이 가서, 상당히 많은 양을 내 보금자리에 놔둔 적이 있었는데, 라이젠이라는 드워프가 그걸 발견했지.
그래서...어떻게 됬습니까?
음....나야 뭐, 그런 쪼그마한 드워프 따위가 몰래 들어와 봤자, 그냥 죽여 버리거나 쫓아버리면 됬는데, 참....그렇게 기막힌 술을 들고 와서 유혹하니 별 수 없었지 뭐야~ 그래서, 자기가 새로운 검을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챙겨둔 광석이랑 내 용석을 빌려달라고 하더라고?
용석...이요?
그래, 그래서 뭐.....다시금 말하지만....술 맛이 기가 막혀서....빌려줬지. 아마 그걸로 만든 검이 네가 말한 그....드래...뭐?
드라고노바입니다.
아 맞아. 드라고노바일거야.
아하....그렇습니까?
뭔가, 드라고노바의 정체를 알게 되기는 했는데, 뭔가 김이 빠진다고 생각한 진혁이었다.
무언가 드래곤을 베기 위한 슬픈 과거라던지, 미래의 사용자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든지 하는 그런 전개를 바랐는데.....그냥 드래곤이랑 술친구 먹고 만든 검이였다니...
(주인? 뭔가 엄청 허탈해 보여...)
아...아니다, 그냥 좀...뭔가 힘이 빠지네
흠....잠시 그 검을 나에게 줘 보겠니?
그렇게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진혁을 보던 백설은, 드라고노바를 잠시 자신에게 달라고 부탁하였다.
예...뭐...
(주...주인? 나...나 무서운데? 나...나를 이 무시무시한 용에게 넘기는 거야?)
흠...보자아..
(히야악! 드...드래곤이 내 검신을 만지작거리고 있어어어!!)
백설이 자신을 만지자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지르는 드라고노바.
허나, 그 소리는 사용자인 진혁에게만 들릴 뿐이었다.
역시나 맞네, 그렇담....흡!
(어...? 어어...? 자...잠ㄲ.....!)
?! 백설님? 지금 무엇을...?!)
드라고노바를 들어서 꼼꼼히 살펴보던 백설은, 무언가 발견한 듯 씨익 웃더니, 자신의 마력을 드라고노바의 중심지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드라고노바는 흰색의 밝은 빛에 휘감겨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주...주인...나...뭔가 이상...해.....!]
괘...괜찮아??!
[뭔가....내 몸이...이상해....!]
....어? 왜 텔레파시가 아니...지?
이윽고 드라고노바를 휘감던 빛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드라고노바가 모습을 보였다.
새하얀 머리칼이 바닥을 덮었다.
조약하고 동글거리는 손발이 꼬물거렸다.
째진 동공이 끔뻑거리며 진혁을 바라보았다.
......???????
[??????????????]
역시나 그렇구나~ 라이젠이 내 용석을 들고 간 이유가 있었어.
그 곳에는, 마치 백설을 닮은 흰백색의 여자아이가 바닥에 철푸덕 앉아, 진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설님? 저를 부르셨.....누구?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우와악!!!
그리고, 자신을 불렀다는 말에 백설의 방으로 찾아온 강하는 진혁과 웬 소녀가 서로를 바라보며 비명을 지르는 꼴을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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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저 꼬맹이가, 네가 차고 다니던 드래고노바인지 뭐시기라고?
....예, 저도 지금 이 상황이 참....
[주...주이인...! 이 팔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구나아.....]
잠시 후. 혼란스러운 상황을 천천히 정리하던 강하가 드라고노바...라고 불리는 꼬맹이를 바라보며 진혁에게 물었다.
아하하~! 라이젠이 참 신기한 물건을 만들었구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예예! 드라고노바가 어째서...저렇게...된 건가요?
그리고 두 사람은, 자신의 앞에서 그저 환하게 웃는 백설을 바라보며 말했다.
라이젠이 내 용석을 빌려 갔다고 하지 않았니? 아마 네가 처음 발견한 저 아이는 아직 완전히 완성되지 않은 것이겠지. 내 마력을 받아들인 저 모습이 진정한 모습일거야, 그런데 내가 라이젠이랑 만나고 나서, 한 곳에 있는 것이 질려서 딴 대륙으로 떠났거든, 그래서 나를 찾기 위해 드래곤을 상대하는 검, 드라고노바 라는 이름을 지어서, 나를 만나게 만들려고 했던 모양같네.
그...그럼 드래곤 슬레이어 라고 불리는 저 이명은....?
나를 만나게 하기 위한 구실...?
허...허허....이거 참...
결론은 드라고노바는 전설 속에 내려오는 드래곤 슬레이어가 아니라, 백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검이라는 것이었다.
그...그런데, 그러면 드라고노바는 어떻게 하나요...? 이제 저 모습 그대로 살아가야 하는 건가요?
드라고노바의 힘으로 소드마스터가 되었던 진혁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백설에게 물었다.
음....한번 마음속으로 드라고노바를 불러보지 않으련?
네?.....일단 네....으음....
그런 진혁에게 마음속으로 드라고노바를 불러보라 말하자, 진혁은 반신반의하며 눈을 감고, 드라고노바를 불러내었다.
[어..?어어...? 으아아아!!]
그러자, 옆에서 신기한 표정으로 자신의 팔다리를 움직이던 드라고노바가 밝은 빛에 휩싸이더니, 원래대로의 검의 형태로 변해, 진혁의 손으로 날아왔다.
오.....다행이 다시 돌아왔어...
이제 드라고노바, 네가 다시금 인간형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해보렴.
(음.....우왓..!으아아...)
백룡이 드라고노바에게 말을 걸자, 드라고노바는 다시금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런 식으로, 검의 형태와 사람의 형태로 마음먹은 대로 변할 수 있을 거란다?
오오....그렇구나...
`소울이터냐....?`
그렇게 진혁이 드라고노바의 새로운 능력에 감탄하고 있을 사이.
[주인....나 엄청난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드라고노바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하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진혁을 바라보았다.
뭐....뭔데?
그런 드라고노바의 모습에 순간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키는 진혁.
[이 모습이라면.....강하 셰프의 요리를 먹을 수 있다!]
....뭐?
[맨날! 주인은 강하 셰프의 요리를 눈물을 흘리며 먹던데, 나도 얼마나 궁금했는지 알아? 하지만....이 모습이라면 나도 먹을 수 있다!!우하하하하!!!]
하...하하....그래....
무언가 엄청난 말이라도 할 것 같았던 드라고노바의 입에서 힘이 빠지는 말이 나오자. 진혁은 그대로 얼굴을 푹 숙여버렸다.
[셰프! 오늘 저녁은 무엇인가!!]
.....글세, 아직 안정했는데? 고기 요리나 만들까..? 하하...
[오오! 그거 좋다!]
음~ 오늘 저녁도 참으로 맛있겠구나?
그런 드라고노바를 바라보던 강하는 결국 하하 웃으며 생각을 포기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