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생각해 보면, 일찍 나왔어도 이상할 게 없었던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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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엘프 마을에서 돌아온 강하 일행.
아델리아 덕분에 약간의(?)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여차여차 무사히 돌아왔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스파게티는 어때요?
아니, 이미 스파게티는 애슐란의 국민 음식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노점 하나하나가 죄다 스파게티집이라고 봐도 허언이 아니야.
그렇다면 역시 파이! 애플파이를 하라는 계시인 거죠!
으음....파이는 애초에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렇다고 미리 만들어 놓으면 맛이 다 죽어버리니까....안돼.
이잉....
“이 몸은 꼬치구이가 좋겠구나!”
“....좀 식상한데? 좀 특별한 건 없나...?”
한데 둘러 모여서, 여러 가지 음식들 이야기를 꺼내는 그들.
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시 시간을 뒤로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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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내가 자네를 초청한 이유를 아는가?
바이엘른의 손에 끌려간 아델리아를 뒤로하고, 바이제르는 헛기침을 하며 강하에게 물었다.
두 국가에 대한 친목 목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냥 내 요리가 먹고 싶어서 아닌가?’
이미 바이제르의 의도를 다 알아차린 강하가 내심 혼자 중얼거리기는 했지만, 평범하게 대답하였다.
그렇지,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네.
한 가지라 함은....?
바로 개월제라네.
개월....아~ 그러고 보니 예, 기억이 납니다.
확실히, 한에서 받은 친서에서는 ‘개월제’ 라는 축제가 열리니, 그 기회에 맞추어 불렀다고 했지?
개월제는 우리 애슐란의 대대로 내려오는 축제날로, 둥근 달이 떠오를 때, 애슐란 님 께서 내려오셨다는 전설에 맞추어, 4년에 한 번,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부터 약 3일간 이뤄지는 축제라네.
호오...그렇군요?
그래서 말인데, 혹여 축제에 참여할 생각은 있는가?
축제에 참가...말입니까?
축제라....
현대에 있었을 때도, 현지에서 여행을 다닐 때, 그 지역에 축제가 있다고 하면, 바로 달려가서 그 지역의 특산품이나 요리를 마음껏 먹었었지.
“축제라...이 몸은 좋다고 생각한다. 분명 맛난 것들도 많이 있겠지...”
먹는 것을 좋아하는 류월은, 축제라는 말을 듣자마자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으며 아주 큰 관심을 보여왔다.
“그래? 그럼 한번 즐겨볼까?”
그런 모습을 보던 강하도 느긋이 축제를 즐기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네, 그렇다면 한번 참가해 보겠습니다.
오! 그것참 다행이군, 좋네, 그렇다면 바로 자네들이 자리를 잡을 위치를 골라 주겠나?
...네?
....음?
갑자기, 웬 자리를 잡아?
개월제는 무슨 사람들이 한 곳에 가만히 즐기는 축제인가?
아...아아! 이것 참, 내가 말을 다 하지를 않았군, 내 말은 자네들이 이번 축제에서 노점을 열어보는 것은 어떤지 물어본 참이었네.
노점이요?
서로 상반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를 챈 바이제르가 책상을 탁! 하고 치며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네, 개월제 같은 축제에서는, 길가에서 음식을 파는 노점들도 많이 생긴다네, 혹여 그런 것에 관심이 있을까 하여 물어본 것이라네.
그러시군요....노점이라...
그러고 보니 현대에서도, 불꽃축제나 봄놀이 같은 이벤트 때 잠시 가계를 쉬고, 노점상을 열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도 손님들이 몰려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노점이라....여기까지 와서 또 일해야 하는 거야?”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 애슐란에 계신 분들이 강하 셰프님의 음식을 보여주고 싶어요!”
“저도 찬성! 장사꾼은 원래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잖아요?”
“흠.....”
갑작스러운 노점 개업 제안이었지만, 특별히 반대는....
“아니, 내 의견은?”
....특별히 반대는 없는 것 같으니, 뭐 괜찮으려나?
네, 좋습니다. 한번 해 보죠.
그것참 멋지군, 알겠네, 그렇다면 이 서류를 받아주게나.
그렇게 결심하고, 국왕에게 개월제의 참가 의지를 보이자, 그는 한 장의 서류 종이를 건넸다.
이건...?
축제에 낼 노점의 위치나, 크기, 그리고 무엇을 팔지를 적어내는 서류라네. 이렇게 관리를 해야, 축제 당일 운영이 편해지기 때문이라네.
아하...
그럼, 잘 생각하고 오늘 저녁까지 제출해주면 고맙겠네.
네, 그럼...
강하는 서류를 받아들이고는, 고개를 숙이고 바이제르의 집무실에서 발을 돌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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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금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음....좀 괜찮은 거 없나?”
이왕 이렇게 된 거, 할 때는 제대로 하자! 가 신조인 강하는 본격적으로 개월제 때 팔기 위한 음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의견은 죄다 식상하거나, 조건에 맞지 않거나 하는 등, 자꾸만 차질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건 죄다 빠꾸먹였잖아!”
“야 임마! 너는 임마, 어! 케밥을 만들어서 팔자고 한 놈이 말이 많아!”
“아니...케밥은 노점에서 많이 팔잖아...”
“나도 전 세계의 요리를 다 아는 건 아냐, 나도 어떤 요리는 아예 모르는 초짜라고.”
강하의 요리 실력은 뛰어나기는 하다만, 고든 램지보고 홍어삼합 만들라고 하면 만들 수 있겠는가?
그녀도 역시 모르는 요리는 초짜인 사람이었다.
“헹....형도 실력 많이 죽었구먼?”
“짜식이 자꾸...!”
“아!! 아악!!!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자꾸만 비아냥대는 혁수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자, 혁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용서를 구했다.
“으...으으...”
“짜식이 그냥...”
“아 몰라! 그럼 그냥 떡볶이나 팔던지.”
“뭔 갑자기 떡볶이...떡볶이....떡볶이?”
그러자 씩씩거리며 단순하게 툭 던진 한마디에 강하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뜨고 중얼거렸다.
“....왜 이걸 떠올리지 못했지?”
떡볶이.
떡과 부재료를 양념에 볶거나 끓여서 먹는 음식.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이 음식은 궁중떡볶이라는 이름으로 왕조차도 가끔 먹을 수 있는 별미 중 별미였고, 우리가 아는 국물 떡볶이는 신당동 떡볶이로 유명한 마복림 여사께서 만드신 이후로, 현대까지 이어지는 떡볶이는 현재, 수많은 바리에이션을 일으킨 요리가 되었다.
그리고, 떡볶이 하면 바로, 학교를 마치고, 학교 앞 노점에서 사 먹기는 그 떡볶이.
그때부터 노점 하면 떡볶이, 떡볶이 하면 노점을 떠올렸어야 하거늘.
강하는 이 세계에 와서부터 한 번도 떡볶이를 만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한의 주인 향종에게 빠네를 대접할 때, 가래떡을 넣기는 했지만, 그건 떡볶이로 보기에는 너무 애매했다.
“잘 했어! 아주 잘 말했어! 뭐야 너? 할 때는 하는구만!”
“어?...어어...역시 나인가...할 때는 하는 남자...줄여서 한ㄴ..”
“거기까지, 역시 너는 띄워주면 끝을 몰라.”
혁수의 중얼거림으로부터 힌트를 얻은 강하가 혁수의 어깨를 두들기며 칭찬을 하자,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 시작하는 혁수의 말을 바로 끊어버렸다.
“저...셰프님? 떡볶이...라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음...? 아~향이는 모르는 구나?”
그렇게 떡볶이라는 음식으로 이러쿵저러쿵하는 사이, 그 요리에 관해 향이가 강하에게 물었다.
하긴, 떡볶이 자체가 왕들이 먹는 귀한 간식이었으니, 백성인 향이가 모르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음...그러니까, 가래떡을 여러 재료와 양념을 버무려 볶아내거나 끓여낸 음식이야.”
“아~그래서 이름이 떡 ‘볶이’인 것이로군요?”
“그렇지.”
“저...그런데 셰프님.”
“응?”
“이 곳은 한이 아니라 애슐란인데, 떡은 어떻게 구하죠...?”
둘의 대화를 조용히 듣던 파렌이 손을 들어, 강하에게 의문점을 물어보았다.
노점에서 팔 거라면 상당한 양의 떡이 필요할 텐데, 이 애슐란에서 떡을 파는 곳을 찾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음....애슐란은 쌀을 많이 취급하지 않아서, 쌀떡은 몰라도, 밀떡은 만들 수 있을 거야.”
“떡도 직접 만드시나요?”
“음! 밀떡 자체는 누구나 간단히 만들 수 있어! 쌀떡보다도 글루텐 성분이 많아서, 더 쫄깃하기도 하지!
아니다, 말 나온 김에 바로 만들어보자!“
“자..잠시만요! 같이 가셔야죠!”
그런 강하는 이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왕궁의 주방으로 향했다.
응? 이보게 진혁, 강하가 왜 저러느냐?
떡볶이...떡볶이....이건 못 참지!!!
아..아니...어딜 가는거야?!
(주...주인! 같이 가!)
그리고 이 모든 대화가 민위어로 이루어졌기에, 대화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아델리아가 진혁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으나, 이미 눈이 풀려버린 진혁은 마찬가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강하를 따라나서자,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드라고노바와 아델리아는 영문도 모른 채 진혁을 따라나섰다.
“....일단 우리도 갈까?”
“네, 그게 좋겠어요.”
“이번에는 셰프님이 무엇을 보여주려나?”
그리고, 이번에도 강하가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줄 것임을 알고 있는 스타 주막의 직원들도 벌떡 일어나 강하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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