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겨울이 온다. (시즌 3)
* * *
스타 주막의 아침은 언제나 일찍 이루어진다.
“으음~....! 햐아...”
아직 태양이 반기지도 않는 묘시*(오전 5~7경).
노랗고 붉게 물들었던 나뭇잎들이 색을 잃고, 정처 없이 주막의 마당 하늘을 날아다니는 초겨울 아침에는, 약간의 입김에도 새햐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뭔가 도련님이 담배 피우는 것 같다....”
언제나 성실한 향이는 차가운 아침 공기를 크게 들이키며,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하루의 시작을 반겼다.
“오~향아! 일어났구나?”
“아. 힐라 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렇게 찌뿌드드한 몸을 풀고 있자니, 저 멀리서 긴 귀를 쫑긋거리며 다가오는 엘프, 힐라가 향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흐어...후...”
“혁수 도령님도 계셨네요?”
그리고, 그런 힐라의 뒤에서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혁수 또한 보였다.
“햐...후우...향아 잘...하아...잤어..? 후우...”
“네, 도련님은 오늘도 힐라 언니와 아침 운동을 하시나요?”
“운동은 개뿔, 이게 무슨...운동이야...! 지옥단련이지...!”
한때, 악귀갑사*(악귀를 전문적으로 퇴치하는 군사조직.)의 대장으로 일하던 힐라는, 매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몸을 단련하고 있었다.
늘어진 감각을 일깨우고,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에 대비하기 위함이라고 말하는 그녀였다.
그리고 그런 힐라의 눈에 띄게 된 혁수는, 거의 매일 억지로 힐라의 손에 이끌려 같이 몸을 단련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현대에 있었을 때도 헬스를 좋아하고, 몸을 단련하는 것을 좋아하는, 소위 말하는 헬창, 이었으나 힐라와 같이 단련을 하다 보면 어디서 그런 소리를 입 밖에도 꺼내지 못했다.
언제나 쇠질만 하던 혁수는, 어느새 양날검, 창, 활, 그리고 화승총마저 자유자재로 다루는 인간병기가 된 지 오래였지만, 아직 자기 자신은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혁수...아니 힐라는 나설 필요도 없었다.
세계 최강자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그냥 옆에서 팝콘이나 뜯는 수밖에.
“그럼, 저는 주방으로 들어가 볼게요.”
“그래, 나도 슬슬 빵을 구워야 하니, 오늘은 여기까지.”
“감사함다!!!!”
슬슬 주막 개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었기에, 오늘 운동은 끝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혁수는 금방까지 지쳐있어 보이던 것이 거짓처럼 아주 빠르게 튀어나갔다.
아마 땀에 젖은 몸을 씻고, 아침을 먹을 때까지 늘어져 잠들 생각인 것 같다.
“....짜식, 아직 팔팔하구먼, 내일은 조금 더 강하게 해볼까....?”
“....그래도 살살하셔요...”
그런 혁수를 보고 음흉하게 웃는 힐라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혁수가 불쌍하게 느껴지던 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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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향아, 일어났어?”
“일어나셨어요?”
주막으로 들어서고, 주방으로 향하는 길목에 마주친 파렌이 향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그는 [애슐란]이라는 나라의 사절단으로 찾아온 애슐란 왕가 직속 요리인, 이었다.
그랬던 그는 강하의 요리에 완전히 빠지게 되어, 지금은 스타 주막에서 열심히 일하는 중인 것이다.
이제는 민위어도 거의 완벽하게 구사하는, [한] 사람 다 된 모양이다.
“.....어제 벼루와 어딜 다녀오신 건가요?”
“케흑...! ㅁ...무..뭐뭐? 그...그걸 어떻게...!”
그러다 갑자기 훅 들어온 향이의 질문에 순간 사레가 들린 것처럼 크게 기침하던 파렌이 누가 봐도 크게 동요한 듯이 말을 더듬거리며 재차 물었다.
스타 주막의 홀서빙 담당이자, 스타 주막의 얼굴마담인 벼루.
그렇다, 숨겨서 무엇을 하리.
파렌과 벼루, 이 두 사람의 사이는 현재 그렇고 그런...사이다!
허나 두 사람에게 연애 경험 따윈 있었던 적이 없었기에, 아주 천천히, 발전 중인 상황이다.
“어제 잠시 장에 살 물건이 있어서 들렀다가, 두 사람이 같이 다니는 걸 보았습니다만?”
“......다른 사람들은 알아?”
“아뇨, 저만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비...비밀로 해 줄거지...?”
“으음....어떻게 할까요?”
“제....제발!”
“단순한 농 이었어요~ 비밀로 해 드릴게요~”
“저..정말? 고마워!”
순수하게 당황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이 웃겼던 향이가 가볍게 장난을 치자, 거의 울먹이기 시작할 때쯤, 그만두는 향이었다.
“일단, 어서 가죠. 셰프님이 기다리시겠어요.”
“아, 그렇지, 어서 가자.”
잠시간의 잡담을 즐기던 그들은, 빠르게 주막의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셰프님, 좋은 아침이에요!”
“안녕하십니까! 셰프님!”
“아, 다들 왔어?”
길쭉한 갈색 머리칼을 곱게 땋고.
검은색 앞치마와 국자를 들고 있는, 소녀.
스타 주막의 주인이자, 주방장인 강하가 그들을 반겼다.
강하의 원래 이름은 강준.
그는 원래, 이 세계에 오기 전, 강준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슐랭 레스토랑의 주방장이자, 남자였다.
허나, 어떠한 사고로 이 세계로 떨어지고, 여자아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그녀의 요리에 대한 열망을 사그라뜨릴 수는 없었으며, 현재 [한]의 수도, 서라벌의 제일 거대한 주막인 스타 주막을 차리게 된 것이었다.
“혹시, 또 주무시지 않은 건가요?”
“음? 아아....이번에 새로 넣어볼 메뉴를 고안하느라 깜빡했지 뭐야.”
“그래도 잠은 주무셔야죠!”
“에....뭐, 일단은 잠을 안 자도 되는 몸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이지.”
강하는 어떠한 일 덕분에, 인간이면서도 용인, 반인반룡의 신체를 얻게 되어, 수면을 취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강대한 힘과 마력을 얻게 되었다.
“그래도 안돼요! 사람은 언제나 휴식이 필요한 법입니다!”
“아..알았어...오늘은 푹 잘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잠은 자야 하는 법.
그런 강하에게 향이가 강하게 쏘아 붙히자, 꼬리를 내리는 강하였다.
“어라? 오늘치 재료들의 손질이 전부 끝나있네요?”
그런 광경을 멋쩍게 웃으며 자신이 할 일을 찾던 파렌이 이미 깔끔하게 다듬고, 정리된 식재료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 그것도 내가 미리 해놨어. 생각을 정리할 때는, 일단 손을 움직이는 쪽이 좋아서....”
“그래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걸요...”
“미안 미안, 오늘 하루는 좀 쉬어, 맞다, 오늘 아침은 간단하게 소고기미역국을 끓였거든, 조금 이르지만, 아침부터 먹을까?”
“소고기 미역국인가요....아침에 딱 어울리는 요리네요!”
보글보글, 은은한 향을 내는 국이 담긴 냄비의 앞에서, 국자로 휘휘 저으며 아침을 준비하는 강하였다.
“그럼 파렌은 나를 도와서 밑반찬 좀 꺼내주고, 향아? 미안하지만 2층으로 가서 나머지 애들도 좀 깨워줄래?”
“네, 알았어요~”
강하의 부탁을 받은 향이는, 주방을 나서서 계단을 올라, 주막의 2층으로 향했다.
상당히 큰 2층으로 이루어진 스타 주막은, 1층은 말 그대로 주막의 용도로 사용하고, 2층은 직원들의 개인 휴식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누구부터 깨우지...?”
잠시 고민하면서 걸어가던 향이는, 우뚝, 어떤 방의 문 앞에서 서서, 문을 가볍게 두들겼다.
“ㄴ..네에~...누구셔요...?”
“벼루야~ 셰프님이 아침 식사가 준비됐으니까, 일어나라고 하셔~”
“아 네에...지금 나가요...”
금방 일어났는지 상당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드르륵 하고 방문이 열렸다.
언제나 양갈래로 묶인 머리가 지금은 이리저리 날리는 긴 생머리가 된 벼루가 눈을 비비적거리며 향이를 반겼다.
얼핏 보이는 그녀의 방에는, 여기저기 널브러진 종이들이 보였는데, 하나같이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욘석. 또 늦게까지 그림 그리다 잠들었구나?”
“헤헤....죄송해요오...”
“자꾸 그러면 어제 파렌 도령님이랑 몰래 만난 걸 다 말한다?”
“아..? 아흐앙느라니그!! 그...그걸 어떻게...?”
“대답은...?”
“죄...죄송해요오!! 오늘부터 일찍 잠들게요!”
“그래 그래, 어서 씻고 아침 먹으러 1층으로 오렴?”
“네!”
반쯤 감기던 눈이 화들짝 떠지며 얼굴을 붉히는 벼루를 바라보던 향이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벼루는 됐고...이제 남으신 분이...”
힐라와 혁수는 이미 일어나 있고, 벼루도 씻으러 나갔으니, 남은 사람은 두 명.
“백설님?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어요~”
“음, 고마워라, 잠시만~ 지금 나갈게~”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마치 상냥하신 어머니 같은 울림이었다.
“백설님 일어나셨어요?...근데....그 분은...?”
잠시 기다리자 방문을 열고 등장한 백설.
새하얗고 긴 머리칼과 상당히 큰 키, 그리고 언제나 미소가 담긴 얼굴.
하지만 사실 그녀의 정체는, 수천 년을 살아온 고대의 드래곤, 백룡이었다.
엘프의 마을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던 그녀는, 우연찮게 강하의 요리를 맛보고, 조금 더 살아볼 가치를 느꼈다고 판단하고는 이렇게 스타 주막에 들어오게 되었다.
“가끔씩 몰래 내 방에 들어와서 이렇게 붙어있곤 하단다.”
그리고 그녀의 허벅지에 착 달라붙어 있는 소녀.
먹물같이 어두운 흑발과 그런 머리칼에 꽂혀있는 보랏빛의 각시붓꽃이 새겨진 비녀와, 어려 보이는 체구.
하지만 이 소녀 또한 위대한 용이자 [한]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존재.
흑룡 류월 이었다.
“으음....”
허나, 그런 이명과는 달리, 지금은 마치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착 달라붙어 있는, 외관과 비슷한 언동을 보이는 귀여운 소녀였다.
“류월이는 내가 깨워서 아침 식사에 데려갈게.”
“그래 주시겠어요?”
“응~류월이는 참 어리광을 자주 부리니까 말이지.”
그렇게 자신의 옆에 달라붙은 류월을 들어, 품에 안은 백설이 총총 1층으로 내려가는 백설.
정말, 마치 모녀지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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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다 왔지? 자기 밥그릇 국그릇 다 있어?”
“““네에~”””
1층의 홀에 테이블을 두어 개 붙여서 긴 탁자를 만들어, 모두 옹기종기 앉아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그럼, 어서들 먹자!”
“““잘 먹겠습니다!”””
모두 준비 만전인 것을 확인한 강하가 말하자, 모두 빠르게 수저를 들어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음....짭잘하고 진한 국물과 부드럽게 씹히는 소고기...그리고 미역도 맛있다....’
은은하고, 이른 아침에 부담되지 않는 소고기미역국.
갓 지어 따끈한 흰 쌀밥과 깍두기, 여러 채소를 작게 잘라 만든 달걀말이, 직접 수제로 만든 소세지로 만든 소세지야채볶음 등 갖가지 반찬들과 함께하는 아침.
그렇게 오늘도 스타 주막은 든든한 아침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