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8화 〉 카레? 커리?(2) (148/289)

〈 148화 〉 카레? 커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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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으으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

하인즈 상단에서 카레의 재료가 될 향신료들을 보급받은 뒤로 3일 후.

스타 주막의 주방에서는 벽에 걸린 조리도구들이 흔들릴 정도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해냈어...! 드디어...! 해냈다고!!!!”

그 포효를 외치는 자는 바로, 강하.

그녀는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부여잡으며 성취감에 젖어있었다.

카레에 들어가는 향신료를 얻은 것은 좋았다.

강황도 곱게 갈아, 빠짝 말려 가루 형태로 얻어내는 것까지 아주 무탈하게 흘러갔다.

문제는 바로, 향신료들의 조합이었다.

수많은 향신료를 아주 적절한 분량으로 맞춰야 하는 커리는, 정확히 일정한 조리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직접 맛보며 알맞은 비율을 찾아야만 했다.

그것이 이 고생의 시작이었다.

어떤 향신료를 조금 넣어서 맛이 약해지거나, 반대로 너무 과해서 맛이 심하게 뒤틀리는 경우가 이미 수십 번은 있었다.

육체적인 피로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었다.

오감을 집중시켜 아주 정밀하게 맛보다 보니, 혀는 얼얼해질 지경이었고, 스트레스는 더더욱 늘어났다.

하지만, 강하는 해냈다.

이제 카레 파우더는 완성되었으니, 이제 일본과 한국에서 먹는 조리법대로 가공만 하면 드디어 카레가 완성되는 것이다.

먼저 통후추, 코리엔더 씨(고수 씨앗.), 쿠민 씨, 호로파, 정향, 월계수 잎, 시나몬, 머스터드 씨, 소두구, 그리고 강황 파우더와 칠리 파우더가 기본.

여기서 여러 가지 향신료를 더 추가해도 됐으나, 일단 기본 베이스를 만들기 위해 이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첫 번째로는 먼저, 이 재료 중 강황 파우더와 칠리 파우더를 재외한 향신료들을 전부 약한 불의 팬에 적절한 비율을 넣어, 볶아준다.

이 과정으로 인해 향신료 안의 수분 제거와 갖가지 다양한 향신료들이 어우러지게 한번 볶아져서 더욱 맛이 좋아지는 것이다.

점차 팬에 열기가 가해지며 한약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넓은 그릇에 부어 펼쳐서 완전히 식혀내어, 냉장창고에 넣어 저온으로 숙성의 시간을 보내준다.

본고장의 가람 마살라는 상온에서 식혀 바로 갈아내어 강렬한 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반면, 상당히 독하다.

하지만 저온에서 숙성하는 방식은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며, 향이 옅지만, 본고장에 비하면 아주 순한 맛이 난다.

이렇게 완전히 식힌 향신료들을 전부 곱게 갈아내면, 바로 가람 마살라가 되는 것이다.

이제 여기에 강황 가루와 칠리 파우더를 넣어 잘 혼합해주면...!

커리 파우더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제 이 커리 파우더를 요리에 사용하면, 커리를 만들 수는 있으나, 강하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 커리는 거쳐 가는 길일 뿐, 그녀는 커리가 아닌, 카레를 만들기 위해 이 고생을 하는 것이다.

이제는 카레라이스의 본고장, 일본식 카레를 만들 차례이다.

먼저 양파 마늘, 생강을 곱게 갈아준다.

이번에는 사과와 당근, 청주 약간, 그리고 우스터 소스를 함께 갈아주어야 하나, 우스터 소스가 없기에 대체품으로 간장을 넣어서 다시금 곱게 갈아낸다.

다음엔 팬에 식용유를 둘러 양파와 마늘, 그리고 생강을 갈아낸 것을 볶아 수분을 날려 보내 준다.

약한 불에 천천히 볶은 양파는 설탕보다 더 단맛을 내어준다.

어느 정도 수분이 날아가면 소금을 넣고 더 볶아주다가, 아까 갈아내어 준 사과, 당근쥬스를 부어 다시금 볶아 수분을 날려준다.

강불을 내면 타기 쉬우니 약불 상태로 바닥이 눌러붙지 않도록 잘 저어내어, 페이스트 상태가 될 때 까지 잘 볶아낸다.

이 채소 페이스트는 스튜나 다른 요리에도 한 조각씩 넣어주면 더욱 맛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니 냉동 보관해서 다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제 앙금처럼 뭉쳐지기 시작했다면,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어, 잘 섞어준다.

이렇게 만들어낸 페이스트는 다른 접시에 옮겨둔다.

한국식 카레와 일본식 카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색깔이다.

한국식 카레는 아주 노란 빛을 내는 것이 특징이라면, 일본식 카레는 마치 된장처럼 진한 갈색을 내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루를, 그것도 브라운 루를 넣기 때문이다.

‘루’ 라는 것은 버터나 라드같은 유지방 기름에 밀가루를 넣어 볶아낸 것으로.

스프나 스튜, 그리고 소스의 농도를 잡아주는 역할로 자주 들어가는, 양식의 기본이라고 볼 수 있다.

그중 브라운 루 라는 것은, 루가 진한 갈색이 될 정도로 강하게 태워내는 것으로, 더욱 깊은 맛을 내는 비프스튜에 자주 활용되고는 한다.

곧바로 다른 팬을 꺼내, 버터를 넣어 잘 녹여준다.

버터가 녹았다면 밀가루를 넣어주는데, 이때 비율은 1:1로써, 버터와 밀가루가 동량으로 들어간다.

맨 처음에는 약한 불로 맞추어 밀가루가 뭉쳐지지 않게 잘 풀어내어 주고는, 강불로 맞추어 루에 색을 내어준다.

진한 갈색이 되었다면, 드디어 카레 파우더가 나설 시간이다.

카레 파우더를 브라운 루에 넣고, 잘 섞어내어 준다.

두 재료가 한데 잘 어우러졌다면, 만들어 둔 야채 페이스트를 넣고, 잘 뭉쳐준다.

마치 찰흙처럼 한데 잘 뭉쳐졌다면, 꺼내어 식혀주면....끝!

생김새는 말 그대로 마트에서 파는 일본식 카레 블록과 비슷하게 생겼다.

이제 카레를 만들 때, 일정량의 카레 블록을 넣어주면 카레가 완성되는 것이다.

“내일 아침 식사는....이걸로 결정이다아.....!”

완성품인 카레 블록을 바라보던 강하는, 찌뿌드드한 허리를 곧게 펴며 중얼거리다가, 문득,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 주막에 시계가 없어서 불편하다던 아델리아가 들고 온 벽걸이 시계를, 한의 시간에 맞추어 개조한 벽시계였다.

그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오전 4시 반.

5시 쯤이면 언제나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힐라와 거기에 끌려다니는 혁수가 일어날 시간이고, 5시 반이면 항상 성실한 향이가 일어날 시간이었다.

보통 아침 식사를 6시쯤에 준비하니까, 얼마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카레를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일단 잠시 바깥 공기 좀 쐬고 생각하자....”

그렇게 중얼거리던 강하는 곰방대를 챙겨 들고는 마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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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레다....”

“진짜 카레네....”

그날 이후로부터 맨날 카레 타령을 하던 혁수와 진혁은 오늘 아침 식사로 나온 카레라이스를 바라보곤, 서로 눈을 마주치며 중얼거렸다.

진혁은 그 이후로 카레의 맛을 맛보기 위해 한동안 돌아가지도 않고 스타 주막에 쭈욱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와...엄청난 향기....대단해요!”

“수많은 향신료들이 한데 어우러진, 진한 향기....셰프님! 이 요리가 그 카레 인 것입니까?”

그리고 카레라는 것을 모르던 파렌과 향이었지만, 그들도 엄연히 요리를 배우는 사람들.

단박에 이 요리가 상당한 고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강하에게 존경의 시선을 내보였다.

“오호라~아주 맛있는 향이로구나, 오늘 아침은 그야말로 대단하군.”

“어머, 놀라워라, 정말 엄청난 향인걸? 신비하구나.”

“와...맛있겠다...”

[우와! 또 새로운 요리다! 신난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 또한, 모두의 감탄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바로, 카레라이스.

뜨겁게 달군 팬에 버터를 두르고 돼지고기를 볶아내어 준다.

돼지고기와 소고기 중, 어떤 고기를 넣을지 고민하던 강하였으나, 돼지고기가 가장 일반적인 카레라이스의 재료라고 생각한 강하는 돼지고기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잇따라 감자, 당근 양파 등을 깍둑 썰어 가볍게 볶아내고 물을 부어준다.

어느 정도 볶아져 색이 났다면, 물을 부어, 바닥에 눌어붙은 그을음을 잘 긁어내어 감칠맛을 더욱 내어주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카레 블록을 일정량 넣어 그대로 푸욱 끓여내면, 아주 간단하게 카레가 완성된다.

그 과정은 아주 힘들었지만.

그 다음에는 준비된 그릇에 밥을 담고, 카레를 부어주기만 하면 바로 카레라이스 완성!

“근데 살짝 진하네요?”

“일본식인가? 왜, 그 일본식 카레라이스는 우리나라랑 달리 엄청 진하잖아.”

“맞아, 한국식 대신 일본식으로 만들어 봤어, 솔직히 그 조리법밖에 몰라.”

“오...저는 오뚜X기 카레 밖에 안먹어 봐서...헤헤..”

언제나 자신이 먹던 카레의 색과 다르자, 의아해하던 진혁이 묻자, 혁수가 말해주었더니 그제야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X기? 주인, 그게 뭐야?]

“음? 으음.....자취생들의 배를 달래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야. 음, 그렇지.”

[자취생...?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하다~]

“그렇긴...하지?”

한국 국민들에게 가장 친근하게 다가간 기업이기도 하니까, 그렇긴 하겠지.

“그럼 일단, 먹을까?”

“““네에!!!”””

앞에서 침을 꿀꺽 삼키는 직원들을 보자니, 더는 시간 끌기 싫었던 강하가 먼저 숟가락을 들고 식사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자 곧바로 그들은 카레를 먹기 시작했다.

“우움...! 맛있다! 카레는 이 맛이지!”

“오....X뚜기 보다 훨씬 맛있어...!”

“정말 갖가지 향신료들이 한데 어우러져서....마치 악단의 음악을 듣는 것 같습니다!”

“포슬포슬한 감자와 당근, 그리고 녹아든 다른 야채들의 풍미가 가득하네요!”

“움냠...움...맛있구..냠...나!...음냠..!”

“우와...정말 굉장하구나, 아주 맛있어! 후훗!”

“엄청 맛있다!”

[햐아....셰프님은 정말 대단하다.....나중에 애들한테 자랑해야지!]

“....역시 언니들은 틀렸어, 인간의 간 따위보다, 이게 백배, 천배 맛있잖아!”

“...열심히 만든 보람이 있네....!”

요리사란 결국,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을 낙으로 살아가는 존재니까 말이다.

‘다음엔 카레 빵이나 만들어 볼까.’

수많은 향신료와 재료들이 푹 녹아든 카레의 맛에 감탄하며 먹는 직원들을 바라보던 강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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