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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화 〉 케이크 보다 더욱 달콤한. (151/289)

〈 151화 〉 케이크 보다 더욱 달콤한.

* * *

화륜은 자신을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첫째 형님처럼 거대한 검을 드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백이 빠져버리고 만다.

둘째 형님처럼 성리학과 지식을 추구하는 책들 또한 이해하기 힘들다.

자신은 그저, 못난 반푼이 일뿐.

방에 박혀, 그림을 그리거나, 재봉을 할 뿐.

아버님께서 이런 나를 사내답지 못하다며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언제나 자신의 방 안에서 조용히, 쥐 죽은 듯이 지내는 것을 여태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륜은 갑작스럽게 결혼하게 되었다.

상대는 이조판서 어르신의 막내딸, 채현.

아버지는 못난 아들이지만 이렇게 도움이 된다며 매우 기뻐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았던 화륜은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결혼은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화륜과 채현은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화륜의 마음속 가장 걱정거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서방님!”

‘내 아내가 너무 귀엽다.’

였다.

그녀는 언제나 활기차고, 밝은 사람이었다.

결혼하여, 자신의 집으로 오게 된 채현은 며칠 채 되지 않아 온 집안사람들과 얼굴을 맞닿으며 친해지고 말았다.

한평생 이곳에서 살아온 자신도, 남과 얼굴을 맞닿는 것이 부끄러워 알고 있는 사람이 적은 자신과는 다르게 말이다.

“아...부르셨습니까? 부인.”

언제나처럼, 방안에 박혀 도화지에 붓칠하던 화륜은, 갑작스럽게 열리는 방문에서 채현이 튀어나오자, 흠칫 놀라며 말했다.

“오늘 날씨가 참 좋아요! 하늘은 드높고, 햇빛은 맑은데도 그렇게 후덥지근하지 않고 상쾌하네요!”

“그렇습니까, 벌써 가을이 오는 모양입니다.”

그녀는 꾸밈없고, 언제나 솔직하고 밝은,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래서 그런데, 같이 나들이라도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예?”

그리고 조금, 충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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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인...! 조금 천천히...!”

수많은 인파.

사람들은 저마다 거리를 거닐며 바삐 움직인다.

시장의 거리는 온통 소음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득해, 화륜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움츠러들고 만다.

그는, 서라벌의 거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채현이 준비해 준 집에서 입던 고급진 천이 아닌, 면으로 짜인 직물 옷을 입고, 숨을 헐떡였다.

그는 단 한 번도 마차 없이 거리를 걸어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집 안에 있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그 누구도 자신을 데리고 거리로 데려온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수많은 인파 사이에 짓눌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부...부인....!”

분명 금방까지만 해도 불안해하던 그의 곁에 붙어있던 채현은 어느새 어디로 사라져버렸다.

무섭다.

이대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만일 질 나쁜 사람들에게 시비라도 걸린다면....

“...흑...”

찔끔, 눈물이 새어 나왔다.

아무리 양반집 자제라 하더라도, 그는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

불안에 휘감겨버려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 찬 화륜은 아무것도 못 하는 어리석은 사람.

그게 자신이었다.

점차 자신을 비하하고 있다 보니, 찔끔 새어 나오던 눈물이 어느새 펑펑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서방님! 한창 찾았어요!”

그의 손을 덥석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부...부인?”

그제야 눈물을 훔친 화륜이 앞을 바라보자,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채현이 있었다.

“서방님..?”

“아...아니! 이...이건...그러니까...”

그리고 자신이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화륜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는 소매로 연신 눈가를 비비적 닦아내었다.

‘한심하구나....어엿한 사내대장부가 되어서,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부인께 보이다니....얼마나 한심스럽게 생각하실까...“

그런 자기 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보였던 화륜이었지만,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많이 놀라셨죠? 바로 옆에서 이것을 팔고 있길래, 서방님께 선물하고 싶어서 저도 모르게 몸이 나가버렸어요...”

“이...이건..?”

그럼에도 채현은 자신의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에게 들이댔다.

그것은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붓이었다.

언뜻 봐도 윤기가 흐르는 털을 보니 상당한 고가의 붓.

“이거, 받아 주시겠어요?”

“하...하지만, 저 따위가 이런 걸 받아도 될지...”

그는 분명 양반가의 자제였기에, 사용인에게 말하여 새로운 붓을 사 달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도, 형님들도, 집안의 사용인들도 언제나 방안에서 그림을 그리던 내 모습을 한심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화륜은 새로운 붓을 사달라고 할 수도 없어, 언제나 둘째 형님이 쓰고 남은 닳디 닳은 헌 붓을 그리고는 했다.

“저는, 서방님이 그리시는 그림을 정말 좋아해요, 서방님이 붓을 한번 휘두르면, 새하얀 종이에서 강산이 생기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걸요, 그걸 보고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채현은 언제나 그를 보았다.

항상 자신을 자책하는 화륜이었지만, 그림을 그릴 때는 언제나 눈이 반짝거리면서 열중하는 모습을.

그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번 나들이에서 몰래 사서, 깜짝 놀라게 하려고 했었는데...헤헤..”

“....고마워요, 소중하게 간직...”

“아니에요! 이런 붓은 제가 언제든지 사 드릴테니까, 그 붓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주세요!”

“...하핫, 네, 알겠습니다, 부인.”

그런 채현의 말을 듣고, 환하게 웃어보이는 화륜.

‘...우리 서방님은 어찌 이렇게 귀엽지....’

부부는 서로를 닮는다고 하던가.

어느새 두 사람은 서로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조금 출출하기도 하고, 스타 주막에 갈까요?”

“스타 주막이라면....저번에 그 신비로운 음식이 나왔던, 그곳인가요?”

“네~그리고 이제 더욱 새로운 요리들이 잔뜩 생겼답니다! 저번에 먹었던 케이크, 라는 것이 정말 환상이었답니다?”

“...환상....”

“그럼, 갈까요?”

“...네!”

그렇게 두 사람은 천천히 스타 주막으로 향했다.

두 사람의 손을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도 못 했지만, 어느새 서로 꼬옥 잡은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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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어머, 채현 마님! 오랜만이에요! 화륜 씨도 오셨네요?”

“안녕!”

“강...강녕하신지요...”

이내 두 사람이 스타 주막으로 들어서자, 언제나처럼 손님들을 반기는 벼루가 두 사람을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옷차림이 조금 다르네요?”

문득, 채현이 늘 입고 오던 고급진 천으로 된 옷이 아닌, 면으로 된 서민들이 입는 옷으로 입은 것을 알아챈 벼루가 물었다.

“아아, 오늘은 서방님과 함께, 서라벌의 거리를 조금 돌아다녔거든, 서방님이 쓰시는 붓도 새로 살 겸 말이야.”

“붓이라면, 화륜씨는 그림을 그리시나요?”

“그러엄! 엄청 잘 그리시거든~”

“그렇구나! 저도 그림을 좋아해서, 자주 그린답니다.”

“....그림을...그리시나요?”

아직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투르던 화륜은 채현의 뒤에 꼭 붙어있었지만, 그림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슬그머니 고개를 빼며 벼루에게 물었다.

“그럼요! 여기 보시면 보이는 이 그림들도 다 제가 직접 그린 그림인걸요?”

“...오오...대단하시네요!”

“아직 미숙하기는 하지만, 셰프님이 기뻐해주시니까 열심히 그렸어요!”

자리를 안내한 뒤에도, 메뉴판에 그려진 삽화들을 보여주는 벼루의 그림을 보던 화륜은 감탄을 내뱉었다.

“저는...풍경을 주로 그리다 보니, 이렇게 세세하게 무언가를 표현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저기, 이런 식으로 그리는 방법이 있습니까?”

“아...이 부분은 먼저 목탄으로 한번 가볍게 밑그림을 그리고, 붓으로 세세하게 그림을 따 내려가는...”

“저기! 자꾸 내 서방님 빼앗지 말아 줄래?”

“앗, 그렇네요~ 그럼 주문은 어떻게 해 드릴까요?”

“난 딸기 쇼트케이크, 서방님은요?”

“앗...저...저도 같은 걸로 부탁드립니다...”

“네에~ 딸기 쇼트케이크 두 개 말이시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두 사람 간의 대화가 자꾸만 길어지자, 심통이 난 채현이 말을 끊고는 딸기 쇼트케이크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아들인 벼루가 쫑쫑거리며 사라지자, 그재서야 금방 그렇게 대화를 나눴던 사실을 깨달은 화륜은 살짝 부끄러워져 그대로 굳어버렸다.

“.......”

“...서방님은 저런 아이가 좋으신가요?”

“.....네?”

“이 하나뿐인 부인을 앞에 두고, 다른 여성과 그렇게 신이 나서 대화를 나누다니....”

“아...아니..그...그런 것이 아니오라....저 말고 그림을 그리시는 분은 처음 보는지라 궁금했기에...”

채현이 약간 심술을 부리며 말하자, 화륜은 크게 당황하며 횡설수설 말을 이어갔다.

“...풉...농이에요,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아....그...예...”

“그래도, 약간 쓸쓸하다고 생각한 건 농이 아니랍니다?”

“.......”

채현이 자꾸만 화륜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자, 그것이 모조리 얼굴에 보이는 화륜을 바라보던 채현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저는, 반편이입니다.”

“...네?”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아버님의 자식이 아니었다면, 완전 몹쓸 인간일지도 모릅니다.....가끔 부인이 나에게 시집을 온 것을 힘들어하지 않을까 항상 고민하고는 합니다.”

“서방님....”

“하지만, 저는....이런 몹쓸 반푼이인 저이지만, 언제나 부인만큼 아름다운 여성을 본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손을 꽉 잡은채로, 부들거리며 말하는 화륜.

그때.

“딸기 쇼트케이크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아, 케이크가 나왔네요! 어서 먹을까요?”

“앗...”

그 사이에 케이크를 들고 온 벼루가 테이블 위에 케이크를 올려두자, 순식간에 말을 돌리며 포크로 케이크를 잘라 입 안에 넣는 채현.

그것을 바라보던 화륜도 그녀를 따라, 케이크를 맛보았다.

‘.....이상해....언제나 맛있게 느껴지던 케이크인데...맛이 잘 안 느껴져...’

그럼에도 채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계속해서 케이크를 먹었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 자신의 얼굴을 화륜에게 그대로 보여 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서방님...치사해....그런 말을 들으면, 얼굴을 숨길 수가 없잖아...’

케이크는 물론 달콤했지만, 금방 들었던 화륜의 말이 너무나도 달아서, 케이크의 맛이 느껴지지 않던 채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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