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 히키코모리 왕녀님은 젤라또가 먹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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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슐란 왕국.
그곳에는 아직 장성한 왕과 왕비, 그 아래로 2남 3녀의 자식들이 있다.
그들은 왕과 왕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왔지만, 모두 제각기 다른 성향인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곳에서 공통점이 나뉘는 아이들도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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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방.
그곳엔 최소한의 밝기만을 위해 가져다 놓은 발광석만 존재할 뿐, 누군가가 보면 마치 아수라장 같은 공간이었다.
세계의 각기 언어로 쓰인 책들이 마치 산을 연상케 할 만큼 가득 쌓여있고.
그저 사락사락 하며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이 방 안에서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역시 책으로만 접하는 건 한계가 있어...
그리고 그 소리의 주범이자, 이 방의 주인이 금방까지 읽던 책을 덮고는, 한숨을 쉬며 느지막히 중얼거렸다.
날카롭고 싸늘한 눈매.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금빛 머리칼과, 갸름한 턱선.
애슐란 왕국의 제 1 왕녀이자, 언제나 날카로운 무표정에 말수가 적어 ‘얼음의 공주’ 라 불리오는.
애슐란 디 프리안, 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표정과 말수가 적어, 집사와 메이드, 심지어 같은 형제자매들조차 그녀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그것도 그런 것이, 프리안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자신의 방과 서고만을 들락날락하며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의 취미는, 이미지와 완전 정반대의 길을 달리고 있는 아델리아처럼, 온갖 세상의 여러 가지를 찾아서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취미였다.
아델리아와의 차이점이라면, 정보의 수집단계였다.
아델리아는 일단 궁금한 것이 있으면 곧바로 몸부터 나가는 천성 모험가 기질이었고.
프리안은 궁금한 것이 있다면 먼저 왕궁의 서고를 찾는 천성 학자 기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수많은 책이 가득한 왕궁의 서고라고 한들, 한계가 있는 법.
이런 외모와 다르게 상당히 내성적이던 프리안은 이렇게 서고의 정보가 한계가 왔을 때는 새로운 책을 기다리거나, 한숨을 내쉬며 포기하고는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그래, 가는 거야....스타 주막으로...!
새로운 경험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히키코모리 왕녀의 도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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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텔레포트 마법진에 마력이 주입되더니, 이내 엄청난 빛을 내보이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약 10초간 지속되던 빛이 차츰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분명 비어있던 마법진의 중심에 형체가 차츰 보이기 시작했다.
텔레포트....정말 가능한 마법이구나....!
프리안은 밝은 빛 때문에 부시던 눈을 차츰 진정시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바로 스타 주막.
몇 개월 전, 애슐란을 찾아온 강하가 살고 있는 ‘한’이라는 나라이며, 백룡의 마법으로 애슐란의 왕궁과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어놓은 상태였다.
자신의 동생인 3왕녀, 아델리아와 애슐란에서 단 세 명만이 존재하는 소드마스터, 진혁이 자주 이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했지만, 그녀에게는 처음 느껴보는 텔레포트 감각이었다.
과...과연...이 마법식은 이런 식으로 짜여있구나....와......아니지! 지금 이럴때가 아니야..!
마법에도 일가견이 있는 프리안 이었기에, 한동안 마법식을 바라보며 감탄에 빠져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이 있던 곳의 방문을 열어 나왔다.
.....어...어디로 가야하는 거지?
방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서 바깥을 살펴보는 프리안.
처음 보는 목조식 건물에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그때.
[아, 1 왕녀님이다! 안녕하세요!]
히익..!
그런 그녀를 발견하고 후다닥 달려온 한 아이가 있었으니.
바로 인간 형태로 변신한 드라였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드라였기에 프리안은 화들짝 놀랐다.
[1 왕녀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저...저기...나...나를 알고 있니?
[그럼요!]
드라는 검 형태였을 때 진혁을 따라 프리안의 얼굴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인간 형태의 드라를 지금 처음 보았다.
애초에 사고뭉치 같은 드라를 궁 내에서 인간 형태로 돌아다니면 골치가 아플 것 같아, 애슐란 왕궁에서는 언제나 검 형태로 들고 다녔고, 프리안 그녀 역시 방 안에만 박혀 있었기에 그가 드라고 노바인 것을 알지 못했던 것.
[아 맞다, 왕녀님은 모르는구나! 에잇!]
어...어어? 어어어???
[어때요? 저 드라고 노바에요!]
머리를 갸우뚱하던 드라는 그랬었지, 하며 자신의 오른손을 검으로 바꾸었다.
소..소소손이...거...검이 되었....아..
[어...? 와...왕녀님! 왕녀니임!]
그 모습을 보고 말 그대로 심장이 놀랄 만큼 놀랐던 프리안은 그대로 뒤로 고꾸라져버렸다.
“아이 참! 드라! 왜 이렇게 소리를 질....프리안 왕녀님?”
그리고 아래층에서 드라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윗 층으로 올라온 진혁은 드라가 쓰러진 프리안 왕녀를 흔들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주...주인! 큰일이야! 와..왕녀님이 죽었어!]
“뭐어어어어?!?!”
아직 기절이라는 것을 잘 몰랐던 드라가 폭탄 발언을 하자, 진혁은 얼굴이 사색이 되며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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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쪽은 저희 애슐란 왕궁의 제 1 왕녀, 프리안 님이십니다.”
바...반가워요...
“어..어어.....뭔가 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괜찮아?”
“아 네....뭐...”
잠시 후.
진혁은 다행히도 금세 정신을 차린 프리안을 데리고 일 층으로 내려와 강준에게 소개를 했다.
하지만 프리안은 유일하게 얼굴이 익은 진혁의 등 뒤에서 얼굴만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그래서, 왕녀님은 무슨 일로...?
마...맞아요!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어요!
강하가 무슨 일로 스타 주막을 방문했냐고 묻자, 그제야 자신의 방문목적을 깨달은 프리안이 자신의 옆구리에 들린 책을 펼치며 말했다.
남쪽 나라의 어떤 나라에는, 우유와 설탕을 이용해 만든 차가운 디저트가 있다. 그리고 그 식감은 놀랍게도 얼린 우유임에도 쫀득한 식감이 훌륭하게 어우러지는 음식....이라고, 이 책에서 봤었어요, 그....그래서, 요리에 대해 잘 아는 당신이라면....혹시 이 음식을 알고 있을까....해서....네...
“쫀득한 아이스크림...? 찹쌀아이스크림인가?”
“뭐지? 진짜 떡 아니야?”
“음? 무슨 일이야?”
“아, 혁수 형님, 형님은 혹시 쫀득한 아이스크림이 뭔지 아시나요?”
“음? 찹쌀 아이스크림아냐?”
“무어냐,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게냐.”
“무슨 일이에요?”
그렇게 마치 문제를 내는 프리안의 답을 어느새 한곳에 모인 스타 주막 모두가 같이 골똘히 생각해 봤지만, 딱히 적절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아아, 젤라또 말하는 거네. 남쪽이면...이탈리아? 그럼 젤라또지.”
“아아! 맞네! 젤라또!”
“아 그거구나! 들어본 적 있어요!”
엄청 간단명료하게 답을 내놓는 강하의 말에, 현대인 2인방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아...알고 계신가요?
예, 제가 생각하는 게 아마 맞는 것 같습니다.
“뭣이라? 제라토? 그게 무슨 음식이지?”
“혁수 씨, 그게 뭐에요?”
“어머나~ 또 새로운 음식이니? 궁금하네!”
그...그럼 만드는 방법도 알고 계시는가요?
음...아무리 그래도 본고장에 비하면 야매방식이기는 하지만, 네, 가능합니다.
“궁금하구나! 그 제라토인지 젤라또인지 먹고 싶다!”
“흠....그럼 만들어 볼까? 생각보다 간단하기도 하니까.”그럼 왕녀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만든 젤라또를 한번 드셔보시겠습니까?
ㄴ...네! 전 좋아요!
“그럼, 곧바로 만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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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끝이야?”
“엄청 많은 재료들이 들어 갈 것 같았는데....어라?”
이...이게 재료인가요?
네, 이게 끝입니다.
주방으로 자리를 옮긴 강하가 젤라또를 만들기 위해 가져온 재료는 단 5가지.
우유와 설탕, 달갈, 생크림과 찹쌀가루, 단 4가지였다.
“그래도 여러 가지 맛이 있으면 좋을 테니까, 바닐라 빈 과 초콜렛, 딸기로 세 가지 맛의 젤라또를 만들어 볼 거야.”
“오...초콜렛 젤라또....”
“그럼 먼저 바닐라 젤라또부터...”
강하는 먼저, 냄비에 우유와 설탕, 달걀노른자를 넣고 약한 불에 천천히 끓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생크림은 휘핑을 쳐, 거품을 올려낸다.
냄비에 들었던 우유가 끓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찹쌀가루를 넣어 잘 섞어준다.
찹쌀 덕분에 농도가 질척해지면, 휘핑 해둔 생크림과, 바닐라 빈을 넣고 조심스럽게 섞어준다.
어느정도 잘 섞였다면, 틀에 담고 냉동창고에 얼리기만 하면 끝.
“에...? 이게 끝이야?”
“엄청 간단하네요?”
“뭐, 본고장은 조금 더 손이 많이 가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젤라또를 만들 수 있어.”
그리고 다른 젤라또를 만들기 위해서 두 냄비를 꺼내, 우유와 달걀노른자, 설탕을 넣고 끓이다가 찹쌀가루를 넣는 것까지 해놓고, 한쪽에는 딸기를 간 딸기쥬스를 넣고, 다른 한쪽에는 녹인 초콜렛을 넣어서 마찬가지로 틀에 담아 냉동창고에 넣어 얼려줬다.
“이제 다 얼어버릴 때까지 기다리면 돼.”
“얼마나 걸리는데?”
“음....한 4~5시간?”
“길어!”
“야 임마, 일단 얼리는 요리니까 오래 걸리는 건 별수 없잖아.”
만드는 건 간단했지만,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자, 혁수가 심술을 냈다.
“그럼, 이렇게 하면...? 에잇.”
그러자, 그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백설이 손가락을 휘졌더니, 젤라또가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렸다.
이...이 마법은...?
“음...그냥 얼음 마법으로 얼려버리려고 했는데, 그러면 너무 꽁꽁 얼어버릴 것 같아서, 그냥 저 틀만 빠르게 시간을 돌렸어. 어때? 굉장하지?”
“오...진짜로 잘 얼었네요? 이 정도면 바로 먹어도 되겠는데?”
“아싸! 신난다!”
‘아...아니...저게 저....저건 설마....!
프리안은 마법에 일가견이 있다.
그렇기에, 금방 백설이 부린 마법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마법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시간 가속 마법.
일정한 물체의 시간을 가속해, 풍파 시키거나 복구시키는 마법이다.
시간의 촉을 건드리는 마법이기에, 위험부담도 크고, 상당한 마력과 고밀도의 마력 조작 능력이 필요하다, 매우 복잡한 마법술식은 덤이고.
그런데 백설은 아무렇지도 않게 뚝딱해버린 것이었다.
‘여...역시 백룡....이걸 눈치 챈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며 프리안은 소란을 일으키는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자, 모두 한번 맛봐봐, 세 가지 맛으로 만들었으니까!”
“와! 맛있어 보이는구나! 잘 먹겠다!”
“후훗, 고마워.”
“감사합니다 셰프님!”
“고마워 주모! 잘 먹을게!”
[와! 아이스크림이다!]
여기 있습니다, 프리안 왕녀님.
아...고...고마워....
그러던 사이, 강하가 유리그릇에 젤라또를 떠서, 각기 직원들과 프리안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이게 그 젤라또...인가...’
삼색으로 물든 둥근 덩어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반짝반짝 빛을 냈다.
‘그....그럼 새하얀 것부터......’
잠시 감상에 빠진 프리안이 숟가락을 들어, 바닐라 젤라또를 떠서, 한 입, 맛보았다.
“...마..맛있어...!”
‘달콤해...! 달콤하지만, 이 냄새는....코까지 즐거운 느낌이야...그리고 식감! 저...정말로 책에서 본 것처럼,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이.....최고야...!’
‘그리고 이 초콜렛...? 이라는 것도, 금방 맛본 단맛과는 완전 다른 묵직한 맛....! 달콤하면서도 씁쓸해....뭔가 힘이 나는 음식이야.’
‘딸기가 들어간 젤라또도 상큼하고, 신선한 맛이 일품인걸..!’
“정말 맛있다..! 식감이 특이해!”
“찹쌀가루 덕분인 걸까요? 마치 엄청 부드러운 찹쌀떡을 먹는 기분이에요!”
“음, 음, 맛있군, 한 접시 더 다오.”
“맛있다아~입안이 시원해! 좋아!”
[와아....난 초콜렛이 제일 좋아....]
“나는 이 딸기? 가 들어간 것이 마음에 드네~”
젤라또의 맛에 감탄하는 것은 프리안만이 아니었다.
스타 직원들 모두 저마다의 취향을 말하며 즐겁게 젤라또를 맛보고 있었다.
.....가끔은, 직접 알아보는 것이 좋을 때도 있구나....
여기라면, 다음번에도 올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프리안은 다시금 젤라또를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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